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8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89화(189/353)
☆ 제189화 ☆
[폐쇄형 접촉 회로가 강제로 개방됩니다.] [경고!] [개방된 접촉 회로로 사기(邪氣)가 접근합니다!]사기?
‘사기가 왜…….’
설마 아직 죽지 않은 뮤리엘이 영수와 접촉한 것을 알고 손을 쓰는 건가!
저편에서부터 새빨간 기운이 환상처럼 넘실거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그 짙은 핏빛 기운은 곧장 내게로 뻗어져 왔다.
‘아
이미 발밑이 무너져 내려 더 절망할 수조차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는一.’
의지가,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만 같다.
금이 가고 깨어진 마음 사이로 한기가 스몄다.
아직 사기가 닿지도 않았는데, 그 한기가 온몸을 굳히고 얼렸다.
가까스로 가족이 생기고, 이제 좀 내 자리를 알 것 같고, 처음으로 연애 감정이라는 것도 가져보고.
겨우 사는 게 사는 것 같아졌는데.
이런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혼자서, 외롭게 쓸쓸히一.
‘죽는 거야?’
시뻘건 사기가 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나는 눈을 감지도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 따위 없었다.
그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움직이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살아남고 싶었다.
몇 번이나 희망이 꺾여도,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도一.
‘그래도 돌아가고 싶어.’
내 자리로.
하지만 늦었다.
핏빛 사기가 나를 훅 집어삼켰다.
‘……끝인가?’
스르륵, 눈이 감겼다.
그 순간.
“모시러 왔어, 주인님.”
이곳에서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게이트에 삼켜지기 전에 들었던 마지막 목소리.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어.’
또다시 사라지는 희망에 절망한다고 해도, 그래도.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내 눈앞을 스쳤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도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
서늘하고 단정한 눈매.
붉은빛과 푸른 빛이 오묘하게 섞인, 우주 같은 보랏빛 눈동자.
창백한 얼굴의 시드리한이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를 단단한 팔이 꽉 끌어안았다.
강하게,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 * *
시간을 거슬러 올라서, 막 태어난 환수가 게이트를 앞발로 후려치며 낑낑거릴 때.
점점 줄어들어 그대로 사라질 것 같았던 게이트는 환수의 발톱에 쥐어 뜯겨서 작아지지 못하고 있었다.
시드리한은 뜯겼다가 다시 동그랗게 모이는 붉은 기운을 보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 떠올렸다.
금제에 걸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던, 그래서 그의 의지로는 결코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
어린 시절, 어미의 손에 의해 산 제물로 바쳐져 금제에 걸렸던 때의 기억이었다.
그때 자신을 옭아매던 그 붉은 기운이 정확하게 지금 게이트를 구성하는 기운과 일치했다.
금제를 주도하던,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채 입매를 반쯤 가리고 있던 여자.
시드리한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뮤리엘을 향했다.
“오랜만, 이구나.”
이곳에 왔을 때 뮤리엘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전의 황궁 연회에서 레이디 샤본느와 마주치긴 했지만, 그런 인사를 나눌 사이던가?
연회에서조차 말을 섞어본 적이 없거늘.
‘애초에 연회를 말하는 게 아니었어.’
금제를 걸었던 의식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이라는 뜻이었다.
‘……저 게이트가 외부 침입을 튕겨내며 거부한다면.’
혹시 같은 힘은 받아들이지 않을까?
지금도 게이트는 뜯겨나가고 새어나가는 사기를 다시 흡수하고 있었다.
시드리한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선이 없는, 깨끗한 손.
루아티샤 덕분에 금제에서 해방되어 더 이상 고통받는 일은 없었다.
‘만약 내가 다시 금제에 걸린다면…….’
저 게이트와 똑같은 사기가 자신의 사지를 옭아매고 속박하게 된다.
‘같은 힘이니 나마저 흡수하려 할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도 있다.
정확한 논리도 없고, 완벽한 근거도 없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하면 괜히 금제에 다시 걸리는 것으로 끝난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그 고통의 순간을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아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더라도 다시 걸린 금제는 평생 그를 옭아매고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
시드리한은 빈 주먹을 꽉 쥐었다.
실낱같더라도 루아티샤를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다시 그 지옥이 찾아와도 좋아.’
애초에 그 지옥으로부터 자신을 꺼내 구원했던 건 루아티샤였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그 아이는 피를 토해가면서까지 자신을 살려냈다.
‘그러니 이제 내 차례야.’
시드리한은 자신의 속에 쌓여 있던 에테르를 의식적으로 흩어냈다.
인간이 삶의 근원과도 같은 기운인 에테르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루아티샤로부터 에테르를 주입받았던 시드리한은 에테르 회로가 전부 다 열려 있었다.
금제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던 에테르가 서서히 몸을 물리며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억눌러져 있던 금제의 사기가 시드리한의 기혈을 뒤틀기 시작했다.
루아티샤가 외부에서 금제를 해주(解明)한 것이 아니라, 시드리한의 에테르를 늘려 스스로 금제를 막아내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컨디션이 좋고 면역력이 강할 때에는 입병이 나지 않지만, 면역력이 약해지면 바로 입병이 나는 것처럼.
이윽고 시드리한의 목덜미와 뺨 위로 꿈틀거리는 붉은 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에 파에라톤 남자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
“너…….”
온몸에 스멀거리는 붉은 선을 두른 시드리한이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저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말도…… 안돼.”
꺼져가는 숨을 겨우 붙들고 있었던 뮤리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녀는 직접 금제를 걸었던 만큼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건 그냥 ‘괴롭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어떤 미치광이가 스스로 금제에 걸리려 한단 말인가.
시드리한은 천천히 게이트를 향해 나아갔다.
예전에 금제가 발동되었을 때는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신음하며 악몽을 헤매었다.
그때와 달라진 건 없었다.
금제의 위력은 그때와 똑같이, 아니, 오랜만이기에 더 고통스럽게 그의 정신을 살라 먹었다.
이제 시드리한이 보는 악몽에는 루아티샤가 죽어가는 모습마저 더해졌다.
하지만 그 일이 악몽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지금 견뎌내야 했다.
‘루아티샤.’
한 발.
‘루아티샤.’
또 한 발.
‘내 주인님.’
끊어질 것 같은 의식을 억지로 붙드는 이름.
시드리한은 오로지 정신력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걸음을 옮겼다.
꽉 깨문 입술이 터져 핏방울이 맺혔다.
이윽고, 떨리는 손이 게이트에 닿았다.
투웅.
게이트는 시드리한을 거부하듯 약하게 밀어냈지만, 이내 다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인간인 시드리한을 튕겨내려고 하지만, 동시에 그의 안에 있는 사기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부족해.’
다행히도 자신의 생각은 맞았다.
하지만 튕겨 나가지 않고 접촉하는 게 한계였다.
외부 세력인 시드리한을 밀어내는 힘과 사기를 받아들이려는 힘이 동수를 이루고 있어서 게이트를 통과하긴 역부족이었다.
시드리한은 에테르를 더 흩어내고 전신의 기력을 뺐다.
“큭…….”
그를 옭아매는 붉은 선의 개수가 늘어났다.
끔찍한 고통에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고작해야 손가락이 살짝 들어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시드리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그가 아예 곳곳으로 흩어진 에테르를 전부 밖으로 내보내려는 순간이었다.
“……!”
어디선가 뻗어져 나온 힘이 게이트를 타고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차원을 넘나드는 힘.
영수 악트셰라켄이 루아티샤에게 접촉하며 생긴 접촉 회로였다.
보통 사람은 느끼지도 못하겠지만, 시드리한의 눈에는 그 접촉 회로가 완벽하게 보였다.
“뭐지?”
마기가 민감한 제온이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이 먼 곳에서부터 게이트를 향해 이어졌다.
“……영수계열의 힘이다.”
파에라톤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환수는 영수의 일종.
울고 불며 낑낑대고 있는 저 새끼 환수가 무슨 일을 해낸 건가?
‘만약 힘이 이어진다면 그 경로를 통해서一.’
파에라톤 공작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시드리한의 몸이 게이트를 완전히 통과한 것이다.
“저거!”
“들어갔어?”
익시온과 아레스가 시드리한의 뒤를 따라 곧장 게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터어어엉!
그러나 게이트는 전처럼 그들을 튕겨냈다.
“젠장!”
튕겨져 나간 익시온이 벌떡 일어났다.
“저놈도 들어갔는데 왜 못 들어가냐고!”
금제의 사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짙은 패색감이 그의 얼굴을 물들였다.
그러나 동시에.
‘……믿는다.’
처음으로 완벽한 타인에게 바람을 담았다.
* * *
커다랗게 벌어진 루아티샤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시드.
시드리한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어떻게, 네가 어떻게 여길…….”
시드리한이 루아티샤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엉망진창으로 다친 모습에 가슴이 쓰라렸다.
“미안.”
루아티샤가 의아한 듯 사과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늦게 와서.”
“…….”
“다치기 전에 왔어야 했는데.”
루아티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울음이 가득 차올랐다.
시드리한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생기를 잃은 듯 꺼져가던 루아티샤의 눈동자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살아난 것처럼.
그래, 루아티샤는 살아있다.
‘아주 늦진 않은 거야.’
안도감이 전신에 차올랐다. 팔다리에서 힘이 쑥 빠졌다.
그리고 그의 안도와 기쁨, 반가움을 느낀 금제가 다시 발동했다.
“시드?!”
새빨간 선이 꿈틀거리며 시드리한의 몸 위로 번졌다.
“이건…… 금제? 금제가 왜 다시…….”
분명 그때 해주했는데.
‘어째서?’
시드리한을 바라봤으나 그는 루아티샤의 품에 기댄 채 신음할 뿐이었다.
의식이 꺼져가는 듯했다.
“안돼…….”
루아티샤가 절박한 얼굴로 시드리한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 뭐 이런 무식한 인간이……. 내가 장악하고 있는 접촉 경로를 이용해?!
진노한 영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이 건방진!
그러나 그 성난 목소리에는 어딘지 걱정이 담겨 있었다.
– 그러다가 내 힘에 영혼이 찢겼을 수도 있다!
“뭐라고?”
깜짝 놀란 루아티샤와 달리 시드리한은 가물거리는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상관없어…….”
루아티샤에게 와야 했다.
그러다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도, 죽어서 혼백이 흩어지더라도 상관없다.
게이트 밖에서 아무것도 못 한 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 이런 미친놈!
영수가 학을 뗐다.
아마 시드리한은 영수가 학을 떼게 만든 최초의 인간일 것이다.
– 한데 그것만으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올 순 없었을 텐데 신기하군.
– 아하, 그 붉은 낙인.
그 말에 시드리한의 상태만 살피던 루아티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걸 알아요?”
– 알다마다.
– 키야스에델의 낙인이 찍힌 자구나.
“키야스에델?”
영수는 말이 없었다.
루아티샤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시드리한을 구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의식이라도 잃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니, 어떻게 될지 잘 안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힘을 나눠주세요.”
– 신기하구나.
– 그 녀석까지 끌고 가는 건 네 한 몸 건사하는 것보다 더 힘들 텐데.
– 아까는 절망하더니 더 힘들어진 지금은 오히려 의지를 다지는구나.
“…….”
– 희망?
– 아니, 희망이 아니야.
가늠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 너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 냉정하군.
– 자신보다 타인을 지킬 때 더 강해진다는 건가. 재밌구나.
루아티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림 없이 시드리한을 살필 뿐.
– 좋아. 힘을 빌려주지. 하지만 대가가 필요해.
“상관없어요. 그게 뭐든.”
단호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