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9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97화(197/353)
☆ 제197화 ☆
그건 차마 눈 뜨고 보지도 못할 광경이었다.
마차 밖으로 도망가는 아이젤 영애,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느긋하게 뒤를 따르는 뮤리엘 샤본느.
아이젤 영애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눈에서 빛을 잃지 않았다.
후회하고, 절망하고, 억울해하고, 분하고, 원망하고.
다양한 감정이 스쳤지만, 그 순간에도 그녀는 앞을, 미래를 생각했다.
“……랑한다고, 부모님…….”
“으, 아으, 아아…….”
제대로 숨조차 못 쉰 채 딸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젤 부인이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입에서 말도, 울음도, 신음도 되지 못한 것이 흘러내렸다.
아이젤 백작은 그런 아내의 어깨를 잡은 채 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다지, 못 미더운 자식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나는, 내가 윽, 자랑, 스러워요.”
“다시 태어나면 꼭…… 엄마, 아빠한테도 자랑스러운…….”
“사랑해요.”
창백한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은 채 환히 웃는 아이젤 영애의 모습이 가득 잡혔다.
그리고 그대로 영상석을 삼켰다.
수정이 까맣게 변한 지 한참이 지나도 아이젤 백작은 눈을 떼지 못했다.
“오필리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이 뽑혀 나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한껏 조여진 목을 억지로 쥐어 짜낸, 목소리라고도 할 수 없는 신음.
하지만 거대한 둑에 난 실금처럼, 그 제대로 울리지도 못한 이름이 기어코 아이젤 백작을 무너트렸다.
무뚝뚝하던 얼굴이 일그러지고 풍파에 깎인 태산과도 같던 중년인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오필리아! 오필리아, 내 딸아…….”
아.
나는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감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젤 백작의 곡을 듣는 것만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고 배가 울렁거렸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간접적으로라도 보고 싶지 않은 광경.
하지만 나는 두 다리에 힘을 버티고 선 채 아이젤 백작을 지켜보았다.
그는 무너진 성채처럼 오열했다.
* * *
한참 후, 겨우 고개를 든 아이젤 백작의 얼굴은 여전히 눈물에 젖어 있었다.
순식간에 그는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내 딸은 참으로 대단한 아이였구나. 나보다, 나 따위보다 훨씬. 그 애는 이토록 강한 아이였어.”
온몸의 기력이 다 빠질 정도로 통곡했음에도, 무슨 힘이 남은 건지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그의 눈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던 정광이 흘렀다.
“그 애를 몰라보고, 그 애의 가능성을 막고, 한계를 정한 건 나였어……,”
사무치는 깨달음이 아이젤 백작의 가슴을 쳤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 말이 혀끝을 맴돌았다.
아이젤 영애가, 딸이 살아있을 때 그걸 인정해주었다면, 알아주었다면.
“…….”
그러나 내가 그리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젤 백작 본인이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공녀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어리석었던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서도 내 딸을 몰라봤습니다.”
“…….”
“그래놓고 딸을 알아본 공녀께 역정을 냈지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가 내가 고개를 숙였다.
아까 절박하게 사과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도 진심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른 마음이 느껴졌다.
“……나를 원망하지 않으세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젤 백작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한 짓과 별개로, 그는 아이젤 영애의 아버지니까.
“원망?”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혼절해서 자리를 옮겼던 아이젤 부인이 하녀의 부축을 받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히, 당연히 원망하지! 어떻게 원망하지 않겠어.”
희게 질린 그녀의 얼굴은 흡사 귀신 같았다.
“공녀와 얽히지 않았다면, 서로 모르는 채 살았다면 그 애는 좀 더 오래 살았을 텐데.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그렇게…….”
아이젤 부인의 눈가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차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이지 마요.”
어디서 그런 강한 힘이 난 건지, 아이젤 부인이 내 손을 꽉 쥐었다.
“고개, 숙이지 마세요. 당당하게 말하세요. 원망할 일 아니라고.”
마주한 그녀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내 딸이 후회하지 않는다잖아. 후회하는 건, 네 말을 들을 걸 그랬다는 후회라잖아.”
“공녀님께 내 말을 꼭 전해 줘……. 이건 온전히 내 선택이라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공녀님 말을 들을 것을 그랬다는 후회야.”
“신중히 안전한 선택을 하라는,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는 공녀님의 말을 들었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내 딸이 선택해서 살았던 삶이라잖아. 그래서, 그래서 자랑스럽, 자랑스럽다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판단해서 한 행동이고, 이게 그 결과야. 비록 이런 실패로 끝났지만, 나는 내가 선택해서 살았던 내 삶이 자랑스러워…….”
“아흐, 으으, 오필리아, 왜, 왜…….”
아이젤 부인이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쿵쿵 치며 오열하던 그녀가 불현듯 고개를 휙 들었다.
“원망받을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 말아요. 후회하지 말아요. 내 딸이 그러지 말라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 후회하며 자신을 괴롭힐 거야. 상냥한 아이니까.”
“내 딸은 공녀가 구원이었다고 생각하니까.”
구원?
오히려 그 반대 아닌가.
“나는…… 거의 스무 해가 다 되어가도록 그 애가 사는 것을 지켜봤지만, 그렇게 빛나는 걸 보지 못했어요. 웬일인가 했죠. 황궁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건가 했는데.”
아이젤 부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웃었다.
“내 딸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 사람은 공녀였어.”
“…….”
“그렇게 사는 걸 알아버렸는데, 오필리아가 어떻게 그냥저냥 맞는 가문과 결혼해서 살았겠어요.”
웃는 아이젤 부인의 뺨 위로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가 부모로서 보여준 미래는 그 애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지만, 공녀가 보여준 미래는 그 애에게 아주 많은 걸 주었어.”
“…….”
“죽어가면서도 그 미래를 놓지 않을 정도로, 아주 많은 것을…….”
“…….”
“원망……. 원망해요.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 자신도 원망스럽고, 먼저 간 내 딸도 원망스럽고, 남편도, 가문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원망스러운데.”
나는 가만히 아이젤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에 녹아내린 것 같았다. 짓무른 눈가,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 큼은 선명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아이젤 영애가 선택하고 자랑스러워한 삶인데 내가 후회할 순 없으니까.”
그래,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아이젤 부인이 미소 지은 채 눈을 감았다. 한가득 고였던 눈물이 지친 뺨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제는 그 누구의 원망도 받지 않겠어요.”
아이젤 부인이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을 달싹였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몇 번이고 고개를 주억거린 다음에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요. 꼭 그러세요. 꼭…….”
* * *
아이젤 백작은 부인에게 따뜻한 물을 건네는 루아티샤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딸이 파에라톤 공녀와 손을 잡고 황궁의 비사를 밝혀냈다는 건 정말 의외였다.
그가 평생을 해도 쌓지 못할 전공을 딸아이가 세웠다.
그런 딸이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대견하고, 신통하고, 기특하고一.
“…….”
그리워서.
왜 먼저 갔는지 원망스러워서.
왜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한스러워서.
그러나 딸이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결국엔…….
‘내 탓이라서.’
내가 그 애에게 타박만 했던 못난 아비라서.
결국 가장 못난 것은 자신이었다.
증오와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진실도 보지 못한 채 복수심에 차 저 아이마저 죽이려 했다.
아이젤 백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목숨을 내놓겠다는 건 진심입니다. 이미 전부터 각오했던 일입니다.”
아이젤 백작은 루아티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젤 부인 역시 마시던 물을 마다하고 남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아까는 죄인 된 입장을 잊고 공녀께 주제넘은 말을 했습니다. 제 죄를 잊은 건 아닙니다. 남편과 함께 벌해주십시오.”
아이젤 백작은 부인을 바라보았다.
가냘픈 옆 모습은 그 어느 때 보다 강단이 넘쳤다.
섬약한 자신의 부인에게서 그간 볼 수 없었던 면모를 많이 본다.
‘아, 오필리아는 제 어머니를 쏙 뺐구나.’
못난 아비를 닮지 않고 이리 강인한 어미를 닮아서 그토록 용감했구나.
“……죽으면 편해지겠죠.”
“…….”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더 살아 무엇하겠는가.
이제 그만 딸아이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아이젤 영애가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 저더러 원망받지 말라고 했죠.”
“…….”
“이제는 두 분 차례예요.”
루아티샤의 말에 아이젤 백작 내외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젤 영애가 복수하겠다면서 절 죽이려 하다가 그 죄로 두 분이 죽는 걸 원할까요?”
그럴 리 없다.
애초에 복수의 대상이 잘못되었으니까.
아니, 자신들이 뮤리엘 샤본느를 죽이고 그 죄로 죽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건 딸이 원하는 결말이 아닐 테니.
“살아가세요.”
다섯 음절이 그토록 단호할 수가 없었다.
아이젤 백작의 눈동자에 루아티샤의 얼굴이 선명하게 박혀 들었다.
‘아…….’
루아티샤는 짧은 생각으로 쉽게 말하는 게 아니다.
저 얼굴을 보라.
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 짊어진 채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 아는 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밝히세요.”
“…….”
“아이젤 영애가 죽어가는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밝혀내려고 했던 일.”
“그건一.”
오필리아가 루아티샤에게 남긴 것 아닌가.
하지만 루아티샤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젤 가에서 밝혀야 해요. 그리고 아이젤 영애의 영광으로 돌리세요.”
“…….”
“절대 아이젤 영애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마세요. 안 그럼 내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나는 영애를 저 높은 곳으로 보내야겠으니까.”
아이젤 백작은 잠시 말없이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는 중앙 귀족으로서 오랫동안 궁정 정치에 참여했다.
무수한 사람들을 보았다.
날고 기는 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수완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
하지만.
‘……왜 오필리아가 이 아이에게 매료되었는지 알겠군.’
딸아이가 왜 변했는지,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가능성을 싹틔우게 된 건지.
지금 이 순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아이 속에 빛이 있었다. 아무리 눈이 부셔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빛.
단언컨대 이토록 강한 아이는 눈앞의 아이가 유일할 것이다.
아이젤 백작은 자세를 달리했다.
죄인이 무릎 꿇고 빌던 자세에서 벗어나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처럼.
“아이젤 백작가의 가주, 어셔 아이젤. 파에라톤 공녀, 루아티샤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루아티샤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거절하셔도 저는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이는 내 딸 오필리아의 유지를 잇는 것과 동시에 나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루아티샤는 못마땅한 듯 그를 내려다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아이젤 영애의 유지라고 하면 내가 거절할 수 없잖아요.”
아이젤 백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정치인이란…….”
짧게 투덜거린 루아티샤가 물었다.
“괜찮겠어요? 아이젤 영애를 황후의 시녀로 보낸 걸 보면 그쪽과 연줄이 있는 것일 텐데.”
“오필리아가 알아낸 사실을 밝히려면 어차피 황후와는 완전히 돌아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나는 절대 황후를 용서하지 못해요. 지금 보니 뮤리엘 샤본느가 내 딸을 죽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공녀가 범인이라고 우릴 속이는 데 일조한 거였어요.”
아이젤 부인의 눈동자에 독기가 어렸다.
“좋아요. 하지만 나는 백작을 용서하진 않을 거예요.”
“당연합니다.”
아이젤 백작은 차마 루아티샤를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그 영상석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에요.”
“예? 그게 무슨…….”
“시드리한 황자님이 저 대신 마계로 넘어갔거든요.”
“예? 그게 무슨…….”
루아티샤는 아무런 표정 없이 빠르게 말했다.
마계? 웬 마계.
아이젤 백작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대체 뮤리엘 샤본느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거란 말인가.
건물이 무너질 때도 당혹스러웠는데.
“그 애가 무사히 돌아오기 전까진 나는 절대 당신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영상을 밝힐 수 없다는 말씀은.”
“시드리한 황자님이 실종된 상태에서 밝혀봤자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해요.”
“실종된 게 알려지면 에스테반 황자가 황제 폐하의 유일한 자식이 될 테니…….”
루아티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드리한 황자님께서는 워낙 사교계에 두문불출하시고, 오랫동안 궁을 비워놓다 훌쩍 돌아오시기도 해서 아직까지 실종을 눈치챈 자들이 없어요.”
“하지만 길어지면…….”
아이젤 백작은 뒷말을 삼켰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어떻게 될지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애를 되찾아 올 거예요.”
그 말을 아이젤 백작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
루아티샤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꼭 다시 찾아올 거야.’
반드시 그 애에게도 발붙일 가족을 찾아주겠다.
절대 떠날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