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7화(17/353)
☆ 제17화 ☆
* * *
파에라톤 공작은 단호박 수프를 저으며 후, 불었다.
정말 심히 안 어울리는 광경인데, 그 모습조차 우아하고 고상해 보이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했다.
조심스레 단호박 수프를 뜬 파에라톤 공작이 내게 스푼을 내밀었다.
‘아니,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 가겠냐구.’
안나가 줘도 넘어갈 둥 말 둥 인데 하물며 파에라톤 공작이 직접…….
킁킁, 근데 뭘 넣었길래 이렇게 고소한 냄새가 나지?
와, 맛있겠다!
음, 맛있네!
‘헉……!’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고소한 단호박 수프의 맛을 느끼며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 넘어간다고 했는데……!’
꿀꺽.
이게 넘어가네.
심지어 맛있네.
애기의 본능은 나의 이성을 배반했다.
‘하도 굶고 살아서 그런가.’
한 번 맛보자 더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공작이 떠먹여주는 수프를 짹짹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그렇게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낸 다음에는 쿠키가 쥐어졌다.
“꾸끼!”
오도독오도독 초콜릿 청크가 씹히는 게 정말 일품이었다.
‘맛있어!’
파에라톤 공작이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고 있자니 슬슬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와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맛이 좋으셨습니까.”
……네?
“대답을 하십시오.”
뭐, 뭐야. 무서워.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그를 바라보자 공작이 날 달랑 집어들었다.
눈높이까지 들어올려선 새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 뭐지?’
다행히 그 부담스러운 아이콘택트는 곧 끝났다.
그가 나를 내려 가슴팍에 안아 들며 뭐라 중얼거렸다.
얼핏 “아이를 존중하라고 했는데 뭐가 문제지?” 같은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아니, 누가 애기한테 존대를 저런 식으로 해?
웃고 있는 애기도 얼려버릴 살벌한 존대였다.
춥다, 추워.
“오늘 많이 놀랐나?”
그가 내 엉덩이를 두들기며 물었다.
다행히 그 살벌한 존대를 그만두기로 한 것 같았다.
“조금…….”
눈치를 보며 답하자 토닥토닥하는 손길이 더 분명해졌다.
“여긴 네 집이다.”
그 말은…… 쫓아내진 않는다는 걸까?
힐끔 위를 올려다보자 공작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곳에서 널 해할 사람은 없어.”
나는 뭐라 대답하기 힘들어서 괜히 손만 꼼지락거렸다.
“타렌카 후작도, 그 딸도 다시는 이 저택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것이다.”
응?
나는 놀라서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클라티에 때문에 놀랐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아까 공작과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아까 전에 내 방에 왔던 것도…….
‘처음부터 날 달래주기 위해 온 건가?’
“울어도 된다.”
그렇게 말하며 공작이 내 뺨을 문질렀다.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우, 울어야 하나?’
괜히 눈치를 보는데 그가 나를 추어올리며 얼렀다.
“둥개둥개.”
……예?
나는 조금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완벽하다는 수식이 어울릴 정도로 미려한 얼굴이 심각한 얼굴로 다시 속삭였다.
“둥개둥개.”
“…….”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갈 것 같은 추임새였다.
‘아니, 클라티에 때문에 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는데.’
비록 악마 놈한테 ‘김빠진 사이다’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나한테는 사이다였다.
그동안 속에 쌓였던 말을 다다다 내뱉지 않았는가.
타렌카 후작저에 있었을 땐 언감생심 꿈도 못 꿨던 일이었다.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축배를 들면 모를까, 내가 왜 울겠어.’
하지만…….
“그 누구도 너에게 함부로 굴지 못해.”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왠지 코가 시큰했다.
‘참아야 해.’
우는 애는 귀찮으니까.
패널티의 영향으로 아까 완전히 애기가 되어서 할 말 못 할 말 다 해버렸다.
‘지금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있을 때 잘해야 해. 언제 또 완전히 애기가 될지 몰라.’
“나도 잘못했어요.”
나는 공작의 옷자락을 슬쩍 잡았다.
“아빠 밉다구 한 거, 사실 아네요.”
공작이 나를 빤히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애 아빠면 싫어요.”
그래도 진심이었다.
“우리 아빠였음 좋겠어.”
“……정말인가?”
“응, 정말!”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손이 내 뺨을 살짝 매만진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없나?”
그 질문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했다.
진짜 아빠라면.
그 누구도 내게 함부로 굴지 못한다 말해줄 거라면.
‘왜 그동안 나를 안 찾아왔어?’
사람들이 나를 막 대하는 게 익숙해지도록.
무시당하다 못해 나조차도 내가 소중한 사람이 맞나 의문이 들도록.
‘왜 나를 그런 곳에 버렸어?’
나 스스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원망이 떠올랐다.
‘정신 차려.’
나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것도 패널티의 영향이다.
‘애기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니까.’
감정에 취해서 진짜로 원망하면 나한테 질려버릴 거야.
패널티의 효과가 약한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착한 아이로 있어야지 그나마 살길이 열려.’
자꾸 울컥울컥 올라오려는 감정을 애써 다스리며 환한 얼굴로 외쳤다.
“없어요!”
“……정말로?’
“네!”
그는 차근히 내 얼굴을 살폈다. 수수께끼를 살펴보는 사람처럼 신중히 가늠하는 시선이었다.
“내가 너를 몇 년이나 그런 곳에 내버려 두었는데도?”
“…….”
나는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다시 끌어올렸다.
‘분명,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야.’
사정이 없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
그 순간이었다.
“사정이 있었을 거다.”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다 이유가 있었을 거다. 이제라도 찾아왔으니 됐다.”
설마 내 생각을 읽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
“그 어떤 사정이 있었어도, 설령 내가 병상 위에서 죽어가고 있었다고 해도 너를 그딴 곳에 놔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아니라고 해야 해.’
나는 다 이해한다고, 아빠 잘못 아니라고 해야 해.
‘그게 정답이야.’
하지만.
하지만……!
“흑.”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막으려고 입술을 꼬옥 깨물었지만, 소용없었다.
“흐어어어엉!”
마치 둑이 무너져내린 것처럼, 막고 막았던 울음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왜 나 버렸어!”
그리고 원망의 말도.
“내가 얼마나, 흐윽, 무서웠는데!”
정말로 무서웠다.
“다들 나 미워하구, 때리구, 밥도 안 주구!”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무서웠던 건一.
“내가 얼마나 아빠를 가지고 싶었는데! 얼마나 아빠가 보구 싶었는데!”
이번 생에서조차 내게 가족이 없을까 봐.
“왜 그렇게 늦었어어……. 흡, 끅!”
커다란 손이 내 등을 꽉 감쌌다. 그 손길을 느끼니 어째서인지 더 눈물이 나왔다.
“우리 아빠면서! 내 아빠면서 왜 나 내버려 뒀어!”
주먹을 들어 쿵쿵 때리는데도 나를 안은 팔은 풀리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에!”
그 사실에 부쩍 안심하면서도, 나는 울음을 멈추질 못했다.
“미안하다.”
따스한 온기가 내 눈과 코를 스쳤다.
붉은 눈동자가 평소와는 다른 빛을 띠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는 내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미안하다고 속삭여주었다.
* * *
“우음…….”
아주 깊은 단잠에 빠져 있는데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려 했다.
포근하고 따뜻한 품이 날 감싸고 있었다.
이대로 잠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꾸물거리는데 뭔가 따끈따끈한 빵 같은 게 손에 잡혔다.
그것도 아주아주 커다란 빵.
부드럽고 탄력 있는 게 딱 가지고 놀기 좋았다.
애기의 본능이 조물조물 잼잼 손가락을 움직였다.
‘따끈해. 기분 좋아.’
근데 이게 뭘까?
정신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더 돌아오고 있었다.
잠기운이 거의 사라졌을 무렵,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이게 뭐지?’
눈이 잘 떠지지 않아서 나는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헉…….’
눈앞에 두둥! 하고 보이는 웬 남정네의 가슴에 안 떠지던 눈이 저절로 커다래졌다.
‘서, 설마?’
고개를 위로 드니 파에라톤 공작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손을 치웠다.
“일어났나.”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나랑 같이 자고 있지?’
심지어 그는 위에 아무것도 안 입은 상태였다.
졸지에 나는 남의 맨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물러 버렸다.
‘뭐라도 좀 입고 있…… 아!’
그 순간 간밤의 일이 머릿속에 쫘르르륵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왜 그가 상의를 벗은 채 나와 자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셔츠 가슴팍은 내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어버렸고.
“가지 마……. 나 버리고 가면 아빠 미워할 거야.”
내 어리광 때문에 갈아입으러 갈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내게서 조금만 떨어져도 울어 젖혔으니까.
“울보.”
“치이.”
“붕어눈이 됐군.”
그가 내 눈가를 슥슥 문질렀다.
드러난 그의 상체에는 흉터가 있었다.
“아팠어요?”
“솜주먹으로 콩콩거린 게 아팠을 리가.”
어젯밤 내가 가슴을 마구마구 때렸던 걸 말하나 보다.
민망한 기억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게 아니라요. 이 흉터요.”
옆구리의 흉터를 가리키며 묻자 그가 내 눈을 가렸다.
“별로.”
“왜 가려요?”
“흉하니까.”
나는 내 눈을 가린 그의 손을 치웠다.
“전쟁에서 다친 거예요?”
“그럴 리가.”
파에라톤 공작이 비뚜름하게 답했다.
나는 꼼질꼼질 몸을 움직여 그의 곁에 찰싹 붙었다.
공작은 내가 무얼 하나 지켜볼 뿐 특별히 별말이 없었다.
“호오一.”
흉터에 입김을 불자 그가 미간을 좁혔다.
“……뭐 하는 거지?”
“아픈 곳에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오래된 상처다. 이제 와 아플 리가.”
“그때 못 해줬으니까.”
“…….”
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호오, 하고 입김 부는 것을 막진 않았다.
“전쟁에서는 다치지 않았어요?”
“안 다쳤다.”
나는 그에게 팔을 쭉 뻗어 이마를 문질렀다.
“시시, 아픈 거 싹 날아가라!”
“다치지 않았대도.”
“아파요. 시시해 줘야 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람을 해치는 게 안 아플 리 없으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게, 사람들이 경계하고 혐오하는 게 안 아플 리 없다.
그 시선들.
나는 어떤 시선은 상처가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군.”
그가 납득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는 그렇게 해줬어야 했군.”
“나한테요?”
“그래, 네가 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앓고 있었지.”
타렌카 후작저에서 받았던 학대 때문에 나는 공작저에 돌아오고 며칠을 앓아누웠었다.
그때 파에라톤 공작을 본 적은 없었는데…….
“나를 보러 왔었어요?”
“매일 밤.”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전선에서 일찍 귀환한 바람에 황제가 시끄러웠으니까 매일 황궁에 가야 했다. 네가 잠들었을 때에야 귀가했지.”
황제가 뭐라고 할 정도면 무리해서 일찍 귀환한 것 아닌가?
“나는 전선에서 단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
“빨리 귀환할 생각뿐이었으니까.”
“왜요?”
왜 그런 무리를 해 가면서, 아픈 것도 모른 채 빨리 귀환하려 했을까.
“널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붉은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무언가 할 말이 가득 차오르는데 뭐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빠가 전쟁에 나갔는지도 몰랐어요. 삼촌 집에 날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미안하다.”
그가 뺨을 쓸었다. 거친 손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안심이 됐다.
“괜찮아요. 이제 아빠가 전쟁에 나가느라 어쩔 수 없이 맡긴 거라는 걸 아니까.”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래두, 그래두 아빠 없어도 집이 더 편했을 텐데.”
괜히 애 같은 마음이 들어서 결국 한마디 더 보탰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데 파에라톤 공작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특별한 아이다.”
그답지 않게 말을 고르듯 신중한 어조였다.
“특별한 아이?”
“그래, 〈마기〉를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가슴이 저절로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혹시 그것 때문에 내가 친딸이 아니라고 의심하면 어쩌지.
하지만 이어지는 공작의 말은 내 생각과 달랐다.
“〈마기〉가 없는 너는 보통 갓난아이와 다를 바 없다. 네 오라비들이 뿜어내는 〈마기〉를 견뎌내지 못해서 죽어버리겠지.”
예상치 못한 정보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나는 반드시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때 타렌카 후작이 조카인 널 맡겠다고 제안을 했지. 마침 슬하에 또래인 여자아이도 있으니 딱 좋다고 했다. 평범한 아이에게는 가족이 중요할 거라고.”
“…….”
“나는 너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타렌카에 보냈다. 실제로 잘 지내고 있다는 보고까지 받았고.”
전혀 몰랐다.
“미안하다.”
그가 내게 사과했다.
이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내게 사과할 이유가 없었다.
잘못한 건 그 상황을 이용해 나를 학대한 타렌카 후작인데.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의 사과에 내 가슴이 찡 울렸다는 거다.
꽁꽁 얼어붙은 창문에 핀 눈꽃을 어루만진 것처럼 응어리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다오.”
공작이 내 뺨을 감싸 쥐었다.
“너를 버리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한 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버리지 않았어.”
그렇구나.
나를 버린 적 없구나.
단 한 번도.
“그럼…… 우리 아빠예요?”
“그래.”
“나한테 〈마기〉가 없어도 우리 아빠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호한 말이었다.
내 심장에 박힐 정도로 단단한 말.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체할 수 없이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치고 올라왔다.
“흑, 흐어어어엉! 아빠아一!”
“그래, 아빠 여깄다.”
파에라톤 공작이, 아빠가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의 목에 매달려 진짜 애기처럼 엉엉 울었다.
악마에게 어떤 조건을 바란다느니 이러쿵저러쿵했지만, 사실 나는 그걸 전부 바라지 않았다.
고아로 자라 평생 혼자서 살아온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
사랑하고 정 붙일 가족.
내가 원하는 건 그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