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6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62화(162/353)
☆ 제162화 ☆
“흐음…….”
카이셴 영식이 묘한 비음을 흘렸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레이디 샤본느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굳이 영식이 내게 말을 건데에는 이유가 있을 듯한데…….”
사라락, 레이디 샤본느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녀의 입술이 카이셴 영식의 귓가에 닿았다.
“미꾸라지를 잡는 것에 흥미가 있어서一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레이디의 뜻대로.”
카이셴 영식의 대답에 레이디 샤본느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셴 영식은 여러모로 입지 전적인 인물.
그가 협력하면 큰 도움이 될 거다.
“안녕하세요?”
저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레이디 샤본느와 카이셴 영식 둘 다 놀라서 밑을 쳐다봤다.
조그마한 아이가 위를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두 분께는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
카이셴 영식을 바라보고 있던 루아티샤의 눈길이 레이디 샤본느를 향했다.
아이의 시선이 천천히 얼굴을 훑더니 풍만한 가슴으로 내려왔다.
레이디 샤본느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앗, 실례였다면 죄송해요. 너무 아름다우셔서…….”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후,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 못 차리는 아이가 어찌 〈메티스〉에 들어온 것인지.”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루아티샤가 치맛자락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 정중한 사과에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정말 미안한 탓인지 루아티샤는 레이디 샤본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잘해주었다.
직접 음료를 가져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배려 가득한 말까지.
그야말로 레이디 샤본느의 시중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레이디 샤본느가 그다지 정이 없는 사람인 건 알았지만, 그래도 아이한테 너무 한 것 아닌가요?”
“애가 저렇게나 사과하며 애를 쓰는데 더 매몰차게 대하는 것도 대단해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레이디 샤본느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루아티샤를 노려보았다.
작은 아이는 기가 팍 죽어서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서 실수를 해주니 웬 케이크냐 싶었는데, 여론이 점점 이상해진다.
레이디 샤본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가도록 하죠.”
* * *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회랑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레이디 샤본느의 긴 머리카락이 물고기의 꼬리처럼 흔들렸다.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커다란 거울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
레이디 샤본느는 가슴에 하고 있던 브로치에 손을 가져갔다.
‘연락을…….’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브로치에서 손을 뗐다.
연락을 해봤자 상황 보고만 될 뿐, 아무런 진전도 없다.
‘그분께 심려만 안겨드릴 뿐 이야.’
안 그래도 아리엘의 실패로 상심이 크실 거다.
소파 위에 털썩 앉은 그녀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설마 파에라톤 공녀가〈메티스〉에 들어올 줄이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
벌써부터 여러 매체에서 파에라톤 공녀가 고작 열한 살의 나이에 〈메티스〉에 입회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특히 학계에서의 관심이 뜨거웠다.
그리고 제국의 사람들은 묘하게 다른 것보다 공부 잘하는 것을 우선으로 치는 경향이 있었다.
‘왜 그런 문화가 생긴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K-로판의 영향이었지만 그녀가 알 리는 없었다.
‘……인구수에 따라 영향력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
슬슬 제도에 올라오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파에라톤 공녀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짜증나게도 파에라톤 공녀는 ‘그분’과 포지션이 굉장히 비슷했다.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
사람들을 치료한 전적.
나이답지 않은 영민함과 재치.
지금 제국에서 그 나이대 아이들 중 루아티샤 파에라톤과 같은 화제성과 파급력, 영향력을 가진 소녀는 없다.
‘그분’께서 제도에 올라와 봤자 루아티샤의 아류, 혹은 제2의 루아티샤 포스트 루아티샤와 같은 수식이 붙을 것이다.
결국 루아티샤가 원조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언급되는 이상 원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터.
‘그 시간 동안 그 계집이 손 놓고 놀고 있을 아이도 아니고.’
거슬린다.
‘……거기다가 그 계집은 벌써 황자들이랑 엮이기까지 했어.’
제국민들이 가장 흥분하는 것 중 하나가 황실의 연애사 아니겠는가.
설마 시드리한 황자가 돌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분’은 에스테반 황자와 엮일 생각이었다.
황자가 둘이 되면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두 황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자아이.
삼각관계의 주인공인 편이 더더욱 화제성이 있으니까.
한데 두 황자 모두 새벽 축제에서 파에라톤 공녀에게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청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파에라톤 공녀가 워낙 담백하게 에스테반 황자를 대한 데다가 황후의 부정까지 밝혀지며 일이 꼬여서 그렇지.
그전에는 황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파에라톤 공녀의 매력이라면서 특집 기사를 다루는 곳까지 있었다.
새벽 축제에서는 워낙 많은 커플들이 성사되기에 사랑의 작대기에 초점을 맞춰서 구경하는 자들도 많았다.
꼬꼬마들의 진지한 러브 스토리만큼 어른들의 마음을 간질이는 건 없으니까.
다행인 점은 새벽 축제 이후로 파에라톤 공녀와 황자들의 만남이 없다는 거다.
시드리한 황자와 파에라톤 공녀를 두고 한껏 광대를 올리고 있던 사람들도 이제는 푸시식 식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분’이 제도에 올라와 두 황자들과 엮이면 분명 파에라톤 공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것이다.
‘……괜찮아. 파에라톤 공자들도 있으니까.’
차기 황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황자들만큼이나 엄청난 주목을 받는, 파에라톤의 남자들.
그들이 ‘그분’에게 구애한다면?
‘동생보다는 로맨스의 주인공인 편이 훨씬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지.’
다섯 남자들도 결국에는 파에라톤 공녀 따위보다 ‘그분’을 선택할 터.
‘그래, 아무리 파에라톤 공녀가 날고 긴다고 해도 고작해야 조금 똑똑할 뿐인 여자아이.’
이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분’께서 제도에 올라오기 전에 자신이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아리엘이 실패하며 파에라톤 공녀의 주가가 더더욱 올라갔으니 그 몫까지 이자 쳐서 되갚아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커다란 망신을 줘서 〈메티스〉에서 쫓아내는 게 좋은데…….’
쉽지 않다.
오늘 회원들의 반응을 볼 때 웬만한 일로는 불가능할 듯하다.
‘다른 수를 생각해야一.’
똑똑.
때마침 노크 소리에 레이디 샤본느가 생각을 멈췄다.
문이 열리고 그녀의 충실한 심복이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주군,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황후가 황제와의 협상에 성공한 듯합니다.”
“협상? 설마 인장을 돌려받는 건 아닐 테고.”
“아직 인장은 되찾지 못했지만 황제가 에스테반 황자의 검술 선생으로 차임베르크 공을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뭐?”
황후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던 레이디 샤본느가 벌떡 일어났다.
차임베르크 공.
노회한 소드 마스터로, 제국의 동부 국경을 지키는 자.
그리고 동남부의 젖과 꿀이 흐르는 드넓은 초원을 보유한 대부호!
제도에 잘 올라오지 않고 중앙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던 그를 황제가 직접 불러들이는 것은 의미가 컸다.
황제가 직접 에스테반 황자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으니까.
새벽 축제 때 황제가 나서서 에스테반의 가장 큰 날개인 황후를 꺾어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아무래도 황제와 황후 사이에 꽤 커다란 협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 황후에게 이런 수완이 있을 줄이야.’
레이디 샤본느는 내심 놀랐다.
황후의 행동력과 저돌성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꾀를 내는 것에는 큰 재주가 없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그래도 제국의 황후라는 건가?
‘어쨌든 이건 기회야!’
황후와의 연을 완전하게 끊어내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황후에게 갈 채비를 해라.”
“예!”
심복이 방을 나가자 레이디 샤본느는 가슴의 브로치에 손을 댔다.
달칵.
브로치의 보석이 분리되며 떨어져 나왔다.
잠시 그 브로치를 바라보던 레이디 샤본느는 다른 브로치에 보석을 끼워 넣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새로 보석을 끼운 브로치를 가슴에 달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리는 베일이 달린 모자를 썼다.
거울을 보니 신비로운 분위기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 서 있었다.
‘……황궁 건물 안에서는 마법이 통하지 않으니 정말 귀찮군.’
쯧, 하고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소식을 들은 귀족들 중에서도 황후에게 은근슬쩍 선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 * *
봄이 완연한데도 살얼음판 같았던 황후궁에 웃음꽃이 피었다.
“차임베르크 공이 오면 우리 에스테반을 두고 갑자기 굴러 들어온 돌에 반항도 하지 못하고 떠밀려가네, 어쩌네 하던 것들도 입을 닥치겠지.”
“벌써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반응이 있지 않습니까?”
“아하, 역시 오랜 시간 지켜보며 직접 키운 아들에게 더 정이 가시는 것 아니겠냐면서 떠드는 것 말이지?”
황후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젤 영애의 손을 잡았다.
“이게 다 영애 덕이야. 그런 묘수를 내다니, 황제 폐하께서 어찌나 깜짝 놀라시던지.”
“황공합니다.”
“원하는 게 있느냐? 내 무엇이든 들어주마.”
“아닙니다. 폐하께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제 기쁨입니다.”
어쩜 이리도 충성스러운 시녀가 다 있을까.
황후는 아이젤 영애의 그림자만 봐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본후는 그대를 충성스럽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쓰일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네.”
“…….”
“본후가 오판했어. 평소 조금 엉뚱한 면이 있다고 해서 그게 사람의 전부가 아니거늘.”
“황송합니다.”
“그간 영애가 날개를 펼치지 못했던 건 다른 쟁쟁한 시녀들에게 밀려서겠지.”
자신을 배신한 시녀들을 떠올린 황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영애를 누르던 것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그 능력을 펼쳐 보인 게야.”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폐하께서 제 쓰임을 알아봐 주시다니, 황공할 뿐 입니다.”
황후는 미소 지으며 손수 아이젤 영애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영애가 본후의 곁에서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마땅한 기회를 줄 것이야.”
“영광입니다, 폐하!”
감격에 차 고개를 숙인 아이젤 영애의 얼굴은 정작 떨떠름 했다.
도움이 되었으니 포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또 능력을 발휘해서 내게 더 도움이 되라는 말인데 감격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으로 명실상부 황후의 최측근이 됐어. 이제 잡다한 계책도 나와 의논하겠지.’
잘된 일이었다.
고개를 들자 황후가 태양이라 된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일이 전부 파에라톤 공녀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걸 알면 저 미소가 어떻게 변할까?’
결코 말할 수 없는 생각을 하며 아이젤 영애 역시 마주 미소 지었다.
그때였다.
“폐하, 사라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사라 부인이?”
반색해서 일어나던 황후가 “흥!”하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렇게 편지를 보낼 때는 답장조차 하지 않더니 이제와서 얼굴을 비추는 이유가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차임베르크 공에 대한 소식을 들은 거겠지.’
“어찌할까요?”
“……약속도 없이 찾아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나, 오랜 벗이니 특별히 맞이하도록 하지.”
그 말에 궁인이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황후는 다리를 꼬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댔다.
어디로 보나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방 안에 들어온 사라 부인은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숙였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사라 부인.”
뼈가 있는 말이었다.
“예, 폐하께서는 더 좋아 보이시는군요.”
“그럴 일이 좀 있었지.”
“이 영애는?”
사라 부인이 아이젤 영애를 눈짓하며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왜 내보내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사라 부인은 언제나 황후와 독대했으니까.
“아아, 자네는 신경 쓰지 말게나. 본후가 항시 곁에 두는 아이니. 이번 일도 이 아이의 작품이네.”
그 말에 사라 부인이 눈에 이채를 띄고 아이젤 영애를 바라봤다.
‘……황후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같지 않더라니 저 아이의 작품이었구나.’
자신의 정체를 파헤치겠다는 듯 똑바로 바라보는 눈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황후를 내버려 둔 것도 있으니 이 정도는 양보해야 했다.
“그렇군요. 참으로 영민한 시녀를 곁에 두셨습니다.”
“묘안이 생각나면 다시 오겠다더니. 무슨 방도라도 생각난 건가?”
그렇게 물으면서도 황후는 심드렁했다.
사라 부인에게 어떤 묘안이 떠올라서 왔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시 권력을 되찾을 것 같으니 다시 연을 유지하기 위해 헐레벌떡 온 것일 터.
하지만 사라 부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황후의 예상과 달랐다.
“예, 생각이 났습니다.”
“뭐라?”
“인장을 되찾을 방도 말입니다.”
“……!”
황후가 눈을 부릅떴다.
눕다시피 비스듬했던 그녀의 자세가 달라졌다.
아예 사라 부인을 향해 앞으로 몸을 기울이기까지 했다.
“그, 그게 뭔가?”
베일 아래로 사라 부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전에 일단 앉아도 되겠습니까?”
“어서 앉으시게! 본후가 자네를 너무 오랜만에 보아 청하는 것도 잊었구나. 반가워서 그런 걸세.”
화들짝 놀라 답한 황후가 밖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무엇 하는가! 어서 다과를 가져오거라! 랑블러시로 내오도록!”
궁인들이 서둘러 차와 티푸드를 내왔다.
황후가 사라 부인의 찻잔에 손수 차를 따라주며 미소 지었다.
“안수르 상단에서 어렵게 구매한 랑블러시일세. 머나먼 이국의 설원에서만 나는 차로 향이 기가 막히지.”
사라 부인은 도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답했다.
“나쁘지는 않군요.”
황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사라 부인이 속으로 조소를 흘리곤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이리 궁금해하시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죠. 우리 사이에 협상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일견 관계를 돈독히 하는 말 같았지만, 그 안에는 뼈가 숨겨져 있었다.
황후는 그걸 읽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을.”
“아주 간단합니다.”
달칵.
사라 부인이 찻잔을 소서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시드리한 황자 이용하는 겁니다.”
“……!”
황후가 놀란 눈으로 사라 부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