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19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199화(199/353)
☆ 제199화 ☆
* * *
샤이렌 평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펠로만 평원은 끝을 모를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대지 위에 한가득 핀 샤이렌 꽃이 만발해 있었다.
“와…….”
그 아름답고 목가적인 광경은 저절로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엄청 예쁘다, 그치?”
가족들을 돌아보는데 이 풍경에 취해 있기보다는 어째…….
“화가! 화가는 어디 있지?”
“평원을 배경으로 열 장, 아니, 적어도 백 장 정도는 그려놔야…….”
“……제온은 뭐해? 왜 그렇게 봐?”
“각막에 새기는 중.”
“으응, 그래…….”
그게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
난 신경 쓰지 않을래.
뻘쭘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아빠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곁으로 로라가 영상석을 든 채 따라붙었다.
아빠, 왠지 아닌 척 로라에게 협조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 그보다 로라의 업무는 영상 촬영이 아닐 텐데?
“피크닉 준비를 해올 걸 그랬구나. 이런 풍경 속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내 손녀의 모습을 담았어야 했는데.”
할아버지가 턱을 쓸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일단은 우리 놀러 온 게 아닌데요.
아무리 이 평원의 지배자인 영수 악트셰라켄의 초대를 받아서 왔다고 해도, 너무 태평한 것 아닌가.
이 넓은 땅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고 그저 방치하는 이유도 전부 영수 때문인데.
“영수가 갑자기 나오면 어떻게 하려구.”
“어차피 오라고 한 건 그쪽 아닌가.”
악트셰라켄이 오라고 한 사람은 나뿐이지, 가족들은 부른 적 없는데요.
“휴우…….”
어쩌다 이렇게 가족 단위의 대이동이 되어버렸을까.
내가 외출 일정을 알리자마자 가족들은 난리가 났었다.
“어디 가는데?”
“그 먼 곳까지 간다고?”
“거긴 영수도 있잖아? 그것도 자기 영역에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로 악명 높은 악트셰라켄이.”
“그 무시무시한 영수가 내 동생이一.”
“아, 그건 괜찮아. 날 공격하진 않을…….”
“一너무 귀엽다고 안 놔주면 어떡해.”
예?
“……아니, 다른 일은 모를까. 그런 일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단호박보다도 더 단호하게 말했지만 내 말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큰일이군. 내 딸의 사랑스러움은 영수마저 홀리고도 남을 만하다.”
“……머리 쓰다듬어 달라면서 집에 안 보낼 거야.”
“하긴, 저 환수가 저렇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는걸 보면…….”
“……얘는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고요.”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반박은 우리 가족들의 귀에 하나도 닿지 못했다.
보통 영수의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거나, 응? 다칠 수 있다거나 뭐 그런 걸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위험할까 봐 걱정하는 건데 일부러 가볍게 농담을 섞어서 말하는 거겠지?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게이트 너머로 갔을 때 악트셰라켄이 도움을 줬거든요.”
“도움을?”
“영수가 왜?”
“역시 내 딸을 노리고…….”
“내 손녀가 귀여워서 납치해가려고!”
아니, 도와줬다는 데도 왜 경계를 하세요.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나를 노리지 않아.
“그게 아니라 환수를 부화시킨 덕에 도움을 받은 거예요. 애기가 엄청 운다고.”
“그건 핑계지!”
“사실은 이전부터 지켜보고 보고 있었을 거다.”
“이렇게 귀여운데 영수라고 시선이 안 갔을 리가 없지!”
그게, 어느 쪽이냐 하면 지켜 보고 있던 게 맞긴 한데.
“아무튼 도와준 대가로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환수를一.”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걸 핑계로 내 솜뭉치를 직접 보겠다는 거지, 감히.”
“……죽인다.”
“펠로만 평원은 내 딸의 땅이 됐으니 이 기회에 영수를 없애 땅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좋겠군.”
“내 손녀는 고부가가치의 비싼 땅이면 사족을 못 쓰니까.”
“내가 비싼 땅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뭘 사족을 못 쓴다고까지…….”
“걱정 말거라. 네 아빠가 영수를 없애고 나면 내가 그 땅을 현재 시세의 100배로 뻥튀기해 주마. 도시 계획은 이 할아비의 특기니.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내 손녀를 노려?”
“…….”
틀렸어.
이 사람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잖아.
말이 안 통해.
“……왜 그러지?”
아빠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단지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눈가에 습기가 차서…….
나는 아빠의 품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허리에 척 손을 얹은 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할게요. 우린 이곳에 싸우러 온 게 아니에요.”
“…….”
“대답.”
내가 눈을 부릅뜨자 가족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수와 내가 말하면?”
“지켜본다.”
“영수가 내게 다가오면?”
“지켜……본다.”
“영수가 내게 친밀감을 표시하면?”
“……지……다.”
“목소리가 작습니다.”
“……지켜, 으득! 본다.”
아니, 뭘 그렇게 이를 갈면서까지.
“영수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보기만 해야 해요. 알았죠?”
“…….”
“알았죠?”
“……그치만 그 영수가 뭐 이런 귀여운 솜뭉치가 다 있냐고 데리고 가려 하면.”
“그럴 일은 없어. 절대.”
“그래,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생명체가 소리도 없이 홀연히 서 있었다.
“왔구나.”
악트셰라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거대한 산이 걸어서 다가오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몸이 움직이는데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치의 샤이렌 꽃이 그와 공명하듯 푸르게 빛났다.
‘와…….’
그 아름답고 신비한 광경에 절로 시선을 빼앗겼다.
이윽고 그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머리를 최대한 치켜들어야 겨우 영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꽃 도둑.”
“……꽃 도둑이라니.”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내가 가격을 좀 깎은 적은 있어도 어디서 도둑질한 적은 없는 사람이다.
“발뺌할 생각은 아니겠지. 네가 샤이렌 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내 확실히 봤는데.”
악트셰라켄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어디까지나 영수 기준으로 ‘가볍게’지, 그것만으로도 지진이 나는 것만 같았다.
“눈을 뜰 때마다 내 꽃이 사라져 있어서 대체 어느 간 큰 인간이 훔쳐 가나 했더니.”
“그게, 일단은 지금 이 땅의 소유주가 저이기도 하거든요. 이거 내가 나름대로 잘해서 얻어낸 땅인데.”
“그건 인간들끼리 정한 것이지.”
“인간도 인간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요. 서로 종족이 다르니 소유권에 대한 논란이 생긴 것 같은데. 이쯤에서 서로 종족 차이를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허어……. 말을 참 잘하는구나. 내 평생 내 앞에서 이리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는 인간은 처음 본다.”
“뭐 못할 것도 없죠. 틀린 말도 아닌데.”
“허…….”
“그리고 저도 영수는 처음 봐요. 우리 애기가 있긴 하지만, 걔는 아직 애기니까.”
“허, 참.”
“아무튼 서로 처음이니 배려해서 잘 맞춰가죠? 저도 제 땅에서 살고 있는 거 너그럽게 이해할게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악트셰라켄이 중얼거렸다.
– 아프타네스가 계약자 하나는 잘 골랐군.
조금 전과 달리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목소리였다.
‘……저는 계약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생각하는데.’
혹시나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니 악트셰라켄이 웃었다.
우리 가족들도 그렇고, 나만 빼고 다들 독심술을 할 수 있나?
– 하하! 아프타네스와 계약하고 후회하는 자는 네가 유일할 거다. 아니, 애초에 계약한 자도 네가 유일하지만.
‘그야 그딴 사기 계약이 아니면 누가 계약하겠어요. 아무도 계약하고 싶지 않을 텐데.’
– 그 반대다.
‘네‘?’
– 모두가 그와 계약하고 싶어 했지.
……진짜?
내 머릿속에 징징거리며 도망치던 악마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람 혈압 상승에 큰 도움을 주던 퀘스트 메시지도.
아프타네스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딴 걸 수족이라고 부리는 신인지 사기꾼인지와 다들 계약하고 싶어 했다고?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악트셰라켄이 목을 울리며 웃었다.
“재밌구나.”
그가 앞발을 구부려 자세를 낮췄다. 눈을 마주치기 한결 편해졌다.
“꽃을 가져갔으니 꽃 도둑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이게 억울하다면.”
딱히 억울한 건 아니고.
꽃을 훔쳐 갔으니 뭘 대가로 내놓으라고 할지 몰라서 그러는 건데.
앞으로도 검은 황금을 만들려면 펠로만 평원의 샤이렌 꽃이 꼭 필요하고.
“네가 꽃임을 증명하면 될 일 아니냐?”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인간이 꽃을 가져가는 것은 꽃 도둑이지만, 꽃이 꽃과 함께 하는 것은 도둑이 아니지.”
“……?”
“그, 많이 하던데.”
내가 못 알아듣는 눈치이자 악트셰라켄이 헛기침을 했다.
“꽃이라고.”
“……?”
“네 가족들에게.”
……아, 설마?
아니지? 진짜 이건 아니잖아. 그치?
흔들리는 시선으로 악트셰라켄을 바라보자 그가 또 다시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저, 저, 저거!”
“역시 내 동생을 노리고 있었군.”
“막내는 나랑 있어야 해.”
“쯧, 귀찮게 됐군. 영수마저 흘리다니.”
“내 손녀의 귀여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
나는 당장이라도 악트셰라켄을 패버릴 것 같은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아, 저거 말려야 하는데.
말려야 하긴 하는데.
왜 말리기 싫지?
“감히 인간 따위가. 건방지기 이를 데 없구나!”
악트셰라켄과 가족들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하아…….”
머리가 아팠다.
‘그냥 싸우든 지지고 볶든 알아서 하고 끝나면 나 부르라고 할까.’
아니지. 그럼 샤이렌 꽃까지 다 상할 거야.
내 돈, 아니, 내 꽃!
나는 척,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다.
“다들 그만해.”
나는 박력 있게 손을 치켜들었다.
모두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치켜든 손을 턱밑에 착 붙여 꽃받침을 만들었다.
“루루꽃은 꽃 도둑 아녜요. 루루꽃은 친구들이랑 논 거뿐인 걸.”
울망울망. 반짝반짝.
내가 살다 살다 영수 앞에서도 주접을 떨 줄이야.
심지어 정작 악트셰라켄은 내게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아니, 지가 시켜놓고!
여기서 도망치고 싶은 건 난 거든?!
이 와중에 로라는 영수가 무섭지도 않은 건지 영상석으로 날 찍고 있었다.
흑흑.
다 나가!
* * *
“과연 그 말대로군.”
“여기 이 영상을 보면…….”
‘왜 저렇게 친해졌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마차에서 쿨쿨 잠자고 있던 환수를 깨워서 데리고 나오는 동안 악트셰라켄과 우리 가족 사이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익시온은 아예 악트셰라켄의 등 위로 올라가 타고 있었다.
‘……저건 좀 재밌어 보이는데.’
그때, 악트셰라켄이 내 품에 안긴 환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이고 있군.”
“그럼요. 오늘도 보석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
그야말로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네?”
“환수는 그런 걸로 자라지 않아. 아무리 먹을 걸 많이 준다고 해도 성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 잘 먹이고 있다는 건 다른 의미다.”
“……그럼 뭘 먹여야 하는데요? 근데 난 딱히 보석 외에 다른 걸 먹인 적이 없는데.”
“잘 먹였다는 것은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다. 무엇이 아가에게 포만감을 주었는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환수는 워낙 포악…… 크흠, 특별하니.”
방금 포악이라는 단어가 들렸던 거 같은데.
악트셰라켄이 엄청 뜨끔하고 당황해서 말을 바꾼 거 같던데.
꼭 누구 눈치 보는 것처럼.
나는 내 품에 안긴 환수를 내려다보았다.
뀨.
순진하고 커다란 눈망울.
‘그럴 리 없지. 덩치부터 차이 나는데. 무엇보다 울 애기는 매우 귀엽잖아.’
“어쨌든 굉장히 만족하고 있으니 지금 이대로 키우면 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한참 침묵한 채 환수를 바라보았다.
“……희망이 생겼구나, 정말.”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너무 깊어서 나마저 숙연해질 정도였다.
“네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는데.”
악트셰라켄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시선이었다.
내 예상보다도 그가 나에 대해 훨씬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직감했다.
“왜 나를 불렀죠?”
“이유가 있었는데……. 이제 됐어.”
되묻지 못할 만큼 그의 표정이 심오했다.
“그저…… 그래, 한 번 직접 보고 싶었다. 세계를 등에 짊어진 인간을.”
“내 딸에게 뭘 시키려는 거냐.”
가만히 지켜보던 아빠가 나를 보호하듯 가로막으며 끼어들었다.
“이 아이는 스스로의 행복만 생각해도 부족해. 그런데 세계를 짊어졌다니.”
오빠들과 할아버지까지 전부 내 앞으로 나와서 악트셰라켄을 노려보았다.
악트셰라켄은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수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이마 위에 길게 돋아있던 뿔이 빛났다. 환상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눈앞에는…….
“응?”
웬 잘생긴 장발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아빠랑 오빠들이랑 할아버지는?”
“진정해라. 네가 이동한 거니까.”
장발의 미남이 내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이 세계는 오래전부터 천천히, 한 걸음씩 파멸에 다가가고 있었다.”
“…….”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자는 너뿐이다.”
내가?
악마 놈이나 퀘스트를 통해서 몇 번 들었긴 하지만, 이렇게 뭔가 신성해 보이는 미남, 아니, 분께서 말씀하시니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아프타네스의 계약자이자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척자여.”
“으음,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왜 저는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죠?”
“그건 네가 보통 영혼은 견딜 수 없는 수많은 세계를 살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인과를 벗어나게 됐지.”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환생하긴 했지만 이번 인생이 고작해야 2회차인데…….”
“고작 두 번째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그가 내게 물었다.
“네가 겪은 세계는 수천 개나 되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