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5화(185/353)
☆ 제185화 ☆
* * *
“갑작스럽게 만나자는 말에도 이리 응해주어서 참 고맙네, 파에라톤 공녀.”
“아닙니다, 부인. 백작님도 안녕하신지요.”
아이젤 백작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힐끗 분위기를 살폈다.
‘설마 아이젤 백작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두 사람의 얼굴은 수척하니 근심이 가득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적한 교외의 티 하우스는 우리 외의 다른 손님이 없었다.
그다지 풍광이 좋지 않은 것이 원래도 딱히 인기 있는 곳은 아닌 듯했지만, 오늘은 아이젤 백작 부부가 아예 전세를 낸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황후와 연이 있는 집안이니 나와 만나는 걸 남들에게 보이기 꺼려졌겠지.
‘그래도 너무 조용하니 괜히 더 어색하네.’
먼저 말을 건넬까, 하다가 나는 잠자코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먼저 만남을 청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오랜 침묵 끝에 아이젤 백작이 입을 열었다.
“내 딸과는…… 오필리아와는 원래 알던 사이였나?”
“네.”
“그랬군.”
백작 내외가 시선을 교환했다.
“어떻게 알던 사이였지?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좀 나고 딱히 접점이 없었는데.”
응?
질문이 무언가 이상했다.
이건 딸과 생전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에게 추억을 묻는 게 아니라一.
‘날 취조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일단 가장 무난한 답을 골랐다.
“……제가 아이젤 영애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하, 신세?”
아이젤 백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두 눈에 얼핏 노기가 어린다.
백작 부인은 무언가 확인받은 사람처럼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단순히 장례식장에서 내가 진심으로 애도한 걸 보고 딸에 대해 추억하고자 부른 게 아니야.’
왜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는 호의를 품고 저를 부르신 게 아니군요.”
“…….”
침묵이 긍정을 대변했다.
“딱히 상관은 없어요.”
내 말에 아이젤 부인은 다소 당황한 듯했다.
반면 아이젤 백작은 오히려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하는 표정이었고.
“하지만 적어도 따님이 다른 이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셨으면 좋겠어요.”
“내 딸에 대한 걸 공녀에게 들어야 한단 말인가? 공녀가 나보다 내 딸을 잘 안다고 뜻이야?!”
아이젤 백작이 버럭 역정을 냈다.
“아이젤 영애가 제게 안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그래요.”
“뭐?”
“사람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건 돈도 명예도 아닌, 마음을 온전히 터놓을 수 있는 친구라고 하죠.”
“허, 공녀에게 오필리아가 그랬다는 건가?”
아이젤 백작이 나를 비웃었다. 하지만 분노하는 그의 두 눈은 짙은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새벽 축제의 마지막 날, 제게 우승보다도 더 값졌던 것이 아이젤 영애와의 만남이었으니까요.”
움찔.
내 말에 잠자코 있던 아이젤 부인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필리아와 그때부터 알았다고?”
“네.”
아이젤 부인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복잡한 심사가 그녀의 얼굴 위로 스쳤다.
나는 허리를 쭉 펴고 아이젤 백작 내외를 응시했다.
“아이젤 영애는 용기 있고 주관이 확고한 사람이에요. 관찰력도 뛰어나고 행동력도 좋죠.”
“그 애가 그랬나…….”
아이젤 부인의 말은 내게 하는 질문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어요. 덕분에 저는 아이젤 영애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나는 몰랐어.”
아이젤 부인이 작게 중얼거리더니 날 향해 말했다.
“공녀는 내 딸을 잘 알아본 모양이야. 어쩌면…… 엄마인 나보다.”
뒷말은 자책이 가득했다.
“원래 자식은 부모가 모르는 새 훌쩍 성장한다고 하니까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아이젤 부인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망설이듯 떨리더니 단어를 만들어냈다.
“저어, 공녀 사실은一.”
“그딴 말로 날 속이려 들어도 소용없네!”
쾅!
아이젤 백작이 부인의 말을 자르며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듣기 좋은 말로 우리의 환심을 사서 죄를 덮으려 하나 본데, 내 딸은 내가 잘 알아! 그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었어! 오히려 한없이 부족한 아이였지. 밖에 내놓으면 걱정만 되는 ……. 그러다 결국엔……. 그 불효막심한 것!”
아이젤 백작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떨리는 호흡을 채 갈무리하지 못하면서도 나를 노려보는 눈만큼은 흉흉했다.
‘……아프다.’
하지만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은 백작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젤 영애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자신은 아무런 능력도 없어서 다른 시녀들보다 떨어지는 편이라고. 그래서 이 경력을 활용해서 괜찮은 혼처를 잡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아이젤 백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에 반해 아이젤 부인은 혼란스러웠던 눈빛을 서서히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저 심약해 보이던 부인의 눈동자에 정광이 어렸다.
“이제 말해보게나.”
비록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아까 인사를 나눴을 때부터 공녀에겐 할 말이 있어 보였네. 이제는 나도 들을 준비가 되었어.”
나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말해도 될까?’
나는 침묵한 채 아이젤 부인의 눈을 마주했다.
젖어 들었지만, 단단한 눈.
‘닮았어.’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저는 아이젤 영애의 유언을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 말에 아이젤 백작 내외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경직되더니 몸을 떨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게 그렇게나 화를 냈던 게 거짓말처럼 아이젤 백작은 내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믿지 않으면서, 나를 경계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一.
딸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사랑한다고,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그리고.”
“…….”
“반드시 자신의…… 사체의 배를 갈라 달라고 했습니다.”
“……!”
순간, 완벽한 정적이 찾아왔다.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내 호흡이 멈췄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저런 얼굴이라면.
그러나 외면할 순 없었다.
끼이이익一!
쨍그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젤 백작이 그대로 내 멱살을 잡았다.
그 서슬에 테이블 위에 있던 식기가 깨지고 테이블을 짚은 그의 한쪽 손이 붉게 물들었지만 아이젤 백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손바닥을 찌르는 자기 파편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는 듯했다.
“뭐, 뭐라고……. 내, 내 딸의, 그 애의…….”
내 목을 꽉 틀어쥔 손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흔들려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이를 악문 아이젤 백작이 핏발 선 눈으로 심장을 토하듯 외쳤다.
“감히, 감히 내 딸을 죽인 것으로 모자라 그 불쌍한 애의 시신마저 훼손하겠다고?!”
아이젤 백작이 제 손바닥을 찌르던 자기 파편을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치켜드는 순간,
“잠깐만요, 여보!”
아이젤 부인이 남편의 팔에 매달렸다.
“이거 놓으시오!”
“파에라톤 공녀, 어린애 장난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 아무리 연치가 어리다고 해서 사체를 훼손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 않을 테니.”
제국에서 시신을 온존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경우는 단 하나였다.
수십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살부살모를 저지른 패륜한 존속 살인자.
혹은 제국을 위협한 역적.
이와 같이 역사서에 남을 만큼 극악무도한 대역죄인일 때뿐이었다.
배를 가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인을 모독하고 욕보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젤 영애에게.”
“아직도 그 입을 나불거려?!”
아이젤 백작의 외침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부인이 남편의 앞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일단은, 일단은 돌아가게. 오늘은.”
“어딜 돌아가! 역시 저것이 내 딸을 죽인 게야!”
“어서 돌아가. 빨리. 안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아이젤 부인의 시선이 이상했다.
나보다는 내 뒤를 향해 있는 것이一.
‘설마?’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런.”
티 하우스의 문이 완전히 열리며 나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가라니요, 부인. 저는 이제 막 도착했는데.”
[돌발 퀘스트 발생!]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에 시선을 줄 여유 따윈 없었다.
“뮤리엘 사본느!”
내 외침에 뮤리엘이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나, 공녀가 이렇게 열렬하게 날 맞아줄 줄이야.”
“……네가 꾸민 짓이었구나.”
“뭘 꾸민 사람은 내가 아니라 공녀 아닌가? 아이젤 영애를 살해하고도 뻔뻔하게 그 부모를 만나러 오다니. 그렇게나 죄를 덮고 싶었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
‘내가 영애를 살해했다며 아이젤 백작 부부를 꼬드긴 거야.’
으드득, 이가 갈렸다.
뮤리엘이 아이젤 백작 부부를 향해 손을 팔랑 흔들었다.
“고생했어요.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따님의 원수는 제가 갚아줄 테니.”
“그럼 레이디 샤본느만 믿겠소. 갑시다!”
“여보!”
아이젤 부인이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남편을 만류했다.
“어서 갑시다! 우리 힘으로는 파에라톤 공작가에 대적할 수 없소! 제대로 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이젤 부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복잡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 어서 가세요, 부인.”
아이젤 부인이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녀一.”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가세요. 여긴 위험하니까.”
아이젤 부인은 무언가를 더 말할 듯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래도 ‘다음’이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면 정말로 현실이 될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부인은 남편의 손에 의해 끌려나가다시피 나갔다.
텅 빈 티 하우스에는 뮤리엘과 나, 둘만 남았다.
“…….”
〈족쳐주세요!〉
독자님!
아무래도 뮤리엘이 대화나 나누자고 이런 음모를 꾸민 건 아닌 것 같죠?
지금 이 건물의 사방에서는 기분 나쁜 사기(邪氣)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사전작업을 해놓은 듯하군요.
설마하니 뮤리엘 샤본느가 아이젤 백작 부부에게 접근했을 줄이야!
극악무도하고 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찌 자신이 죽인 사람의 부모에게 찾아가 대신 복수해주겠다며 구슬린 것인지!
처단해야 합니다!
섬멸해야 합니다!
족쳐야 합니다!
더 이상 뮤리엘 샤본느로 인한 고구마가 없도록 아예 인생에서 하차시켜주세요!
– 조건: 뮤리엘 샤본느 인생 하차
– 보상: 10만캐시 뽑기권
“…….”
이렇게 난데없이 전투 상황이라니.
하지만 거부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퀘스트를 읽는 내내 아이젤 백작과 부인의 얼굴이 떠올렸다.
내게 화를 내고 분노하는 와중에도 가장 고통받는 건 그들이었다.
안 그래도 자식을 먼저 잃은 슬픔으로 절망하는 부부를, 뮤리엘은 두 번 죽인 것이다.
[퀘스트를 수락하였습니다.]* * *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루아티샤를 보고 뮤리엘은 피식 웃었다.
‘제아무리 파에라톤 공녀라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은 예상치 못했나 보지?’
그간 루아티샤 때문에 얼마나 곤혹스러웠던가.
저 거머리 같은 것이 이번에 제대로 허를 찔린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또각또각.
뮤리엘은 자신만만하게 걸어서 루아티샤에게 다가갔다.
루아티샤를 보는 그녀의 시선은 마치 손안에 잡힌 쥐를 보는 것 같았다.
“널 도와줄 인간 따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루아티샤의 암중 호위는 이미 사기에 취해 환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평범한 인간은 어쩔 수 없다.
‘여태까지는 운이 좋았지만 오늘로 파에라톤 공녀는 끝이야.’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끝없는 절망 속에 빠지게 될 테니.
‘저것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이 무엇이든, 모두 그분께 바쳐져 그분의 양분이 될 것이야.’
“도망가지도 않다니. 여전히 겁도 없구나. 아니, 이번엔 도망치지 못한 건가?”
확실히 아이젤 백작 내외를 끌어들이길 잘했다. 저 계산 빠른 계집이 이렇게 속아 넘어가다니.
하기야 눈치챘어도 이곳에 들어온 이상 도망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도망을 가?”
루아티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안 그래도 그동안 네가 어디 숨었나 찾고 있었는데.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이게 숨었던 것을 보면 너야말로 겁먹고 도망갔던 거 아니야?”
루아티샤가 손바닥에 침을 퉷, 하고 뱉었다.
순식간에 나타난 대검이 아이의 손바닥에 착 감겼다.
제 몸뚱이만한 대검을 비딱하게 꼬나든 채 루아티샤가 불량하게 말했다.
“잘 만났다, 너.”
어라?
이렇게 당당하다고?
뮤리엘의 자신만만하던 얼굴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