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9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90화(190/353)
☆ 제190화 ☆
영수 악트셰라켄은 잠시 루아티샤의 얼굴을 살피듯 침묵했다.
– 좋아. 그렇다면一.
“안 돼.”
시드리한의 말이 영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절대 안 돼.”
그가 루아티샤의 팔을 꽉 붙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꺼져가고 있었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나 싶을 정도로 강하게.
“시드…….”
“대가라니. 뭘 요구할지 알고.”
보랏빛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시드리한은 영수에게서 보호라도 하듯이 루아티샤를 끌어안은 채 허공을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눈에 훤히 보이는 접촉 회로를.
– 하…….
– 너무 오래 살았나. 별꼴을 다 보는군.
영수가 비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루아티샤는 영수가 뭐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시드리한의 소매를 잡았다.
안 그래도 힘든 상태인 그가 이렇게 버티는 걸 보니 안쓰러웠다.
“시드, 우리가 여기서 나가려면 그래도一.”
“내가 나가게 해줄게.”
“…….”
“그러니까 대가를 요구하는 힘 따위 받지 마.”
루아티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드리한의 눈동자가 너무 간절해서, 표정이 너무 아파 보여서.
“제발.”
흔들리는 음성이 귓가에 스쳤다.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가 지금은 겁먹은 사람처럼 떨며 루아티샤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대신…….”
받아줄 수도 없어.
시드리한은 가까스로 뒷말을 삼켰다.
그때 그건 고통에 신음하는 루아티샤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자신이 멋대로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루아티샤가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절대 알려서는 안 돼.’
– 다 좋은데. 어떻게 나갈 생각이지?
– 그런 몸으로는 다시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부터가 문제일 텐데. 저 아이까지 지키겠다고?
시드리한이 눈을 번뜩였다.
“상관하지 마.”
– 하아, 이건 뭐 새끼 낳은 영수보다도 더 예민한 반응이니.
– 그렇게 큰소리칠 거면 일단 키야스에델의 낙인부터 제어하지 그래?
“금제를 말하는 거죠? 이거 제어할 수 있어요?”
루아티샤가 반색하며 물었다.
– 보통이라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특별한 에테르가 흐르고 있다.
특별한 에테르?
‘내가 예전에 능력 〈이런 노래 실력으로는 고작〉을 사용해서 불러일으킨 에테르를 말하는 건가?’
– 그걸 이용하면 편해지겠지만 어째서인지 본인이 그걸 일부러 흐트러트려 놨군. 왜…….
– 아하,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였구나?
태평한 영수의 말과 달리 루아티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그 말은…….
‘나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다시 금제에 걸렸다는 거야?’
루아티샤의 눈앞에 어린 시드리한의 모습이 스쳤다.
들끓는 열과 고통과 악몽에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리고 끙끙 앓던 아이.
‘그런 상태에서 영혼이 찢겨 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내게 왔다고?’
영혼이 찢기지는 않았지만, 과연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
루아티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지금은 힘에 부쳐서 다시 에테르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거구나.
– 용케도 정신을 안 잃고 있는 상태니 당연하겠지.
– 하기야 인간이 에테르를 움직이는 것부터가 무리一.
“어서 힘을 빌려주세요.”
“루아티샤!”
시드리한이 루아티샤의 어깨를 잡아채며 그녀를 불렀다.
보는 사람의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픈 시선이었다.
“막지 마.”
“안 돼. 영수가 어떤 대가를 요구할一.”
“어떤 대가든.”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치를 거야.”
“……루아티샤.”
루아티샤는 상처 입은 시드리한의 얼굴을 보고 그의 손을 잡았다.
“시드, 너는 이미 나를 구했어. 여기에 온 뒤로 ‘이제 끝이다’ 싶은 순간은 정말 많았거든. 근데 그중에서도 네가 나타나기 직전이 나한텐 정말…… 힘든 순간이었어.”
“…….”
“근데 네가 왔잖아.”
루아티샤가 미소 지었다.
시드리한은 입술을 벌렸으나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저런 미소 앞에서 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는 이미 나를 구했어. 그러니까 이제 내가 너를 구할 차례야.”
그런 차례 따위 없어.
그리고 만약 그런 차례라는 게 있다면, 나는 수천 번은 더 너를 구해야 해.
루아티샤가 자신을 살린 적이 몇 번이던가.
6년 전, 파에라톤 공작성에서 처음 만났을 때 시드리한은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살렸다.
살아있게 하고, 살아가게 했다.
만나지 못한 순간에도, 다시 만난 순간에도 오직 그녀의 존재가 자신을 숨 쉬게 했다.
애끓는 시선이 루아티샤의 얼굴에 닿았다.
강인하고 굳건한 얼굴.
루아티샤가 얼마나 강한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대가를 감내하겠다는 각오가 얼마나 단단한지도.
의심하지 않는다.
루아티샤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너를 지키고 싶어.’
네가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머리카락 한 올, 손톱의 티끌이라도 다치지 않게.
– 곧 접촉하며 생겼던 내 힘의 잔영이 사라진다.
영수가 경고했다.
이 빛이 사라지면 다시금 마물이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시드리한이 비척거리며 기댔던 몸을 떼어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 고집스러운 모습에 루아티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혼자 희생하고, 나에게 그걸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마!”
시드리한이 놀란 눈으로 루아티샤를 돌아보았다.
눈물을 매단 채 루아티샤는 정말 화가 난 듯 왈칵 성을 냈다.
“난 그런 것 따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이건 내 선택이고, 내 싸움이야!”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옷깃을 꽉 틀어쥐곤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얼굴이 가까웠다.
“그러니까 같이 해.”
시드리한의 입술이 벌어졌다.
“같이 가자, 시드.”
아.
이 아이는.
왜 항상, 이렇게나一.
시드리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 어떤 때보다 그의 마음이 환히 비쳐드는, 깨끗한 물빛 미소였다.
一그 자신조차 모르던,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원했던 말을 해주는 걸까.
“그래.”
시드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자.”
– 정리는 다 된 듯하군.
– 개척자, 루아티샤 파에라톤.
– 끝없는 평원의 지배자이자 첫 번째 뿔의 수호자인 나, 악트셰라켄과 계약하겠는가?
계약이라는 말에 루아티샤의 얼굴이 일순간 찝찝해졌다.
악마 놈이 한 희대의 사기 계약이 떠올랐던 탓이다.
이것도 사기 계약은 아니겠지.
‘그래도 처음부터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과 계약이라는 걸 알려주긴 하니까…….’
무엇보다 지금 와서 계약을 물릴 수도 없었다.
“……하겠습니다.”
– 대가를 받고 그대에게 나의 힘을 빌려주겠다.
그와 동시에 폭풍과도 같은 거대한 힘이 루아티샤를 휘감았다.
“읏…….”
루아티샤는 그 힘의 폭풍에 눈을 감았다. 분명 강대한 힘만 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들一.
‘따뜻해?’
그리고 싱그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꽃향기 같은…… 이건 샤이렌꽃 향기인데.’
그 향기를 어떻게 모르겠는가.
검은 황금에서도 은은하게 나는 향기인데.
‘그러고 보니 이름이 악트셰라켄이라고 했지.’
알림창이 떴을 때 워낙 경황이 없어서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야 자신을 ‘꽃 도둑’이라고 부르던 영수의 말이 이해가 됐다.
‘날 주시하고 있어서 사라진 꽃이 나한테 있다는 것도 다 봤나 보네.’
머쓱했다.
– 그 녀석부터 도와주는 게 좋을 거다. 그곳은 사기가 가득해서 숨을 쉴 때마다 사기를 흡입하게 되니까.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러자 그녀에게서부터 흘러나온 영수의 힘이 시드리한을 휘감았다.
– 이걸로 사기가 더 흡수되는 건 막을 수 있을 거다.
– 우리 영수에게는 사기가 통하지 않으니까.
– 내가 게이트를 통해 네게 접촉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지.
왠지 으쓱하는 목소리였다.
루아티샤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럼 몸 안에 있는 사기도 없앨 수 있어요?”
– …….
루아티샤의 눈이 기대로 별처럼 빛났다.
그러면 금제도 다시 풀 수 있지 않을까!
– …….
하지만 침묵이 너무 길었다.
루아티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 못 하시는구나?”
– 모, 못한다기보단…….
“그럼 할 수 있어요?”
– ……그건 아니지만.
“아하.”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 루아티샤가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잘난 척해서 민망하더라도 그냥 못하면 못한다고 말하지. 괜히 저러는 게 더 없어 보이는데.”
– 다 들린다!
악트셰라켄이 버럭 성을 냈다.
시드리한은 꿍얼거리는 루아티샤를 보며 미소 지었다.
‘강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루아티샤는 루아티샤다.
불안하고, 무섭고, 떨리고, 두려우면서도 언제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시드리한의 시선을 느낀 루아티샤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히히 웃었다.
– 크흠, 영수에게 사기를 멸하는 힘은 없지만 그건 절대 영수가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 지금 그 힘을 가지고 있는 자는 오로지 너뿐이다.
“저요?”
– 그래. 그가 남겨놓은 마지막 안배를 받은 핏줄이니 그런 거겠지.
– 설마 마지막 안배까지 써야 하는 날이 올 줄 그때는 몰랐지만…….
루아티샤가 더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 온다.
악트셰라켄의 나지막한 경고와 함께 두 사람을 감싸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파사삭!
거대하게 솟아난 얼음 기둥이 마물을 꿰뚫고 그들과의 사이에 거대한 벽을 만들어냈다.
“꾸워어어억!”
설마 이런 반격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괴물이 괴성을 질러댔다.
몸이 꿰뚫린 고통에 썩어들어 가는 모양의 괴물이 손에 들고 있던 철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한 번 철퇴가 땅에 박힐 때마다 지축이 흔들렸다.
퍼억, 파삭!
시드리한은 철퇴에 맞아 부서지는 방어용 빙벽을 끊임없이 수복하며 새로운 기둥으로 계속해서 괴물을 꿰뚫었다.
‘튼튼하군.’
왼 가슴과 복부 한복판을 꿰뚫었는데도 마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는 듯 더 강한 힘으로 발광했다.
몸이 온전하더라도 까다로운 상대.
더 이상 사기가 흡입되지 않는다고 해도 시드리한은 금제가 발동한 상태였다.
그나마 몸을 감싸고 있는 영수의 기운 탓에 금제의 사기가 조금 잦아들어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등골을 치고 올라오는 오싹한 기운에 시드리한이 몸을 돌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발톱이 그의 눈앞을 한가득 채웠다.
뒤에서 은밀하게 접근한 거미 다리를 가진 괴물이 공격을 시도한 거였다.
‘젠장.’
피하기도, 빙벽을 만들어 막기도 늦었다.
시드리한은 팔을 들어 올렸다.
아직 루아티샤를 돌려보내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죽을 순 없다.
‘팔만 잘리도록一.’
콰앙!
어디선가 날아온 빛의 창이 거미 괴물의 몸통을 꿰뚫었다.
키이이이익一!
거미 괴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다리를 움츠렸다.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
고개를 돌리니 루아티샤가 얼음 기둥 위에 선 채 시드리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맑은 빛으로 이루어진 창이 뻗어져 나왔다.
“같이 하기로 했잖아.”
시드리한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용병으로 지내며 수십, 수백이나 되는 사람들과 함께 싸웠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단원을, 동료를 의지한 적이 없었다.
사방을 몬스터에게 포위당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몸을 꿰뚫고 나온 검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때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의지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응.”
시드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