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5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58화(158/353)
☆ 제158화 ☆
“……일전에 내가 보낸 편지에 답장은 없느냐?”
“황공합니다, 폐하.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래…….”
황후가 입술을 사리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베르딘 공작을 황궁으로 불러야 할지도 몰라.’
베르딘 공작은 황후의 오라비였다.
몇 년째 영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제도에 올라오고 있었다.
베르딘 공작을 다시 제도로 불러들이는 것은 황후에게 큰 부담이었다.
오기만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베르딘 공작은 결과를 위해 방법 따위 가리지 않는 수완가였으니까.
문제는 그 수단에 황후 본인 역시 이용될 수 있다는 거다.
‘……부르더라도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시드리한 황자가 꽤나 입지를 다졌다고 해도 이제 고작 토대를 만든 수준이다.
그 토대 위에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황제가 인지했다고 해도 황후나 황비의 소생이 아니다.
거기다 황제는 시드의 모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무성한 소문이 피어올랐고, 그 모두가 시드리한에게는 별로 좋지 않았다.
“한 번 더 편지를 보내야겠다.”
황후는 펜을 들어 종이 위에 빠르게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봉투를 밀봉하는 황후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인장을 빼앗겼다는 게 다시금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인장을 되찾아야 해. 숨이 막혀서 이대로는 못 살겠어.”
황비가 기어코 황후궁의 궁인 들을 모두 갈아치웠다.
황후는 당연히 자신의 궁 안에서도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곧 다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네게 무슨 혜안이라도一. 아니다. 내 괜한 걸 물을 뻔했구나.”
황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젤 영애는 약간 엉뚱하고 맹한 구석이 있었다.
치밀한 계략에는 어울리지는 않았다.
‘해서 보좌 시녀들 중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런 충성심을 보일 줄이야.’
황후는 나름대로 아이젤 영애가 애틋했다.
특별히 총애했던 것도 아닌 데, 오히려 차별당했을 텐데 유일하게 충심을 보인 영애다.
어찌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덕분에 아직 미혼인 영애인데도 황후가 가장 아끼는 시녀가 될 수 있었다.
뭐, 남은 시녀가 아이젤 영애밖에 없으니 딱히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황후는 새로운 시녀를 뽑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녀를 뽑아봤자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쭉정이 같은 자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는 딱히 묘안을 내는 데 재주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네가?”
“황후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지요.”
황후는 미소 지었다.
아이젤 영애가 훌륭한 계책을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됐다.
“그래, 내 기대하고 있으마.”
황후는 아이젤 영애에게 밀봉된 편지를 건넸다.
“이번에도 네가 직접 가야 한다. 다른 이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될 것이야.”
“염려 마십시오.”
아이젤 영애가 편지를 품에 넣고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녀는 지체 없이 황후궁을 나섰다.
* * *
“이게 황후께서 보낸 편지라고.
“그렇습니다.”
아이젤 영애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사라 부인도, 사라 부인의 충복도 아니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신가요? 공녀님.”
아이젤 영애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루아티샤였다.
그렇다.
아이젤 영애는 새벽 축제에서 루아티샤가 일부러 남겨둔 시녀였다.
“루루, 길을 잃었어요.”
“…….”
“무떠오또요. 루루 아빠 차댜두떼오. 히잉.”
“에구, 아빠 잃어버렸어? 애기가 무서웠구…… 헉!”
그날, 홀린 듯 대답하던 아이젤 영애가 정신을 차리고 바로 경계했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무서운 아이……!”
아이젤 영애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루아티샤의 표정이 흐려졌다.
‘왠지 요즘 주접떠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느낌이란 말이야.’
위기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주접부터 나온다.
가족들을 상대하던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센다는 걸까?
어쨌거나 그날, 황후의 시녀들을 이끌고 딜루쿨룸 홀로 가기 전에 루아티샤는 아이젤 영애를 따로 불러 세웠었다.
그리고 첩자로 삼았다.
“흐음.”
루아티샤가 고개를 기울이며 손끝으로 편지를 쓸었다.
“내용은?”
“제 앞에서 적으셨지만,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빼면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공녀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래, 지금은 무리해가며 염탐할 필요는 없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신뢰를 쌓는 게 더 중요해.”
“걱정하지 마세요. 황후 폐하께서는 제가 보인 충정에 꽤 감동하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의심했을 거야.”
황후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움직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바보는 아니다.
“다들 배신하고 떠났는데 영애만 남았다?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방심하지 말고 조심해.”
“알겠습니다.”
아이젤 영애가 시무룩하게 답했다.
“뭐, 그래도 이제는 진짜 신뢰하기 시작했을 거야. 그 후로도 몇 개월이나 지났고 그간 영애는 정말 황후의 시녀로서만 행동했으니까.”
지난번에 사라 부인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아예 빼돌리지도 않았다.
혹시라도 미행을 붙였을지도 모른다는 루아티샤의 귀띔 때문이었다.
“명심해. 만약 황후가 밀명을 내린다면 처음엔 무조건 그대로 해. 나한테 중간에 알리지도 마. 보고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다만 영애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문제가 있는데.”
“문제라니요?”
“황후가 더 이상 영애의 충성은 의심하지 않지만, 영애의 능력은 믿지 않고 있어.”
“그건…….”
아이젤 영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책략을 짜내는 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황후의 보좌 시녀로서 경력을 쌓다가 그 인맥으로 괜찮은 집 안 자제와 혼인을 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계획한 아이젤 영애의 인생이었고, 그녀 역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영애의 능력에 대한 기대도 없으니 정작 중요한 건 아무것도 상의하지 않는 거야. 굳이 다른 데 새어나갈 목소리를 하나 더 늘릴 필요 없으니까. 영애가 움직일 필요가 있을 때만 아무 설명 없이 명만 내리고.”
그 말이 맞다.
편지를 보내라는 말만 할 뿐, 사라 부인과 왜 연락을 해야 하는지, 어떤 계획인지 하나도 말해주지 않았다.
“네게 무슨 혜안이라도一. 아니다. 내 괜한 걸 물을 뻔했구나.”
지금처럼 곤란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견 따위는 아예 묻지 않는다.
원래라면 아이젤 영애 역시 그런 데에 딱히 관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달라.’
루아티샤의 첩자가 되고 나서 무언가 변한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생각 없이 지나쳤을 황후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 황후궁을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까지.
모든 것이 눈여겨 볼만한 것으로 변했다.
그간 시키는 일만 처리했을 때와 다른 두근거림이 가슴을 채웠다.
자신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느낌.
“어떻게 하면 제 능력까지 신뢰받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아이젤 영애를 보며 루아티샤가 자세를 바로 했다.
‘표정이 변했어.’
협박과 귀여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첩자가 되었던 예전과는 다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날 반응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아이젤 영애는 특이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이한 기준을 가졌다는 건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뜻.
그간 능력과 기회가 닿지 않아서 재미없게 지냈을 뿐이지.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파이짓 하는 사람과 능동적인 스파이는 차원이 다르기 마련이다.
루아티샤는 씨익 웃었다.
“황후가 인장을 되찾고 싶어 한다고 했지?”
“설마…… 인장을 되찾게 해 주려고요?”
“아니, 아직은 안 되지.”
루아티샤가 고개를 저으며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작은 초상화였다.
“어? 이 사람…….”
“본 적 있어?”
“이 사람이에요. 황후가 애타게 초대장을 보내는 사람이. 전에 말씀드렸던 그 사라 부인이요.”
“얼굴을 베일에 반쯤 가리고 있는데 확실해? 황후궁에 왔을 때도 가리고 왔다며. 이미지가 비슷해서 그렇게 보인 거 아니야?”
“귀가 똑같아요.”
“눈썰미가 정말 좋구나.”
아이젤 영애는 내심 뿌듯했다.
그녀로서는 난생처음으로 능력에 대해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첩자가 된 후, 온갖 것에 눈과 귀를 기울였던 성과가 있는 것이다.
‘설마 한눈에 알아볼 줄은 몰랐어. 초상화를 주고 다음에 사라 부인이 오면 대조해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루아티샤는 감탄했다.
‘황후가 그렇게나 의지하는 ‘사라 부인’이 휴엔 부인과 접촉한 ‘마녀’였다라…….’
아리엘은 금제와 관련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라 부인 역시 그 힘과 연관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설마 시드가 금제에 걸렸던 이유가 황후와 황후의 사주를 받은 사라 부인의 소행인 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이 편지는 황후의 명대로 처리하도록 해.”
“내용은 확인해보시지 않고요?”
“내용은 짐작 가. 협력의 보상에 대한 거겠지.”
“그렇군요.”
“이 편지를 어디에 두라고 했어?”
“랑칸 에비뉴의 랑칸 꽃집. 크로커스 화분 밑이요.”
“저번이랑 똑같네.”
루아티샤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를 놓고 궁으로 돌아가면 황후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해.”
루아티샤는 아이젤 영애에게 몇 가지 일러주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건물에서 빠져나와 마차에 올랐다.
“프리스, 산드라.”
마차 문을 열고 작게 부르자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두 사람이 나타났다.
역시 능력 하나는 끝내준다.
“랑칸 에비뉴에 있는 랑칸 꽃 집을 감시해줘.”
“네에? 저희가요?”
“두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원들 있잖아.”
“저희는 아가씨께서 외출하실 때 웬 놈팡이가 아가씨께 접근…… 아니, 아가씨의 안전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명이 가장 최우선이고요.”
“프리스, 지금 어디 소속이랬지?”
“……내돈내손 네목내손 쁘티큐티프리티 울막내손녀딸램공주 TMI 부요.”
“으윽……!”
“공녀님?”
“아니, 진명을 들으니 갑자기 현기증이…….”
“아가씨께서 먼저 물어보셨잖아요!”
프리스가 새빨개진 얼굴로 외쳤다.
솔직히 루아티샤보다 내돈내손 네목내손 쁘티큐티프리티 울막내손녀딸램공주 TMI 부의 부장인 그가 더 쪽팔렸다.
무엇보다 저것도 사실 진정한 의미의 풀네임이 아니었다.
‘내 돈은 내 손녀 거, 네 목숨은 내 손녀 거’라는 말이 ‘내돈내손 네목내손’으로 축약됐으니까.
TMI는 말 그대로 투 머치 인포메이션의 약어였고.
어쨌거나 정보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은 유지 중이었다.
문제는 정보 수집이 오로지 루아티샤에 대한 것에 한해서 이루어진다는 거지만.
현기증을 회복한 루아티샤가 프리스에게 물었다.
“소속명에서부터 증명하듯 프리스나 SSS부의 대원들의 목숨은 내 것일 텐데?”
SSS는 슈퍼 손녀딸램공주 소식통의 약어였다.
부원들이 최대한 원래 이름을 연상시키지 않는 약어를 지은 것이다.
“아니, 주군께선 그런 의미로 지으신 게 아니…….”
프리스는 뒷말을 흐렸다.
정말 아닌 게 맞나?
내 손녀딸램공주가 원하면 죽어라.
이런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은…….
“후우, 이런 건 다시 쓰고 싶지 않은데.”
루아티샤가 머리카락을 꼬며 순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프리스와 산드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순진한 얼굴 뒤에 어떤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저번에 황궁에서 내가 가족들 몰래 시드리한 황자 전하께 찾아간 거, 아빠랑 할부지가 알면 정말 놀라겠다. 그치?”
생글생글.
“두 사람, 그거 아빠랑 할부지한테 말하지도 않았잖아.”
그거야 공녀님이 협박해서 그런 거잖아요!
두 사람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문제. 내가 혼날까, 두 사람이 혼날까?”
결국 프리스와 산드라는 SSS 부와 WBD 부에서 대원을 각출해 랑칸 에비뉴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 * *
공작저로 돌아온 루아티샤는 우선 목욕부터 했다.
덫은 이미 다 쳐놨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
‘이쪽은 그렇게 정리되었으니 슬슬 셰루인 부인과도 만나야겠어.’
셰루인 부인에게 사교 클럽 〈메티스〉의 소개를 받는 퀘스트가 남아있었다.
〈메티스〉는 사교 클럽중에서도 가장 명망 높은 지식인들이 모인 클럽.
‘지난번에 강제 발동 때문에 영향력이 깎였던 걸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그리고…….
루아티샤는 해달이 뽈뽈 돌아다니는 것을 보다가 푹 고개를 숙였다.
첨벙!
물보라가 일었다.
뜨거운 물이 얼굴을 감싼다.
‘으으, 진짜!’
고개를 번쩍 든 루아티샤는 물기를 푸르르 털어냈다.
‘미치겠네. 그냥 간호해준 것뿐인데 왜 자꾸 신경 쓰이는 거야!’
옛날에 간호해줄 때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시드가 생각났다.
땀에 젖어 창백하던 얼굴.
눈이 마주치자 지었던 미소.
루아티샤, 라고 부르던 목소리.
조각 같았던 등.
그 어색하던 순간.
그리고…….
‘옆구리에 있었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