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7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76화(176/353)
☆ 제176화 ☆
* * *
“설마하니 먼저 본후를 찾아올 줄은 몰랐네, 레이디 샤본느.”
황후가 소파 위에 나른하게 앉은 채 방안에 들어오는 뮤리엘 샤본느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아니, 평소처럼 사라 부인이라고 불러주는 게 편하려나?”
눈길이 매서웠다.
하지만 뮤리엘은 훗, 하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폐하께서 편하신 대로 불러 주십시오.”
“하! 부정조차 하지 않는군.”
뮤리엘은 힐끗 황후의 옆에 시립해 있는 아이젤 영애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황후 폐하께서는 여전히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시군요. 아직도 아이젤 영애를 끼고 계시다니.”
“정체를 감춘 채 본후에게 접근해서 뒤통수까지 친 그대보다는 훨씬 믿을 만한 자 같은데.”
“폐하의 뒤통수를 친 자가 누구인지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닐진대.”
“하지만 대신 내 눈과 귀가 되어줄 자들이 있지.”
팽팽한 대립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후, 좋습니다. 언성을 높이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요.”
“쓸데없는 변명을 하러 온 것이라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말해주지.”
“일단 아이젤 영애를 내보내시지요.”
그 말에 황후가 코웃음을 쳤다.
“아이젤 영애는 충신 중의 충신이며, 본후의 수족과도 같은 측근 시녀일세. 아이젤 영애의 등 뒤에서 할 말은 없네.”
“진정으로 이르시는 말씀입니까?”
“그대가 아이젤 영애를 내보내고 그 어떤 감언으로 본후와 영애의 사이를 이간하려 해도 소용없다.”
뮤리엘이 조소를 머금었다.
“좋습니다. 그럼 아이젤 영애 앞에서 말하도록 하죠.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그 말에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뮤리엘 샤본느는 요염하게 미소 지으며 아이젤 영애를 바라보았다.
“그 일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황후의 안색에 노기가 어렸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이 철렁거리기도 했다.
아이젤 영애를 믿는 것과 별개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너를 믿는다, 너를 크게 쓸 생각이다, 어쩐다.’ 라고 말했던 참이다.
여기서 나가 있으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황후의 심기를 눈치챈 아이젤 영애가 고개를 숙였다.
“두 분께서 편히 이야기를 나누시도록 저는 물러나 있겠습니다, 폐하.”
“영애가?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황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이젤 영애는 속으로 고소를 머금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폐하. 제가 있으면 레이디 샤본느가 말을 빙빙 돌리며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굳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요.”
“……영애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후우, 알겠네.”
아이젤 영애는 고개를 숙인 뒤 뒤를 돌았다.
문간으로 가면서 뮤리엘 샤본느와 눈이 마주쳤다.
손이 차가웠다.
그날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나와 공녀님이 원하는 대로 됐어.’
승리의 기억이 더 컸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샤본느의 얼굴을 보면서, 아이젤 영애는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자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아이젤 영애는 차분한 걸음걸이로 레이디 샤본느를 스쳐 지나갔다.
* * *
방 밖으로 나온 아이젤 영애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응접실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몸을 튼 뒤, 처음 나오는 방은 그대로 지나치고 그 다음에 나오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젤 영애는 망설임 없이 화병의 위치를 옮기고 천천히 괘종시계의 시침을 돌렸다.
달칵.
작게 나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얼른 시침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소리 없이 옆의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겨진 방.’
관찰력이 좋은 덕분에 응접실의 바로 오른쪽 옆방이 미묘하게 작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경우 보통 이유는 한 가지였다.
숨겨진 공간이 있을 때.
응접실 옆에 숨겨진 방을 만들어 놓는 건 십중팔구 엿듣기 위해서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그 방을 조사했지만 도저히 숨겨진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을 수 없었다.
“음, 그러면 그 옆방을 조사해 봐. 다른 방에서 들어가게 해놨을 가능성이 커. 나와서 바로 옆방으로 들어가면 너무 티 나니까, 일부러 옆옆방에 출입구를 만들어놨을지도?”
루아티샤의 말이 옳았다.
화병 아래에는 미묘한 턱이 있었다.
화병을 들자 멀쩡히 돌아가던 시계가 멈췄고.
숨겨진 방을 발견한 날,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던지.
지금 역시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었다.
아이젤 영애는 희미한 빛이 밝히고 있는 공간 안을 들여다봤다.
그녀가 막 발을 떼려는 순간.
一약속했잖아.
앳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서 울렸다.
一위험한 짓은 하지 않기로 나랑 약속했으면서.
“…….”
몸이 전부 회복된 뒤, 아이젤 영애는 루아티샤와 한가지 약속을 했다.
“아이젤 영애 덕분에 황후와 샤본느의 흉계를 막을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대체 몇 번이나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듣기는 좋一.”
“하지만.”
루아티샤가 단호한 얼굴로 아이젤 영애를 바라봤다.
“앞으로는 내게 정보를 전해 줄 필요 없어.”
“……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영애.”
아이젤 영애는 고개를 숙이는 루아티샤를 멍하니 바라보다 황급히 말했다.
“왜, 왜요? 내가 뭐 실수했어요? 나는…….”
이제야 내가 잘하는 걸, 하고 싶은 걸 찾은 거 같은데.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그걸 알려준 당신이, 왜.
“나는 영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저 황후의 곁에 있다가 내가 물어보면 정보를 알려주는 것으로 족했죠. 그러니까 다칠 일도 없을 줄 알았어요.”
“…….”
“하지만 영애는 내 생각 이상으로 잘해주었어요. 아니, 잘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부탁하지도 않은 것들까지도 해줄 줄은 몰랐어요.”
“…….”
“값은 이미 다 치른 셈이에요. 이제 풀어줄게요. 영애나 아이젤 가에 대한 정보는 모두 파기하겠어요.”
“네?”
“영애는 나한테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른 거잖아요.”
뭐라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는 그런 게一.
“놓아줄게요.”
一아니잖아.
루아티샤가 미소 지었다.
아주 분명하게 선을 긋는 미소였다.
당신이 안전하길 바라니 이제 그만 도와줘도 돼.
그렇게 말하면 듣지 않을 걸 아니까.
아이젤 영애는 이를 악물었다.
“협박, 안 했잖아요.”
“아니요. 난 아이젤 영애를 협박했어요.”
“나한테 불리한 정보 따위 처음부터 없었잖아요”
“……기억이 잘못되기라도 한 거예요? 나는 그때一.”
“거짓말.”
“…….”
“내 의지로 그런 거예요.”
아이젤 영애의 눈빛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이글거렸다.
루아티샤는 벌렸던 입술을 다물었다.
“이건 공녀님도 뭐라 할 수 없어. 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한 게 아니야. 내 의지로, 내가 생각해서 스스로 결정한 거예요.”
“…….”
“공녀님을 돕기로.”
두 사람은 물러나지 않을 기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흡사 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럼 약속해.”
루아티샤가 짓씹듯 말했다.
“이번처럼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강행하지 않겠다고.”
“…….”
“항상 영애의 안전을 우선해서 움직이겠다고.”
“…….”
“그렇게 약속해줘요.”
루아티샤의 목소리는 끝이 살짝 떨렸다.
아이젤 영애는 그제야 자각했다.
자신의 신변에 닥쳤던 위험이 이 다정하고 상냥한 아이에게 어떤 상처가 되었을지.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했을지.
울컥,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치고 올라왔다.
아이젤 영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걱정 마세요. 저도 그런 일은 싫어요. 원래도 딱히 죽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살고 싶은걸요.”
치밀어 오르는 애정을 참지 못하고 끌어안자 품 안에서 아이가 방긋 웃었다.
“약속이야.”
그렇게 말하며 내밀던 새끼손가락.
“…….”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게 눈앞을 메웠다.
‘……그냥 엿듣기만 하는 거야.’
위험할 일 없어.
뮤리엘 샤본느를 미행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결심을 마친 아이젤 영애가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 * *
“오랜만에 뵙는데 제게 다과도 내주시지 않는 겁니까?”
“다과? 하!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었구나. 본후가 그대를 벌하지 않고 참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비를 베푸는 것이거늘!”
황후의 말에 뮤리엘이 피식 웃었다.
그녀는 앉으라는 허락을 듣지 않았는데도 소파에 우아하게 자리를 잡았다.
진노한 황후가 입을 여는 순간, 뮤리엘이 선수를 쳤다.
“무엇을 이유로 저를 벌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아이젤 영애를 감금하고 고문했다고요?”
“…….”
“그러려면 제가 어떻게 고문했는지 말해야겠죠. 황궁 건물은 그 어떤 힘의 사용도 제한되어 있는데, 왜 제가 힘을 쓸 수 있었는지도.”
황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 창고에만 힘의 제한이 풀려 있다니. 사람들이一 특히 황궁에서 거하시는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께서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뮤리엘 샤본느!”
“훗, 어차피 가장 곤란한 건 황후 폐하 아니잖습니까?”
뮤리엘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아니면 뭐, 다른 것을 이유로 벌하시려는 걸까요?”
“……수상한 물약을 황궁에 가지고 온 것이 알려지면 어찌 될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아아, 그렇죠. 저는 조사 받으면서 그 수상한 물약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도 말해야겠군요. 황제 폐하께 거짓을 고할 순 없으니.”
뮤리엘이 씨익 웃었다.
“시드리한 황자를 광폭화시키는 물약인데, 그를 없애기 위해 황후 폐하와 손을 잡았었다고요.”
“네 이년!”
흥분한 황후가 벌떡 일어났지만, 뮤리엘은 여유롭게 소파에 기댈 뿐이었다.
“아, 참. 광폭화에 대해 말하려면 시드리한 황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내야겠군요. 왜 그 물약이 시드리한 황자만 광인으로 만드는지 설명해야 할 테니까.”
황후의 얼굴이 분노로 푸들푸들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뮤리엘은 고소를 머금었다.
‘왜, 내가 설설 기며 용서를 구할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면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며 눈물 젖은 읍소를 할 거라고?’
흥, 이래서 인간들이란.
이렇게 한 번씩 주제를 파악시켜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기어오른다.
“황제와 황비 사이의 자식을 죽이고 싶어서 정체도 알 수 없는 여자와 손을 잡은 제국의 황후라…….”
뮤리엘이 말을 끌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폐위의 사유로 아주 적절하지 않나요?”
“너……! 그게 밝혀지면 네년도 무사할 줄 아느냐?!”
“흐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사실은 저였다고 밝히시면 저도 꽤나 곤란해지긴 하겠지요.”
뮤리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를 곤란하게 하고 싶으면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
“과연 황비 전하께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뮤리엘이 사르르 미소 지었다.
“친딸인 줄 알았던 황녀는 첩지도 못 받은 후궁이 낳은 가짜고, 시드리한 황자가 자신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지.”
황후가 파르르 떨며 뮤리엘을 노려보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또 어떻게 반응하실까? 생전에 냉랭했던 태도와 달리 황녀가 죽고 나자 끔찍이도 슬퍼하셨다던데.”
평소라면 소리치며 패악을 부렸을 황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거침 숨결과 함께 찢어 죽일 기세로 노려볼 뿐.
그 모습을 보고 뮤리엘이 피식 웃었다.
“황후 폐하께서 제게 이를 갈 곳 계시면서도 정작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신 것도 그래서 아닙니까?”
뮤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드러운 손길로 황후의 손을 잡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황후의 손은 시체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황후는 차마 뮤리엘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뮤리엘이 황후와 눈을 마주하며 생긋 웃었다.
“폐하, 우리는 한 배를 탔습니다.”
“한 배를 탄 자가 배신을 해?”
“배신? 후후, 배신이라는 말을 맞지 않아요. 애초에一.”
뮤리엘이 황후를 내려다보았다.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눈.
황후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이 배의 선장은 이 뮤리엘이었습니다. 황후 폐하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