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0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03화(203/353)
☆ 제203화 ☆
“설마? 루루는 그런 데에 하나도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에스테반 황자 전하께서 계속 말 걸어도 무시하잖아.”
“무시는 안 했는데.”
조금 억울했다.
내가 얼마나 예의 바른데? 이 정도면 잘 컸다구.
“그게 무시나 마찬가지지. 다른 영식들이 접근해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가까이 지내는 남자애는 라파엘뿐이잖아?”
“역시 라파엘이랑 둘이…… 뭔가 있는 거지?”
“그런 거 아니야.”
“흐응一.”
자스민과 티리엘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날 바라보았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남의 연애사에 관심 많은 건 한결같다.
“정말 그런 거 아냐. 그런 일…….”
나는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는 두껍게 쳐진 커튼이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정말 왔으면 좋겠는데.
“……일어나지 않아.”
벌써 몇 년째.
온갖 소설을 소환해도, 그 어떤 능력을 뽑아도 마계로의 게이트를 열 수 없었다.
“…….”
“뭐, 그래. 나도 진짜 연애보다는 너희들이랑 연애 이야기로 수다 떠는 게 좋아!”
“나도, 나도! 진짜 남자애들이랑 얘기하는 건 별로 재미없더라.”
자스민과 티리엘이 양옆에서 씩 웃으며 내 팔짱을 착 꼈다.
“그러고 보니 소식 들었어? 글쎄, 미첼로인 영애가 파브넬 영식과 광장에서 함께 있는 걸 본 사람이 있대!”
“정말? 웬일이야!”
재잘재잘 떠드는 자스민과 티 리엘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클라우디아랑 만나면 한번 떠봐야겠다.”
내 말에 자스민과 티리엘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갑자기 쳐져 있는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미첼로인 영애가 연애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는데.”
“연애도 엄청 차분하고 똑똑하게 할 거 같아.”
“그래? 난 클라우디아 같은 사람이 연애할 때 오히려 더 귀여워질 거 같은데.”
우리는 쿠션을 푹 끌어안은 채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며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 * *
그 후로 한 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렀다.
그러나 멈춰있진 않아서,
‘드디어……!’
그날이 왔다!
열두 시가 땡 치는 것과 동시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열여섯 살 생일!
드디어 만으로 열다섯 살!
나는 떨리는 손길로 아키투스를 쓸었다.
그간 조금이라도 마계와 연관된 소설은 다 소환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애초에 마계로 통하는 게이트를 연 여주 자체가 거의 없고.’
특히 전연령 소설에서는.
15금 피폐물을 파다 보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아직도 그 애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살아있어.
나는 알아. 그 애가 얼마나 강한지.
‘하지만 마물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곳에 가득한 사기가 그 애의 생명을 갉아먹고도 남았을걸.’
아니야. 악트셰라켄도 그랬어. 마족과 접촉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그 애가 마족과 접촉하면 소식이 올 거라는 말도 했지. 하지만 벌써 몇 년째 아무 기별도 없잖아?’
“……아니야. 시드는 살아있어.”
‘그 애는 네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어. 돌아올 거라고도 하지 않았지. 찾아오라고도, 도와 달라고도, 구해달라고도 하지 않았어.’
“…….”
‘미련을 놓지 못하고 붙잡는 것은 네 아집 아닌가?’
가슴이 턱 막혔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가슴 저편에서부터 울리는 목소리를 밀어냈다.
두툼한 앞발이 턱, 하고 내 다리를 건드렸다.
“우리 니케 깼어?”
나는 니케를 안아 들었다. 니케가 꼬물꼬물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마마, 아프지마아…….”
“엄마 안 아파.”
“거짓말……. 오늘은 기쁜 날이잖아. 마마가 태어난 날이야. 그렇지?”
“응.”
“아픈 건 니케가 할게. 마마는 행복하기만 해.”
“아이고. 그건 절대 안 돼. 내 새끼는 항상 행복해야지.”
“니케가 선물 줄게.”
내 품에 안긴 니케가 앞발로 자기 얼굴을 폭 가리더니 이내 활짝 폈다.
“까꿍! 니케가 마마 선물이다!”
활짝 펼친 앞발에는 바짝 힘이 들어가 발톱까지 섰다. 폭신폭신한 꼬리까지 빳빳해졌고.
“윽…….”
“마마?”
“……너무 귀여워.”
“헤헤, 니케는 마마의 귀여운 아가니까.”
“오구오구, 내 새끼.”
나는 니케를 끌어안고 마구마구 배방구를 했다.
꺄르르륵, 거리는 니케의 웃음소리 너머로 다른 소리가 들렸다.
“가증스러워.”
“어디서 귀척이야.”
“저놈 실제 성격을 솜뭉치가 알아야 하는데.”
고개를 드니 가족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
“이 늦은 시간에 다 같이 무슨 일이야?”
내 말에 아레스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장 먼저 내 동생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뭐, 난 딱히 그렇게까지 신경 쓴 건 아니고. 그냥 가는 길에 들렀는데.”
“익시온 방은 내 방에서 반대편이잖아.”
우리 가족은 지금 내 생일 파티를 위해 할아버지가 새로 사 준 성에 와 있는지라 방 배치가 공작저나 공작성과 달랐다.
내 옆 방은 할아버지 방이었다.
“……산책 좀 했어.”
“자정 넘어서?”
“뭘 그렇게 따져.”
익시온이 고개를 돌렸다. 뺨이 살짝 붉었다.
“루루, 생일 축하한다.”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요.”
히히 하고 웃자 아빠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아빠랑 파티장에 들어갈 거지?”
“무슨 소리야. 이 할애비 손을 잡고 가야지. 이 성의 구조는 내가 잘 알아.”
아하.
다들 그게 목적이었구나.
“성의 구조랑 에스코트랑 무슨 상관인데요. 솜뭉치, 나랑 갈 거지?”
퉁명스러운 익시온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짙은 꽃물이 들었다.
“내 동생, 내게 열여섯 살의 생일 파티에서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겠어?”
아레스가 내 손을 살포시 쥐고는 입술을 묻었다.
“같이 있을래.”
뒤에서 나를 푹 끌어안으며 투정 부리는 제온까지.
“루루. 아빠다.”
아빠가 어렸을 때처럼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이 할애비는 장수할 예정이지만 앞날이 어찌 될지.”
그 와중에 병약 미노년께서는 병약미를 뽐내고 계셨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서로를 노려보면서 견제질까지.
“하아…….”
머리 아파.
매년 내 생일 때마다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네.
이젠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한결같은 게 어떤 의미론 참 대단했다.
“싸우면 아무하고도 같이 안 들어갈 거예요. 니케랑 들어갈 거야.”
“엣헴!”
니케가 통통한 배를 뽈록 내밀었다.
가족들이 불만 어린 눈으로 니케를 노려봤다.
“히잉, 마마. 니케 무쪄.”
“왜 애를 노려보고 그래요.”
“그게 아니라 저놈이……. 아니다, 됐다.”
익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족들은 부루퉁한 얼굴을 했지만 내 협박, 아니, 설득이 잘 먹힌 건지 싸우지 않았다.
* * *
“와, 아뤼르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고성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타렌카 후작이 손녀딸의 생일을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 사들인 다음, 내부를 싹 다 고쳤다면서요?”
“어쩐지. 이렇게 아름다운 성은 처음 보는 거 같아요.”
“겨울이 없는 남부 끝과는 다르게 겨울이긴 겨울인데 온난하다는 게 참 좋네요. 겨울 정취는 있되 활동하기 편하고.”
“그러고 보니 재작년인가 파에라톤 공녀의 생일에는 가족끼리 휴양 섬에서 보냈다고 했죠. 거긴 남반구에 있어서 지금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던데.”
“공작 각하께서 정말 따님을 아끼시나 봐요.”
“각하뿐인가요? 공자들이 막냇동생을 어찌나 감싸고 도는지. 공녀 또래의 영식들 사이에 서는 공자들에게 들키지 않고 파에라톤 공녀에게 말 거는 게 소원이래요.”
“매년 새로운 섬이며 성을 사 주는 타렌카 후작님은 어떻고요.”
루아티샤의 생일 파티에 참석 한 사람들은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온 제국의 중심이 되는 소녀의 이름이었다.
황녀가 없는 제국에서 지금 파에라톤 공녀보다 더 지고한 소녀는 없었다.
무려 파에라톤 공작가의 직계에 황비가 샤프롱이다.
그야말로 로열 중의 로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우로라로 선정된 것부터 시작해 스스로의 능력까지 다년간 증명하지 않았던가.
나이 든 귀부인들을 제치고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레이디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오늘 생일 파티에 사용한 조명, 실내 장식, 카펫, 휘장부터 시작해서 루아티샤가 몸에 걸친 모든 것들이 유행이 될 터였다.
그때였다.
호명관이 주인공의 등장을 알렸다.
“파에라톤 공녀님과 공녀님의 파트너들이 입장합니다!”
응? 파트너들?
‘무슨 호명이 저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래도 파트너의 이름은 말해야 하지 않는가.
이건 마치 자기 이름보다는 ‘내가 공녀의 파트너다!’ 하고 자랑하는 것만 같은…….
그 순간, 계단 위에서 파에라톤 공녀와 파에라톤 공작 일가, 타렌카 후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말을 잊고 숨을 삼켰다.
열여섯 살의 생일을 맞은 소녀는 그야말로 전신에서 빛을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주인공의 등장에 회장 안은 오히려 고요한 침묵에 휩싸였다.
* * *
“공녀, 괜찮으시면 제게 함께 춤을 출 영광을…… 히익!”
대체 몇 번째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져서 도망가는 영식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편하긴 편한데.’
휙 뒤를 돌아보니 오빠들이 딴청을 피웠다.
‘보통 오빠들이 곁에 있으면 아예 다가오지도 않던데.’
오늘은 다들 왠지 무리를 해 가면서까지 말을 걸었다가 도망간다.
“나만 보지 말고 영애들이랑도 좀 놀아. 다들 은근 기대하는 거 같던데.”
“제온 님 카리스마 넘치는데 귀여워. 귀여운데 카리스마 넘쳐.”
“아레스 님이 동생한테 지어 주는 미소 좀 봐. 하늘에 태양이 두 개라니 이게 말이 돼?”
“익시온 님이랑 지독하게 얽히고 싶다. 몇 년째 같은 꿈만 꾼다.”
아까 영애들이 소곤거리던 걸 들었다.
“관심 없어.”
“내 동생과 생일날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쓰다듬어줘.”
어휴.
나는 제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결혼은 할 수 있나. 제온은 슬슬 결혼할 때도 됐는데.’
누군지 몰라도 오빠들 데려가는 사람한테 고맙다고 절해야 할 판이다.
고개를 돌리니 재잘재잘 신나게 늘고 있는 티리엘과 자스민, 아쉘타인의 쌍둥이들과 클라우디아, 타이셸 영애가 보였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그들이 날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평화롭다.’
손가락에 감기는 제온의 머리카락은 매끄러웠다.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오랜만에 안온함이 찾아왔다.
“야.”
툭, 치는 손길에 고개를 드니 라파엘이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오빠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치를 보고 라파엘을 쫓아내진 않았다.
“생일 축하한다.”
“아까 축하해주고 선물도 줬잖아.”
“그건 공식적인 거고.”
라파엘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나마 좀 낫네.”
“뭐가?”
라파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새삼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아빠의 전폭적인 지원一주로 금전적인一을 받아 유트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생일 드레스는 선녀의 날개옷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 옷을 입으면 누구나 미모 버프를 받을 느낌.
“내가 오늘 좀 이쁘긴 하지?”
내가 엣헴, 하고 잘난 척을 하자 라파엘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뭐래. 누가 예쁘대?”
“오늘 좀 낫다며?”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一.”
“나 오늘 안 예뻐?”
“……윽.”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라파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건…….”
그가 답지 않게 우물쭈물할 때였다.
후후, 아무리 라파엘이라고 해도 생일 주인공한테 험담을 하긴 힘들겠지.
그때였다.
“예쁘다고 하면 죽는다.”
“안 예쁘다고 해도 죽어.”
“숨 쉬어도 죽는다.”
아니, 오빠들아.
“가만히 좀 있지. 지금 대답 들었으면 앞으로 5년간 라파엘 놀릴 거리가 생기는 건데.”
내가 투덜거리자 라파엘의 얼굴이 벌게졌다.
“뭘 놀릴 거리가 생겨! 못생겼다고 할 생각이었거든?! 못생겼어! 오늘따라 유독 더 못생겼다!”
“뭐, 라, 고?”
“못 뭐?”
“그딴 단어를 감히 내 동생한테 붙인 건 아니겠지?”
오빠들이 살벌한 기세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라파엘을 향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명복은 빌어줄게.”
* * *
오빠들이 라파엘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는 정원으로 나왔다.
볕이 좋다.
과연 따뜻한 겨울로 명성이 높은 아뤼르다웠다.
나는 미소 지으며 겨울 햇살 아래를 거닐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생일 파티.
그래.
오늘은 기분이 좋아.
우울해할 것 없어.
나는 차분차분 내딛는 발걸음을 보며 걸었다.
쏴아아아아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내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햇살과 나뭇잎 그림자가 수놓은 자리에,
“아.”
환상처럼, 혹은 거짓말처럼一 누군가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