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5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57화(157/353)
☆ 제157화 ☆
루아티샤에게는 아픈 내색 하나 없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시드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극심한 고통이 얼음으로 만든 칼날처럼 그의 살갗을 저미고 내장을 찌르는 듯했다.
심장을 휘돌며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지독한 한기.
하지만 루아티샤를 보고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전부 괜찮아졌다.
아니, 실질적으로 괜찮아진 건 하나도 없었다. 고통은 사라지지도 않고 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시드리한에게는 괜찮았다.
비록 환상일지라도 아프지 않고 멀쩡한 루아티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고통이 아주 의미 있게 느껴졌다.
一후유증을 대신 받는 건 아주 힘든 일이야.
一원래 그 개척자가 겪어야 할 고통의 다섯 배를 받아내야 한다.
一후유증 때문에 개척자가 죽는 것도 아니야. 네가 대신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자아, 써도 잘 먹어야 해.”
루아티샤가 해열제를 스푼으로 떠서 조심스럽게 시드리한에게 내밀었다.
진지한 얼굴.
걱정 가득한 눈.
시드리한은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지었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옳지, 잘 먹는다. 아구 착해.”
루아티샤는 쓴 약을 잘 먹는다고 칭찬했지만, 사실 시드리한은 미각과 후각까지 마비되어서 쓴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해열제 따위 하나도 소용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입을 벌려 루아티샤가 떠주는 약을 다 먹었다.
하기야, 실제로 해열제를 먹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열에 들떠서 보는 환상일 텐데 약효가 안 통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깨끗이 다 비우자 루아티샤가 사탕을 입에 쏙 넣어주었다.
“어때, 평소보다 사탕이 훨씬 맛있지?”
루아티샤가 생긋 웃었다.
맛은 여전히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달았다.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을 눕히고 궁인이 가져다준 뽀송뽀송 한 새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토닥토닥.
두툼한 이불 너머로 두드리는 손길이 가슴에 느껴졌다.
“좀 더 자.”
“안 돼.”
“너 쉬어야 해.”
시드리한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의식을 완전히 놓을 순 없다.
다 낫기도 싫었다.
“싫어. 다 나아버리면 네가…….”
사라질 테니까.
환상 속에서라도 그 말은 끝까지 할 수 없었다.
말을 마치는 순간 정말로 루아티샤가 사라질까 봐.
루아티샤는 이미 한 번 자신을 버렸다.
이제부터 자신과 상관없이 네 마음대로 살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 후로 시드리한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어린 소년이 단기간에 S급 용병단을 만들고, 랭킹 1위로 올라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사선을 넘나들었고 그럴 때마다 정말로 죽을 뻔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죽음을 이겨냈다는 뜻이었고, 죽음을 이겨냈다는 것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드리한에게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박의 고통에 비하면 배에 구멍이 뚫리고 쇼크가 올 정도로 피를 흘리고 아득해질 정도로 숨이 끊어지는 것은 약과였으니까.
하지만.
“이눔아, 잘 먹어야지!”
“자, 오늘은 특별히! 초코가 가득 박힌 쿠키야. 엄청 맛있어.”
“시드.”
“네 이름을 시드라고 하자.”
그 아이의 손길이 사라진 것은一.
그 미소가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다지도 고통스러울 줄이야.
열에 들떠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경을 헤맬 때면 항상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고통이 잦아들면 아이는 꿈결처럼 사라졌다.
그 상실감.
차라리 아픈 게 나았다.
“자장, 자장.”
부드러운 목소리가 소복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수마가 밀려왔다.
아니, 수마가 아니라 한계를 넘어선 고통이 의식을 갉아먹는 것이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와중에도 시드리한은 루아티샤의 손을 꽉 붙잡았다.
루아티샤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미소 짓는다.
아이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시드리한은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 * *
시드리한은 소리 없이 눈을 떴다.
언제나와 같이 어둡고 조용한 방안.
숨 막히는 적요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시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만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역시 그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심장에 냉기가 들어찼다.
‘오늘처럼 부끄러워 한 건 처음인데.’
비록 환상이더라도 자신을 의식하는 모습을 본 건 좋았다.
시드리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꼈다.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이불과 옷은 여느 때와 같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신선했다.
‘누가 들어왔었나?’
시드리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한참 어렸을 때 겪었던 일로 인한 트라우마였다.
시드리한은 이불을 제치고 침대에서 빠르게 일어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멈칫.
어둠 속에서도 침대 옆의 협탁이 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협탁 위에 적힌 쪽지와 일곱 알의 사탕도.
약은 꼭 챙겨 먹어야 해.
사탕은 약 먹고 난 후에만 먹어.
약속이야.
“…….”
시드리한은 순간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쪽지만 읽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
쪽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一.’
그건 환상이 아니었다.
정말 루아티샤가 왔던 것이다.
종알종알 투덜거리던 입술.
걱정 가득한 눈동자와 부드러운 미소.
부끄러움에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떨리던 손끝.
가슴을 간질이던 그 아이의 숨결까지도.
“윽…….”
날카롭다 못해 차가운 칼날처럼 벼려져 있던 칼날처럼 소년의 표정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귓가와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뺨으로까지 번졌다.
시드리한은 한 손으로 입가를 감싼 채 시선을 돌렸다.
제 나이답지 않게 삭막하고 황량하던 소년의 눈동자에 생기기 깃들었다.
뽀시락.
시드리한은 사탕 일곱 알이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집어 들었다.
안쪽에 있는 금고를 오러로 연 후에 사탕을 넣었다.
커다란 금고 안에는 생뚱맞게도 화병이 있었다.
화병에는 위압감 넘치는 황궁에 어울리지 않는 소담한 꽃다발이 꽂혀 있었다.
시드리한은 그 꽃다발을 조심스레 들고는 향기를 맡았다.
풋풋한 풀 내음과 함께 싱싱하고 달콤한 향기가 가슴 가득 들어찼다.
보드라운 꽃잎이 뺨과 입술을 간질인다.
시드리한은 그 꽃잎에 입술을 맞추었다.
아주 경건하게.
기사가 레이디의 손등에 키스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것보다는 노예가 숭배하는 주인의 발 등에 무릎 꿇고 입을 맞추는 것처럼.
* * *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커튼이 쳐진 방안.
“공녀님께서 말씀하신 것 여기 있습니다.”
휴엔 부인이 루아티샤에게 작은 초상화를 내밀었다.
루아티샤는 휴엔 부인에게 몇 가지 밀명을 내렸다.
그중 하나가 처음 휴엔 부인에게 접근한 여인의 신상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초상화를 확인한 루아티샤는 미간을 찡그렸다.
“음, 베일을 쓰고 있네. 이래서는 알아보기 힘들겠는데.”
“그전부터 항상 쓰고 있었어요. 대화하면서 벗기려고 유도 해봤지만 소용없더군요. 그 이상 강요하면 의심할까 봐 시도 하진 않았고요.”
“잘했어.”
의심 당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
“초상화 말고 영상석으로 찍는 게 나았지 않을까요? 다각도에서 보이니…….”
“영상석은 안 돼. 이 여자의 능력이 정확히 뭔지 모르니까. 혹시라도 영상석의 마나를 감지하면 대번에 부인을 의심했을 거야.”
“그렇군요.”
휴엔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에서 특별히 더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 뭐라고 부르면 될지 물어봤는데 ‘네가 날 부를 일이 있을까?’라는 답만 돌아왔어요.”
“아리엘은 ‘그 마녀’라고 불렀다고 했지.”
“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잘했어. 이 초상화만으로도 큰 성과야.”
“네?”
“생각나는 게 있거든.”
루아티샤가 씨익 웃었다.
루아티샤가 옐로체에게 눈짓하자 그녀가 자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다.
“이건 소피아에게 주는 내 선물이야.”
“아, 아니에요.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한데 선물까지…….”
휴엔 부인이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마녀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내지도 못했는데 선물을 받으려니 너무 미안했다.
“뭔지 확인하면 거절이 쏙 들어갈 텐데.”
그 말에 휴엔 부인이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공진단과 십전대보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소피아에게 먹여. 이 약재는 달여서 주면 돼. 달이는 방법은 적어 뒀고.”
루아티샤의 말대로였다.
휴엔 부인은 도무지 거절할 수 없었다.
“이걸……. 감사합니다.”
“아이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야 하니까! 일단 대외적으로 벌을 받았으니 소피아도 좀 힘들 거 아니야.”
휴엔 부인이 울 듯한 미소를 지었다.
루아티샤 역시 자신의 딸 또래의 어린아이다.
아무리 딸을 살리기 위해서였다지만 자신은 이런 아이에게…….
“지나간 일이 미안하면 앞으로 더 잘하면 돼.”
“제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할 거예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러고 싶어요.”
“그래도 애를 생각하면 살기 위해서 움직여야지. 그나저나 ‘그분’의 정체 쪽은 진전이 있어?”
“죄송합니다. 조심스레 언급했지만…….”
“잘 안 됐구나.”
“실패한 자를 뭘 믿겠냐는 말이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그 마녀는 다시 절 쓸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휴엔 부인은 홀로 딸아이를 키우는 평민이었다.
사교계에 이름을 알리긴커녕 감히 공녀를 모함하고 황족을 해할 뻔했다는 죄까지 뒤집어썼다.
다시 쓰기엔 너무나 볼품없는 말이었다.
“아니.”
하지만 루아티샤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어쨌든 만나 달라는 부인의 청을 들어줬잖아?”
“와서는 절 비난하기만 했는걸요.”
“정말 다시는 쓰지 않을 거면 아예 안 만났겠지. 만났다가 괜히 책잡히면 어떻게 해?”
“그것도 그렇네요.”
“지금 당장은 부인을 쓸 생각이 없지만, 언젠가는 쓸 일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만남을 거절하지 않은 거지.”
아무리 보잘것없는 패라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판을 뒤집을 수 있다.
“이 여자는 부인에게 여지를 남겨뒀어. 필요할 때 부인을 찾을 거야.”
“그렇다면…….”
“물론 그때도 필요 없는 척, 자비를 베풀어주는 척하겠지. 하지만 찾아오는 데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야.”
휴엔 부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이 파에라톤인가?’
고작해야 열한 살 소녀가 할 만한 생각인가?
휴엔 부인은 왜 루아티샤가 새벽 축제에서 유례없는 일을 해내며 우승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나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복수심……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나 때문에 계획도 실패해서 벌을 받게 되었고 생계도 힘들어졌잖아?”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 마녀는 부인이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고생하는 딸을 보고서 점점 분노가 생긴 것처럼 행동해.”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휴엔 부인을 보고 루아티샤가 미소 지었다.
어딘지 애틋한 미소였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그냥, 딸을……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철렁.
휴엔 부인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처럼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만 보여주었지만, 루아티샤는 아기 때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였다.
‘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다시 돌이킬수록 자신이 한 행동이 후회됐다.
귀족이니까, 부유하니까, 그늘 한 점 없이 행복해 보이니까.
내내 아프기만 했던 내 딸을 위해 조금은 불행해져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신조차 몰랐지만.
표정이 어두워진 휴엔 부인의 얼굴을 보고 루아티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괜찮아. 나는 정말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거든. 그리고…….”
루아티샤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엄마를 만날 순 없지만, 우리 엄마도 나를 무척 사랑했어.”
“분명 그러셨겠죠. 이리 사랑스러우신 분인데.”
“내 이름도 우리 엄마가 지어 주신 거야!”
자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휴엔 부인은 미소 지었다.
“공작부인께서 정말 멋진 이름을 지어 주셨네요.”
* * *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했다.
연말, 연시가 지나자 한동안 잠잠했던 사교계가 다시 깨어날 시기가 온 것이다.
황후는 초조하게 방안을 서성였다.
새벽 축제의 부정 이후, 황후는 자중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폭풍우가 들이칠 땐 천 리를 가는 새도 처마 밑에서 잠시 쉬어가는 법.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순 없어.’
이제 슬슬 물기를 털고 날개를 펼칠 때다.
문제는 자신에게 묘수를 알려 주던 사라 부인이 발걸음을 뚝 끊었다는 것이다.
“그러게 제가 일러드린 대로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왜 쓸데없는 짓을 벌이신 겁니까.”
“쓸데없는 짓이라니. 그럼 그 짜증나는 것이 꼴에 황자랍시고 에오스가 되도록 가만히 손 놓고 있었어야 한다는 뜻인가?”
“무리한 일은 실패하기 마련이지요. 실패한다면 차라리 손 놓고 있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자네에게 청하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에서는 저 역시 어쩔 수가 없군요. 묘안이 생기면 찾아뵙겠습니다.”
‘그 건방진……!’
설마 사라 부인이 그런 식으로 나올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도움이 절실했다.
“무슨 근심이 있으십니까, 폐하.”
“오오, 아이젤.”
황후는 차를 내온 아이젤 영애를 보고 반색했다.
새벽 축제 때 모든 측근 시녀들이 배신할 때 유일하게 곁을 지킨 시녀.
이렇게 고립된 상황에서는 충 성스러운 시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