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0화(180/353)
☆ 제180화 ☆
“뭐, 라고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제도 내에 갑자기 강력한 힘의 충돌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그쪽으로 흑풍을 보냈는데…….”
아빠의 말이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흩어지는 말을 붙잡았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힘의 충돌.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아빠라면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루루.”
그리고 그 힘의 충돌에는 에르메스 짹이 관련 있겠지.
“루루.”
흑풍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상황을 확인하고 아빠한테 보고할 정도면 생각보다 화장실에서 오래 있었나 보다.
그리고一.
“루루!”
내 양팔을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움켜잡는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빠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못 봤지?’
곧 깨어질 연약한 것을 바라보듯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한 시선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아빠와 눈을 마주하자 아빠가 커다란 한숨을 쉬며 나를 꽉 끌어안았다.
“닫아 걸고 어디 가지 말아라.”
“…….”
“내 옆에, 우리 옆에 있어.”
“…….”
“네 아빠 여기 있다.”
등과 허리를 꽉 붙드는 단단한 팔, 어깨를 그러쥔 커다란 손.
아빠 품.
아빠 냄새.
코끝이 시큰거리고 두 눈이 뜨거웠다.
심장이 쪼아 먹히는 것처럼 아파.
“아, 아이젤 영애는…….”
형편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젤 영애는 주, 죽지 않았어요…….”
아니야.
이런 말 하면 안 돼.
아빠는 확실한 것만 내게 말씀해주셔.
똑바로 현실을 봐야 해.
아빠를 곤란하게 해서는一.
“그래.”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눌렀다.
“루루, 네 말이 맞다.”
나는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아빠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계셨다.
울 것 같은 미소였다.
내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아빠는.
“네가 보내줄 수 있을 때, 보내주자꾸나.”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몇 번이고, 몇 번이고一.
나는 아빠를 꽉 끌어안았다.
“곧바로 현실을 볼 필요도 없고 완전히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얼마든지 부정해도 되고 얼마든지 후회해도 된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응, 응.”하며 고개를
주억거릴 뿐.
아빠는 그럴 시간이 필요했구나.
하지만 그러지 못했구나.
가장 아픈 순간에도 자신을 채찍질해서 가다듬어야 했어.
‘그래서 나한테는…….’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부르지만 다 몰라서 하는 소리야.
가슴팍이 온통 젖어 들었지만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젤 영애…….’
‘아이젤…….’
‘오필리아 아이젤.’
그 이름을 되뇌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도 근교의 별장에서 함께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볼 때.
폭신한 눈밭에 몸을 파묻고는 나를 보며 지었던 미소가 얼마나 빛났던가.
눈앞을 스치던 얼굴은 이내 마지막에 보았던 모습이 되었다.
“이건 공녀님도 뭐라 할 수 없어. 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한 게 아니야. 내 의지로, 내가 생각해서 스스로 결정한 거예요.”
그 당당하던 눈동자.
“걱정 마세요. 저도 그런 일은 싫어요. 원래도 딱히 죽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살고 싶은걸요.”
“약속이야.”
마주 걸던 새끼손가락.
‘약속……했으면서.’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원망하면 왜 네가 원망하냐고 다시 돌아올까?
‘……오필리아 언니.’
“흐어어엉! 바보같이 왜 죽은 거야! 왜! 왜!”
내가 성을 낼 일이 아닌데 자꾸만 못난 말이 튀어나왔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알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고 숨을 쉴 때 쉭쉭거리는 소리가 났다.
온몸이 뜨거웠다.
고개를 드는데 아빠의 가슴팍에서부터 내 얼굴까지 무언가가 직 늘어났다.
‘아, 콧물.’
아빠가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쿨쩍.
가만히 그 손길을 받고 있으려니 누군가 내 머리를 톡 두드렸다.
“아버지만 여기 계시는 게 아니야.”
나는 놀라서 익시온을 바라보았다.
익시온이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
‘항상 각하라고 불렀는데
“우리도 여기 있어. 내 동생 옆에.”
“……응.”
아레스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제온이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담쓰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루아티샤.”
“네, 할아버지.”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했단다.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내 손을 붙잡았다.
“일단 물을 좀 마시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자. 밥도 먹어야지.”
……내가 그래도 될까?
머리 한켠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날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동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온몸을 감싸는 검은 드레스가 어색했다.
나는 모자에 달린 망을 잡아 내렸다.
아무도 내 표정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고맙습니다, 공작. 각하께서 마지막 가는 모습을 봐주셔서 딸도 명예로워할 겁니다.”
아이젤 백작이 퀭한 얼굴로 상투적인 말을 읊었다.
아이젤 백작가와 깊은 친분이 없는 파에라톤 공작 일가의 참석에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가주의 죽음도 아니고 일개 영애의 죽음에 일가가 모두 행차하다니.
하지만 이내 저마다 납득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황후가 자신의 측근 시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대대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나는 꽃을 든 채 아이젤 영애가 누워있는 관으로 다가갔다.
“……아이젤 영애.”
아이젤 영애의 얼굴은 다소 창백할지언정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 차갑게 굳은 뺨을 매만졌다.
“…….”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툭, 아이젤 영애의 뺨 위로 떨어진 눈물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나는 눈앞을 가린 망을 다시 한번 끄집어 내린 후 몸을 돌렸다.
“공녀가 내 딸아이의 죽음에 이리 깊이 애도할 줄은 몰랐네.”
아이젤 백작 부인의 말에 나는 그대로 우뚝 섰다.
“……어찌 애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맙네.”
아이젤 부인이 내 손을 움켜쥐었다.
“사실 조문객들 중에서는 내 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보다 다른 것을 위해온 사람들이 많지.”
“…….”
“파에라톤 공작가도 비슷한 목적으로 왔을 거라 생각했네. 내 딸아이도, 남편과도 그리 친분이 깊지 않은 사이니.”
“그러셨군요.”
“하지만 공녀의 얼굴을 보니 이 자리에서 가장 진실하게 내 딸아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 같아. ……황후 폐하보다도.”
“…….”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나는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어.
어쩌면 아이젤 영애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살아서 가족들과 함께 여름 햇살을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끌어들이지만 않았다면.’
아니, 나에게 붙은 암중 호위 몇을 아이젤 영애에게 붙여달라고 하기만 했어도.
숨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이 내 가슴 안에 틀어박힌 채도 무지 빠지질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당신은 너무 생각이 많았다고, 나에게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밤에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 내 모습에 아이젤 영애는 화를 낼지도 몰라.’
一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이건 공녀님도 뭐라 할 수 없는 거라고.
一똑똑히 새기세요. 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한 게 아니야. 내 의지예요.
一아무리 공녀님이라 해도 내 의지를 공녀님 탓이라고 폄하할 수 없어.
하하.
그 목소리가 환상처럼 들릴 때면 마른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하지만.
“……죄송합니다, 아이젤 백작 부인.”
“공녀?”
“정말 죄송해요.”
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젤 부인은 어쩔 줄을 모르고 난처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그대로 장례식장을 나왔다.
한여름의 햇살은 눈이 아릿할 정도로 밝았다.
눈앞에 너울거리는 검은 레이스 사이로도 그 찬란할 빛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 * *
“루루, 이것 좀 먹어보렴. 아빠가 만들었다.”
“어디 보자. 여기 이 땅엔 온 천수가 나는데. 할아비가 여기 사줄까?”
“자, 내 동생하고 잘 어울리는 꽃이야.”
“솜뭉치, 목말 태워줄까?”
제온은 뭐해?”
루아티샤는 제 얼굴 옆을 척 짚은 제온을 향해 물었다.
“벽쿵…… 아니, 소파쿵.”
“…….”
루아티샤가 심드렁한 얼굴로 스르륵 제온의 팔 안에서 빠져나왔다.
“와아, 이거 아빠가 만들어주신 거예요?”
활짝 웃으며 푸딩을 먹는 아이를 보며 파에라톤 남자들과 타렌카 후작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맛있다!”
웃고 떠들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군.’
어떻게 모르겠는가.
하나뿐인 소중한 막내인데.
가짜 웃음인 것도, 과장되게 밝은 목소리인 것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저렇게 무리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차라리 엉엉 울며 난리를 치면 나을 것 같은데.’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 해도, 애써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아이에게 그래도 될까 망설여졌다.
만약 루아티샤를 억지로라도 붙들고 있는 게 사라진다면.
“…….”
“밖에 나갈까? 날이 좋아.”
“그래요!”
루아티샤가 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족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 * *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나무 그늘로 들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들과 피크닉을 나온 것까진 좋았다.
그러다가 클로버를 발견한 할아버지가,
“그러고 보니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던데.”
一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그딴 풀떼기 따위가 행운을 좌우하겠습니까?”
오빠들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길래 K-유교걸이자 장유유서를 언제나 몸소 실천하는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야. 행운을 가져다줘.”
그리고 네잎클로버 찾기 경쟁이 시작됐다.
저 멀리서 일렁이는 마기를 보고 나는 아연해졌다.
‘아니, 네잎클로버 찾는 거에 왜 마기를 쓰고 그래요. 아빠.’
아빠도 은근히 승부욕이 강하단 말이야.
나 역시 한참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생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안돼.’
생각이 사라지면 안 된다.
‘한순간이라도 잊어버리면 안 돼.’
해서 나는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나무 아래에 섰다.
‘잊지 마. 아이젤 영애가 왜 죽었는지.’
에르메스 짹이 깨어나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 죽음에 나 역시 책임이 있었다.
一아니라니까요! 자꾸 그러면 진짜로 화낼 거예요!
一내가 말했죠. 내 선택과 의지를 공녀님이 강제한 거라고 폄하하지 말라고!
‘응, 그래. 하지만 이건 진짜 영애의 목소리가 아니잖아.’
내 환청일 뿐이잖아.
그때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쩌면 그 흙바닥에서 혼자 죽어가면서一.
‘나와 함께 했던 일들을 후회했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 행운 따위를 찾겠다며 아이젤 영애를 한순간이라도 잊을 순 없다.
“…….”
나는 가족들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가족들에게 너무 우울한 얼굴을 보일 순 없었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에라톤 공녀?”
“……황자 전하?”
에스테반 황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다 보는군.”
“네.”
“산책 중이었나? 혼자?”
“네.”
“정말 혼자 왔다고?”
“가족과 함께 왔는데 잠시 혼자 걷고 있습니다.”
“……공녀, 전과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에스테반 황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