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6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61화(161/353)
☆ 제161화 ☆
당황한 내 얼굴을 본 가족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잊은 거야?”
“사랑하는 사람한테 초코를 주는 날인데…….”
“초코가 없다는 건一.”
“사랑이 식어버린…….”
보이지 않는 귀와 꼬리가 추욱 쳐졌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프로펠러처럼 붕붕 돌아가고 있었는데.
“아, 아니! 잊지 않았어!”
나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변명했다.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고 내 손을 바라보고 계셨다.
‘엄청 기대하고 계시잖아!’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루룩 흘렀다.
에잇, 모르겠다!
“그, 그런데 있잖아. 제온, 혹시 백장미의 귀공자 알아?”
대놓고 말을 돌리는 거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내 빈손에서 갑자기 없던 초콜릿이 생겨날 순 없으니까.
“백, 장미의 귀고옹자? 뭐야, 그게.”
익시온이 오그라든 손가락을 한 채 질겁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가족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제온은 닭살이 돈다는 듯 팔을 쓸었고, 아레스의 뺨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아빠와 할아버지는 별 해괴한 단어를 들었다는 듯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
나하고 관련해서는 손가락이 오그라들다 못해 시공간까지 오그라드는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솔직히 백장미의 귀공자가 내돈내손 네목내손 어쩌구저쩌구 딸랑구 같은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
“근데 그 새끼는 왜?”
소름을 극복한 제온이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제온이 단호하게 말하더니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부터 알아볼까 하고.”
새빨간 눈동자가 피에 젖은 것처럼 잔혹하게 빛났다.
흉흉한 기세.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귀공자라…….”
“그딴 별명 붙은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을 못 봤다.”
“난 옛날부터 백장미를 보면 가지치기를 하고 싶더라.”
그 가지치기가 머리를 잘라버린다는 뜻은 아니겠지?!
앞치마 차림을 하고서 저렇게 살벌한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이대로 가다간 얼굴도 모르는 젊은 천재가 명운을 달리해 버리겠어!’
나는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루, 루루 준비한 거 이써! 루루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려구 가지고 온 거!”
내 외침에 살벌한 기세를 내뿜던 가족들이 멈칫했다.
순식간에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되어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품을 뒤적뒤적거렸다.
당연하지만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품에서 손을 빼며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하트를 만들었다.
일명 손가락 하트.
K-하트로 유명한 그것.
“루루의 하트다!”
쨘!
들어 올리면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통해라, 통해라!’
하지만 가족들은 무표정했다.
‘……약한가?’
나는 하트를 활시위에 거는 시늉을 했다.
“뿅! 루루 하트 맞아라!”
“……윽”
갑자기 아빠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갑작스러운 혈류량의 증가와 심장박동의 상승. 내 딸의 귀여움은 신체의 반응마저 제어한다.”
“이것이 세계를 정복할 귀여움인가…….”
“…….”
반응이 오길 유도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까지 오버하니까 좀…….
“나도! 나한테도 쏴줘!”
나는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익시온한테도 뿅뿅 하트 화살을 쏴주었다.
“앗! 뭐하는 거야! 중간에 가로채다니!”
무감한 얼굴로 날아가던 하트를 잡아챈 제온이 가슴에 손을 꼬옥 올리며 말했다.
“내 거야.”
“솜뭉치가 나한테 쏴준 거라구!”
나는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흐린 얼굴로 보다가 다시 하트를 날렸다.
피융, 뿅뿅뿅!
공을 잡는 강아지들처럼 가족들이 아주 난리였다.
“…….”
왠지 보고 있자니 조금 그래…….
‘휴우, 어쨌든 좋아.’
나는 땀을 스윽 닦았다.
이것으로 가족들의 머릿속에서 백장미의 귀공자는 완전히 잊혔다.
얼굴도 모르는 백장미의 귀공자님.
제가 귀공자님의 목숨을 지켜 냈어요.
그러니까 메티스에서 나 보면 잘해주셔야 합니다?
예? 아시겠죠?
나는 가족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초코는 나중에 챙겨주자.’
* * *
제도의 3대 사교 클럽 중 유일한 독서 클럽, 〈메티스〉의 회원들은 평소와 달리 조금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새로운 회원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제도에 올라오기 전부터 소문이 무성하던 아이.
그리고 어떤 사교 경험도 없이 사교계의 차기 여왕이나 마찬가지인 아우로라가 된 아이.
“그때 황후 폐하를 공개적으로 고발했던 건은 아주 인상 깊었죠.”
“고발은 미첼로인 영애가 했지만 실질적인 흐름을 장악하고 있었던 사람은 파에라톤 공녀였어요.”
“인터뷰 도중에 난입한 궁인 들을 막고, 증인들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파에라톤 공녀는 그저 시녀들과 만나서 함께 왔을 뿐이라고 했지만, 메티스의 회원들 중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 열한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그때는 열 살이었죠?”
“사교적인 수완만 봐도 대단한데, 더 어렸을 때 흑사병 치료제를 만들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최근에 고대의 물건인 물리치료기를 가동시키고 공진단, 그리고 십전대보탕까지 재현해 냈죠.”
“얼마 전에 한의원에 가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어깨 결림이 단번에 풀리는 게……. 계속 받고 싶었어요.”
“요즘 저는 차 대신에 십전대보탕을 먹는데 확실히 덜 피로 하더군요.”
“셰루인 부인께서 단 한 번뿐인 회장의 권한 쓰지 않으셔도 되셨을 텐데.”
메티스의 일원들은 대체로 파에라톤 공녀에게 호의적이었다.
뛰어난 인재의 영입은 그들로 서도 언제든 환영하는 바였다.
다만.
“글쎄요. 그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레이디 샤본느.”
레이디 샤본느가 부채를 팔랑이며 입을 열었다.
“흑사병 치료제를 만든 건 공녀가 아니라 파에라톤 공작가라는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어요.”
“그건一.”
“파에라톤 공녀는 마기가 없어서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죠. 그 구설이 잠잠해진 것은 흑사병 치료제를 만들고 나서였어요.”
흑사병 치료제를 개발한 구국의 영웅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생겨서였다.
그 나이에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파에라톤이라는 증거 아니겠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파에라톤이 구설을 잠재우기 위해 공녀에게 타이틀을 달아 준 거라고 보는 편이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다섯 살짜리 꼬마애가 만들었다는 것보다는 그편이…….”
“너무 섣부른 말인 것 같네요. 여러분들도 어렸을 적, 정말 네가 한 게 맞냐는 말을 많이 듣지 않았나요?”
“그랬죠. 단지 다섯 살이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유로 의심하기엔 지나친 것 같습니다. 특히 저희끼리는요.”
이곳의 회원들은 각 분야에서 한 가닥 날리는 사람들이었다.
레이디 샤본느가 미간을 찌푸리며 부채를 탁 접었다.
“물리치료기를 발표하며 아쉘타인의 쌍둥이들이 가동시켰다고 하던 것도 그렇고……. 과연 파에라톤 공녀 본인은 능력이 되기나 할지.”
“레이디.”
만류하는 목소리에 레이디 샤본느가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나는 이래저래 탐탁지 않아요. 셰루인 부인의 안목도 믿음직스럽지 않고요.”
그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휴엔 부인 같은 자를 총애한 셰루인 부인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크게 실망했다.
진심을 다해 따르고 존경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파에라톤 공녀의 천거를 두고 곤두박질친 평판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어떤 아이인지는 직접 보면 알게 될 일입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메티스 하우스의 문이 열렸다.
회원들은 말을 멈추고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셰루인 부인과 함께 오늘의 주인공인 파에라톤 공녀가 씩씩하게 방안으로 들어왔다.
* * *
“와, 〈아스탈루만 연대기〉를 집필하신 유아렌 백작님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기뻐요!”
“허어, 그걸 읽었나? 공녀가 읽기엔 다소 난해할 텐데.”
“으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게 재밌었어요.”
“공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구나.”
“영웅의 삶은 분명 위대하고 멋있었어요. 모두가 그를 칭송했죠. 하지만…… 영웅이 생을 추구하는 게 결과적으로 다른 생을 파괴하게 되지 않나 싶어서…….”
“호오, 그렇게 느끼다니……. 사실 그 책을 읽었다며 내게 알은체를 하는 작자들 중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네. 다들 영웅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서만 떠들지.”
‘그분들은 수능을 공부하지 않았으니까요.’
루아티샤는 생긋 웃으며 생각했다.
보이는 것 그대로 읽지 않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담긴 뜻을 해석하며 읽는 것은 수능 교육의 산물이었다.
비록 대학에 진학하진 않았지만, 루아티샤는 ‘노란색’을 보면 ‘희망’을, ‘님’을 보면 ‘조국’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편견 없는 시선이기에 그런 해석이 나온 것 같군요.”
대화에 끼어든 귀부인을 보고 루아티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막았다.
“앗!”
“……왜 그러니?”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해서…….”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꼼지락거리는 아이를 보고 귀부인이 미소 지었다.
“공녀가 왜 흥분했을까?”
“라피셴 부인과 프루아칸 후작님을 직접 뵙게 될 줄은…….”
“나를 알고 있니?”
“그럼요!”
루아티샤가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였다.
그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에 프루아칸 후작은 미소를 지었지만, 라피셴 부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이상하구나. 나는 〈메티스〉를 제외하면 어느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고, 논문을 게재한 지면에도 초상화 한 장 실은 적이 없는데.”
라피셴 부인의 시선이 예리하게 루아티샤를 훑었다.
‘미리 내 초상화를 구해서 얼굴을 외우고 온 거라면…….’
이 깜찍하고 귀여운 아이가 사실은 배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 키우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소문은 막을 수 없죠!”
“소문?”
“라피셴 부인은 황홀한 은발에 로얄블루 사파이어 같은 깊은 빛의 푸른 눈을 지니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랬구나.”
라피셴 부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초상화를 구해서 얼굴을 외우고 온 건 아니구나. 능구렁이가 아니었어.’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입안이 썼다.
라피셴 부인이 부득불 어떤 곳에도 자신의 초상화를 싣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녀의 업적이 미모에 가리는 게 싫어서였다.
한데 이 아이는 미모를 보고 자신을 알아봤다고 하니…….
“하지만 그 아름다움보다 더 빛나는 것은 부인의 지성이겠죠.”
이어지는 루아티샤의 말에 라피셴 부인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은 아까 프루아칸 후작님과 저쪽에서 대화하시는 걸 들었어요.”
루아티샤가 이실직고하며 양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이야기 중이시기도 하고, 조금 부끄러워서…….”
꼼지락꼼지락.
아이의 조그마한 손가락이 바쁘게 얽혔다가 풀어졌다.
“먼저 말을 걸어주시다니 너무 기뻐요.”
헤헤,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라피셴 부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나 나를 환영해 주어서 고맙구나.”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피셴 부인이 미모를 언급 한 사람에게 저렇게 웃어주는 건 처음 봐요.”
“사실 잘 웃지도 않잖아요. 냉정하고 차가운 분인데.”
“파에라톤 공녀는 생각보다 훨씬 박학다식한 것 같아요. 아까 최근 무역 동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깜짝 놀랐다니까요?”
“관심사도 엄청 다양하더라고요. 머릿속에 백과사전이나 책이 든 것처럼 막힘없이 말하는데…….”
사실이었다.
루아티샤는 능력 〈훗, 저는 천.재.아.기.라고요?〉를 통해서 온갖 서적을 다 암기하고 분류했으니까.
“뭐, 똑똑하고 우수한 것도 우수한 거지만一.”
“그렇죠?”
“네, 그렇죠.”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인 귀부인들이 동시에 외쳤다.
“무엇보다 귀여워!”
사실 너무 어린아이가 오면 〈메티스〉 특유의 학술적인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고 염려했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충분히 건전하고 학술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러면서 귀엽기까지 해!’
‘오동통한 팔다리 좀 봐!’
‘땡그란 눈!’
귀부인들이 흐물흐물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그런 그녀들을 탐탁잖게 바라 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칫.”
레이디 샤본느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아주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 다가왔다.
“저 아이가 몹시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군요.”
레이디 샤본느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카이셴의 젊은 천재.
제국의 이끌어갈 미래라고 불리는 청년.
“흐음, 백장미의 귀공자께서 제게 말을 거시다니. 드문 일이네요.”
“……그 별명은 조금.”
청년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카이셴 영식.”
그제야 카이셴 영식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레이디 샤본느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며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기 마련이죠. 나는 이 〈메티스〉가 지저분한 흙탕물이 될까 경계하는 겁니다.”
“저 작은 영애가 미꾸라지 같습니까?”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네요.”
촤르륵.
부채를 접은 레이디 샤본느가 천천히 말했다.
“미꾸라지를 없애야 다시 물이 깨끗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