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2화(182/353)
☆ 제182화 ☆
나에게 말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목소리.
그저 듣는 것만으로 오소소 소름이 돋을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안고 있는 손은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내 눈을 가린 손길은 부드러웠다.
‘이상해.’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인데 긴장은커녕 오히려 힘이 빠지다니.
나는 비죽비죽 세웠던 가시를 집어넣고 제온의 가슴에 머리를 툭 기댔다.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비명이 울렸다.
“끄아아악!”
“아악! 흐, 으아아아!”
“오, 오지 마! 오지 마!”
두려움에 가득 떨리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제온이 조무래기 영식 1, 2, 3, 4, 5를 혼쭐내주고 있는 거 같은데.
하나도 안 보이니 답답했다.
내가 고개를 조금 트는 순간이었다.
“쉬이.”
나지막한 제온의 목소리와 함께 귓가를 시끄럽게 물들이던 비명이 뚝, 멎었다.
“막내 예쁜 귀 아프겠다. 조용히 해야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온의 목소리 외에는.
고막을 날카롭게 찌르던 비명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찌르르 풀벌레울음도 한순간에 멎었다.
마치 유리된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눈을 가린 제온의 손뿐이었다.
* * *
‘뭐, 뭐야 저게?!’
에스테반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새까만 마기가 천지를 뒤덮으며 그 잔혹한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예상대로 멍청한 영식들이 파에라톤 공녀에게 집적거리고 있던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상황을 살피다가 딱 좋은 타이밍이 와서 끼어들려는 순간.
웬 시꺼먼 사내가 갑자기 튀어나와 파에라톤 공녀를 안아 들었다.
‘뭐야, 저 새一 제온 파에라톤?!’
한여름에도 빛 한점 깃들지 않는 칠흑 같은 흑발, 감정이라곤 일절 담기지 않은 붉은 눈동자.
한눈에 그가 파에라톤 공작가의 적장자인 제온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제 막냇동생을 안아 든 채 영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나타나선……!’
에스테반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애써 연출한 무대가 엉망이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에스테반의 분노는 오래가지 못했다.
새까만 마기가 피어오르더니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빛과 공기마저 삼켜버릴 것 같은 흉포한 기운이 몸피를 스멀스멀 부풀리면서 영식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예상을 아득히 빗겨나간 대응에 에스테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응이 문제가 아니었다.
“으아아악! 시, 싫어!”
“저, 저리 가! 오지 마!”
“어, 엄마! 엄마!”
울며불며 도망치다가 넘어져 서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기어가는 영식들.
하지만 낄낄거리며 그들을 비웃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개를 움직이지 못한 채 눈알만 힐끗 움직여 옆을 보니 숙련된 황궁 기사인 호위가 이마에 핏줄이 설 정도로 긴장한 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에스테반은 굳어버린 입술을 깨물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마기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압박감이 사지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황가의 축복 덕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진 않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황가의 축복이 있는데도 이 정도인가?’
과연 정면으로 저 마기를 접하면 이렇게 서 있을 수 있을까?
지금도 마기가 내뿜는 패기에 팔다리가 저릿저릿할 정도였다.
영식들은 제대로 마기에 접하기도 전에 혼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것이…… 마기.’
말로만 들었지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다.
왜 그렇게나 파에라톤 공작가가 특별한지, 배척당하는지, 숭배받는지, 무시당하는지, 경외시되는지, 경원시 당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양가적인 모든 반응의 근원이 바로 저것이었다.
사아아아一.
일순, 소년들이 내지르던 비명이 그쳤다.
새까만 마기 안에서 그들의 모습도, 소리도, 흔적도 무엇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완벽한 공백.
세상의 소리마저 멎었다.
청소를 하겠다는 제온의 말 그대로, 새까만 마기에 삼켜진 공간은 아무것도 남지 않아 깨끗한 암흑뿐이었다.
그 이질적인 검은 공백에 에스테반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건 보통 사람이 마주하기에 너무나 거대한 미지이자 공포였다.
그러나 제온 파에라톤은 귀찮다는 듯 눈썹을 까딱이고는 품 안의 아이를 가볍게 추어올릴 뿐.
방금 소년 다섯을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삼켜버린 자답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냥을 마친 포식자는 이대로 자리를 뜰 것 같았다.
‘후…….’
에스테반이 안도하며 작게 호흡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별안간 제온의 시선이 에스테반을 향했다.
그 새빨간 눈동자.
삽시간에 등이 축축해지며 정수리 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이다.
제온은 어떤 위협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자 앞에 선 새끼 사슴처럼 사지가 벌벌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움직일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一.
“제온?”
말랑말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 사이에 울렸다.
제온은 지체 없이 에스테반에게서 시선을 떼곤 제 막냇동생을 바라보았다.
“응.”
“답답해.”
“미안. 나는 내 막내 눈 아프지 말라고.”
“이제 안 아파.”
“그렇게 많은 못생김을 봤는데?”
“……아직 조금 아픈 것 같기두.”
“호 해줄까?”
막냇동생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제온은 긴 다리를 움직여 저벅저벅 걸었다.
제온이 동생에게 나사 빠진 소리를 하는 동안에도 에스테반은 긴장한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제온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에스테반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후들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저절로 몸이 휘청였다.
“화,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기사가 깜짝 놀라 에스테반을 부축했다.
그러는 그의 얼굴도 귀신을 만난 것처럼 창백했다.
에스테반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짚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사는 짐짓 분개한 어조로 외쳤다.
“이 일에 관해선 파에라톤 공작가에 정식으로 항의를一.”
“하…… 하, 하하, 하하하하!”
갑자기 실성한 듯 웃어젖히는 에스테반의 모습에 기사는 놀라 입을 다물었다.
한참 동안 광소를 터트린 에스테반이 불현듯 웃음을 뚝 멈췄다.
“마기가 저런 거였단 말이지.”
에스테반이 입가를 쓸었다.
“우습지 않나?”
“예?”
“파에라톤 공작가 특유의 붉은 눈동자를 무섭다고 하는 이들을 비웃곤 했는데. 오히려 내가 그들보다도 더 몰랐던 거지.”
오늘에서야 파에라톤의 진면목을 보았다.
“아까 파에라톤 공작가에 정식으로 항의한다고 했나?”
“예? 예! 감히 황자 전하께 불경한一.”
“뭐로?”
“예?”
“뭐가 불경해서 항의를 한다는 거냐.”
“…….”
“날 좀 쳐다봤다고?”
그 말에 기사는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제온이 대단히 위협적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에스테반에게 한 행동은 그저 쳐다본 것뿐이었다.
“아, 아까 그 영식들을 주, 죽이지 않았습니까!”
“저기 저렇게 널브러져 있는 버러지들 말이야?”
에스테반이 턱짓으로 허옇게 뜬 얼굴로 쓰러져 있는 영식들을 가리켰다.
세상에 구멍을 뚫은 것 같은 마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영식들이 혼절하긴 했지만 딱 봐도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어 보였다.
“파에라톤이 두렵나?”
“예? 아, 아닙니다!”
“그 강대한 힘이 두려워서 항의하고 나머지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제약을 걸려고 하는 거다.”
“전하…….”
“하지만.”
에스테반이 제온과 루아티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그렇게 강대한 힘을 지녔기에 탐이 나는 것 아니겠느냐.”
벌벌 떨며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경멸을 내비치고 혐오하는 것.
그건 지배당하는 자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진정한 지배자는 그 강대한 힘을 자신의 손안에 넣고 싶어 하기 마련.
그리고 자신은 명실상부 황제의 아들로 제국의 황자다.
타고난 지배자.
‘모후께서 왜 그리 체통도 잊어가며 파에라톤 공작가를 손에 넣고 싶어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어.’
하지만 모후의 방법은 틀렸다.
진짜로 아펠리아가 파에라톤 공작과의 혼인에 성공했어도 결코 저 가문을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새 공작부인 따위, 파에라톤 공녀의 눈물 한 방울이면 날아갈 위태로운 자리였다.
그 누구도, 본인들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파에라톤 공작가의 고삐를 그 작은 아이가 쥐고 있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탐이 나.”
“예?”
기사가 되물었지만 에스테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뿐.
* * *
제온은 내 눈가를 가린 손을 치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답답하다니까?”
“아프면 안 돼.”
“이제 안 아파!”
“거짓말. 내 막내의 예쁜 눈동자에 담기엔 너무 큰 못생김이었어.”
……아니, 그걸 잘생긴 제온이 말하니까 좀.
뒤늦게 조무래기 영식 1, 2, 3, 4, 5가 불쌍해졌다.
나는 제온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손 떼.”
“응.”
아니, 명령하면 듣는 거였어?
진작 손 떼라고 할걸.
나는 뜨뜻해진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눈이 탁 트이는 숲의 전경만 있을 뿐.
‘이동했으니 없는 거겠지만.’
불안해…….
“제온, 설마 아니겠지만 영식들을 다 죽인 건…… 아니지?”
“죽일 걸 그랬어?”
“아니!”
진짜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안 죽였어. 내 막내가 싫어할 거 같아서.”
‘휴우, 다행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잘했어?”
“응.”
제온이 슬쩍 내게로 고개를 숙였다.
“진짜 잘했어. 착하다.”
나는 제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사르락, 사르락.
내 몸을 받치고 있는 제온의 팔은 단단하고, 결 좋은 머리카락은 부들부들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기분 좋은 안정감.
이것이 바로 애니멀 테라피인가.
‘……뭘 힐링이나 하고 있어.’
가슴에 선득한 기운이 차올라서 손을 내렸다.
제온이 아쉬운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외면했다.
‘내게 안정을 느낄 자격이 있나?’
그때, 제온이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
“눈 정화하라고.”
제온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눈에 좋은 거.”
눈에 좋은 거?
물론 제온 얼굴이야 눈에 보약이지만, 갑자기 왜……?
뒤늦게 내가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으윽, 내 눈! 나는 매일매일 눈에 좋은 것만 보고 자란 바람에 가뜩이나 못생김에 내성이 없어서 안구가 연약한데 너무 많은 못생김을 봐버렸어.”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제온을 바라보았다.
얼굴과 귓가가 뜨거워졌다.
‘그럼 그걸 다 듣고 있었단 말이야?!’
주접떨 생각도 없었는데, 주접 떨어버렸다.
* * *
“…….”
“…….”
“…….”
나는 내 눈앞을 가득 메운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결국 눈을 감았다.
“눈 떠.”
“눈 치료해야지.”
“근데 눈에 좋은 것만 본 바람에 못생김에 내성이 없어서 안구가 연약하다며. 그럼 못생긴 걸 좀 보여줘야 하나?”
“왜 절 쳐다보십니까, 도련님!”
저쪽에서 디에르 자작의 억울한 외침이 들렸다.
억울해할 만도 했다.
디에르 아저씨는 나름대로 인기 많은 훈남이었으니까.
하지만 익시온은 피식 비웃었다.
“너 나보다 잘 생겼냐?”
“그, 그건……!”
“아레스보다 잘생겼냐? 아레스 놈이 잘생겼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건 아니……지……요.”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제온 녀석이랑 아버지, 할배一.”
“아악! 됐어요! 됐다구요! 저 못생겼어요! 이제 잘 아니까 그만 물어보세요. 슬퍼지니까.”
목소리엔 이미 울음기가 가득했다.
‘원래 디에르 자작 놀리는 건 내 전문인데.’
슬쩍 눈을 뜨는데一.
“……?! 아빠?”
아빠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아, 깜짝아.
“연약해도 된다.”
“네?”
“아빠가 지켜줄 테니.”
으음, 심각한 표정이시긴 한데.
“잘생긴 것만 보거라.”
“…….”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아빠가 더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 진짜로 잘생겼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네.
“자, 여기. 눈 정화.”
아레스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도, 나도!”
“…….”
익시온은 물론, 은근슬쩍 할아 버지와 제온까지.
괜찮은 걸까, 우리 가족.
왠지 팔불출을 넘어 점점 정신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심지어 집요해…….’
피크닉에서부터 이러더니 돌아온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도 얼굴을 들이밀고 있어.
눈앞에서 얼굴이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아주 심란했다.
심지어 눈을 감아도 시선이 느껴졌다.
자려고 누웠는데 이러다간 잠은커녕 날밤을 꼬박 새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