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7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79화(179/353)
☆ 제179화 ☆
아이젤 영애는 마른침을 삼켰다. 축축한 땀이 관자놀이에 비어져 나왔다.
“……레이디 샤본느. 나와 할 이야기가 있으면 이런 식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게 좋았을 텐데요. 이건 예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내가 단순히 영애와 대화나 나누자고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아?”
“그저 대화를 시도하는 방법이었다면 저 역시 그리 알고 넘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뮤리엘 샤본느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내가 영애를 잘못 본 모양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담을 대하게 예법과 내 지위를 운운하다니. 뭐, 좋은 시도였어. 잃을 게 많은 자들은 한 번 더 생각해봤을 수도 있겠지.”
“…….”
“근데 내가 그딴 걸 신경 썼다면 황궁에서 널 감금하지도 않았겠지?”
입술을 깨무는 아이젤 영애를 보며 뮤리엘이 짙은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에 아이젤 영애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뮤리엘 샤본느는 자신을 회유하거나, 협박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나를…… 죽이러 온 거야.’
그리고 그녀에게는 확실히 그럴 힘이 있었다.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아니야. 울지 마. 제발, 생각을 해.’
“결말은 같아.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야. 고통스럽게 죽느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편하게一.”
‘지금이야!’
뮤리엘이 제 말에 도취된 틈을 타, 아이젤 영애는 구두를 던졌다.
“뭐하는……!”
뮤리엘이 화를 내며 구두를 쳐내는 동안 아이젤 영애는 마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빠져나갈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도망갈 구석도 없는 마차 안에서 농락당하다가 끝낼 순 없었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서 달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맨발이 흙바닥을 박차는데도 아픈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등 뒤로 따라붙는 기척은 없었다.
‘됐…….’
“커헉!”
숨이 끊어지는 격통보다도 몸이 먼저 앞으로 고꾸라졌다.
타는 것 같은 고통에 아이젤 영애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 보았다.
새빨간 가시가 배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아, 흐, 으윽…….”
황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몸에 주입되던 기운과는 달랐다.
배를 움켜쥐자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게 묻어나왔다.
비릿한 혈향.
“아아, 아, 흐…….”
“선택을 했나 보네. 고통스럽게 죽기로.”
또각, 또각.
뮤리엘이 천천히 걸어 아이젤 영애에게 다가왔다.
“네년이 좀 짜증나게 굴어도 일이 귀찮아질 수 있으니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야.”
콱.
뮤리엘이 아이젤 영애의 턱을 거칠게 움켜잡고 시선을 마주쳤다.
“오늘 아주 깜찍한 짓을 벌였더라고?”
파랗게 질린 아이젤 영애의 얼굴을 보고 뮤리엘이 미소 지었다.
“쥐새끼같이 남의 말이나 엿듣고. 파에라톤 공녀가 그러라고 시켰나?”
“아, 아니, 야…….”
울컥,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게 따를 사람을 따랐어야지. 조용히 살았으면 곱게 늙었을 텐데.”
뮤리엘의 엄지가 아이젤 영애의 뺨을 짓누르듯 쓰다듬었다.
그 손길을 따라 창백한 얼굴에 입가의 핏물이 번진다.
“잘 가렴.”
“헉!”
또 다른 가시가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아, 흐, 아, 안돼……. 안, 하, 흐윽…….”
격통에 의식이 흐릿했다.
숨결과 뒤섞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이젤 영애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릿해졌다.
툭, 털썩.
뮤리엘이 손을 떼자 아이젤 영애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새빨간 핏물이 그녀를 중심으로 웅덩이처럼 고이기 시작했다.
‘……죽는 건가?’
이렇게 아프다면 그래,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그냥 바로 죽는 게一.
생기가 꺼진 눈동자가 그대로 감기는 순간이었다.
‘싫어!’
아이젤 영애가 눈을 부릅떴다.
눈물이 굳어버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격통으로 인해 흐르던 것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내고 싶은 것도…….
아직.
아직.
흐릿한 시야에 자신의 손을 잡은 채 환히 웃던 루아티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함께 마셨던 코코아가 정말 맛있었어.
창밖으로 보이는 눈송이는 소담스러웠고.
밖으로 뛰어나가 가득 쌓인 눈 위에 아무렇게나 털썩 누워 버렸을 때.
목과 등과 팔목을 파고들던 그 쨍한 한기.
그 상태로 마주 보고 커다랗게 웃었을 때는 또 얼마나 따뜻했는지.
“……응?”
아이젤 영애에게서 관심을 끊었던 뮤리엘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스윽, 슥, 스윽一.
아이젤 영애가 덜덜 떨리는 팔을 움직여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질질 끌리는 무거운 몸을 따라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허, 그러고도 아직 움직여? 평범하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귀족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뮤리엘이 픽 웃었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벌레 같다니까.”
뮤리엘이 아이젤 영애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쇄애액!
허공을 가르고 쇄도하는 기운에 뮤리엘은 황급히 손을 물렸다.
‘이 기운은一.’
“설마 정령? 아니, 그럴 리가…….”
뮤리엘은 바짝 긴장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손바닥만한 오목눈이가 짧은 날개를 빠르게 파닥거리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정령이라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뮤리엘은 오히려 더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도 정령을 다루는 자가 남아있었다니.”
으득, 이가 갈렸다.
“아프타네스, 그 썩을 것의 힘이 끈질기긴 참 끈질긴 모양이야.”
정령의 힘은 그녀와는 상극이었다.
뮤리엘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며 정령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이젤 영애의 주변 여덟 방위를 점하며 비행하던 오목눈이가 세차게 날아올랐다.
그 흔적을 따라 밤의 숨결과도 같은 기운이 일렁였다.
‘정령진……! 젠장, 귀찮게 됐군.’
설마하니 여기서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
뮤리엘의 손에서 새빨간 강기가 뻗어져 나왔다.
“삐이!”
오목눈이가 세차게 울며 날개를 뻗었다.
강기가 진에 막혀 사라졌다.
그 기세를 타고 오목눈이가 쏜살처럼 뮤리엘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기겁한 뮤리엘이 손에 강기를 두른 채 오목눈이를 쳐냈다.
정령의 기운이 강대하면 손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一.
툭.
“……?”
강기에 맞은 오목눈이가 그대로 날아갔다.
오목눈이의 당황한 눈빛을 본 뮤리엘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
“하! 힘을 제대로 못 쓰는구나?”
뮤리엘의 얼굴에 승리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힘이 없는 상태라 약해빠졌는데 거기다 기운을 다 끌어올려 진까지 설치해줬으니.”
뮤리엘의 시선이 진 안에 있는 아이젤 영애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오목눈이를 향했다.
“그런 주제에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뮤리엘의 양손에서 뻗어져 나온 강기가 자그마한 새를 향해 쇄도했다.
오목눈이는 위태롭게 비행을 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삐이이이!”
뮤리엘은 새를 콱 움켜쥔 채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설마하니 내 손으로 정령을 잡아볼 줄이야. 아주 진귀한 경험을 하는군.”
‘그분께서 참으로 기꺼워하시겠어.’
뮤리엘이 손에 힘을 꽉 주며 닦달했다.
“말해. 네 주인이 누구지?”
하지만 오목눈이는 부리를 딱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좋아.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
뮤리엘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아이젤 영애에게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치지직一!
“칫.”
까맣게 변해 바스러지는 손가락 끝을 보며 뮤리엘이 혀를 찼다.
“원래는 대단하신 정령이었나봐? 진의 힘이 이렇게 강한 걸 보면.”
차라리 잘됐다.
이런 강대한 정령이라면 알아낼 게 많을 것이다.
“어리석긴. 정령진을 치지 않았으면 나를 막아설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 역시 힘을 전부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이 정령에게도 승산이 있었을 거다.
뮤리엘은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리 진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그걸 설치한 정령이 봉인 당한 상태면 못 깨트릴 것도 없다.
뮤리엘은 정령진을 향해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상충되는 두 기운의 줄다리기에 정령진 주변으로 태풍이 이는 것 같았다.
“……흐윽…….”
아이젤 영애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뮤리엘의 손 안에 잡힌 오목 눈이가 보였다.
삐뵤뵤뵤, 삐뵤뵤뵤 구슬프게 우는 자그마한 새.
‘이럴 줄 알았으면 부르지 말걸.’
괜히 자신 때문에 저 자그마한 새까지 위험하게 됐다.
아이젤 영애는 터지려는 울음을 애써 억누르고 웃음을 덧그렸다.
“……어. 난……, ……다고, 전…….”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애써 달싹거렸다.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죽기 싫어.
살아서, 꼭 살아서一.
하지만 그래도 죽는다면.
“……랑한다고, 부모님…….”
꼭 전해주고 싶다.
저 작은 새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지. 저기까지 들리기는 할지.
다 알아듣는다고 해도 전해주지 못할 테지만.
아니, 이건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혼잣말일 뿐이다.
알고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내 말을 들어 주는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야.’
적어도 말을 걸 수 있어서,
흙바닥에서 혼자 죽어가지 않아서.
“……고마, 워.”
콰아아앙!
“삐이이이이一!”
정령진이 부서졌다.
뮤리엘은 비틀거리며 촘촘히 배어 나온 땀을 쓸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제대로 힘도 못 쓰는 정령이 만든 진인데도 깨부수기 힘들었다.
뮤리엘은 숨을 몰아쉬며 수하에게 명했다.
“후우, 저년의 몸을 샅샅이 뒤져라. 혹시라도 증거가 될 만한 게 있으면 안 되니까.”
“예.”
아이젤 영애의 품을 뒤지는 수하를 보고 뮤리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일단은 은신처로 가서 몸을 회복하고 그분께 정령에 대해 보고를 올려야겠다.
뮤리엘이 완전히 긴장을 푼 순간이었다.
“아흑……! 컥!”
시뻘건 핏물이 뮤리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 망할 새 새끼가……!”
진을 파괴하는 데 힘을 거의 소진 한데다가 방심하던 차에 당한 일격이라 충격이 컸다.
상극인 기운이 핵을 제대로 타격했다.
뮤리엘의 손안에서 빠져나간 새는 비틀비틀거리며 제대로 날지도 못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짠 게 틀림없다.
후두둑, 코피를 흘리면서도 뮤리엘은 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서 이렇게 놓칠 순 없어!’
무리를 해서라도 잡아야 한다.
하지만 비틀거리던 새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역소환?’
“젠장!”
뮤리엘이 핏물을 뱉으며 이를 갈았다.
* * *
[경고!] [소유물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했습니다.] [소유물을 불러오겠습니까?]갑자기 떠오른 경고창에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루?”
함께 티타임을 보내던 아빠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화, 화장실 다녀올게요!”
나는 쌩하니 티룸을 나갔다.
뛰듯이 걸어서 화장실에 도착한 후, 곧바로 문을 걸어 잠갔다.
‘불러올래.’
[오류!] [형체를 유지하기엔 소유물의 힘이 너무 약합니다!] [〈보관함〉에 강제 보관됩니다!]‘뭐?’
나는 얼른 보관함을 열었다.
거기엔 내가 여태까지 받은 아이템들 외에 에르메스 짹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문제는 에르메스 짹 그림에 아주 커다란 반창고가 달려 있다는 거였다.
‘얘가 왜?’
에르메스 짹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에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과 연락망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왜 다친 거지?’
꺼내고 싶었지만 형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알림만 다시 뜰 뿐이었다.
“……누가 공격한 건가? 왜?”
평소 에르메스 짹이 이동할 때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공격을 당했다고?
정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데 왜 공격했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마른 세수를 했다.
‘……일단은 진정하자.’
갑자기 애가 다쳤다니까 도무지 심장이 가라앉질 않았다.
나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세수를 한 뒤 다시 티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라? 분위기가…….’
내가 조금 전에 티룸을 나갔을 때와 확연히 달랐다.
문을 열자마자 가족들이 굳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왜, 왜 그래요?”
불안감에 가슴이 술렁였다.
“루루.”
아빠가 내게 손을 뻗었다.
그 커다란 손을 맞잡자 조금 안심이 됐다.
아빠가 나를 들어 올려 무릎에 앉히고 차분차분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이상하게 그럴수록 가라앉았던 불길함이 다시 가슴을 치고 올랐다.
“무슨 일이에요?”
“진정하고 들어라.”
“…….”
“아이젤 영애가…….”
아이젤 영애?
왜 여기서 아이젤 영애가 나오지?
“사망했다고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