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9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91화(191/353)
☆ 제191화 ☆
* * *
키이이이이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몸체가 쿵, 하고 쓰러졌다.
털이 숭숭 난 거대한 거미 다리가 루아티샤의 눈앞에서 허공으로 솟았다.
“으…….”
징그러워.
루아티샤는 뒤를 돌아보았다.
몇 개나 되는 얼음 기둥에 몸이 박혀 쓰러지지도 못한 채 죽은 괴물이 보였다.
“……전부 해치, 앗.”
루아티샤는 입을 합 다물었다.
하마터면 ‘그 말’을 해버릴 뻔했다.
다 죽은 상대까지 다시 살려낸다는 전설의 그 말.
해치웠나.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무조건 죽은 줄 알았던 상대가 다시 일어난다.
“어서 가자.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 가야 해.”
시드리한이 루아티샤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느 방향인지 알아?”
“응. 이쪽이야. 영수가 접촉한 경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돼.”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이 가리킨 방향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보이는 게 없었다.
‘시드는 보이는가 보네.’
어쨌든 잘됐다.
루아티샤가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데 시드리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
“너무 느려서 그래? 좀 더 빨리 갈게.”
멀쩡한 듯이 행동하지만 아직도 금제가 발동하는 중인데 시드리한에게 업힐 순 없었다.
“발목 엄청 부었어.”
“아…….”
루아티샤가 제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절벽에서 구르면서 접질렸던 게 무리를 하며 완전히 퉁퉁 부었다.
“괜찮아. 별로 안 아파.”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등을 밀어내다가 멈칫했다.
“너, 등이 왜 이래.”
옷감이 완전히 해져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배어 나온 붉은 피.
‘분명 마물에게 공격당하진 않았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시드리한이 얼른 루아티샤에게서 등을 숨기며 말했다.
“어디 봐.”
“…….”
“시드.”
그는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다시 뒤를 돌았다.
루아티샤가 재빨리 그의 옷을 걷었다.
“……!”
절로 날카로운 숨이 삼켜졌다.
“괜찮아.”
“괜찮긴! 등이 완전, 완전히…….”
루아티샤는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둔기로 몇 번이나 얻어맞은 건지 등에는 피멍이 잔뜩 들다 못해 피가 맺혀 있었다.
아예 터진 살갗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는 중이었고.
“…….”
“괜찮아.”
“…….”
“울지 마.”
“……읏”
“우리 주인님, 우는 모습도 예쁘네.”
“……넌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살짝 째려보며 말하자 시드리한이 웃으면서 눈물에 잔뜩 젖은 루아티샤의 뺨을 문질렀다.
“그런가 봐.”
“…….”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그래도 기쁜 거 같아. 금제가 계속 발동된 상태인 걸 보면.”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왼뺨에서 일렁이는 붉은 선을 바라보았다.
‘저 금제는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시드가 안도할수록, 행복할수록 발동한다고 했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잔인한 술법이었다.
“이런 이상한 세상에 왔는데 기뻐? 언제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시드리한이 아주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네가 있잖아.”
“…….”
“네가 없는 세상이 더 끔찍했어.”
“……진짜 바보 아니야.”
시드리한의 손가락이 루아티샤의 젖은 눈가를 스쳤다.
“사람 우는 모습은 정말 많이 봤는데. 이상하게 네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루아티샤는 말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
곤란한 듯한 웃음을 짓는 시드리한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눈에 틀어박혔다.
그때.
– 마마!
루아티샤의 머릿속에 앳된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왜 또 엄마를……. 괴물들은 죽었는데.’
괴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단 말인가.
– 거……. 분위기 좋은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우리 애가 급한 듯해서…….
– 일단 은신막을 쳐라.
– 아가가 엄마인 네 위험을 감지해서 그런 듯하니까.
아가? 엄마?
이해할 수 없는 말 투성이었지만, 루아티샤는 일단 은신막을 쳤다.
손끝에서 퍼져나간 빛이 시드리한과 루아티샤의 주변을 휘돌았다.
마치 요정이 별 가루를 뿌리며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 내 힘은 사기가 통하지 않으니 너희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 거다.
– 눈으로 보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기척만 가려도 한결 나을 거다.
‘괴물들의 몸집이 커다란 만큼, 우리 쪽에서 더 빨리 발견해서 피할 수 있으니까.’
루아티샤는 시드리한이 다시 업히라고 말하기 전에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이렇게 손잡고 가자, 응?”
“……알았어.”
시드리한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의 뺨이 조금 붉었다.
‘……왜 얼굴을 붉히는 거야.’
괜히 루아티샤의 뺨도 뜨거워 졌다.
– 염병…….
아 쫌!
루아티샤는 걸음을 옮기며 시드를 힐끔 훔쳐보았다.
‘……너 나 좋아해?’
그렇게 물어도 되나.
하, 전생에서 일만 하지 말고 연애를 한 번쯤은 해볼걸.
그럼 지금 좀 멋지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여주 언니들이 이런 상황에서 뭘 했더라.
마침 소환해서 읽은 지 얼마 안 된 〈황녀님이 힘을 숨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언니, 좋아하는 북부 대공에게 분명…….
얼굴에 물을 뿌리고 ‘꽃에다 물 준 거야!’ 하고 외쳤던 거 같은데.
“…….”
루이티샤는 로판에서 연애팁을 얻는 것을 포기했다.
모태 솔로인 그녀가 봐도 그건 아니었다.
‘후우, 무슨 말을 해야 시드를 확 꼬실 수 있을까.’
루아티샤가 힐끔힐끔 시드리한을 훔쳐보고 있을 때였다.
“조심해.”
시드리한이 루아티샤의 어깨를 꽉 감싸 쥐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루아티샤가 디디려는 곳에 자그마한 돌부리가 있었다.
“접질렸는데 잘못 디디면 더 아프잖아.”
시드리한이 무심하게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아티샤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뭐야, 얘.’
가까워.
오른뺨에 시드리한의 가슴이 닿았다.
루아티샤는 힐끔 시드리한을 올려다봤다.
그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의도도 없이 이러는 거야? 그냥 돌부리에 발 잘못 디디지 말라고?’
와, 천연이 더 무섭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이대로 걸을 순 없어서 루아티샤는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시드리한에게 기댔던 몸을 떼어냈다.
시드리한은 멀어지는 온기에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귓등까지 붉어진 루아티샤가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
그의 시선이 잠시 하늘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귀여워.’
“알겠습니까, 단장? 꼬시려는 게 너무 팍 보이면 오히려 식는단 말입니다!”
“마차가 오면 위험하지 않게 잡아주고, 마차길 쪽으론 단장이 걷고. 근데 또 그게 너무 빤히 보이면 재수 없어요. 그냥 개수작 같아 보이지.”
“안 그런 척! 그런 의도는 전혀 없는 척! 무심하게! 여우처럼! 예?”
“알았다.”
“저, 그런데 단장, 수르아 씨랑 아지트 밖에서 만난 적이 있기나 하세요?”
“…….”
“하이고, 그러니 수르아가 제가 바람둥이니 뭐니 하지. 그냥 포기하는 게……. 히이익!”
‘틀렸잖아.’
시드리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가르쳐준 대로 루아티샤를 꼬시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꼬셔졌잖아.’
얼굴을 꽃처럼 붉게 물들인 채 입술을 오물거리는 루아티샤를 보니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두 모태 솔로 소년 소녀는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서로를 꼬시기 위해 머리를 팽팽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영수 악트셰라켄이 하하 웃었다.
‘하……. ♬같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저 멀리서 괴물이 보이면 숨고, 다시 전진하기를 반복하며 걸었다.
여전히 두 손은 맞잡은 채였다.
루아티샤는 괜히 어색함에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전투에 엄청 익숙하더라. 물론 우리 성에 쳐들어왔을 때도 그랬지만. 그때보다 뭔가…….”
계속 싸워온 사람처럼.
시드리한이 파에라톤 공작성에서 나간 후, 황궁에 오기까지 약 5년.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산 것일까.
“……나는 네가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금제에 걸리기까지, 그리고 금제에 걸려 노예로 팔려나가기까지.
시드리한에게는 황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상처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
시드리한이 느릿하게 답했다.
황후의 심복에 의해 노예로 팔려나가면서 처음에는 복수를 결심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금제의 악몽에 마음이 꺾이고 의지가 꺾였다.
돌아가서 복수할 생각 따위는 진작에 사라졌다.
그저 죽고 싶었다.
죽어서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너를 만났어.’
“황궁에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서.”
“이유?”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시드리한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루아티샤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더 물으려 할 때였다.
“도착했어.”
시드리한의 말에 루아티샤가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편에서 붉은 구체가 보였다.
게이트였다.
* * *
‘드디어!’
가슴이 북처럼 쿵쿵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저쪽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으나 발목이 시큰거려 불가능했다.
‘방심하지 말자.’
다행히도 게이트 주변에 마물은 없었지만, 항상 이럴 때 일이 틀어지곤 한다.
나는 급한 마음을 내리누르며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면 일단 공작저로 가서 씻고 치료하고 고기를 잔뜩 먹자.”
“응.”
“단 것도 엄청 먹을 거야. 초콜릿 시트에 초콜릿 프로스트를 잔뜩 얹어서 초콜릿을 갈아서 뿌려달라고 할 거야.”
“너무 달 것 같은데.”
“이빨이 녹아내릴 정도로 단 걸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라구.”
내가 입술을 삐죽이자 시드가 웃었다.
“그래.”
“익시온이 울어도 놀라지 마. 안 그래 보이는데 사실 좀 개복치거든.”
“개복치?”
“개복치처럼 마음이 약해.”
“…….”
시드의 눈빛이 어째 불손해졌다.
“진짜야.”
“……그래.”
“아레스는 엄청 화낼 텐데. 휴 우, 아레스가 화나면 제일 무섭거든.”
“화낼 만하지.”
“옆에서 말려줘.”
“……응.”
“제온하고는 한동안 떨어지지 말아야겠다. 할아버지한테는 딱히 알리고 싶지 않은데. 이미 아셨을까?”
“할아버지한테는 왜.”
“울 할부지 충격 받아서 쓰러지시면 어떡해.”
“……타렌카 후작이?”
시드의 얼굴에는 ‘그 꼬장꼬장한 늙은이가?’하고 쓰여 있었다.
나는 도끼 눈을 떴다.
“울 할부지는 몸도 마음도 여려.”
“…….”
“여리다고.”
“……그, 아니다. 모르는 게 약이지.”
흥, 모르는 건 시드 너라구.
울 할부지가 얼마나 섬약하신 분인데.
병약 미중년이라구!
산책도 꼬박 시켜드려야 하고 약 드신 다음에는 사탕도 드려야 하구.
“그리고 아빠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빠는.”
코끝이 시큰했다.
곧 돌아가서 볼 텐데. 그러니까 괜히 더 그러네.
어서 아빠한테 가고 싶다.
안겨서 어리광을 잔뜩 부리고.
펑펑 울고, 코를 팽 풀고.
토닥임을 받고.
속 썩였다고 잔뜩 혼나도 좋으니까 아빠 품에 안길래.
“곧 갈 수 있을 거야.”
시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게이트의 앞이었다.
– 마마! 마마!
아까부터 계속 들리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
‘진짜 뭐지.’
의아했지만 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악트셰라켄에게 물었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예요? 뭔가를 더 해야 한다거나. 들어가면 안전하지 않다거나.”
– 열려 있는 게이트니 그냥 들어가면 된다.
– 아니, 오히려 게이트가 밖으로 빼내고 싶어 할 거다.
그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대!”
“응. 잘됐다.”
시드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안도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탓에 금제는 더 강해졌지만.
“나가서 금제를 해주할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 하지…….
“어서 가자.”
시드가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응!”
나는 기운차게 걸음을 옮겼다.
붉은 구체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핏빛 공간이 나를 반겼다.
처음 들어왔을 땐 끔찍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가웠다.
나는 뒤를 돌았다.
장막이 쳐진 것처럼 흐릿하게 시드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들어와!”
하지만 시드는 미소 지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