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7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71화(171/353)
☆ 제171화 ☆
“공녀님께서 오, 오실 줄 알았으니까요.”
아이젤 영애가 힘겨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루아티샤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젤 영애가 보낸 싸인은 진작에 알아봤다.
바로 뒤따랐지만 능력을 뽑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젤 영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 진짜 물약병은 3층의, 테라스에 있어요.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알았어.”
“그러니까 가, 가세요.”
“응, 영애의 노력을 내 손으로 망치지 않을 거야.”
루아티샤는 아이젤 영애의 손을 마지막으로 힘주어 꽉 잡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창고를 나섰다.
아이젤 영애는 그 뒷모습을 보고 가만히 미소 지었다.
이걸로 다른 건 몰라도 루아티샤는 안전할 것이다.
* * *
“……녀.”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할 일이 많다.
“공녀.”
‘내가 잘 처신해야지 황후의 의심을 최대한 피할 수 있어. 그래야만 아이젤 영애가 안전해.’
내가 끌어들인 사람이니까 내가 지켜야 해.
“루아티샤.”
휙!
손목을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손길에 내 몸이 회전했다.
마주 보게 된 시드가 내게 속삭였다.
“진정해.”
“나 지금 이성적이야. 할 일 생각하고 있어.”
시드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 차분하고 고요한 시선에 나는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시드가 내 몸을 잡아주었다.
“……좀 진정됐어?”
“응.”
“혼자 할 필요 없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시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
시드가 내 이마에 이마를 살짝 부딪쳤다.
“나를 쓰면 되잖아.”
이마를 스친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주인님.”
속삭이는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그러나 내 안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목소리였다.
무엇을 요구해도, 어떤 것을 바라도 들어줄 것만 같은 목소리.
“……시드.”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너네 뭐하냐? 사귀어?”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카이셴 영식이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슬슬 이성에 관심 가질 나이이긴 하지만 적당히 해라. 연애질도 때와 상황과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야지.”
“안 사귄다니까요!”
소리를 빽 지르자 카이셴 영식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똑똑하게 굴어도 애는 애구나. 놀리는 거 아니야. 그 나이 때는 사귄다 하면 놀리는 줄 알더라. 얼레리꼴레리 하고.”
“그러는 영식은 늙어서 참 좋겠네요.”
“…….”
내 말에 카이셴 영식이 조용해졌다.
흥.
“뭐, 그래도 화내니까 훨씬 낫네. 레이디 샤본느가 그렇게 패 악을 부려도 항상 기가 팍 죽어서 다니길래 뭔 애가 저렇게 시들시들하냐 싶었는데.”
카이셴 영식이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탁!
“아야!”
시드가 바로 쳐냈지만.
“거참, 되게 빡빡하게 구십니다.”
나는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후우, 하고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보다 훨씬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도와줄 거죠?”
“이제 와서 새삼스레.”
나는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초록 머리카락에 황갈색 눈을 한 궁인을 찾아야 해요. 입가에 점이 있어요.”
“아까 그 문 앞을 지키고 있었던 궁인 말이지. 뮤리엘 샤본느의 명을 받고 물약병을 찾으러 간 사람.”
“맞아요. 뭐야,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이셴 영식을 바라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사람이 납치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나중에, 나중에.’
“다행히 물약병은 찾지 못하겠지만, 그 궁인이 황후를 찾아 가면 귀찮아져요.”
“궁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궁인은 서쪽 쪽문으로 갔을 테니 여기서 이어지는 길목을 살피면 되겠군.”
“찾고 나서는一.”
“내 궁으로 데리고 갈게. 거기라면 들킬 일 없겠지.”
“좋아. 두 사람은 궁인을 수색해 주세요. 나는 진짜 물약병을 찾으러 갈 테니까.”
“괜찮겠어?”
카이셴 영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 물약병을 들키는 순간 끝이야. 혹시라도 일이 틀어져서 황후가 의심하면 무슨 수를 써서 몸을 수색할 수도 있어. 다른 사람을 시켜 부딪치거나 음료를 쏟는다든지 해서.”
“걱정 마세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알고 있거든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었다.
* * *
“아빠!”
양팔을 벌린 채 도도도 뛰어가자 아빠가 나를 얼른 안아 들었다.
“루루.”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을 스윽 쳐다봤다.
살 떨리는 시선이었다.
“고, 공녀가 참으로 공작님을 좋아하나 봅니다.”
“부럽습니다. 제 딸아이는 사춘기인지 곁으로도 안 오려 하던데.”
“호호, 이리 부녀지간이 다정하다니 정말 부러워요.”
사람들이 얼른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제도에 올라온 지도 이제 일 년이 넘어가니 다들 익숙해졌구나.’
왠지 우리집 가신들을 보는 것 같다.
아빠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군.”
“하하, 공작님께는 당연한 일이라 그런가 봅니다.”
나는 아빠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와, 우리 아빠지만 정말 유치하다…….’
조금만 덜 잘생겼어도 꼴불견이었을 텐데.
하필 이렇게까지 잘생겨서는 말이야.
대체 누구 아빠길래 이렇게 잘생겼지?
그렇다.
나도 한 팔불출했다.
핏줄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 루루, 아빠랑 단둘이 분수 구경하구 싶어요. 반딧불이 마법등이랑!”
내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홀을 벗어났다.
아빠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있던 사람들이 아쉬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연회에 잘 나타나지 않는 파에라톤 공작에게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이리 날려버리는 게 아까운 모양이었다.
‘죄송.’
하지만 아빠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정원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품에서 물약병을 꺼냈다.
“이거 맡아주세요.”
“이게 뭐지?”
“다른 사람한테는 쉿! 아빠랑 루루의 비밀이에요.”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말하자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곤 품속에 물약병을 넣었다.
‘후, 이걸로 이게 뭐냐는 질문은 넘겼고.’
“……이제 보니 나와 분수를 구경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걸 전해주고 싶었구나.”
무표정한 아빠의 얼굴이 어쩐지 새침해 보였다.
‘음, 삐지면 곤란한데.’
나는 아빠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루루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니까!”
씰룩.
아빠의 입꼬리가 순간 올라가더니 다시 근엄하게 내려왔다.
흠, 약한가?
“이건 보관료!”
쪽!
나는 입술을 모아 아빠의 뺨에 뽀뽀를 했다.
아빠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건 진짜 비밀이에요. 오빠들이랑 할부지 알면 난리 날 테니까.”
“……비밀엄수에 대한 값은 따로 받아야겠는데.”
에이, 진짜!
아빠가 반대편 뺨을 내밀어서 거기에도 뽀쪽 하고 뽀뽀를 했다.
아빠가 씨익 웃더니 내 뺨에 뽀뽀했다.
“이건 약속의 증표다.”
내 머리칼을 넘기는 커다란 손이 아주 따뜻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내어주지 않으마.”
아니…….
목에 칼이 들어오면 그냥 넘기세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다가 결국 픽 웃었다.
반딧불이 같은 빛이 아빠의 주변을 떠다녔다.
분수에서 뻗어져 나온 투명한 물줄기가 초여름의 저녁을 청량하게 적시고 있었다.
‘두 사람은 궁인을 찾았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인멸할 수 있는 증거는 다 없앴다.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일…….
‘아직 하나 남았어.’
창고 문을 부쉈으니 누군가가 아이젤 영애를 도왔다는 사실을 황후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게 누군지 만들어줘야 해.’
누구를 매수할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아이젤 영애가 황후에게 섣불리 엄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야.’
아이젤 영애는 내가 깜짝 놀랄 정도의 기지를 발휘했다.
‘그러니까 믿어.’
아이젤 영애의 능력을.
그리고.
‘아이젤 영애가 나를 믿어줄 것을 믿어.’
* * *
“아이젤 영애!”
황후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젤 영애가 하도 오지 않아서 사람을 보냈더니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나타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창고에 묶인 채 갇혀 있었습니다.”
아이젤 영애를 부축하던 하인이 말했다.
“뭐라?”
“죄송……합니다, 폐하. 레이디 샤본느를 데리고 폐하께 가는데 갑자기, 하아, 절 납치해 끌고 갔습니다. 약물을 묻힌 손수건 때문에 저, 정신을 잃은 바람에一 윽…….”
아이젤 영애가 힘겹게 말을 잇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서 소파에 눕히거라!”
“예.”
황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레이디 샤본느가 아이젤 영애를 구금해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대체 왜?’
단순히 정체를 들켜서?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하아, 뮤리엘 샤본느는 제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폐하께 제가 약을 빼돌린 거라 말하라고……. 그럼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황후가 대경했다.
확실히 저런 이유라면 납득이 간다.
그러나 너무 위험 부담이 큰일 아닌가?
그간 사라 부인으로 행동하며 얼마나 신중했는지 아는지라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뮤리엘 샤본느의 손에서 새빨간 기운이 나, 왔어요.”
그 말에 황후는 생각을 멈췄다.
새빨간 기운.
그건 분명 시드리한에게 금제를 걸 때 사용했던 기운이다.
‘……확실히 뮤리엘 샤본느가 벌인 짓이야.’
신중하긴 했지만 애초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였다.
금제부터 시작해서 이번 물약까지.
정체를 들킨 그녀가 과격하게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뮤리엘에게 금제 건까지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것까지 계산했다면 더더욱.’
생각에 잠긴 황후를 보고 아이젤 영애는 눈을 빛냈다.
‘역시 황후는 그 이상한 힘에 대해 알고 있어. 꺼내길 잘했군.’
일단 황후의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더 큰 산이 남아있었다.
“하면 네가 아이젤 영애를 구한 것인가?”
황후가 아이젤 영애를 데려온 하인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제가 갔을 땐 레이디 샤본느는 없고 아이젤 영애 혼자 정신을 잃은 채 의자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래?”
“이상한 게 창고 문이 뜯겨 있었습니다. 아니, 뜯겼다기보다는 폭발했다고 해야 할 수준이었습니다.”
그 말에 황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아이젤 영애를 구해준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건데…….”
황후가 날카로운 눈으로 아이젤 영애를 살폈다.
의심스러운 기색이 있으면 그대로 잡아챌 것 같은 눈빛이었다.
아이젤 영애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아, 아무래도 제가 정신, 을 잃었을 때 온 것 아닐까요?”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없는가? 영애를 구한 걸 보니 영애와 관련된 사람 같은데.”
가늠하는 눈빛에 아이젤 영애는 손발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할까.’
파에라톤과 시드리한 황자와 관련 없는 이름을 대는 것이 의심을 피하는 길일 거다.
그녀는 몇몇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중에는 나름대로 무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사도 있었다.
‘사촌 오라버니의 이름이라도 댈까? 나를 두고 간 것은…… 뮤리엘 샤본느의 뒤를 쫓느라 그런 것으로.’
사촌 오라버니는 성격상 아마 어느 영애와 정원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을 테니 파티장에서 목격한 자도 없을 터.
그거라면 황후도 완전히 납득할 것이다.
‘아니야.’
분명 공녀님께서 자신을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어줄 것이다.
몇 달간 루아티샤의 지시를 따르며 가만히 듣기만 한 건 아니었다.
‘여기에서는 비록 의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더라도 공녀님을 믿어야 해.’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졌다.
황후의 의심을 완전히 끊을 순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루아티샤가 제대로 알리바이를 마련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안하지 않았다.
의심이 들지도 않았다.
아이젤 영애는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