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7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77화(177/353)
☆ 제177화 ☆
* * *
루아티샤는 슬쩍 머리를 매만졌다.
어깨에서 끊기는 짧은 단발 대신에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손끝에 감겼다.
디에르 자작이 그렇게나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밀려 빗어주지 못한 머리카락은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루아티샤는 마차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신경 쓰이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안나의 질문에 루아티샤는 화들짝 놀라 창문에서 얼굴을 뗐다.
“아니? 왜, 왜?”
“아까부터 자꾸 가만 있지 못 하고 계시잖아요. 드레스도 한 번 탁탁 폈다가 머리도 매만졌다가.”
“내가? 안 그랬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침뚝 떼는 루아티샤의 얼굴을 보고 안나는 픽 웃었다.
항상 똑소리 나게 굴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꼬꼬마 아가씨였다.
루아티샤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슬쩍 물었다.
“안나, 나 이상해?”
“조금 이상하시긴 하네요.”
“어, 어디 가?”
화들짝 놀라서 물어보는 루아티샤를 보고 안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만히 계시지 못하고 자꾸 안절부절못하시는 게 이상하다는 뜻이었는데……. 왠지 다른 걸 물어보신 것 같네요?”
“어?”
깜빡깜빡
몇 번 눈을 깜빡이던 루아티샤가 확 얼굴을 붉혔다.
“아니야. 그냥, 나는……. 그거 물어본 거 맞아.”
우물쭈물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간지러워졌다.
안나는 루아티샤를 꼭 끌어안고는 토닥였다.
“우리 아가씨, 언제나처럼 완벽하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예쁘세요.”
“……정말?”
힐끔 눈치를 보는 모습이 속마음이 빤하게 보였다.
안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루아티샤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런데 우리 아가씨께서 왜 그런 걸 물어보실까? 혹시 신경 쓰이는 분이라도 생기신 걸까아?”
“아니야!”
빽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영락없이 찔리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흐음? 아니면 아니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실까아?”
그러는 사이 마차가 멈춰 섰다.
어느새 황자궁에 도착한 것이다.
루아티샤는 안나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쌩하니 일어났다.
그리고 풋맨이 발디딤판을 깔아주기도 전에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힐끔.
뒤를 돌아본 루아티샤가 안나에게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 아니야.”
두 뺨이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그대로 구르듯 뛰어가다가 다시 도도도 돌아와서 빼꼼 마차 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안나도 완벽하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예뻐.”
“어머나.”
안나는 풋, 웃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소리 지른 것 때문에 혹시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생각할까 봐 굳이 와서 저런 말을 해주고 가는 것이다.
고개를 드니 분홍빛 머리카락이 나폴나폴 흔들리며 멀어지고 있었다.
안나는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렇게 신경 쓰시더니. 저렇게 뛰면 다 흐트러질 텐데.’
안나는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여름 햇살이 아이의 상기된 뺨을 밝게 채색하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께서도 슬슬 풋사랑을 시작하실 때지.’
안나는 딱히 그게 싫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지나며 루아티샤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자연스레 다양한 감정을 느꼈으면 하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다.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다만.
‘음, 공작 각하께서 아시면 난리 나겠는데…….’
팔불출이 문제였다.
‘각하뿐만이 아니라 후작님과 도련님들도.’
걸음을 옮기던 안나의 미소가 잦아들었다.
‘디에르 자작은 울 거 같은데. 로라랑 낸시랑 틸다는 온갖 야단을 떨 테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길수록 얼굴이 심각해진다.
‘칸도르 백작님도 아닌 척하지만 장난 아니고. 거기에 오르카랑…….’
우뚝.
계속해서 늘어나는 사람들에 안나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우리 아가씨,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거 아닐까?
아니, 아예 결혼도 못 하는 거 아니야?
* * *
인생 2회차의 삶까지 모태 솔로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루아티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콩닥콩닥.
“오랜만이군, 공녀.”
“네, 황자 전하.”
루아티샤는 사뿐사뿐 걸어서 소파 위에 앉았다.
달랑달랑 흔들리는 발을 보고 시드리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저렇게 들떴지?’
애써 차분하게 행동하고 있지만, 루아티샤는 확실히 들떠 있었다.
아이스 초코를 마시며 힐끔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니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은데,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있다.
평소의 루아티샤라면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꺼냈을 건데.
“…….”
루아티샤는 마카롱을 집으며 들키지 않도록 시드리한을 훔쳐봤다.
‘……손가락이 생각보다 훨씬 길구나.’
내 손이랑은 엄청 차이 나겠어.
다리도 길고 발도 크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클까?
쑥쑥 자란 시드리한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왜 이렇게 재밌는지.
‘의외로 단 걸 좋아하나 봐. 아이스 초코에 마카롱이라니.’
저렇게 깔끔하고 서늘한 얼굴로 단 것을 먹는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샤.”
‘흠, 조금 귀여운 거 같기도.’
근데 왜 지금은 안 먹지?
음료에도, 디저트에도 손을 댈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먹고 있는 건 루아티샤뿐이었다.
“……티샤.”
‘설마 부끄럼 타는 건가? 남들 앞에서 쓴 차를 마시면서 어른스러운 척하는 타입? 시드도 애는 애구나.’
얼굴은 저렇게 완성一.
얼굴…….
‘어라?’
왜 이렇게 얼굴이 가깝지?
루아티샤의 눈이 커다래졌다.
스윽一.
입가에 길쭉한 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갔다.
“묻었어.”
“어, 어?”
“크림.”
“고, 고마워요.”
루아티샤가 고개를 숙이며 얼른 입가를 훔쳤다.
시드리한이 닦아준 덕분에 더이상 묻어나오는 건 없었다.
“……그냥 말로 해주지.”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시드리한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랑 달라.’
루아티샤의 반응이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르다.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방울뱀들을 전부 잊을 정도로 수르아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되는 거요.”
그 말을 실천할 때였다.
“…….”
루아티샤는 고개를 숙인 그대로 침을 꼴깍 삼켰다.
닦아주고서도 시드리한은 몸을 물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흐트러졌어.”
시드리한의 손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흘러내렸던 머리카락이 귀 뒤로 넘어간다.
“주인님.”
목소리가 살짝 낮았다.
“그,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루아티샤가 항변하자 시드리한이 입술 끝을 올렸다.
“뭐 어때. 둘만 있는데.”
“…….”
루아티샤의 얼굴이 새빨갰다.
‘꼭 건들면 터질 것 같네.’
시드리한은 웃으며 몸을 물렸다.
그리고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조금 걸으시겠습니까, 공녀?”
“네, 전하.”
루아티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손을 잡았다.
하지만 안도하기는 아직 일렀다.
* * *
“유혹하시오.”
“수르아 씨를 유혹해서 단장의 포로로 삼는 겁니다.”
“다른 남자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도록!”
“수르아 씨가 온종일 단장만 생각하도록!”
시드리한은 노력파에 배움이 빨랐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즉시 어떻게 하면 루아티샤의 마음을 잘 사로잡을 수 있지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그거 들었어? 그 제온 파에라톤을 해롱해롱하게 만든 기술!”
“그런 게 있어? 아니, 그보다 제온 공자님이 해롱해롱한 적이 있긴 해? 자기 막내 동생 외에는…….”
“내 친구의 사돈의 팔촌의 조카의 친구가 제온 님이 누군가에게 벽쿵 해달라고 조르는 걸 들었대. 머리 쓰다듬어 달라고도 하고.”
“어머? 어머머? 그 제온 님께서?”
“그러니까! 엄청나지?”
“상대가 누구래?”
“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벽쿵이라…….’
솔직히 그런 게 왜 좋은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제온 파에라톤과 루아티샤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으니 취향도 비슷하지 않을까?
시드리한은 루아티샤의 옆에서 걸으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벽쿵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인위적일수록 오히려 짜증만 나고 자연스러워야 설렌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하지만 도무지 그럴 기회는 없었다.
어째서인지 루아티샤는 자신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
“하, 하, 하. 날씨가 차암. 좋네. 꽃도. 피었. 다.”
一하며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
지금 벽쿵인지 뭔지를 해봤자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 같은데.
시드리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루아티샤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어색하지 않게 잘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른손이랑 오른발이 같이 나가고 있잖아?!’
루아티샤는 화들짝 놀라 걸음을 고쳤다.
왼발이 나갈 땐 오른손! 오른발이 나갈 땐 왼손!
새삼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 그치만 조, 조, 조……한다고 자각한 뒤에 만나는 건 처음이란 말이야!’
없던 감정이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이전부터 쌓였던 호감을 알아챈 것뿐인데, 어째서인지 모든 게 의식됐다.
아까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던 시드리한의 손길과, 가까웠던 얼굴이…….
콩깍지가 껴서 에첸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드는 다르구나.’
루아티샤는 힐끔 시드리한의 얼굴을 훔쳐봤다.
그는 무언가 고민인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과연 등장과 함께 그 미모로 사교계에 파란을 일으킨 자다웠다.
시드가 눈앞에 있으면 시드가 제일 잘생겼고, 에첸이 눈앞에 있으면 또 에첸이 매력적이고.
‘으아, 진짜 이 바람둥이 기질…….’
루아티샤가 난감해하는 순간이었다.
후두둑.
“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여름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가 위태롭게 흔들리더니一.
우지끈!
“꺅?!”
나뭇가지가 떨어지기 직전, 단단한 손이 루아티샤의 손목을 낚아챘다.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벽으로 몸이 밀쳐졌다.
쿵!
그림자가 루아티샤의 작은 몸을 뒤덮었다.
코앞에서 느껴지는 숨결.
쌉싸름하면서도 시원한 향기.
얼굴 옆을 짚은 커다란 손.
그리고.
두근두근두근一.
바로 앞에 보이는 오묘한 빛의 보랏빛 눈동자.
“괜찮아?”
그 속삭임에 루아티샤는 옅은 숨을 내쉬었다.
그 옅은 호흡이 폐부에서 기도를 타고 입술을 통해 나가며 가슴을 간질였다.
‘아…….’
시야에는 온통 시드리한뿐이었다.
그 순간.
[능력〈벽쿵♥〉이 발동됩니다.]‘아니, 여기서?’
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저절로 팔다리가 움직였다.
루아티샤의 손이 시드리한의 어깨를 잡아채더니 그대로 빙글 몸을 돌렸다.
쿵!
루아티샤의 팔 안과 벽 사이에 시드리한이 갇혔다.
보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혹스러운 시드리한의 얼굴을 보고 루아티샤가 입술을 달싹였다.
‘어, 그러니까,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건데.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에잇, 모르겠다!’
“괜찮아? 다칠 뻔했잖아.”
솔직히 시드리한 정도 되면 나뭇가지가 아니라 나무에 깔려도 멀쩡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애써 꿋꿋하게 말했다.
“조심해. 주인의 허락 없이 다치는 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루아티샤는 벽을 짚은 손을 내리곤 그대로 쿨하게 뒤돌아섰다.
‘아씨, 쪽팔려!’
물론 속마음은 쿨하지 못했지만.
우두커니 벽에 기댄 시드리한이 얼굴을 짚었다.
“하…….”
언뜻 보이는 그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거였어.’
벽쿵인지 뭔지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는 입가를 가린 채 시선을 올렸다.
박력 넘치게 자신을 밀어붙인 후, 똑바로 응시하던 파라이바 빛 눈동자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큰일이네.”
여기서도 계속 좋아질 수가 있다니.
꼬시려다가 오히려 꼬심 당했다.
* * *
“으아아!”
나는 베개를 퍽퍽 때렸다.
‘미쳤지, 미쳤어!’
거기서 왜 능력이 발동해서는!
‘이거 랜덤이 아니라 누가 보고 일부러 타이밍 맞춰서 발동시키는 거 아니야?!’
어쩌면 이렇게 거지 같을 때만 발동할 수 있지?
한참 베개를 때리다가 나는 햄찌 인형을 푹 끌어안고는 침대를 뒹굴었다.
‘……멋있었어.’
나뭇가지가 머리 위로 떨어질 때 몸으로 그걸 막아주던 시드의 모습이 둥둥 떠나가질 않았다.
‘역시 나는 시드가 좋은 걸까?’
一흐응, 섭섭한데.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에첸이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은 채.
‘자, 잘생겼어.’
윽.
미쳤다, 진짜!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양옆에 떠오르는 에첸과 시드의 환상을 훅훅 쳐냈다.
세상에.
세상에!
내가 바람둥이 성향이라니.
너무너무 충격이야!
쉽게 마음을 내주는 그런 여자였어!
한 번에 두 명의 남자를 마음에 담는 그런 바람둥이!
발을 동동동 굴리던 때였다.
“왜 그래? 얼굴이 더 못생겨졌어.”
익시온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