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4화(184/353)
☆ 제184화 ☆
* * *
한참을 울고 난 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입안과 목구멍이 따끔따끔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붓고 열이 났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았다.
더 이상 하지 못한 일만 곱씹으며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진 않을 것이다.
아이젤 영애가 후회하지 않은 시간을 내가 후회할 순 없다.
아이젤 영애가 나와 만나서, 나와 함께 해서 다행이라고 하는데, 내가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할 순 없다.
아이젤 영애가 자랑스러워하는 삶은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포르르, 내 손으로 날아온 에르메스 짹이 날 보더니 부리를 딱 부딪쳤다.
“이제야 산 사람다워졌구나, 짹! 난 산 송장을 보는 줄 알았다, 짹!”
“지금, 콜록! 지금이 더 송장 같아 보일 텐데…….”
목소리도 말이 아니었다.
말을 할 때마다 목이 긁히는 것처럼 아팠다.
“확실히 이게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못생겼긴 하지, 짹!”
“…….”
“그러니까 이제 울지 말아라, 짹! 그간 얼마나 신경 쓰였는지 아파 죽겠는데 통 쉬질 못했어.”
“나 걱정해준 거야?”
그 말에 에르메스 짹이 휙 돌더니 꽁지깃을 씰룩였다.
솔직하지 못하긴.
“아이젤 영애가 남긴 말은 더 있다, 짹!”
“무슨 말?”
“아이젤 영애의 부모님께 남긴 말이다, 짹!”
“……내가 들어도 될까?”
“아이젤 영애는 정말로 내가 유언을 전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짹! 그저 마지막 말을 들어줄 존재가 필요했던 거지.”
에르메스 짹이 시선을 내리깔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은 내가 아니라 네가 들어 주길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내게서 네 모습을 봤을 수도 있지.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작은 오목눈이가 지금 이 순간 굉장히 커다란 존재로 느껴졌다.
“그러니 네가 부모님께 마지막 말을 전해줬으면 했겠지.”
아주 거대한 초월적인 존재가 내게 말하는 느낌.
깨알 같은 검은 눈동자가 세상을 오시하는 자의 눈처럼 보였다.
“아이젤 영애가 마지막 말을 맡길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였어.”
그래서일까.
그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처럼 강하게 내 가슴에 박혔다.
“…….”
망설임은 짧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르메스 짹을 바라보았다.
과연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할 필요 없다.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아까 아이젤 영애의 마지막 말을 듣지 않았는가.
에르메스 짹의 말대로, 아이젤 영애는 나에게 마지막 말을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종이를 꺼냈다.
“전해줘. 내가 반드시 그 말을 아이젤 영애의 부모님께 전할 테니.”
에르메스 짹이 다시금 양 날개를 펴며 날아올랐다.
이윽고 그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나는 아이젤 영애의 말을 받아적은 종이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
거기엔 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래도 전해야지, 짹!”
힘이 빠졌다며 열심히 쿠키를 쪼아먹던 에르메스 짹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당연히 전할 거야. 하지만 과연 두 분이 믿을까?”
“…….”
에르메스 짹은 답이 없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유지를 받들라!(1)〉
독자님!
드디어 관뚜껑을 깨부수고 나왔군요!
젠장, 믿고 있었다구!
이대로 독자님이 관짝 안에서 평생을 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 따위 저는 절대 네버! 에버!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로판 독자가 이리 쉽게 무너질 리는 없죠!
‘……이 녀석 완전히 의심했나 본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마저 나머지 내용을 읽었다.
이제 사이다 타임입니다!
아이젤 영애를 해친 뮤리엘 샤본느를 이대로 둘 순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거쳐야 할 관문이 있지요.
아이젤 영애의 유지에 따라 아이젤 백작 부부에게 유언을 전해주세요.
반대에 부딪히더라도 굴하지 말고 영애의 마지막 말을 꼭 이뤄주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진실이 있으니.
– 조건: 아이젤 백작 부부를 설득해 아이젤 영애의 유지를 이뤄주기
– 보상: 5000캐시 뽑기권, 연계 퀘스트〈???〉 진행, 제국 내 영향력 증가
“이렇게 재촉 안 해도 할 생각이었다구. 그간 충분히 꾸물 꾸물거렸으니까.”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나는 다시금 종이를 들여다봤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젤 영애가 마지막으로 내게 맡긴 일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뤄내야 했다.
나는 지포 라이터를 꺼내 종이를 태웠다.
공작저의 등불은 전부 마법등이기 때문에 실링 왁스를 녹이기 위해 지포 라이터가 구비되어 있었다.
타들어 가는 종이를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 다음 연계 퀘스트는 뮤리엘 사본느를 섬멸하라는 거겠지.’
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없이 작고 여린 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반드시 해내야 해.’
퀘스트가 아니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 소환 중인 소설: 〈황녀님이 힘을 숨김〉
– 장착 중인 능력: 〈하,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구?〉, 〈눈새〉, 〈나, 돌아온 거야?〉
눈새를 뽑아버리는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소드 마스터의 능력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확실히 그날 맞붙었을 때 뮤리엘 샤본느는 당황했어.’
특이한 힘을 가진 그녀로서도 소드 마스터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검은 오러가 나와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힘의 차이는 없는 것 같았으니까.’
〈황녀님이 힘을 숨김〉 속 여주는 황금빛 휘광과도 같은 오러의 소유자였다.
딱 여주인공다운 오러라고 할까?
그런데 내가 능력을 사용하니 시꺼먼 오러가 나와서 ‘괜찮은 건가?’ 싶었었다.
‘악마 놈이랑 계약해서 오러도 그런 색인가.’
하지만 아빠랑 오빠들이 사용하는 마기와 같은 빛깔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좋아. 이것만으로는 모르니까 나중에 다른 능력도 소환해놓자.’
우선은 한 걸음.
아이젤 백작 내외에게 유언을 전해주는 것부터.
나는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하며 울음기를 완전히 씻어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초췌했지만,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예기가 어려 있었다.
방문을 활짝 열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이었다.
“아빠?”
문을 열자마자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아빠뿐만이 아니었다.
“오빠들이랑 할아버지까지 여긴 왜…….”
가족들을 쭈루룩 살펴보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 뒤로 안나와 낸시, 로라와 틸다는 물론이고 오르카와 다른 고용인들까지 줄줄이 서 있었다.
“오셨으면 들어오지 않고.”
“그게…….”
아빠가 드물게 말을 골랐다.
“내가 걱정되어서요?”
“그건 아니다.”
“…….”
나는 빤히 아빠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루루 말이 맞아. 걱정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건 너를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야. 가족들에게 괜찮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그저…….”
“알아요.”
나는 아빠의 손을 꼬옥 붙잡고 웃었다.
“잘할 걸 알아도 걱정되고, 이겨낼 걸 알아도 조마조마하고, 웃을 걸 알면서도 가끔 가슴이 쿵 떨어지고.”
“나도 그런걸. 아빠랑 오빠들이랑 할부지를 생각하면.”
“…….”
내 말에 가족들이 아주 기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레스의 얼굴에서 언제나 짓고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넌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무슨 말이 저래?
“그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一. 나는 가끔 이 마음이 뭔지 알 수 없었거든.”
아레스가 미소 지으며 내 뺨을 쥐었다.
“사랑은 보듬어주고 아껴주는 거라고 하는데. 나는 가끔 견딜 수 없이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해.”
아레스의 엄지가 아주 부드럽게 내 뺨을 쓸었다. 소중하고 아깝다는 듯이.
“그래서 이게 사랑이 맞나 싶었는데. 내 동생 입에서 그 마음을 들으니 이건 사랑이 맞아. 그렇지?”
“음, 그렇다고 해서 익시온처럼 벽을 부수면 안 돼.”
아레스가 하하, 웃었다. 묘하게 메마른 웃음이었다.
“노력할게.”
“응?”
“네가 방안에서 혼자 울고 있었을 때는 정말 다 죽여 버리고 싶었거든. 아니, 사실은一.”
아레스가 나를 끌어안았다.
“一나를 제일 죽이고 싶었어.”
속삭이는 뒷말에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一.”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네?”
“네가 그렇게 슬퍼하고 아파하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건…….”
“차라리 지옥이 더 나아.”
“이렇게나 내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지.”
나는 한마디씩 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차근히 둘러보았다.
‘이 사람들이 정말…….’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는 거야.
사람 마음 아프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거 아니에요.”
“…….”
“아빠가 품을 빌려주고, 할아버지가 손을 잡아주고, 제온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아레스가 웃어주고, 익시온이 내 볼을 꼬집고…….”
“루루.”
“그런 것들이 얼마나 나한테 힘이 되어주었는데.”
나는 몸에 꼿꼿이 힘을 준 채 씩씩한 눈으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리 방황해도, 중심을 못 잡고 흔들려도, 내가 있을 자리가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게一.”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하지만 나는 목에 힘을 주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나보다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는 정말…… 좋았어.”
전생의 나는 있을 자리가 없었다.
내 몸 하나 누우면 끝일 정도로 작은 반지하방도, 결국 내 자리는 되지 못했다.
아주 작은 공간이어도 족하니 온전한 내 자리를 손에 넣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 해준 거 아니야. 나한테 큰 힘을 줬어.”
내게 내 자리를 알려주었으니까.
“내가 있을 자리가 아빠랑 할아버지랑 오빠들 곁이라서 정말 좋아.”
나는 푹 아빠에게 안겼다.
아빠의 손이 힘껏 내 몸을 끌어안는다.
할아버지가, 아레스가, 익시온이, 제온이一 몇 겹이나 되는 손길이 나를 끌어안고 지탱했다.
‘행복하다.’
나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안도감과 행복에 더 이상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렇지? 이러길 바라는 거지?’
一응, 맞아. 행복해야 해요. 내가 내 삶이 자랑스러웠던 것처럼, 공녀님도 자랑스러운 삶을 사세요.
아이젤 영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나는 미소 지었다.
문득 눈물에 젖은 눈을 뜨니 하녀 언니들과 오르카, 내 보좌들과 고용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햇살을 머리에 인 채 나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Chapter 30.
“뭐라고?”
뜻밖의 소식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젤 백작 부부가 아가씨를 뵙고 싶어 합니다.”
내 전담 집사인 오르카가 내게 편지를 내밀며 말했다.
“…….”
생각이 많아졌다.
장례식장에서 아이젤 부인이 의외라고 말했을 만큼, 대외적으로 나와 아이젤 영애는 어떤 친분도 없었다.
그런데 초대라니?
“특별한 말은 없었고?”
“장례식 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일단 레터 나이프로 편지를 뜯었다.
내용은 아주 상투적이었다.
안부인사와 장례식 참석에 대한 감사, 그리고 혹시 괜찮으면 방문해줄 수 있겠냐는 초대의 문구.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에 응해야지. 안 그래도 백작 부부를 만나볼 생각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 아빠도 나와 아이젤 영애의 친분을 이미 알고 계셨으니까.’
아이젤 영애와 공작가 소유의 별장에서 만난 데다가 WBD와 SSS까지 있으니 당연히 아실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이젤 백작 내외는 딱히 그런 미친 짓…… 아니, 팔불출짓을 안 하지 않았나?
장례식장에서는 나와 아이젤 영애의 친분을 모르셨던 것 같았는데…….
‘어쩌면 그날 내 태도를 보고 짐작하셨는지도.’
누가 진심으로 애도하는지, 아닌지 보고 내게 따로 감사를 표할 정도였으니까.
죽은 딸과 친분이 깊었던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이다.
나는 날짜는 원하시는 대로 맞추겠다는 내용을 담아 답신을 작성한 후, 오르카에게 건넸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응, 고마워.”
오르카가 나간 후, 나는 잠시 의자에 기댄 채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젤 영애의 유언을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아이젤 영애의 부모님이 덜 충격받을지.
“……결국 부딪쳐 봐야지.”
내 말을 전부 다 믿더라도 아이젤 영애의 유언을 따르는 건 부모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