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7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78화(178/353)
☆ 제178화 ☆
“어쩌지, 익시온?”
나는 익시온에게 안긴 채 양 뺨을 감싸 쥐었다.
“왜?”
“…….”
나는 우물쭈물거릴 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내 입으로 ‘난 사실 바람둥이야!’ 하고 말할까.
그것도 가족에게.
익시온이 티룸으로 향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볼이 빨갛지?”
그가 내 뺨을 쭈물하더니 검지로 이마를 톡, 건드렸다.
“이마까지 빨간데. 어디 아픈 건一.”
익시온이 유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一아닌데.”
‘……어떻게 아는 거지?’
익시온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중얼거렸다.
“가슴이 쿡쿡거리지 않고 기분이 더러운 것이 꼭…….”
우뚝.
그가 불현듯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오늘 시드리한 황자를 만나고 왔다고 했나?”
“어?”
미친.
왜 눈이 돌아가 있어.
“아니, 그, 벼, 별로 만나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상의할 게 있어서.”
“어쨌든 만났다는 거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아레스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사르르 웃는다.
봄 햇살보다도 따스하고 다정한 미소였다.
“혹시 말이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다른 놈들이 그 나이가 되면 슬슬 이성에 관심이 생긴다고 해서.”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꿀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뭐라고 말해도 절대 화내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
“내 동생도 혹시 관심이 가는 남자애가 있어?”
“어, 어?”
내 반응에 익시온과 아레스의 눈이 동시에 가늘어졌다.
아차.
시침 뚝 뗐어야 했는데!
“내 동생의 시선을 받는 새……, 남자애가 참 궁금하네. 그냥 가족으로서 그 정도는 알 수 있는 거잖아. 그 새……, 남자애를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고.”
아레스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음, 분명 나도 모르게 뭐든 말해버릴 정도로 강력한 미인계는 맞는데.
‘자꾸만 진심이 튀어나오고 있잖아. 왜 남자애라고 말하기 전에 새, 새 거리는 거야.’
내가 뚱한 얼굴로 아레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딸은 아무에게도 관심 없다.”
티룸에서 아빠와 할아버지 그리고 제온이 걸어나왔다.
“흥, 요즘 것들은 발랑 까졌군. 핏덩이만한 게 벌써부터 이성에 관심이라니. 나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우와, 우리 할부지가 꼰대라니.
“내 손녀딸은 그딴 발랑 까진 것들과는 달라. 나와 이나이스의 피를 물려받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음,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순진한(?) 아빠를 꼬시다 못해 할부지가 반대하든 말든 멋대로 결혼까지 한 사람 아닌가.
발랑 까진 걸로 따지자면 우리 가족 중에서 엄마가 제일 홀라당 발라당 까졌잖아.
“크흠, 어느 놈팡이가 이나이스를 꾀어내지만 않았어도 그 아이가 결혼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할아버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아빠에게 화살을 돌렸다.
아빠는 그냥 침묵한 채 나를 당당히 바라보았다.
놈팡이 소리를 들어도 나한테 자기가 꼬신 걸로 하고 싶나 보다.
“그래서, 관심 가는 남자애 있어?”
나를 빤히 바라만 보고 있던 제온이 툭 물었다.
“아니이? 그런 사람 없는데에?”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척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까의 그 어색한 반응과 확연히 다른 대응!
어떠냐!
“……있네.”
“없다니까!”
“기분이 더러운 걸 보니 확실히 있는 거 같은데.”
“흐음, 오늘 시드리한 황자를 만나고 왔다고?”
가족들의 시선이 어둡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으아! 시드가 위험해!’
거기다 시드는 K-드라마 법칙상 99.9% 황비의 친자식이라구!
시드한테 손대면 우리 가문도 일이 복잡해져!
하지만 당황하는 내 얼굴을 보며 가족들의 살기는 더 짙어질 뿐이었다.
에잇!
이럴 때는 정공법이다!
“사실은……. 루루, 관심 가는 사람이 있어.”
힐끔 눈치를 보며 말하자 가족들이 득달같이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 그게 누구야?”
아레스가 만개한 장미처럼 화사한 웃음을 띠며 물었다.
‘애써 그래봤자 망했어. 뒤에서 가족들이 욕하고 있는걸. 음표가 떠다녀.’
나는 시무룩하게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들 지인짜 피곤하겠다.”
“……?”
“왜?”
“내 딸이 누구에게 관심 있는지 신경 쓰는 건 하나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아니이, 그게 아니라一.”
나는 입가에 주먹을 착, 붙이고 가족들을 올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루루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니까.”
“……뭐?”
가족들이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때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대체 왜 자꾸 쉬지 않구 루루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는 거야? 다른 건 하나두 생각할 수 없잖아. 루루, 열심히 일해서 우리 아빠 맘마 사주구, 우리 할부지 까까 사주구, 오빠들 띠띠 사줘야 하는데.”
“…….”
“…….”
“……띠띠?”
“띠띠빵빵!”
“마차?”
“웅.”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다섯 남자들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간다.
불륜 막장 보고서에 쓰여 있던 걸 좀 각색한 건데 이렇게나 잘 통할 줄이야.
‘마지막 한 방이다.’
나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난감한 듯 입술을 내밀었다.
“아빠아, 루루에게 길 좀 알려 주세요.”
“무슨 길?”
“아빠 마음으로 가는 길.”
“…….”
“…….”
잠시의 침묵.
그리고.
“나는?!”
“이 할애비한테 오는 길은 8차선 마찻길이다! 일방통행 직선길이야.”
“내 동생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 내 마음으로 오는 길은 필요 없는 거구나?”
“난 길이 없어. 그냥 막내 앞이야.”
“……훗.”
아빠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음, 넘어간 건 좋은데.
‘복도에서 이게 무슨 짓이람.’
지나가던 고용인들이 조금 떨어진 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쪽팔린 거 잘 알……. 아니, 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어?!’
심지어 로라는 석상 위에까지 올라가 자리 잡은 채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저건…… 영상석?’
미친!
이걸 왜 찍어!
아니, 석상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올라간 거야?
‘흑역사의 박제라니…….’
현기증이 일었다.
‘휴우, 힘들어.’
그래도 시드와 가족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에첸 원작, 루아티샤 각색, 루아티샤 연기의 공연은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흑.
다 나가!
* * *
같은 시각.
숨겨진 방에 들어온 아이젤 영애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엿듣기 위해 만들어진 방답게 황후와 뮤리엘 샤본느의 목소리가 아주 잘 들리는 데다가 모습까지 보였다.
‘광폭화……. 그 물약이 사람을 광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니.’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아이젤 영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그 상황에서 시드리한 황자님께서 광인이 되었다면 공녀님까지 위험했을 거야.’
바로 옆에 서 있던 루아티샤가 곧바로 시드리한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독약을 먹이는 것보다 훨씬 잔혹한 수였다.
동시에 지금 약해지고 있는 에스테반 황자의 세를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다.
파에라톤 공작가가 가만 있지
않았을 테니까.
‘잔인한 사람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런 끔찍한 짓을 계획하다니.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보다 훨씬 더 놀라웠다.
“황제와 황비 사이의 자식을 죽이고 싶어서 정체도 알 수 없는 여자와 손을 잡은 제국의 황후라…….”
‘지금, 뭐라고?’
“폐위의 사유로 아주 적절하지 않나요?”
“너……! 그게 밝혀지면 네년도 무사할 줄 아느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황후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젤 영애는 혼란에 빠졌다.
‘그럼……. 설마, 시드리한 황자가 황비 전하의 친자식이라는 건가? 어떻게?’
엄청난 사실에 아이젤 영애는 비틀거렸다.
이건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간 진실이었다.
감히 황제의 친자를, 그것도 적궁인 황비의 소생을 빼돌리다니!
‘말도 안돼…….’
이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틀거리던 그녀의 팔꿈치에 무언가가 툭, 걸렸다. 동시에 미세한 빛이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헉…….’
아이젤 영애는 가까스로 비명을 삼켰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만 같다.
쿵쿵 뛰는 가슴을 누른 채 옆을 바라본 아이젤 영애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이건…… 영상석?’
딱히 직접 만져볼 일이 없긴 했지만 확실했다.
‘아까 그 빛은 영상석이 가동되었다는 신호인가? 하지만 황궁 건물 안에서 마도장치는 사용하지 못할…… 아!’
생각하던 아이젤 영애는 곧 어찌된 일인지 깨달았다.
황궁 건물 안에서 마법사나 오러 유저는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가지고 온 마도장치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황궁의 불을 밝히는 마법등, 온도를 조절하는 온도조절장치 등은 아주 잘 작동하고 있으니까.
‘이것도 황후가 직접 지시해서 설치한 것일 테니 당연히 작동하겠지.’
아이젤 영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실이 전부 다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황후와 샤본느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흐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사실은 저였다고 밝히시면 저도 꽤나 곤란해지긴 하겠지요. 저를 곤란하게 하고 싶으면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뮤리엘의 당당한 표정과 황후의 진노한 얼굴.
“과연 황비 전하께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
“친딸인 줄 알았던 황녀는 첩지도 못 받은 후궁이 낳은 가짜이고, 시드리한 황자가 자신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지.”
아이젤 영애의 의심에 확실하게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이젤 영애는 힐끔 영상석을 바라보았다.
기록되고 있는 장면이 자그마하게 떠올라 있었다.
‘아주 확실한 증거야.’
“황제 폐하께서는 또 어떻게 반응하실까? 생전에 냉랭했던 태도와 달리 황녀가 죽고 나자 끔찍이도 슬퍼했다던데.”
‘이래서 황후가 나를 내보내고 싶어 했던 거구나.’
이런 엄청난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게 좋을 리 없으니까.
“황후 폐하께서 제게 이를 갈 곳 계시면서도 정작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신 것도 그래서 아닙니까?”
‘갓난아이를 어미에게서 떼어 내 바꿔치기한 것으로 모자라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황궁 밖으로 아예 내쫓다니.’
그런데 왜 시드리한 황자는 죽이지 않고 내쫓기만 한 거였을까?
광폭화가 시드리한에게만 통한다는 거나, 힘의 제한이 풀려 있던 것을 운운한 걸 보면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
‘그것까지 다 기록되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뮤리엘 샤본느의 말대로 황후를 폐위시킬 수 있는 사안이었다.
나머지는 차차 알아내면 될 터.
아이젤 영애의 눈에 방을 나가는 뮤리엘의 모습이 비쳤다.
‘좋아.’
들키지 않고 잘 끝났다.
아이젤 영애는 품 안에 조심스럽게 영상석을 넣었다.
내일 이곳에 다른 영상석을 가져다 놓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황후는 이 방을 잘 쓰지도 않으니까.
‘이제 이걸 공녀님께 전해주기만 하면 돼.’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아이젤 영애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아이젤 영애는 마차 위에 올랐다.
오늘만큼 퇴근이 기다려졌던 때는 없었다.
어서 빨리 루아티샤에게 영상석을 전해주고 오늘 들었던 대화를 말해주고 싶어서.
아이젤 영애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서늘하고 딱딱한 영상석의 감촉이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파에라톤 공작저로 향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루아티샤의 사람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쇼핑하는 척하며 마차를 몇 번 갈아타야겠어. 아, 그리고 새도 불러야지.’
루아티샤가 부리는 조그마한 오목눈이는 웬만한 사람보다도 더 똑똑한 새였다.
대체 어떻게 아는 것인지 정해진 패턴에 따라 톡톡 두드리는 소리를 내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쿠키를 안 주면 떠나질 않지만.’
곡식알을 주면 퉷, 하고 뱉고 새다리를 쾅, 구르는 성질 나쁜 새이기도 했다.
‘쇼핑하면서 쿠키도 사야겠다.’
아이젤 영애는 톡토독톡, 하며 손가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응? 왜 광장 쪽으로 가지 않는 거지?’
무심코 내다본 창밖의 풍경이 이상했다.
아이젤 영애는 마부석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톰슨, 내가 광장으로 가라고 말하지 않았어?”
“…….”
“톰슨?”
“지름길로 가고 있습니다, 영애.”
“……!”
아이젤 영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톰슨이 아니야.’
제대로 얼굴을 확인하고 탔어야 했는데 영상석에 정신이 팔렸다.
아이젤 영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인적이 드문 곳까지 접어들었다.
여기서 창문을 열고 소리 질러봤자 납치범들을 자극해서 상황만 더 나빠질 것이다.
“당장 마차를 돌려. 나는 아이젤 가의 영양이자 황후 폐하의 측근 시녀다. 사례는 얼마든지 해줄 거네.”
“허어, 왜 그런 제안을 하시는 지 모르겠군요. 저는 지금 지름길로 아가씨를 모시고 있는 겁니다.”
그 말과 함께 마차가 멈춰섰다.
이윽고 마차 문이 열렸다.
“맞는 말이야. 지름길.”
나긋한 목소리에 아이젤 영애의 눈이 흔들렸다.
“샤본느……!”
뮤리엘 샤본느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