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화(2/353)
☆ 제2화 ☆
* * *
“티에, 여기까진 웬일이니?”
내게 말할 때와 전혀 다른 목소리로 후작이 물었다.
홀 안으로 들어온 클라티에는 양손을 허리에 착 얹고 눈썹을 세웠다.
“아빠, 아직 어린애를 그렇게 밟고 계시면 안 되죠.”
후작이 내 어깨 위에서 발을 치우며 껄껄 웃었다.
“우리 티에는 착하기도 하지. 이런 애를 다 걱정해 주고.”
“치.”
클라티에가 입술을 비죽였다. 수줍은 홍조가 그녀의 뺨 위로 올라왔다.
“곧 제 생일이잖아요.”
“그래, 그래서 홀 청소를 시키고 있지 않니.”
“이렇게 커다란 홀에서 파티 안 해도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대한 생일 파티가 기대되는지, 클라티에의 눈동자는 기쁨으로 별처럼 빛났다.
“우리 딸 생일인데 대충 치를 수 있나.”
“아빠도 차암.”
연한 핑크빛 구두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괜찮니?”
상냥한 목소리가 꽃잎처럼 내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힘내렴.”
생긋 웃은 클라티에가 후작의 팔을 끌어안았다. 후작은 사랑스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정한 부녀가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히잉, 아빠아一 더러운 비눗물에 구두가 젖었어요.”
“이 아빠가 새로 사줄 테니 걱정 말거라.”
“와아, 아빠 최고!”
나는 혼자 덩그러니 남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눗물은 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쿵, 문이 닫혔다.
나는 하염없이 단단히 막힌 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서 청소하자.’
못 끝내면 또 무슨 벌을 받을지 모른다.
* * *
꼬르르르륵!
배에서 천둥이 쳤다.
최대한 몸을 말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배꼽시계는 여전히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홀을 다 청소하지 못한 나는 후작에게 벌을 받았다.
채찍같이 얇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서른 대 맞았다.
아파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 한 채 끙끙거리는 내게 그가 말했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저녁은 없다.”
그 말은 하루에 한 끼로 버티라는 소리였다.
평소 나는 아침과 저녁 두 끼밖에 먹지 못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 딱딱한 빵과 건더기 하나 없는 묽은 수프였다.
후작이 나가자 클라티에가 들어왔다.
“저런, 불쌍하게도.”
클라티에는 피멍이 든 내 종아리를 보고 안쓰럽다는 듯 혀를 찼다.
“너무 섭섭해하지 말렴. 아빠는 공명정대하신 분이니까 그런 거야. 네가 내 사촌이라고 공짜로 밥을 주는 건 다른 사람 보기에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니?”
사촌이라고 해도 너와 나는 달라.
그녀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열심히 하렴. 일은 잘 끝내야지. 아빠가 그러셨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고.”
격려해준 스스로가 뿌듯한지 클라티에는 생긋 미소 짓곤 방을 나갔다.
그때를 떠올리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깟 밥 따위……!’
꼬르르륵.
그깟 밥 필요 없다고 하고 싶은데, 배가 너무너무 고팠다.
‘아파.’
먹은 게 없는 빈속도 아프고 뜨끈뜨끈 열 오른 종아리도 아팠다.
호흡이 가쁘다.
내쉬는 숨이 뜨겁다.
머리가 멍하다.
‘괴로워.’
차갑게 젖은 옷을 마를 때까지 그냥 입고 있었더니 감기에 걸릴 듯했다.
낡은 모포 속으로 숨어들었지만 겨울밤의 한기는 내 몸을 꽁꽁 얼렸다.
열과 추위로 몽롱한 가운데 후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넌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
“네 아비가 무책임하게 널 이곳에 맡겨두고 양육비도 주지 않고 있어.”
“그러니 밥값은 해야지? 네가 얼마나 처먹는지 아나? 널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결국 또 밥값도 못했구나! 게을러터져선! 너처럼 쓸모없는 것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주는 내 자비에 감사해라.”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후작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는 배고픔도, 종아리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가슴을 꼬옥 쥔 채 헐떡였다.
“너무 아파…….”
가슴이 쥐어뜯긴 것 같았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자꾸만 마음이 꺾였다.
후작의 앞에서면 온몸이 벌벌 떨리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인 내 눈에 그는 너무 커다랬다.
“네 친부도 널 버렸는데 내가 널 맡아서 키워주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아, 진짜 친부인지는 봐야 알겠지만. 너는 마기도 못 쓰지 않느냐.”
나는 모포를 꽉 움켜쥐었다.
‘진짜로 나는 버림받은 걸까.’
처음에는 아니겠지, 했다.
아무리 상대가 악마여도 계약은 계약인걸.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악마 놈의 계약을 믿은 내가 바보지.’
대체 몇 번이나 실망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 따위, 이제는 기대하지도 않는데.
그러니 실망할 필요도 없는데.
훌쩍.
코가 시큰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린다.
이깟 거, 별거 아닌데 왜 눈물이 나는지.
아직 어려서 그런 게 틀림없다, 흥!
훌쩍훌쩍.
‘망할 악마 놈.’
금수저랬으면서.
능력 준담서.
아빠랑 오빠 준댔으면서.
‘……가족, 생기는 줄 알았는데.’
“아츄!”
재채기에 온몸이 들썩였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모포를 단단히 여몄다. 보온성은 하나도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여긴 감기약도 없고, 어린 몸은 너무 약하고.’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그렇다.
……차라리 죽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아냐아냐! 약해지면 안 돼!’
억울해서라도 이렇게는 못 죽겠다.
이 별점 0점짜리 세상에서 반듯이 살아남아 주겠다.
* * *
“티에, 생일 축하한다!”
“세상에, 아직 어린데도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크면 제국의 모든 남자들이 우리 티에에게 홀딱 빠지겠는 걸.”
가족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생글생글 웃는 클라티에는 내가 봐도 천사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오늘 연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어린아이의 옷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롭고 화려했다.
앙증맞게 발목까지 오는 풍성한 드레스 자락은 몇 겹이나 되는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고, 그 레이스에는 자잘한 다이아몬드가 수놓아져 있었다.
아무리 부자라도 1년도 입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옷에 이 정도로 사치를 부리진 않는다.
하지만 후작이 얼마나 클라티에를 사랑하는지, 그녀의 생일 무렵이 되면 저택에 꼭 이렇게 값비싼 드레스가 도착했다.
평소에 입는 옷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아름다운 옷이라, 클라티에도 항상 어떤 드레스일까 기대했다.
‘후작은 어떤 드레스인지 절대 알려주지 않았지만.’
클라티에가 몇 번을 졸라도, 힌트만 달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받는 순간 더 기뻐할 수 있도록 비밀로 한 거겠지.
‘정말 사랑받는구나…….’
나는 시선을 돌려 아름답게 가꿔진 파티장을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홀은 깨끗하게 청소된 데다 반짝반짝하게 꾸며져 있었다.
애초에 후작도 내가 다 청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터다.
‘나를 괴롭히려 했을 뿐이지.’
나는 구석진 벽에 딱 붙은 채 발끝을 바라보았다.
조막만 한 발에 신겨진 허름한 신발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서빙하는 하인과 하녀들조차 나보다 더 질 좋은 구두와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초라해.’
구석에서 쥐죽은 듯 가만히 있는데도 비웃음 섞인 시선이 느껴졌다.
가족끼리의 단란한 생일 파티였지만 나는 그 안에 끼지 못했다.
하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누가 후작 일가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실제로 나는 파에라톤 공녀이자 클라티에의 사촌으로서 생일 파티에 참석한 게 아니었다.
“어머!”
클라티에의 놀란 목소리가 높다랗게 울렸다.
케이크를 자르다 생크림이 구두 위로 떨어진 모양이다.
새로 산 구두가 망가질까, 사랑스러운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뭘 그렇게 멀뚱히 보고만 있느냐!”
그때 후작의 노성이 날카롭게 내 등을 후려쳤다.
“어서 닦아주지 않고!”
그래, 내가 이곳에 참석한 건 사촌으로서가 아니었다.
‘클라티에의 종…… 시중인으로서 참석한 거지.’
더 지체하면 후작이 또 벌을 내릴 거다.
나는 재빨리 클라티에의 앞으로 다가가며 주변 하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 닦을 것을…….”
그녀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난처한 얼굴로 외면했다.
왜 그런지 뻔했다.
‘후작의 명령이겠지.’
나는 더 묻지 않고 클라티에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짤뚱하니 다 헤진 소매를 끌어올려 문질러 닦자 기름진 크림이 뭉그러지는 감각이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분 나쁜 건 따로 있었다.
엎드린 내 등 위로 느껴지는 후작 일가의 무수한 시선.
고개를 드니 곧장 후작과 눈이 마주쳤다.
경멸과 희열, 승리감에 도취된 눈동자.
“그게 다 닦은 게냐? 광을 내야지!”
후작이 채근했다.
소매를 움켜쥔 자그마한 손에 힘이 바짝 힘이 들어갔다.
“또 말을 안 듣지! 일주일 굶은 거로는 부족했더냐? 아니면 매가 부족했던 게야?!”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벌떡 일어나 저 학대범에게 마주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작디작은 몸은 발발 떨려 움직이지 않았다.
무섭다. 두렵다. 겁이 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자세가 더 낮아지고 입술이 클라티에가 신은 구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클라티에가 재촉하듯 발을 흔들었다. 그 바람에 정말로 입술이 신발에 닿을 뻔했다.
‘괜찮아. 이런 거 별거 아니야.’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정말?’
가슴 밑바닥에서 의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애써 무시하고 입김을 호오, 불려고 했을 때였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회장 안을 갈랐다.
“내 딸은 금발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드니 한쪽 어깨에만 망토를 고정시킨 장신의 남자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클까 봐 티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클라티에가 입고 있는 연분홍빛 드레스를.
“파, 파에라톤 공작?!”
후작이 기함해서 외쳤다.
움찔, 심장이 높이 뛰어올랐다 가라앉았다.
파에라톤 공작?
저 사람이?
남자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흔들렸다.
파에라톤 공작.
그는 파에라톤 공녀인 나의 부친이다.
* * *
아무렇게나 서 있는데도 존재감이 엄청난 남자였다.
넓은 어깨와 긴 팔다리.
꽉 조여진 허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엄한 얼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세.
그런데도 숨겨지지 않는 잘생김.
‘와……. 로판 속 남자주인공 같아…….’
심연보다도 더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머리카락과 순결한 비둘기의 피보다도 더 붉은 눈동자.
소설에서 그를 묘사한다면 분명 그런 문장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모든 남자주인공들보다 더 주인공 같았다.
“서, 서부 전선에 계신 것 아니었습니까?”
서부 전선?
후작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 공작이 전쟁에 나가 있었다는 건가?’
몰랐다.
“끝났다.”
“예?”
“끝났다고, 전쟁.”
후작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끝났다니, 분명 아직…….”
“잔챙이들까지 직접 처리할 정도로 내가 한가해 보이나?”
공작의 눈이 벼린 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여전히 삐딱한 자세에 나른한 태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졌다.
클라티에와 후작 부인이 힘들게 숨을 들이켜며 몸을 굳혔다.
“하, 하하, 그럴 리가요.”
후작은 새하얘진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은 채 공작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연락도 없이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무슨 일로 왔는지야 뻔하지 않나.”
공작은 후작을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워낙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여유롭게 움직이는 데도 몇 걸음 만에 클라티에의 앞에 도착했다.
붉은 눈동자가 클라티에를 훑었다.
클라티에는 그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지 못해 고개를 떨궜다.
바들거리는 몸과 퍼렇게 질린 얼굴이 곧 거품이라도 물 것 같았다.
공작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핏빛 눈동자가 느릿하게 스르륵 움직였다.
‘아.’
눈이 마주쳤다.
공작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 비쩍 골은 쥐새끼는 뭐지.”
“그, 우리 집에서 일하는一.”
“설마, 이딴 몰골을 한 자가 파에라톤 공녀라는 건 아니겠지.”
공작의 목소리가 위험하도록 낮게 깔렸다.
곁에서 뭐라 설명하던 후작은 그대로 굳어 말을 잇지 못했다.
후작 일가를 비롯해 주변에 있는 고용인들 모두 호흡조차 쉽게 내뱉지 못했다.
숨 막히는 정적.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짙고 빽빽한 적요였다.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비쩍 골은 쥐새끼.
그야 그렇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었다.
‘이런 내가 자기 딸이란 게 마음에 차지 않겠지.’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그래도一 그래도 저를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모조리 끌어모아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더 이상 여기서 살 순 없다.
이러다간 분명 죽을 거다.
마주한 붉은 눈동자가 설핏 일그러진다.
“뭐?”
“아, 안 씻어서…… 못 씻어서 그런 거예요.”
나는 최대한 단정히 보이려 애쓰면서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입안을 축였다.
“귀찮지 않을 거예요. 저 혼자서도 잘 씻을 수 있어요.”
쿵쿵, 심장이 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저 밥이랑 청소도 잘해요! 밥값 할 수 있어요. 밥도 조금 먹으니까…….”
공작은 말이 없었다.
“구두도 매일 닦아드릴게요! 번쩍번쩍 광나게 닦을 수 있어요!”
점점 용기가 사그라든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고개가 자꾸만 내려가 그의 눈이 아닌 턱선만 보였다.
“그리고, 또, 또一.”
그 턱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 고개는 완전히 바닥을 향했다.
크림의 기름기가 남아 있는, 클라티에의 구두가 보였다.
여긴 싫어.
따뜻하고 아늑하고 쉴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싶었다.
지금도, 전생에서도, 언제나一
“집에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