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1화(181/353)
☆ 제181화 ☆
그는 가늠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픽 웃더니 중얼거렸다.
“나는 이 모습이 더 마음에 드네.”
“…….”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에스테반 황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산책로에서 공녀를 만났으니 에스코트를 하一.”
“괜찮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는 무안하지도 않은지 자연스럽게 손을 거두며 씨익 웃었다.
또래 영애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미소였지만, 내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원래도 별로였는데 오늘따라 더더욱 밉상이야.’
황후의 보여주기식 애도에 안 그래도 화가 난 참인데, 그녀의 자식인 에스테반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쌩하니 그를 지나쳤다.
* * *
“……흥미롭지 않아?”
루아티샤가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에스테반이 슬쩍 입을 열었다.
곁에 있던 기사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예?”
“파에라톤답지 않게 헤헤 웃으면서 발발거리고 다닐 때도 재미있었는데, 저렇게 팍 기가 죽어있는 것을 보니까 더 재미있네.”
기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밝았던 어린애가 나이답지 않게 음울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게 그렇지 않아도 안쓰러웠던 참이다.
그런데 그게 재밌다니?
“아예 완전히 죽었나 했는데, 또 나한테는 저리 냉담하게 가시를 세우며 싸늘하게 굴잖아.”
“…….”
기사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얼굴이 전에 없이 기꺼워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새로운 사냥감을 찾은 것처럼.
‘파에라톤 공녀에게 공개적으로 몇 번 까였다더니. 그래서 눈 돌아간 건가?’
어쨌거나 이쯤에서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감히 황자 전하께 오만一.”
“그래, 감히 나에게.”
피식.
에스테반이 기사의 말을 끊으며 눈을 가늘게 휘었다.
의지를 잃은 듯 우울해 보이던 소녀의 눈동자.
지금이라면 내미는 손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자신의 손을 뿌리치던 손이 이번에는 자신의 손을 잡고 “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생기 없는 모습이겠지만 그 또한 박제된 꽃처럼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지만.
루아티샤는 그 상태로도 자신에게 날을 바짝 세우며 적의를 드러냈다.
죽어있던 눈이 예리하게 빛나며 자신을 담았다.
‘이렇게 적의를 드러낸 것은 처음이야.’
항상 조금은 귀찮다는 듯,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자신을 대했는데.
오히려 다 죽어가는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자신을 인식하고 있었다.
“아주 재밌어.”
“예?”
“과연 그 누가 나를 귀찮아하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대하겠어? 본인은 티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만 다 보였다고.
“예에…….”
“거기다 이제는 아예 싫어하는 걸 숨기지도 않고.”
“예…….”
기사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고개만 주억거렸다.
솔직히 아까 파에라톤 공녀가 싫어하다 못해 질색하는 게 다 보여서 아니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사회생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맞장구를 쳐야 하는지, 아니면 파에라톤 공녀도 황자님을 좋아하는데 괜히 튕기는 거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왜 재밌다고 하는 거야? 진심인가?’
슬쩍 에스테반 황자의 얼굴을 살피니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진짜 좋은 건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에스테반 황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약속 장소에 갔다.
측백나무와 편백나무, 향나무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아름답게 조경된 공터가 나왔다.
그곳에는 영식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채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에스테반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황자 전하.”
“그래.”
그들의 면면을 살피는 에스테반의 얼굴에는 슬쩍 경멸이 어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갈무리하고 미소를 그려냈다.
“오랜만에 그대들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아주 좋군. 앉게나.”
“예, 황자 전하.”
“하하, 전하께서는 어째 날이 갈수록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영애들이 모였다 하면 전하 이야기뿐이니…….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혹시 비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저희에게도 좀 알려주십시오.”
에스테반은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영식들의 아부를 들었다.
다들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었다.
아무리 갑자기 시드리한이 나타났다고 하나 그는 십수 년간 황제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또한 시드리한과 달리 정궁인 황후 소생의 황자.
지금은 잠시 에스테반의 하늘이 흐려도, 결국 태양은 그의 위에서 빛날 거라고 생각하는 귀족들이 많았다.
‘……따분하군.’
시드리한에게 연줄을 대고 있는 자들마저 자신 앞에서 생생하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단 하나 예외라면一.
자신을 노려보던 그 파라이바 빛 눈동자.
그 어느 색보다 쨍한 빛의 푸른 눈.
천천히 에스테반의 입술이 열렸다.
“오는 길에 아주 재밌는 것을 보았는데.”
“예? 어떤 재밌는 것 말씀이 십니까?”
“파에라톤 공녀가 홀로 산책 중이더군.”
“파에라톤 공녀가요?”
그 말에 영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엄청난 우연이긴 했다.
하지만 재밌을 게 있는가?
의아하던 영식들의 표정에 이내 설렘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파에라톤 공녀는 명실상부 제국 최고의 레이디가 될 소녀였다.
이번 대의 아우로라.
파에라톤 공작가라는 막대한 배경.
그러면서도 다른 파에라톤과 달리 위압적이지 않다.
무엇보다一.
‘예쁘잖아.’
어쨌거나 그들은 사춘기 소년들이었다.
“그런데 혼자……라니.”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여기가 관리 잘 되는 귀족 전용 산책로라고 해도.”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거고, 혹시라도 이상한 자와 만날 수도 있는 거고.”
“그런가?”
에스테반 황자는 속으로 픽 웃었다.
‘하여간 단순한 놈들.’
평소 파티장에서는 파에라톤 공녀에게 감히 말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던 놈들이었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느껴지겠지.
그는 굳이 파에라톤 공작가가 전부 함께 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는 똥개 같은 영식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입을 열뿐.
“그럼 큰일이겠군.”
“예, 예, 큰일이지요.”
“누가 가서 공녀께 에스코트라도…….”
영식들은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면서도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자를 남겨두고 자리를 뜰 순 없는 것이다.
“고작 환담이나 나누자고 어찌 공녀의 안전을 도외시하겠는가. 제국의 황자로서 용납하지 못할 일이네.”
“그, 그럼…….”
“볕이 좋군. 딱 산책하기 좋은 날씨야. 황궁에서 나온 김에 나는 주변을 돌아보고 오겠네.”
이건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식들이 밝아진 얼굴로 허겁지겁 일어났다.
‘멍청한 놈들.’
이래서 저들을 경멸하는 것이었다.
천지 분간할 정신은 없고 분수에 맞지 않게 과한 것을 탐내는 자들.
시드리한이 나타나지만 않았으면 상종하지도 않았을 것들이다.
‘그래도 저들의 가문은 쓸모있으니.’
에스테반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곁에서 가만히 있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신 겁니까? 저들은 파에라톤 공녀에게 가서 집적거릴 텐데요.”
“공녀도 꽤 난감하겠지. 저 주제 파악 못 하는 것들이 눈치도 없이 들러붙으면.”
기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공녀에게 까인 것에 대한 복수인가?
“궁금하지 않아?”
“어떤 것을 이르시는지.”
“그 난감한 상황을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내가 정리해 주면.”
에스테반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 얼굴이 또 어떤 표정을 보여줄지 말이야.”
“…….”
기사는 할 말을 잊고 에스테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게 까인 것에 대한 복수인 거야, 아니면 좋아하는 여자애를 놀리는 거야.
‘아니, 후자일 리는 없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괜히 툭 건드리는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그 높은 자존심에 바로 나를 반길 수도 없을 테고, 또 그 높은 긍지에 내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
쿡쿡 웃는 에스테반을 보며 기사는 표정 관리를 잊었다.
‘와, 진짜 돌았구나.’
워낙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나서 조금 재수 없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신이 이상하진 않았는데.
파에라톤 공녀도 참 대단한 아이였다.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들다니.
기사가 어떤 불경한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는 에스테반은 루아티샤를 떠올리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양가적인 감정이 루아티샤의 마음을 어지럽힐 것이다.
강렬하게, 거세게.
과연 이번에도 자신의 손을 거부할까?
* * *
나는 한숨을 삼키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저 혼자 걸으면서 나에게 벌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혼자서는 위험하니 에스코트해드리겠습니다.”
너네랑 같이 있는 게 더 위험할 거 같은데?
내 안구 건강에 적신호야.
“에이, 빼지 말고. 너무 빼도 매력 없습니다.”
이게 빼는 걸로 보이면 네 눈알을 빼고 다니는 게 좋겠어.
“공녀, 제 손이 민망합니다? 그만 부끄러워하고 이만 잡으시지요.”
민망하다니 정말 유감이야.
민망한 게 아니라 손이 아예 꺾였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내게 초능력이 없어서.
“공녀도 좋지 않습니까? 언제 이렇게 많은 영식들을 독점해 보겠습니까.”
돈을 주면서 독점해달라고 부탁해도 거절할 상인데.
“이래 봬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잘생겼다는 말만 듣고 삽니다.”
너희 부모님도 엄청난 팔불출이구나.
나는 우리 가족보다 심한 팔불출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희 부모님이 이긴 것 같아.
저 얼굴이 잘생겼다니 얼마나 콩깍지가 두꺼운 거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까는 에스테반 황자가 나타나더니 이번엔 조무래기 영식 1, 2, 3, 4, 5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정말 벌을 받는 듯했다.
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땐 무시가 답이다.
그대로 뒤를 도는데 영식이 “어허!” 하고 앞을 막아섰다.
“오빠가 데려다준다니까?”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누구세요?”
“뭐?”
“난 이렇게 못생긴 오빠 둔 적 없는데요?”
“공녀!”
“시끄러워. 나 귀 안 먹었어.”
차갑게 노려보자 영식들이 주춤했다.
이내 서로를 보더니 헛기침하며 다시 내게 다가왔다.
“왜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지 모르겠군. 우리는 그저 공녀를 위해 친절을一.”
“상대가 원하지 않는 친절은 무례일 뿐이야.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나?”
영식들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상대의 호의를 이리 거절하는 것도 예에 맞지 않一.”
“첫째, 나는 못생긴 남자들을 싫어해요.”
“못…… 뭐?”
“둘째, 나는 내 앞을 막아서는 사람을 싫어해요.”
“…….”
“셋째, 나는 우리 오빠도 아니면서 오빠, 오빠하며 스스로를 지칭하는 남자를 싫어해요. 이건 들으면 두드러기가 올라온다고 할까?”
“…….”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나는 조무래기 영식 1, 2, 3,
4, 5를 둘러보며 말했다.
“못생긴 남자가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며 내 앞을 막아설 때 내 기분이 얼마나 더러울까.”
“…….”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평생 이런 말을 면전에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이다.
그러게 안 그래도 사람이 빡쳐 있는데 못생긴 얼굴 들이밀면서 질척거리래.
못생긴 것들이 분위기 파악이라도 잘해야지.
“원래 나는 사람 생김새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데. 그래도 정도는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짝다리를 짚으며 팔짱을 착 꼈다.
“그다지 잘생기지 않았는데 인품이 훌륭하다? 그럼 훌륭한 분이지.”
그 불량스러운 자세에 영식들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나름대로 아우로라로서 몸가짐이 바르다고 정평이 나 있는 내가 이럴 줄은 몰랐나 보다.
“그다지 잘생기지 않았는데 능력이 출중하다? 그럼 뛰어난 사람이지.”
근데 그건 사람 앞에서나 지키는 예의고.
“근데 못생긴 주제에 인성도 못생겼다?”
나는 퉷, 하고 침을 뱉었다.
“살 가치가 없는 놈들이야.”
너희는 쓰레기잖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이만 세상과 안녕을 고하는 게 어떨까. 공기가 아까워.”
“공녀! 지금 파에라톤 공작가를 믿고 이리 날뛰는 건가?!”
예상치 못한 폭언에 멍하니 내 말을 듣고 있던 영식들이 핏대를 세우며 꽥꽥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엔 그 잘난 공자들도, 공작도 없어!”
“못생겼다니!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했어!”
“으윽, 내 눈! 나는 매일매일 눈에 좋은 것만 보고 자란 바람에 가뜩이나 못생김에 내성이 없어서 안구가 연약한데 너무 많은 못생김을 봐버렸어.”
내가 눈을 가리며 비틀거리자 영식들이 혀를 빼물었다.
“이익!”
“어디 한 번 쓴맛을 봐야 정신 차리지!”
내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아무래도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나오나 본데.
‘어디 한 번 소드 마스터에게 매타작을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우리 귀여운 영애들에게 이딴 식으로 집적거릴지도 모르니, 다시는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그때였다.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나를 달랑 들어 올렸다.
익숙한 손길과 체향.
“제온?”
‘제온이 왜 여기에?’
제온이 내 눈을 스윽 가렸다.
“우리 막내, 눈이 많이 아팠겠다.”
진심이 담뿍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아니, 그건 그냥 빡쳐서 한 말인데.’
못생긴 걸 봤다고 진짜로 눈이 아프거나 하진 않아…….
제온이 나를 더 바짝 끌어안고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막내의 예쁜 눈을 더럽히는 것들은 모두 깨끗이 청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