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0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02화(202/353)
☆ 제202화 ☆
순간적으로 기억에 스치는 게 있었다.
고작해야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내 손은 야무지지 못해서 결과물이 다소 엉성한 바람에 대충 만든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때는 ‘꽃다발이라도 이뻐야지 그놈이 나쁜 마음 안 먹지.’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시드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으니까.
동쪽 정원, 서쪽 정원, 온실, 중앙 화단……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예쁜 꽃을 따왔다.
꽃다발을 만드는데 손 끝에 힘이 들어가 꽃대가 떨어지고 줄기가 뭉그러지고.
손가락에 풀물이 들 정도로 몇 번이고 새로 만들어 그중 가장 예쁜 것을 가져갔다.
어떻게 잊겠는가.
지금도 내가 만든 꽃다발이一 그 꽃다발을 품에 한가득 안겨 줬을 때 시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전부 생생한데.
그날 나는 그 애에게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자유도.
‘……하지만 그건 벌써 6년 전이야.’
이미 다 시들거나 말라비틀어져야 했다.
그러나 눈앞의 꽃다발은 지금 막 피어난 꽃처럼 싱그럽고 생생했다.
내가 손을 뻗어 꽃잎을 만지려는 순간이었다.
“아, 그건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단장이 엄청 애지중지하는 거요. 누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해.”
“……너희가 가져다 둔 게 아니야? 에첸이 자리 비운 지 한 달도 더 지났는데.”
진작 시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음, 그…… 뭐라 해야 하지. 그 꽃은 시들지 않아서.”
바렌이 난감한 듯 뒷머리를 긁적긁적하며 뭐라 뭐라 뒷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여자가 준 꽃다발이라고 확신할 순 없으니까. 가족이 줬을 수도 있고. 그러니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시들지 않는다니 무슨 뜻이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뜻이야?”
다급히 묻는 내 모습에 바렌이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진정하고……. 이 꽃다발은, 그러니까一.”
“네, 맞습니다.”
“야! 네미스!”
바렌이 두꺼운 팔로 네미스를 퍽 쳤지만, 네미스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날 바라보며 이어 말할 뿐.
“아주 오래전부터…… 저희가 단장님을 만나기 전부터 그 꽃다발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그 꽃다발은 절대 시들지 않더군요.”
“…….”
“사흘 밤낮을 잠들지 못하고 사선을 넘어 돌아온 날도,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맬 때도.”
“…….”
“단장님은 그 꽃을 돌봤습니다. 자신의 목숨은 뒤로하면서 까지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어지러웠다.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마저 울렁거리는 느낌.
“수르아? 괜찮아? 뭘 이렇게까지 신경一.”
“이번엔 제가 묻겠습니다.”
네미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네미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단장님께 그 꽃다발을 준 사람이 수르아 씨입니까?”
“뭐?”
바렌이 놀라서 뭐라 말하려는 게 시야 저편으로 보였다.
하지만 네미스도, 나도 바렌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
네미스는 본인이 질문해놓고도 내 대답에 놀란 모양이었다.
바렌이 득달같이 내게 달려왔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수르아, 너 지금一.”
“내가 맞아.”
“…….”
“내가, 에첸에게 준 거야.”
“…….”
에첸에게一 시드에게 내가 주었던 꽃다발.
그걸 아직까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一.
꽃에 손을 대자 보드랍고 연한 꽃잎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렇게 생생하게.
“수르아, 이걸 준 게…….”
“우린 잠시 자리를 비워줍시다.”
“뭐? 야, 나는 아직一.”
네미스가 바렌을 끌고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방안은 완벽한 침묵에 감싸였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테이블에 의지해 겨우 바로 잡았다.
“진짜 모습이 아닌 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
“응, 맞아.”
그때 들었던 에첸의 대답.
“그런데 둘이…… 으응? 이상 하다, 뭐지?”
“둘이 다른데 왜 같지? 헷갈려…….”
환수의 말.
“아…….”
왜 몰랐을까.
왜 못 알아봤을까.
내 마음은 계속 두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는데.
나는 꽃다발을 들어 올렸다.
싱그러운 꽃다발에서는 기분 좋은 꽃향기가 났다.
‘……그때는 엄청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잘 만든 것을 고르고 골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엣헴, 하고 어깨를 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엉망진창이다.
“……바보.”
툭.
눈물방울이 꽃잎 위에 내려앉았다.
“이런 거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이게 뭐라고.
“뭘 어떻게 했길래 아직까지도 갓 따온 것 같아. 대체 얼마나 힘을 많이 쓴 거야.”
“사흘 밤낮을 잠들지 못하고 사선을 넘어 돌아온 날도,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맬 때도.”
“단장님은 그 꽃을 돌봤습니다. 자신의 목숨은 뒤로하면서 까지요.”
“넌 진짜…… 읏, 바보야.”
세상에 다시 없을 바보.
입을 열었지만 더 이상 투덜거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먹먹한 호흡이, 떨리는 숨결이 새어 나왔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 탓에 꽃다발이 흐릿하게 뭉그러졌다가 번지길 반복했다.
시드.
시드.
“으, 흑…….”
시드.
몇 번이나 불러도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너였구나.
너였어.
항상, 언제나 나에겐一.
“……전부 너였어.”
더 이상 울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꽃다발을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가슴에 가득 핀 꽃은 여전히 향기로웠다.
Chapter 32. 열여섯 살의 생일
“그 소문 들었어요? 성녀 말 이에요.”
“아아, 남부에 성녀가 나타났다는 소문이죠?”
“그런데 사실일까요? 몇 년 전부터 그런 풍문이 몇 번 돌긴 했지만, 곧 사그라들었잖아요.”
“맞아요. 진짜라면 그리 쉽게 사그라들었겠어요? 오히려 더 퍼졌겠지.”
“전까진 그랬는데, 이번엔 좀 다른 모양이에요. 글쎄, 제 조카가 남부 상행에 직접 다녀왔는데一.”
“어머! 파에라톤 공녀예요! 드디어 커튼을 걷었네요.”
그 한마디에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일순 말을 멈췄다.
모두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파에라톤 공녀가 커다란 소파 위에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길게 늘어트린 반짝이는 머리카락.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가장 맑은 바다를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눈동자.
그녀가 천천히 살랑이는 부채를 따라서 영식들은 물론 영애들까지 한숨을 삼켰다.
“와……. 정말 오늘도 정말 아름답네요.”
“미하란켈로가 공녀를 모델로 여신상을 제작했다고 하죠?”
“넋 놓고 구경할 때가 아니지. 가서 인사라도一. 앗!”
그러나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이미 파에라톤 공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커튼이 열리자마자 갔었어야 했는데.”
“과연 파에라톤 공녀네요. 그거 아세요? 동부에서도 커튼 치는 게 유행이래요.”
“풋! 생각해 보면 웃겨요. 커튼을 많이 칠수록 사교계에서의 높은 입지를 나타낸다니.”
“파에라톤 공녀는 이야기를 나눌 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커튼을 친 건데.”
“아, 기웃거리면서 자꾸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내린 조치였죠. 근데 그걸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 유행까지 되다니 정말 대단 하달까.”
“사교계에 첫 등장부터 아우로라로 이름을 알렸던 것부터가 범상치 않았죠.”
“공녀의 샤프롱이 되겠다고 공작부인들과 황비 전하는 물론, 황태후 폐하까지 참전해서 신경전 벌였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그때는 파티 나오기 겁났다니까요.”
“결국 승자는 황비 전하셨지만.”
“그게 의문이에요. 왜 황비 전하를 택했을까요? 황비 전하야 워낙 출중하신 분이지만, 아무래도 후계가…….”
“부인.”
잠시 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크흠, 그러고 보니 파에라톤 공녀의 생일이 곧이죠? 초대장 받으신 분 있나요?”
“있겠어요?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인데.”
“저는 그 초대장 하나 받겠다고 사돈의 팔촌까지 인맥을 총동원했는데도 깜깜무소식이네요.”
그들은 아쉬운 얼굴로 다시 파에라톤 공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인파에 묻혀 그 반짝이는 분홍 머리카락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 * *
“공녀님, 저 기억하세요? 저번에 황궁에서一.”
“공녀, 오늘도 몹시 아름다우시군요. 홀 안은 혼잡하니 답답하실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一.”
“공녀님, 저번에 공녀님께서 학술지에 추천하신 책을 읽어 봤어요. 정말 좋았는데, 제 감상을一.”
나는 한숨을 삼키며 내 곁에 몰려든 영애들과 영식들을 바라보았다.
‘……부인들과 한차례하고 나니 이제는 또래들이냐.’
차라리 영애들은 귀엽기라도 하지.
영식들은…….
“공녀.”
“공녀님.”
“공녀님이 나를 보셨어. 이건 푸른 불인가?”
사심이 너무 훤히 보였다.
무엇보다 댁을 본 적 따윈 없거든요?
‘관심 없다니까 그러네.’
그때,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다.
내가 앉은 소파 주위로 겹겹이 둘러싸인 인파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켜, 비켜!”
기어코 사람들을 튕겨내며 내 앞까지 온 영애를 보고 나는 싱긋 웃었다.
돌돌 말린 붉은 머리칼, 살짝 올라간 심술 맞은 눈매가 어릴 때랑 똑같이 귀여운 영애.
“오랜만이야, 포셰트 영애.”
내게 뭐라 큰소리칠 기세로 왔던 포셰트 영애가 입을 꾹 다물었다.
“……오랜만이야, 공녀.”
결국 나오는 건 인사였다.
‘이 점이 귀엽다니까.’
“이게 아니라!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뭔데?”
“저번 자선 파티! 엄청난 기부금을 모았더라? 듣자 하니 신기록이라며?”
“아, 고마워.”
“칭찬한 거 아니거든?! 두고 봐! 내가 더 엄청난 기부금을 모아서 기부해버릴 테니까!”
“응, 좋은 일이네. 힘내!”
“이익! 내가 이길 거야!”
“응, 기대하고 있을게. 좋은 일에 그렇게 앞장서다니 멋있다.”
“흥, 그딴 감언이설에 난 속지 않아!”
포세트 영애가 쌩하고 뒤를 돌더니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튕겨내며 빠져나갔다.
‘정말 폭풍 같은 아이야.’
그때, 포셰트 영애가 빠져나간 틈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자스민!”
내가 아는 체를 하자 사람들이 자스민을 향해 길을 터줬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죄송해요. 자스민과 선약이 있어서요.”
내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안나가 커튼을 쳤다.
‘대체 언제부터 휴게실이 만남의 장소가 되어버린 거지.’
사람들을 피해서 휴게실로 대피하던 게 이제는 아예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야 사람들이 휴게실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아예 홀 안에 커튼 방을 따로 만든 인테리어가 유행 중이었다.
“와, 살았다. 왜 이제야 왔어.”
“미안. 오다가 뭘 좀……. 이거 너한테 전해달래.”
자스민이 들고 있던 바구니를 뒤집자 연서가 우수수 쏟아졌다.
“우와, 이거 우리 아빠한테 걸리면 다 죽을 텐데. 다들 목숨을 내놓고 사나.”
“그러니까 공작저로 못 보내고 나한테 전해달라고 한 거지.”
“매번 너만 고생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커튼이 빼꼼 열리더니 티리엘의 얼굴이 보였다.
“나 들어가도 되지?”
“물론이지.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오다가 좀…….”
티리엘의 품 안에는 또 한가 득 선물과 연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안. 다음부턴 그냥 무시해버려.”
“아니야. 나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받은 거니까. 좀 재밌기도 하고.”
티리엘이 괜찮다며 웃었다.
내 친구들이 이렇게 착한 애들이라 참 다행이야.
“그러고 보니 루루 곧 생일이잖아. 엄청 기대 중이야. 이번 파티는 아뤼르에서 한다며?”
“응, 할아버지가 생일선물로 거기 성을 사줬어.”
“겨울 휴양지로 유명하잖아! 나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서 너무 설레!”
“하긴 제도에서 너무 멀긴 하지. 그래도 초대장에 이동 스크롤이 동봉되어 있으니까 오기도 편할 거야.”
“후후, 진짜 좋아!”
자스민과 티리엘이 꺄르륵 웃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 생일은 나도 꽤 기대 중이야.”
“그래?”
“응.”
열여섯 살의 생일.
다시 말하면 만으로 열다섯이 된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一.
‘15금 소설을 볼 수 있다는 뜻이지!’
그간 연령 제한에 막혀서 소환하지 못했던 소설을 마음껏 소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란 말인가.
“흐흐흐…….”
“루루?”
“응?”
“뭐야, 뭐야. 표정이 음흉해.”
자스민과 티리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혹시 생일에 좋아하는 사람 초대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