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5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56화(156/353)
☆ 제156화 ☆
화아아악!
뒤늦게 쪽팔림이 밀려왔다.
수년간 우리 가족들에게 너무 잘 통해서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데 눈이 마주친 궁인 언니들이 어색하게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꼬, 꽃이 참 예쁘게 피었네.”
“꽃이었구나. 내가 잘못 봤나 보다.”
‘……넘어가 주는 건가.’
다행이긴 한데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일단 나랑 시드는 대외적으로 친밀한 관계니까 괜찮은 거 같기도.
애기가 친구 보러 몰래 왔다는데 눈감아 줄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조금 당당해진 기분으로 물었다.
“시드리한 전하께서는 어디 계셔?”
“……방에 계십니다.”
“음, 그럼 안내해줘.”
내 말에도 궁인들이 우물쭈물하며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시드리한 전하랑 이야기만 하다 갈 거야. 내가 여기 왔다는 걸 황제 폐하께서 알면 귀찮아지니까 비밀로 해달라는 거고.”
황제뿐만 아니라 다른 황족들이 알면 정치적으로 엮으려 할 수 있다.
궁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 * *
“뭐야, 왜 이렇게 공기가 텁텁해.”
방문을 열자마자 텁텁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훅 끼쳐 왔다.
난방은 난방대로 하면서 환기 한 번 제대로 하지도 않은 건가?
거기다 방 안은 침침하고 우중충했다.
겨울은 해가 빨리 져서 벌써 어둑한데 불 하나 켜지 않은 것이다.
‘자고 있나?’
그래도 환기는 좀 시켜줘야 할 것 같은데.
시종이랑 궁인들은 대체 뭘 한 거지.
‘내 새끼 황궁에서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지내고 있는 거야?’
이 할미 가슴에 피멍이 든다, 들어.
나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시드는 없는 게 아무래도 안 쪽에 있는 방 중 한 곳에 있는 듯했다.
내가 문고리를 잡자 궁인들이 멈칫했다.
“고, 공녀님…….”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문을 열었다.
그곳은 침실이었다.
이곳의 공기는 아예 고여버린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나는 말을 하다 멈췄다.
“시드?”
침대 위에는 창백하게 질린 시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가가 그 아이의 뺨을 만졌다.
‘불덩이 같아!’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옷깃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만져보니 이불과 옷까지 전부 젖어서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러면 없던 병도 생기겠어!’
안달하는 내 눈에 침실 문간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궁인들이 보였다.
“……전하의 상태를 알고 있었어?”
“송구합니다.”
알고서도 내버려 뒀다고?
애가 이렇게 아픈데?
눈앞에 불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시드리한 전하께서는 황제 폐하께 정식으로 인지 받은 황자시다. 전하께 돌보아주실 모친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소홀하다면一.”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 그게 황자님께서 방에 들어오지도, 손대지도 말라고 하셔서…….”
“아무리 그렇게 말했어도 그렇지. 애가 이렇게 아픈데…….”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곳의 주인은 시드리한이다.
거기다 시드리한은 모친이 없다.
다른 윗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궁인들이 시드리한의 명을 거역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시종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 텐데…….
“시종은?”
“전하께서 아직 뽑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제야 궁인들이 왜 모르는 척 나를 이곳까지 안내했는지 깨달았다.
시드리한의 상태를 알아채고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왜 황제 폐하께는 알리지 않았지?”
“황자님께서 원치 않으셨습니다.”
‘시드가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황제는 아무리 친자식이라 하더라도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적인 면모를 보였다.
아비이기 이전에 황제라고 해야 할까.
“일단 옷을 갈아입히고 몸도 좀 닦아야겠어.”
“알겠습니다.”
궁인들이 서둘러 뜨거운 물과 수건 몇 장, 그리고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다.
내가 수건을 건네받자 궁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녀님께서 직접 하시게요?”
“어쩌겠어. 까다로운 황자님께서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시는데.”
아무리 내가 억지를 썼다고 해도 궁인들에게 화가 번질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말고 나가 봐. 나는 간호 경험 많으니까.”
“아, 네. 타렌카 후작님을 치료하셨다고 하셨죠.”
아니, 시드 이야기인데.
어쨌거나 내가 할아버지를 살려냈다는 소문은 아주 유용했다.
궁인들은 아주 믿음이 넘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들은 잠시 나를 남겨두고
나가도 되는 건가 고민했지만, 이내 로라를 보더니 안심하고 방을 나갔다.
바람이 차서 환기는 옷을 다 갈아입힌 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시드를 내려다보았다.
“이 난리가 났는데도 깨지도 않네.”
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잠든 그 애의 모습은 어렸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할미가 다 씻겨주고 그랬는데.
나는 피식 웃으면서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시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깊게 들어간 눈가, 오뚝한 코.
모양이 예쁜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서 안쓰러웠다.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턱선과 곧게 뻗은 목.
곧 변성기도 올 거 같다.
지금의 미성도 좋지만 낮은 목소리도 잘 어울릴지도.
“…….”
나는 슬쩍 셔츠의 단추 풀었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에 내가 더 화들짝 놀랐다.
‘아니, 왜 내가 긴장하는 거야!’
그냥 간호해줄 뿐이잖아!
‘왜, 왜 이렇게 어색하지?’
분명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가씨?”
“다, 닦아주려구 단추 푼 거야.”
“네? 네.”
로라는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변명 같은 소리를 했나 싶어서 뒤늦게 창피해졌다.
‘정신 차려. 나는 애기를 돌봐주고 있는 것뿐이라구.’
“제가 할까요?”
“아니!”
로라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치, 치료는 내가 더 잘하니까…….”
“흐응, 네에.”
로라가 고양이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이니까 로라도 나가 있어!”
“어머? 제가 나가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어?”
“그러게나 말이에요~.”
로라가 싱글벙글 웃으며 방을 나갔다.
“에휴, 진짜.”
나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 단추를 마저 풀었다.
그 순간이었다.
탁!
거칠게 손길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아얏!”
“루……아티샤?”
나는 조금 놀라서 시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일어난 일도 물론 놀라웠지만…….
‘시드가 나를 이런 식으로 불렀던 적이 있었나?’
눈이 마주치자 바짝 털을 세운 짐승처럼 경계심이 가득했던 시드의 얼굴이 서서히 풀린다.
내 팔목을 틀어쥔 손아귀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하지만 놓아주진 않는다.
“꿈인가.”
“꿈은 무슨.”
입술을 삐죽하며 투덜거리는데 시드는 뭐가 좋은지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연한 새싹 같아서.
“진짜 같네.”
“진짜니까.”
나는 괜히 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감기가 옮은 걸까?
뺨이 뜨거웠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시드가 내 손목을 휙 끌어당겼다.
“어?”
자연스럽게 내 몸이 기울고 그 아이의 곁으로 풀썩 쓰러졌다.
‘뭐, 뭐지?!’
아주 가까이에 시드가 보였다.
열이 올라 뜨거운 몸과 색색이는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잔뜩 굳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쿵쿵.
너무 놀란 탓인지 귓가에서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몰아쳤다.
시드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야, 정말.’
“뭐가 다행인데.”
“내가 아파서.”
“……?”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시드를 올려다보았다.
그 애는 아주 이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다정해서 오히려 연약하게 보이는 미소.
아픈 애가 그런 얼굴을 하니 가슴이 쿵 내려앉는 거 같았다.
“무슨 소리야. 아픈 게 뭐가 다행이야.”
“네가 아픈 것보단 낫잖아.”
“둘 다 안 아픈 게 좋은 거지.”
“그래, 그렇지.”
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디 말을 한 것뿐인데 시드는 아까보다 훨씬 지쳐 보였다.
“일어나 봐. 너 몸 닦아야 해. 이대로 있다가는 더 아파.”
열이 나는 거 보면 지독한 감기 같은데 이러다 폐렴으로 번질 수도 있다.
나는 시드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혼자 할 수 있지?”
“……네가 안 닦아주고?”
“내, 내가 왜 널 닦아줘.”
시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해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옆구리까지 훤히 드러나려는 것을 보고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파서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오늘 시드 태도가 평소랑 다른 거 같아.’
이렇게 반말하면서 내 이름 부르진 않았던 거 같은데.
투둑, 툭.
조용하니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잘 들렸다.
괜히 민망해져서 나는 입을 열었다.
“아프면 궁인들한테 간호라도 받지. 해열제도 안 먹었지? 다 갈아입고 나면 약 먹자.”
“약은 소용 없어.”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단 나을 거야.”
“다 됐어.”
그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왜 벗고 있어!”
“옷을 안 줬잖아.”
“아.”
나는 서둘러 새 셔츠를 시드에 건넸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
“내, 내가 언제 부끄러워 했다구.”
“얼굴이 빨개. 터질 거 같아.”
시드가 내 뺨을 톡 건드렸다.
“언제는 부끄러워하긴커녕 당당하게 사람 벅벅 닦더니. 말 들으라면서.”
내가 언제?
아니, 물론 그러긴 했지만.
‘그건 전부 할미 모습일 때였잖아?’
나를 바라보는 시드의 보랏빛 눈동자가 뚜렷했다.
그 위로 촘촘히 나 있는 금빛 속눈썹.
새삼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러워하는 걸 너무 보고 싶어 해서 그런가.”
뭐?
내가 움찔거리자 시드가 몸을 물렸다.
“등은 못 닦았어. 닦아줘.”
“언제는 주인님, 주인님 하더니. 오늘은 완전히 나를 부려 먹네. 이건 주객전도야. 하극상이라구.”
“그 주인님이 내 마음대로 살라고 하시지 않았나?”
“……그랬지.”
내가 본모습으로 했던 말이라 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를 부려 먹으라는 말은 아니었다구.”
“안 해줄 거야?”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이며 묻는 시드의 얼굴을 보니 왠지 가슴이 턱 막혔다.
“아프니까 봐준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수건을 들었다.
‘무슨 애가 등도 예뻐?’
곧게 뻗은 등줄기에 근육이 보기 좋게 잡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소년 조각상 같은 몸.
‘아, 아니! 뭘 감상하고 있담!’
나는 시드의 등을 벅벅 닦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 * *
“……늦는군.”
파에라톤 공작의 서늘한 음성이 식탁 위에 울려 퍼졌다.
파에라톤 공작가 남자들과 타렌카 후작까지 모든 사람이 착석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음식은 무엇 하나 나오지 않았다.
배고픈 막내가 귀가하기 전에 먼저 밥을 먹고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이 안 좋습니다.”
“아주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그 말에 눈치만 보고 있던 파에라톤 공작저의 집사, 하인츠가 놀라서 물었다.
“아가씨께 안 좋은 일이 생긴 걸까요? 설마 다른 가문에서 습격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신경이 거슬리는 게 꼭…….”
익시온은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소리가 있다.
“습격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산드라가 연락을 넣었을 테니까.”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하인츠는 의아한 눈으로 공작 일가를 둘러봤다.
아가씨께서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라면 딱히 예감이 안 좋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타렌카 후작이 입을 열었다.
“이 기분은 예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데.”
그의 시선이 파에라톤 공작을 향했다.
“이나이스가 열여덟 살 때 황궁에서 열리는 불꽃놀이에 갔던 날이었지.”
파에라톤 공작이 움찔했다.
그날은 파에라톤 공작과 이나이스가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