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9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96화(196/353)
☆ 제196화 ☆
나는 눈을 꾹 감았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아서 그저 아빠의 목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파에라톤 공녀!”
아이젤 부인이 저택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리다가 마차가 멈춰 서자마자 다가왔다.
“괜찮은 건가? 몸은…….”
서둘러 나를 살피던 그녀가 내 곁에 있는 아빠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파, 파에라톤 공작 각하.”
예를 차린 그녀의 얼굴을 희게 질려 있었다. 치맛자락을 잡은 손이 살짝 떨렸다.
나는 아이젤 부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저택의 문간에는 아이젤 백작이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불편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는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아이젤 부인의 말에 집사가 문을 열었다.
안내된 곳은 깔끔하게 정돈된 티룸이었다.
차와 티푸드가 나올 때까지 방안은 어색한 침묵으로 가득했다.
나는 굳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하겠지만,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구나.”
아이젤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공녀.”
“…….”
“우리는 그날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아이젤 부인은 고개를 숙인 채 들지 않았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일단 고개 드시고 자리에 앉으신 다음 설명해주세요.”
아이젤 부인이 자리에 앉은 후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레이디 샤본느가 은밀히 찾아와서 오필리아를 죽인 사람이 파에라톤 공녀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뮤리엘 샤본느.’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바지만 이렇게 유족의 입을 통해 들으니 치가 떨렸다.
감히 아이젤 영애를 죽여놓고서, 그 장본인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자신이 죽인 사람의 부모를 찾아가서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겠다며 가증을 떨다니.
그때, 내 손등 위로 커다란 손이 내려앉았다.
아빠가 내 손을 감싸 쥐고는 살살 폈다.
‘아…….’
나도 모르게 손톱이 손바닥을 찌를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아빠가 자국이 난 손바닥을 엄지로 쓸더니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찌를 거면 자신의 손을 찌르라는 듯.
“처음에는 당연히 믿지 않았죠. 하지만 점점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더군요.”
“…….”
“그날 장례식장에서 보여주었던 공녀의 태도……. 마음에 걸렸어요. 내 딸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던 공녀가 왜 이렇게까지 깊은 조의를 보이는 걸까.”
“죄책감 때문이었다?”
“네. 그렇게 말하더군요. 듣고 있으니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그날 공녀는…… 그저 슬퍼한 다기엔 너무나 그늘져 보였으니까.”
확실히 나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젤 영애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나와 아이젤 영애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황후 폐하의 일로 대립했다고 했겠죠. 아이젤 영애는 황후 폐하의 측근 시녀로 상당히 중용 받고 있었으니까.”
“황후 폐하께서도 장례식날 공녀와 오필리아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언질해주셨어요.”
황후까지.
황후는 뮤리엘이 아이젤 영애를 죽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걸까?
“그저 정치적으로 대립한다고 내가 사람을 죽였겠어요?”
아무리 파에라톤의 악명이 있다고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절대 아니에요. 공녀는 총명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고……. 내 느낌일 뿐이지만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럼 왜?
“하지만 레이디 샤본느가 증거를 가져왔어요.”
아이젤 부인의 눈짓에 집사가 하인에게 건네받은 검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건…….”
파에라톤의 기사들이 쓰는 검이다.
“오필리아를…… 상하게 한 검이라고 했죠. 오필리아의 피가 묻어 있었고요.”
아이젤 영애는 검상으로 죽지 않았다.
에르메스 짹이 뮤리엘의 사기 때문이라고 내게 확실하게 말해주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이 말은…….
‘이미 죽은 아이젤 영애의 시신을 검으로 다시 훼손했다는 건가?’
심지어 영애의 부모에게 찾아가 살인 도구라면서 보여줬다고?
할 수만 있다면 뮤리엘 샤본느를 다시 살려내 한 번 더 죽이고 싶었다.
“……공녀의 명을 받은 파에라톤의 기사가 오필리아를, 내 딸을…….”
그나마 담담하게 말하고 있던 아이젤 부인의 눈이 벌게졌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 기어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내 앞에서 우는 건 염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
말도 안 되는 오해였다.
애초에 나와 황후의 대립은 그렇게 격화되지도 않았다. 나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설령 크게 대립했다고 해도 죄 없는 측근을 죽였겠는가.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뭐라고.
하지만 딸의 시신과 딸을 죽인 검을 앞에 두고 아이젤 백작 내외가 얼마나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 평화로운 제도에서 설마 귀족 영애인 딸이 살해당할 거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겠는가.
“나는…… 그날 티하우스에서 공녀와 대화해 보고 그제야 깨달았어요. 공녀가 내 딸을 죽이지 않았다고.”
“…….”
“새벽 축제 때를 기점으로 오필리아가 왠지 모르게 변한 것을 느꼈거든요. 처음에는 미약한 변화였지만……. 어떻게 모르겠어요. 내가 엄마인데.”
기어코 아이젤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황궁으로 출근하는 걸 딱히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냥 해야 해서 한다는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점점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딸의 모습을 떠올린 듯 아이젤 부인이 울면서도 미소 지었다.
“나는 그 애가 그렇게 생기 넘치고 능동적인 건 처음 봤어. 읏……. 그게 다 공녀의 덕분이었군요.”
그날, 티 하우스에서 새벽 축제 때부터 아이젤 영애와 알게 되었다는 내 말에 놀라던 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 거였어.’
엄마로서 딸의 변화를 민감하게 눈치챘었으니까.
“그런데 내 딸을 사지로 내몰았지.”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한순간에 얼렸다.
아빠가 냉엄한 눈길로 아이젤 부인과 백작을 노려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던 아이젤 백작이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
“내 딸은 그날 죽을 뻔했어. 그냥 죽을 뻔한 것도 아니야.
이 작은 애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에서 얼마나…….
아빠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아빠의 눈동자는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을 띠고 있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 딸이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채,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나?”
“가, 각하…….”
“이 일과 관련된 자들은 전부 다 죽여야겠다.”
아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젤 백작이 괴로움에 신음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내 딸이 겪은 아픔의 몇 배는 고통스러워야지. 죽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게 만들어주겠다.”
아빠의 사나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아이젤 백작이 땅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아이젤 부인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고, 시립해 있던 집사와 고용인들은 퍼렇게 질린 채 납작 엎드렸다.
“그게 누구든.”
아빠는 마기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광포한 기세가 아빠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과 위압.
이곳의 그 누구도 감히 아빠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아빠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 손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빠와 맞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빠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상처 입은 눈.’
나는 전혀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슬펐다.
아빠의 눈빛이 전에 없을 정도로 아파 보여서.
붉은 눈동자가 마치 피를 흘리는 것처럼 비통해 보여서.
흉포한 기세가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져서.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아빠가 내 뺨을 감싸 쥐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냐.”
나는 말없이 아빠에게 푹 안겼다.
풍랑이 이는 배처럼 불안정했던 아빠의 기세가 서서히 누그러지는 것이 느꼈다.
그때, 아이젤 백작이 무릎걸음으로 기어와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제 아내는 그날 말리려고 했습니다.”
아이젤 백작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걸 억지로 끌고 나온 건 접니다.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딸아이의 시신을 갈라 달라는 말을 듣고 더 생각하지 않고……. 제가 공녀를 오해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해? 겨우 오해라는 말로 내 딸이 겪은 일이 없었던 게 되는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아내는 정말로 말렸습니다. 제발……. 제게는 이제 하나 남은 가족입니다.”
“여보…….”
아이젤 부인이 백작을 불렀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오해로 저 어린아이를 해치려 한 주제에 염치없이 살려달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목숨, 달게 내놓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저 하나로 끝내주십시오…….”
아이젤 백작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는 내게도 무릎을 꿇었다.
“내가 공녀를 오해했습니다. 공녀가 내 딸을 죽였다는 거짓말에 사로잡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그런 간악한 흉계에 가담하다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가만히 아이젤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로 후회하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듯했다.
아이젤 백작가는 그날 자신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냈다.
만약 모든 것을 회피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백작 부인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거다.
아, 그렇구나.
“내가 정말 아이젤 영애를 죽인 범인이고, 복수에 성공했다면 따라 죽을 생각이었군요.”
“…….”
“난 그날 아이젤 부인의 편지를 받고 약속장소로 갔어요. 내가 그곳에서 봉변을 당했다면 아이젤 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겠죠.”
“……공녀의 말이 맞습니다.”
“사람을, 그것도 공녀처럼 어린아이를 죽이는 데 가담한 일입니다. 딸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했다면서 기뻐하며 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아마 제 딸을 죽인 범인은 뮤리엘 샤본느겠지요.”
나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아이젤 백작이 눈을 감았다. 주름진 그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드릴 말씀드릴 말씀이 아니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제 딸의 복수를 해주어서…….”
아이젤 백작의 눈은 아주 선명했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딸의 죽인 자가 증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딸을 진심으로 아꼈군요.”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아이젤 백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딸인 아이젤 영애를 아비인 그가 자꾸 깎아내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아이젤 영애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는데, 계속 부족하네, 어쩌네 했으니까.
하지만 아이젤 백작은 백작 나름대로 딸을 몹시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그 방법이 잘못됐지만.
“……우선 그 목숨을 내놓기 전에 하셔야 할 일이 있어요.”
내 말에 아이젤 백작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뭡니까? 속죄를 위해 뭐든 하겠습니다.”
“아이젤 영애의 배를 가르는 일입니다.”
내 말에 아이젤 백작 내외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 * *
아이젤 백작 내외는 차마 딸 아이의 시신을 훼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 역시 보고 싶지 않았다.
시신을 훼손하는 것은 엄청나게 모욕적인 일이기에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도록 아빠가 혼자 해주셨다.
그리고.
“……왜 배를 가르라고 했는지 알겠군.”
아빠의 손에는 반짝이는 보석이 들려 있었다.
“그건…….”
“영상석이다. 식도에 있더군.”
아이젤 백작 부인이 충격으로 몸을 비틀거렸다.
나는 우두커니 선 채 영상석을 바라보았다.
죽음이 지척으로 다가온 순간에 아이젤 영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으로 영상석을 삼켰을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一.
“아이젤 영애만큼 용감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나중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할 만큼 그녀가 결단력이 있었다는 것.
아이젤 백작 부인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백작이 그런 아내를 끌어안은 채 망연자실하게 영상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것 때문에…….”
그는 말을 멈춘 채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렸다.
영상석을 보고 싶으면서도 보기 두려운 듯했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아이젤 백작을 용서한 게 아니었다.
시드가 무사히 돌아오지 않는 한, 나는 아이젤 백작을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이젤 영애의 부모님께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오랜 침묵 끝에 아이젤 백작이 입을 열었다.
“영상석을…… 틀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아빠가 영상석을 가동시켰다.
그러자 깨끗한 수정안에 황후와 뮤리엘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내용.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황비의 친자가 시드리한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아이젤 백작 부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만져봐서 끄는 법을 몰랐는지, 아이젤 영애가 영상석을 들고 이동하는 동안도 모두 다 기록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