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6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69화(169/353)
☆ 제169화 ☆
레이디 샤본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 이건 사람의 눈이 아니야…….’
아이젤 영애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살인귀의 눈이야.’
혈관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보다도, 죽일 수 있다고 협박하는 말보다도 저 눈이 더 무서웠다.
저건 정말로 그 어떤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의 눈이다.
‘나, 괜찮은 걸까?’
아무리 그래도 가두고 윽박지르고 뺨을 때리는 것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아이젤 영애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물약병은 어디에 숨겼어?”
“……흡, 윽…….”
“그래, 대답하지 마. 너무 빨리 대답하면 재미없잖아?”
콰가각!
날카롭게 벼려진 새빨간 기운이 눈앞에서 넘실거릴 때마다 안쪽에서부터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고통.
“흐, 으으, 흑…….”
“후후, 아주 보기 좋은 표정이야.”
레이디 샤본느가 요염하게 웃으며 아이젤 영애의 뺨을 스윽 매만졌다.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소름이 쭈뼛 섰다.
“이제 말할 생각이 들진 않아? 나도 좀 더 즐기고 싶은데 황후를 생각하면 시간이 없거든.”
“아악! 큭, 으흐…….”
아프다.
무섭다.
나는,
‘싫어…….’
고통에 생각이 탁탁 튀며 끊겼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한 단어가 박혔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아이젤 영애는 입을 열었다.
“하……, 흐, 안…….”
하지만 대답을 하고 싶어도 고통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고집이 있네? 아니면 내가 너무 힘을 약하게 쓴 건가?”
레이디 샤본느가 난처하다는 듯 말하며 아이젤 영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감이 잘 안 잡히거든. 대답을 듣기 전에 멋대로 죽어버리면 나도 곤란하니까.”
“하, 안…….”
“응?”
레이디 샤본느가 고개를 기울였다.
신음 소리인 줄 알고 흘려듣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아이젤 영애는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입술이 힘겹게 움직였다.
“하…….”
“아, 저런. 너무 아팠구나. 미안, 미안.”
아이젤 영애의 목덜미와 가슴께를 파고들었던 새빨간 기운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커헉! 콜록콜록!”
아이젤 영애의 입에서 날카로운 기침이 터져 나왔다. 공기가 기도를 긁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자, 이제 말해봐.”
“화, 단……. 흐, 화단, 에…….”
“화단? 화단 어디?”
“서, 서쪽 쪽문의……. 흐, 궁인들이 다니는…….”
“흠…….”
“주목, 나무 뒤……. 하아 ……. 땅을, 파서…….”
레이디 샤본느는 잠시 아이젤 영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연회장은 여러 번 와봤지만, 궁인들이 다니는 쪽문을 가본 적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이젤 영애 마찬가지일 터.’
주목 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까지 알면 말에 신빙성이 있다.
낮은 곳에서부터 가지가 뻗어져 나오는 주목 나무라면 땅을 파헤쳐진 흔적도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잠시 숨기려고 하는 자에겐 올바른 선택.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듯하군.’
무엇보다 지금 겁에 질린 표정을 볼 때, 딴생각 따윈 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하기야 곱게 자란 귀족 영애의 입장에서는 묶인 채 뺨을 몇 대 후려치기만 해도 무서울 터다.
‘흥, 그러게 감히 누구의 일을 방해해.’
휘익!
레이디 샤본느가 거칠게 아이젤 영애의 턱을 들어 올렸다.
“황후는 참 조종하기 쉬운 인간이지.”
“…….”
“그간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다른 시녀들이 사라지고 나마저 황후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니, 본색을 드러내 황후를 손아귀에 쥐려 했다라…….”
레이디 샤본느가 아이젤 영애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주 대단해. 솔직히 놀랐어. 이것만은 진심으로 칭찬해주지. 상대가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성공했을 거야.”
툭, 레이디 샤본느가 밀치듯 아이젤 영애의 턱을 놓아주었다.
“물약병을 가져올 때까지 여기 가만히 있어. 사용하지도 않은 물약병과 함께 널 데려가면 황후가 아주 기뻐하겠지.”
그녀는 뒤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네 처분은 황후가 알아서 결정할 거다.”
또각, 또각.
언제 사람을 고문했냐는 듯 레이디 샤본느의 걸음걸이는 우아했다.
그녀가 문고리를 잡는 것을 보고 아이젤 영애는 가물가물하던 눈을 완전히 감았다.
‘됐다.’
해냈다.
가슴이 미칠 듯이 뛰는 동시에 깊게 가라앉는 듯했다.
레이디 샤본느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틀렸어. 이건 야망을 숨기고 황후의 시녀가 된 내가 이때다, 하고 뜻을 펼쳐 보인 게 아니야.’
그저 그런 삶을 살 줄 알았던 자신이 기회를 만나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뿐이다.
그 새로운 세계에 이런 엄청난 위험이 함께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이젤 영애는 차마 자신이 만난 새로운 세상을, ‘너에게는 그 세상을 만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해준 사람을 팔아버릴 수 없었다.
‘나를 알아봐 주고 믿어주고 내게 기회를 준 사람.’
그래도 그 사람은 지켰다.
그리고.
‘아픔과 협박에 굴종해서 저년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도 않았어.’
고통으로 제대로 이어지지도 않는 단어와 문장 속에서 아이젤 영애는 생각했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저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건 죽기보다도 더 싫어!’
一하고.
“아주 대단해. 솔직히 놀랐어. 이것만은 진심으로 칭찬해주지. 상대가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성공했을 거야.”
내려다보던 그 시선.
‘아니, 넌 실패했어.’
성공한 건 자신이었다.
‘……내가 이겼어.’
달칵,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젤 영애는 힘겹게 눈을 떴다.
레이디 샤본느는 문간에 서서 밖을 향해 무어라 말하더니 다시 문을 닫았다.
“……?”
“왜 그런 표정이야?”
레이디 샤본느가 뒤돌아 아이젤 영애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내가 나갈 줄 알았어? 아직 확인해야 할 게 남아있는데 그럴 리가.”
또각, 또각.
레이디 샤본느가 천천히 걸어와 다시 아이젤 영애의 앞에 섰다.
“어머나, 이렇게 떠는 것 좀 봐. 많이 놀랐나 봐?”
그녀가 안쓰럽다는 듯 땀에 젖은 아이젤 영애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끝난 줄 알았구나.”
딱하다는 얼굴로 아이젤 영애의 뺨을 툭툭 두들긴 레이디 샤본느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들더라고?”
“…….”
“혹시 너에게 이런 일들을 명한 흑막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흠칫.
다 끝났다고 긴장이 풀린 찰나에 허를 찔린 탓일까.
태연해야 한다고 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었는데도 순간적으로 반응해버렸다.
“어머나?”
레이디 샤본느의 입술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앙큼한 영애였네? 혹시나 하고 한 번 찔러본 건데. 깜빡하면 완전히 속을 뻔했잖아?”
아이젤 영애는 어금니를 꽉 문 채 레이디 샤본느를 노려봤다.
“후후, 아까와 전혀 다른 눈빛이네? 이것도 좋아. 자아,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짜릿할 거야.”
치켜든 레이디 샤본느의 손에서 시뻘건 강기가 비죽 솟아 나왔다.
스윽.
“아아아악!”
그 강기가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빨리 말하는 게 좋을걸? 이거 진짜 아프단다?”
“흐읍, 컥!”
“정작 너를 이용해먹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네가 이런 고통을 당할 필요는 없지 않아?”
‘이용?’
이용이라고?
고통으로 흐릿해진 아이젤 영애의 눈에 여러 상념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레이디 샤본느가 미소 지으며 유혹적으로 속삭였다.
“설마 의리를 지키려는 거야? 편리한 대로 널 이용한 사람에게?”
아이젤 영애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윽고 버석하게 마른 입술이 움직였다.
“아니, 야…….”
“뭐?”
“아니야. 나는…….”
이용당하지 않았어.
“나는 영애의 가능성에 건 것이에요. 내게는 영애가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였거든요.”
“믿으세요. 결국 황후의 환심을 산 건 영애고, 내가 보여준 초상화와 사라 부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 역시 영애예요.”
“기회를, 잡은…… 컥!”
“네 명을 재촉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새빨간 강기가 아이젤 영애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헉……!”
“어차피 여기서 널 죽여도 조금 귀찮아질 뿐이야. 물약병을 가져가기만 하면 황후도 내 말을 믿을 테니까.”
“윽, 하, 크흑…….”
“말해!”
“…….”
“말하라고! 누구 명을 받고 움직였는지! 네 뒷배가 누구야!”
아이젤 영애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입꼬리를 올렸다.
푸들푸들 떨려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미소였지만, 레이디 샤본느가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으득.
이를 간 레이디 샤본느가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순간.
“나야.”
앳된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천천히, 레이디 샤본느가 뒤를 돌았다.
“……파에라톤 공녀?”
“나라구. 아이젤 영애의 뒷배.”
아이젤 영애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고, 공녀님, 왜…….”
“괜찮아. 늦어서 미안.”
아이젤 영애는 할 말이 더 남은 듯했지만 루아티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하!”
레이디 샤본느가 기가 막힌 웃음을 터트렸다.
“너, 단순한 꼬맹이가 아니었구나?”
“움……. 루루는 단순한 꼬맹이가 아니라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사이다를 사랑하는 꼬맹이야.”
레이디 샤본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리엘을 그렇게 만든 것도 네 짓이냐? 파에라톤 공작의 작품인 줄 알았는데.”
“와, 이제 숨기지도 않는 거야? 아리엘이랑 관련 있다고 말해도 돼?”
“이 자리에 나타났으면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레이디 샤본느는 미간을 찌푸리며 루아티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단순히 ‘그분’께 가야할 영향력을 빼앗아 가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실수야. 아니, 저 어린애가 그만큼 잘 숨긴 건가? 어쨌든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내야 해.’
파에라톤 공녀의 영향력을 낮추는 것보다 지금은 정보를 캐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너무 티 나게 말을 빙빙 돌리네. 근데 나는 실력 행사부터 하고 싶거든.”
루아티샤가 아래로 늘어트리고 있던 검을 척, 들었다.
“……?!”
레이디 샤본느는 정말 놀랐다.
‘저 어린애가 대검을 나뭇가지 드는 것처럼 든다고?!’
루아티샤 파에라톤은 분명 마기를 타고 나지 못한 반편이일 텐데!
“넌 뒷배가 뭐라고 생각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나는 우리 애가 다쳐오면 대신 혼내주는 게 뒷배 역할이라고 생각해.”
루아티샤의 시선이 엉망이 된 아이젤 영애를 담았다.
“그래야 뒷배를 믿고 잘 나대지 않겠어? 나는 능력대로 나 대는 사람을 참 좋아하거든.”
파라이바빛 눈동자에 예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고요한 분노.
레이디 샤본느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별것 아닌 어린애의 눈빛에 압도되다니!
“우리 여주 언니가 무려 소드 마스터시거든. 모든 화를 소장할 정도로 완전 멋진 언니야.”
“…….”
“네 정체가 인간인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딱히 상관은 없지.”
“뭐?”
“인간이든 아니든 일단 살아 있는 건 패다 보면 죽어.”
루아티샤가 짝다리를 짚었다. 누가 악당인지 모를 정도로 아주 불량했다.
“감히 우리 애를 건들다니.”
바닥에 침을 탁, 뱉는다.
“넌 뒈졌어.”
우우우웅!
검신이 공명하듯 얕게 진동하며 새까만 오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미친!”
레이디 샤본느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진짜 소드 마스터라고?!’
그럴 리가!
평소 루아티샤 파에라톤에게서는 오러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새까만 오러가 루아티샤의 검을 휘감고 있었다.
‘젠장!’
레이디 샤본느는 급하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몇 겹이나 되는 핏빛의 장막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등 뒤로 비죽 치솟은 다섯 개의 붉은 칼날이 사신의 낫처럼 번쩍 빛났다.
‘……뭐야, 아리엘이랑 차원이 다르잖아?’
루아티샤는 내심 놀랐다.
생각보다 본격적인 전투태세에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저런 무시무시한 칼날이 자신을 향한 적은 없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아니, 해내야만 한다.
‘무엇보다 이 능력 뽑겠다고 쓸데없는 패시브 스킬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그 능력의 이름은 무려 ‘눈새’였다.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루아티샤는 심호흡하며 오른발을 뒤로 빼고 왼발에 깊게 힘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레이디 샤본느가 이를 악물었다.
‘자세가 제대로야.’
수십 년도 넘게 수련한 듯 하체가 안정되어 있다.
‘먼저 친다.’
다섯 개의 붉은 칼날이 자그마한 아이를 향해 쇄도했다.
루아티샤는 진각을 밟으며 정면으로 맞섰다.
검 끝이 아주 부드럽게,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때였다.
콰앙一!
굉음과 함께 루아티샤의 뒤에 있던 문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