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7화(187/353)
☆ 제187화 ☆
시드리한의 손등 위로 힘줄이 돋았다.
그와 동시에 뮤리엘의 살갗이 검푸르게 변했다.
“크헉, 허, 으…….”
끄르륵, 신음과 함께 검은 피가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드리한의 눈동자는 짙고 어두운 살기로 뒤덮여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안광.
다 죽어가면서도 낄낄거리던 뮤리엘이 순간, 본능적으로 온몸을 굳혔다.
그 모습을 보고 시드리한이 미소 지었다.
서걱.
아주 깔끔한 소리와 함께 뮤리엘의 오른 다리가 잘려 나갔다.
“끄아아아아!”
잘린 단면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지혈됐다.
시드리한은 절단과 지독한 한기에 의한 통증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뮤리엘의 곁을 지나쳤다.
당장이라도 사지를 찢어발기고 싶은 것을 이를 악물고 견뎠다.
아직은 안 죽인다.
‘아직은.’
혹시라도 루아티샤를 구할 때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 하나의 가능성이 뮤리엘의 숨을 붙들게 하고 있었다.
시드리한은 커다란 핏빛 구체를 향해 다시 한번 다가섰다.
이번엔 천천히,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하지만.
쿠웅!
구체에 닿은 순간 아까와 똑같이 몸이 날아갔다.
딱딱한 벽에 그대로 처박혔지만, 시드리한은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구체로 다가갔다.
쿠웅!
다시.
쿠웅!
또 다시.
등이 다 터져나가도 시드리한은 단 한 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다른 방법으로 구체에 접근할 뿐.
* * *
마치 장막이 걷히는 것처럼 붉게 일렁이던 사위가 서서히 제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여긴…….’
하지만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정경은 내가 있던 티 하우스가 아니었다.
아니, 아예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었다.
붉은 하늘과 검은 나무, 세 개의 달.
‘완전히 다른 세계야…….’
“콜록, 콜록!”
기침이 터져 나왔다.
호흡이 답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침을 해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기척처럼, 아니, 그보다 몇 배는 더 소름 끼치는 소리.
꾸륵, 꾸르륵.
끼리릭.
돌아보고 싶지 않은 감정을 내리누르며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
비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반쯤 썩어가는 살점을 뚝뚝 흘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물.
거미 같은 절지류 다리에 족히 열 개는 넘는 눈을 가진 괴물.
각기 따로 움직이던 열 개의 눈이 나에게로 우뚝 고정되었다.
그 순간, 털이 난 징그러운 거미 다리가 높게 치켜 올라갔다.
날카롭게 날이 발톱은 마치 강철로 이뤄진 것처럼 묵직한 빛을 띠었다.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거미의 다리가 그대로 내게 내리꽂혔다.
* * *
유려하게 그려지던 싸인이 중간에 멈췄다.
파에라톤 공작은 만년필을 들어 올렸다.
‘잉크가 다 됐군.’
그는 집무실 서랍에서 직접 잉크병을 꺼내 만년필에 채워 넣었다.
본디 언제든 끊임없이 나오도록 가주의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 넣는 것은 집사의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벌써 4년째 파에라톤 공작은 만년필에 잉크를 직접 채우고 있었다.
소중한 막내딸이 일곱 살이었을 때 그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아깝고 귀한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 손에 맡기겠는가.
“약속이에요. 잉크가 안 나올 때면 무조건 휴식하기!”
“저어, 공녀님. 각하의 체력이라면 딱히 휴식이 필요하진一.”
“아닌데. 우리 아빠는 내가 더 잘 아는데. 우리 아빠는 햇빛 안 받으면 시름시름 앓는데.”
“각하께서 무슨 꽃입니까.”
딸아이가 그의 목을 꽉 끌어안으며 에르켈 자작에게 메롱, 하고 혀를 쏙 내밀던 모습까지.
마치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났다.
무심하던 파에라톤 공작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 약속인데.”
“뭔데 그러지?”
“만년필을 쓸 때마다 내 생각하기.”
수줍은 듯 배시시 웃던 그 얼굴을 어떻게 잊을까.
딸아이는 알까.
언제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 아이 생각뿐이라는 것을.
굳이 만년필 쓸 때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교외로 아이젤 백작 부인을 만나러 갔다고 했나. 돌아오면 맛있는 걸 먹여야겠군.’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 있던 딸아이가 요즘 다시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여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던 파에라톤 공작은 로비에서 소란이 인 것을 발견했다.
그 소란의 중심에서 세 아들들이 있었다.
“뭐 하는 거지?”
파에라톤 공작의 말에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공작의 시선이 아들들에게서 그 주변으로 옮겨갔다.
널찍한 로비에 집채만한 인형이 세 개나 있었다.
‘양, 토끼, 강아지?’
“아가씨께 드릴 선물이 겹쳤나 봅니다.”
옆에서 에르켈 자작이 소곤거렸다.
“내가 먼저 주문했다. 네 녀석들이 포기해라.”
“하, 먼저라고? 말은 바로 해야지. 뇌에 구멍이라도 뚫리셨나?”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아들들을 보며 파에라톤 공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뭘 저런 걸 가지고 싸우지? 어지간히 할 일이 없나 보군.’
그때였다.
살기를 내뿜던 아레스가 사르르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잠을 잘 땐 양이 제일 좋아. 결국 편안한 숙면을 위해서 내 동생은 양 인형에 푹 파묻혀서 잘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던 파에라톤 공작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저렇게 큰 인형의 용도가 푹 파묻혀서 잠을 자기 위해서라고?’
반면, 아르르 캉캉대는 세 남자를 보며 에르켈 자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도련님들은 어째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一.”
“고양이도.”
“예?”
“고양이도 주문해라.”
“…….”
잘못 들은 거 같은데?
에르켈 자작이 흔들리는 눈으로 파에라톤 공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군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저것들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큰 걸로.”
“예에…….”
에르켈 자작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파에라톤 공작의 말은 들은 건지, 삼 형제가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치사합니다!”
“새치기라니!”
“그렇게 큰 건 별로인데!”
파에라톤 공작이 아들들을 내려다보며 비뚜름한 미소를 걸쳤다.
“그거야 내 딸이 보고 결정할 일一.”
여유로웠던 파에라톤 공작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각하?”
파에라톤 공작의 시선이 먼 허공을 향했다.
탓!
갑자기 도약해 난간 위에서 뛰어내리는 공작의 기행에 에르켈 자작이 기겁했다.
파에라톤 공작은 착지한 그대로 앞으로 솟구쳤다.
새까만 마기의 잔상이 마치 날개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벌렸다.
항상 여유로웠던 그가 이렇게 다급히 움직이는 건 처음 봤다.
“아버지?”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을 듯했던 파에라톤 공작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1분 1초가 화급해 도무지 멈추고 싶지 않았지만.
제 아들들에게 그 아이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아니까.
“루아티샤에게 걸어놓았던 방어진이 발동했다.”
“……!”
삼 형제의 얼굴이 마치 밀랍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뒤로 세 아들이 따라붙었다.
* * *
거의 반파되다시피 한 건물을 보고 파에라톤 남자들은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기대하던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거의 죽어가는 여자 한 명과 몇 번이나 튕겨 나가면서도 핏빛 원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소년만 있을 뿐.
“시드리한 황자?”
익시온의 중얼거림에 시드리한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빛을 잃어버린 듯 다 꺼져가는 보랏빛 눈동자.
설명은 필요 없었다.
파에라톤 공작이 거대한 구체로 다가갔다.
“이 너머에서 방어진의 마기가 느껴진다.”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듯 희미했지만, 확실했다.
공작이 구체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터엉!
마찬가지로 그의 몸이 허공으로 밀려났다.
마기를 이용해 허공에서 내려서며 파에라톤 공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제온과 아레스, 익시온이 달려들고 마기로 후려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루아티샤!”
“막내야!”
세 남자가 피를 토하듯 애끊는 심정으로 막냇동생을 불렀다.
“소용, 하…… 없어.”
시체처럼 누워있던 여자에게서 들린 목소리에 파에라톤 남자들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제물을 삼킨 게이트는, 절대 다시, 열리지 않아. 이제 닫힐 일만 남았…….”
콱!
익시온의 신형이 사라지나 싶더니 뮤리엘의 위에서 다시 나타났다.
목줄기를 틀어쥔 채 무표정하게 뮤리엘을 노려보는 익시온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길이 넘실거렸다.
뮤리엘은 숨이 막혀 컥컥 대면서도 킥킥 웃었다.
“네놈들의 그 소중한 막내…… 읏, 는 마, 마물에게 뜯어먹히다 주, 죽을 거야. 천천히, 하나씩. 처음에는 손가락, 머리카락, 그 다음은 그래, 그 예쁜 파란색 눈알一 꼭!”
새까만 마기가 뮤리엘의 등 뒤로 튀어나왔다.
익시온은 목을 틀어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펼쳤다.
털썩.
뮤리엘이 그대로 추락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이것의 사지를 찢고 내장을 흩뿌리고 싶었다.
그래도 울분이 풀리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순간에도 그의 동생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아버지의 방어진이 버텨줄 때까지 반드시 찾아내야 해.’
익시온의 마기가 다시금 핏빛 구체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열리지 않는다고?
그럼 힘으로 강제로 열면 된다.
한 번으로 안 된다면 열 번.
열 번으로 안 된다면 백 번.
백 번으로 안 된다면 천 번, 만 번, 끝내 열릴 때까지.
저 안에 막내가 있는 이상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 * *
‘어리석은 인간들…….’
뮤리엘은 사력을 다해 게이트를 공격하는 다섯 남자를 비웃었다.
저 절박하고 위태로운 얼굴을 보라지.
예상은 했지만 그 파에라톤 공작이, 공자들이 정말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가슴 속에서부터 만족감이 차올랐다.
루아티샤가 저 안에서 죽더라도 파에라톤 공작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끝의 끝까지.
마기가 다 하면 제 생명까지 소진하며 공격하다가 이 앞에서 죽을 것이다.
결코 루아티샤에게는 닿지 못한 채.
개죽음도 이런 개죽음이 따로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분 앞을 막을 건 아무것도 없어.’
파에라톤 공작가와 시드리한 황자까지.
그분의 영광에 방해가 될 만한 버러지들은 전부 이 자리에서 죽는다.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너희를 지켜보는 게 내 마지막 유흥거리겠구나.’
뮤리엘이 킥킥 웃었다.
‘만에 하나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해서 죽어가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몸을 계속 움직이겠지. 얼마나 재미있는가.’
감히 자신과 그분께 대항한 루아티샤에게 좋은 복一.
‘응?’
다섯 남자를 눈에 담고 있던 뮤리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었다.
‘저건……? 말도 안 돼!’
* * *
쿠우우웅!
파에라톤 공작의 마기가 게이트 안으로 흡수되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의미 없어 보이는, 통하지 않는 공격이었지만 파에라톤 공작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우우우웅!
파에라톤 공작은 저편과 연결된 힘을 느꼈다.
딸아이에게 걸어놓았던 방어진의 마기가 주인의 마기를 느끼고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기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놀라거나 그 원리를 파헤칠 정신은 없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그 이어진 흐름을 따라 마기를 전개해 나갔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막힘 없었다.
오로지 딸아이에게 가야 한다는 마음뿐.
이윽고 핏빛 구체 너머로 그립고 그리운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옷이 찢긴 데다가 머리는 산발에 생채기로 엉망이 된 모습.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깐, 무슨 일을 겪었는지 걱정으로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루아티샤!”
제온이 외쳤다.
파에라톤 형제들과 시드리한은 공격을 멈추고 그 모습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공명한 마기가 보여주는 모습일 뿐, 물리적으로 연결된 건 아니었다.
– 제온?
루아티샤가 허공을 두리번거렸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끔찍하게 생긴 마물이 루아티샤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앙
캉!
방어진과 발톱이 맞부딪치며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루아티샤!”
“루아티샤!”
가족들의 목소리에 루아티샤가 멍하니 되물었다.
– 아빠랑 오빠들?
“그래. 아빠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아빠가 갈 테니.”
“거기에 가만히 있어. 아니, 가만히 안 있어도 돼. 어디로 가도 우리가 어떻게든 찾아갈게.”
“우리가 꼭 널 데리러 갈 테니까. 무서워하지 마. 아니, 무서워해도 돼.”
一뭐야, 그게.
바짝 얼어붙어 있던 루아티샤의 얼굴이 그제야 살짝 풀렸다.
그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들이 더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쩌적, 쩍!
여태까지 버티고 있던 방어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마물의 공격을 받아냈지만 기어코 한계가 온 것이다.
카앙
쩌저적!
금이 간 방어진을 바라본 루아티샤의 얼굴에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떠올랐다.
커다란 두 눈이 길을 잃은 아이처럼 흔들렸다.
다시 한번 날카로운 발톱이 방어진을 후려쳤다.
카아아앙
고막이 찢어질 듯한 파열음과 함께 방어진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방어진의 조각들.
괴물에게 달린 열 개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서서히 거미 다리가 높게 치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루아티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 사랑해요.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진심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