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3화(183/353)
☆ 제183화 ☆
* * *
파에라톤 공작은 잠든 딸아이에게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집에 마음 편히 붙일 곳이 없는지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쓰러져 자던 작은 아이.
그 작은 몸에 이불을 덮어주며 고민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파에라톤 공작은 성장하며 단 한 번도 가족의 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비의 손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 적도, 어미의 품에 안긴 기억도 없다.
그 스스로도 그런 걸 바란지 조차 않았다.
파에라톤에게는 정서적 교류가 필요 없다는 말대로, 그의 피에 흐르는 강대한 힘이 그를 이끌었으니까.
‘하지만.’
파에라톤 공작이 딸아이의 머리칼을 쓸었다.
이 자그마한 아이는 달랐다.
마기가 없었고 평범한 아이처럼 아빠를, 가족을 바랐다.
어찌 모를까.
그 얼굴에 떠오른 경계심과 두려움, 원망.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정을 갈구하던 그 상처받은 눈동자를.
그러나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나이스가 있었다면.
그때만큼 그 생각이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이나이스라면 분명 이 아이를 잘 보듬어주었을 텐데.
아니, 애초에 타렌카 저에 맡겨져 그런 수모를 당할 일조차 없었으리라.
그 혼자서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낯설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이제 같이 있을래요.”
“낯설지 않으려면 꼬옥 붙어있어야 한다고 했는걸!”
그런데 이 작은 아이가 답을 알려주었다.
파에라톤 공작의 손끝이 말랑말랑한 딸아이의 뺨을 건드렸다.
딸아이가 알려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필요 없다고 해서 없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사람은 빵과 물만으로는 살 수 없다.
빵과 물만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파에라톤 공작에게, 딸아이는 그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괴물, 악마, 악귀 따위가 아니라 자신 역시 사람이기에 이 아이가 주는 온기가 있어야 살 수 있었다.
삶이 사는 것 같아졌다.
그리고 그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시선을 돌려 세 아들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전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잠든 막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에게서 이런 얼굴을 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던가?
마음 졸이고, 가슴이 타들어 가고, 걱정으로 눈앞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핏줄이 이어졌다 해도 누군가를 이렇게 심장에 새길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적이 있던가?
이제 그들은 정말로 살아있게 되었다.
이 작은 아이게 자신들에게 숨을 불어넣었다.
“으응…….”
그때, 미간을 찌푸린 딸아이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끙끙거리며 앓는 딸아이의 모습에 파에라톤 공작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는 봉긋 솟아오른 이불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괜찮다. 괜찮아.”
한참을 그러고 있자 잔뜩 찌푸려졌던 미간이 슬슬 펴지더니 딸아이의 입술에서 새근새근 고른 숨이 나왔다.
“……책임을 느끼는 것이겠지.”
타렌카 후작이 까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회한 그의 말에 파에라톤 공작은 울컥, 분한 마음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루아티샤는 스스로 깨고 나을 거다. 누구보다 강인한 아이 아닌가.”
하지만 결국 타렌카 후작의 말이 옳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파에라톤 공작은 이를 악물었다. 단단히 힘이 들어간 턱에 힘줄이 불거져 나왔다.
‘이렇게나 가슴 아픈 일이었나.’
대신 아파 주고 싶고, 대신 고민해 주고 싶다.
이 아이는 그저 어느 때건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감긴 루아티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소리 없이 울기만 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다섯 남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 * *
“으, 흐, 아, 안돼, 안돼!”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짹짹 우는 새소리.
캐노피 사이로 비쳐드는 햇 빛.
푹신한 침대.
“후우…….”
꿈이었구나.
나는 눈을 비비다가 “아야!” 하고 신음을 흘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슬쩍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쓰라렸다.
캐노피 커튼을 착, 열고 협탁에서 연고통을 꺼내 눈가에 문질렀다.
“기침하셨어요, 아가씨?”
안나가 활짝 웃으며 침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눈가가 거뭇하고 피부도 까칠했다.
밤새 한잠도 못 잔 게 틀림없었다.
‘내 잠꼬대를 듣고서도 모르는 척하다가 이제야 온 거겠지.’
내가 끙끙 앓고 있을 때 안나가 방 밖에서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가슴을 움켜쥐었을지…….
나는 안나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밝은 얼굴로 물었다.
“응! 오늘 아침은 뭐야?”
“아가씨가 좋아하는 소세지랍니다!”
“디저트로는 뜨거운 애플파이에 아이스크림을 얹어드릴 거예요.”
거실에서 낸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와, 정말?”
“그 전에 깨끗이 씻으셔야죠?”
“우리 아가씨 머리에 새가 집을 지었어요.”
로라와 틸다가 내 등을 욕실 쪽으로 기운차게 떠밀었다.
“응!”
나는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언니들이 내 퉁퉁 부은 눈을 모르는 척해준 것처럼, 나 역시 언니들의 바싹 마른 입술을 모르는 척했다.
* * *
애플파이를 남김없이 싹 다 비우자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입맛이 없어서 억지로 그냥 목구멍에 밀어 넣었지만 안도한 언니들의 표정을 보니 보람이 있었다.
“자자, 아가씨 산책해요.”
“여름 장미가 얼마나 활짝 피었는지 몰라요.”
하녀 언니들의 말에 나는 조금 망설였다.
지금 한가하게 산책이나 할 때가 아닌데.
“크흠, 흠흠.”
헛기침 소리에 옆을 보니 할아버지가 은근슬쩍 팔을 슥 내밀고 있었다.
“같이 산책할까?”
아레스는 아예 대놓고 손을 내밀고.
나는 가족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一.”
눈앞에 떠오른 알림에 나는 말을 멈췄다.
“루루?”
아빠가 의아한 듯 나를 불렀다.
“다, 다음에요!”
“응?”
“산책은 다음에!”
어리둥절한 가족들에게 그 말만 던져놓고 나는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왔다.
‘에르메스 짹!’
내 방으로 달려가며 나는 에르메스 짹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통은 이렇게 속으로 부르면 왔는데.’
아직 기력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아이템창을 열었다.
에르메스 짹의 그림 위에 있던 큼지막한 반창고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조심히 창에서 에르메스 짹을 꺼냈다.
납작한 그림이 내 손에서 진짜 새가 되었다.
“삐뵤뵤뵤一.”
나를 본 오목눈이가 구슬프게 울었다.
“미안해. 많이 아팠지. 괜찮아?”
“삐뵤뵤뵤뵤……. 삐뵤…….”
힘없는 울음소리.
에르메스 짹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내 손에서 자꾸만 픽픽 주저앉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자그마한 몸.
윤기가 잘잘 흐르던 깃털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다 에르메스 짹까지 큰일 나겠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아이템창 안에 있는 〈환수의 온기〉가 들어왔다.
‘어? 저거…….’
계속 바라보고 있자 아이템에 관한 설명이 떴다.
아이는 따뜻한 사랑으로 키워주세요.
‘환수랑 정령은 비슷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저건 고영양 물약이었다.
그리고 정령도 사랑으로 키워줘야지!
거기다 전통적으로 하트는 생명을 뜻하지 않던가!
나는 아이템창에서 〈환수의 온기〉를 꺼냈다.
하트 모양 물약병의 마개를 뜯고 그대로 에르메스 짹의 부리게 물렸다.
“삐! 삐뵤! 켁켁!”
에르메스 짹이 말처럼 투레질을 하며 기겁해서 몸을 물렸다.
“안돼! 약은 흘리지 말고 잘 먹어야지. 그래야 아야 하지 않아.”
나는 물약병을 부리에 들이부었다.
“옳지, 장하다, 우리 엘리. 꿀떡꿀떡 넘겨. 원래 약은 쓴 거야.”
“삐, 삐一 읍, 읍!”
파닥파닥!
에르메스 짹이 격렬하게 날갯짓을 했다.
‘오, 효과가 있나 봐!’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뭍에 끌려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리다니.
나는〈환수의 온기〉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다 털어 넣었다.
“옳지, 잘했다. 아이, 착해.”
에르메스 짹의 정수리를 쓰담 쓰담하는데 손가락이 콱 물렸다.
“아야!”
“왜 환수의 온기 따위를 나한테 주는 거야!”
파르르 날아오른 에르메스 짹이 나에게 성질을 부렸다.
“이거면 좀 회복될까 싶어서…….”
“뭐? 저딴 걸 먹고 회복? 내가 환수 따위와 같다는 거야? 어? 그런 거야?”
“아니…….”
“환수 따위! 이 위대하신 정령님에 비하면 뭣도 안 되는 조무래기들이야!”
어라?
테이블 위에 놓아둔 꽃一 정확히는 환수의 알이 방금 움찔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봤나?
“정령이 최고라고! 그 머리에 똑똑히 집어넣어 둬!”
“어……. 그런데 상태가 좋아진 것 같은데……. 아까는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고 제대로 서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움찔한 에르메스 짹이 갑자기 허공에서 날갯짓을 멈췄다.
기겁해서 추락하는 새를 받아 들자 에르메스 짹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아이고……. 삭신이야. 아이고…….”
“…….”
어이가 없네.
눈을 질끈 감았던 에르메스 짹이 한쪽 눈을 슬그머니 뜨더니 내 눈치를 본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 눈을 질끈 감으며 시름시름 앓았다.
“아이고…….”
“흠, 그럼 환수의 온기 한 병 더 마시면一.”
“쿠, 쿠키!”
에르메스 짹이 눈을 부릅뜬 채 다급히 외쳤다.
“쿠, 쿠키를 먹으면 살 것 같기도……. 아이고, 아이고…….”
“…….”
나는 가만히 에르메스 짹을 내려보다가 설렁줄을 당겼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안나가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쿠키 좀 가져다줘.”
그러자 에르메스 짹이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초코칩 가득…….”
속닥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안나에게 요청했다.
“초코칩 잔뜩 박힌 걸로.”
“네, 아가씨!”
안나는 모처럼 내가 간식을 원한다는 게 기쁜지 활짝 웃으며 방을 나섰다.
쿠키 생각에 폴짝폴짝 뛰는 에르메스 짹을 보고 결국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요 쪼매난 새가 얼마나 고생했으면 형체조차 유지할 수 없었겠는가.
‘정말 다행이야.’
머리를 엄지로 쓰다듬자, 에르메스 짹이 화답하듯 내 손에 부리를 비볐다.
* * *
“레이디 샤본느라고?”
“그렇다, 짹!”
에르메스 짹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나는 얼굴을 굳혔다.
‘예상은 했지만…….’
이제 확실해졌으니 더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그쪽이 법망 밖에서 아이젤 영애를 해쳤으니 이쪽에서도 굳이 정의니, 법이니 따질 것도 없다.
‘조져야지.’
그런다고 해서 아이젤 영애가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하지만 복수는 되지 않겠는가.
그 정도는 해야 아이젤 영애의 무덤에 찾아갈 면이 선다.
그때 에르메스 짹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젤 영애가 전해 달라고 했던 말이 있다, 짹!”
“전해달라는 말?”
“유언이다, 짹!”
“…….”
그 말에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무서워.’
아이젤 영애가 나 때문에 죽어가면서 남겼을 말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서도 알기 두려웠다.
‘하지만 들어야 해.’
나는 마음을 굳히고 에르메스 짹에게 말했다.
“들려줘.”
그러자 에르메스 짹이 양 날개를 펼쳐 들었다.
작은 새의 몸에서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회오리치던 그림자 너머에서부터 아이젤 영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녀님께 내 말을 꼭 전해줘……. 이건 온전히 내 선택이라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공녀님 말을 들을 것을 그랬다는 후회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하니 아이젤 영애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신중히 안전한 선택을 하라는,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는 공녀님의 말을 들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 후회하며 자신을 괴롭힐 거야. 상냥한 아이니까.”
아니야.
나는 하나도 상냥하지 않아.
“내가 선택하고 내가 판단해서 한 행동이고, 이게 그 결과야. 비록 이런 실패로 끝났지만, 나는 내가 선택해서 살았던 내 삶이 자랑스러워…….”
하지만 어떻게 아이젤 영애의 말을 부정할 수 있을까.
삶이 자랑스럽다고 하는 그녀의 말을.
“하하, 그렇죠, 공녀님? 나름대로 꽤 괜찮은 삶이었죠?”
“응……. 정말 그래…….”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공녀님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주저앉아 목놓아 우는 내 등 위로 아이젤 영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꼭 그녀의 손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