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0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04화(204/353)
☆ 제204화 ☆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음 순간에는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만들어 낸 신기루인 줄 알았고.
그다음 순간에는一.
“오랜만이야.”
신기루여도 좋았다.
“내 주인님.”
곧 깨질 환상이라도 좋으니 믿고 싶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이제는 청년이 된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창백한 겨울 햇살에 황금빛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나는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바짝 굳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가 천천히 걸어 내게 다가왔다.
“…….”
내게 다가왔다.
그가.
“돌아왔어.”
낮은 목소리.
기억과는 달랐다.
달라진 건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그는 훌쩍 커서 꼭 어른 같았다.
큰 키에 넓은 어깨.
단단하게 여문 턱선이 날카롭고 눈매는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시드였다.
얼굴, 골격, 목소리. 모든 것이 다 달랐지만.
그래도 시드였다.
“…….”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거리에 시드가 있었다.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몇 번이고 상상했다. 몇 번이고 꿈꿨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돌아오기를, 아예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이 질 나쁜 악몽이기를.
입술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야?”
몇 번의 달싹임 끝에 겨우 흘러나온 말은 고작해야 그거였다.
“응.”
시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야.”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무너져 내렸다.
시드가 황급히 내게로 손을 뻗었다.
탁!
나는 거칠게 그의 손을 쳐냈다.
“건드리지 마.”
고개 숙인 채, 비틀거리면서도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혼자 버텨 섰다.
시드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루아티一.”
“왜, 왜 멋대로!”
나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멋대로 구해주러 와서, 네 멋대로 혼자 남고!”
이게 아닌데.
“네 멋대로 나 대신 희생하고…….”
고맙다고, 무사히 돌아와 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내가 언제, 언제…….”
보고 싶었다고, 정말 그리웠다고.
“언제 그러랬어……. 왜 네 마음대로, 그렇게, 그렇게…….”
“미안.”
“…….”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마. 응?”
시드는 차라리 우는 게 나을 정도로 애타고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더 바라보지 못하고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마음은 이게 아닌데.
당장 시드를 끌어안고 혹시라도 상한 곳은 없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정말 괜찮은 건지 확인하고 싶은데.
그냥 다 필요 없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며 보듬어주고 싶은데.
“…….”
몇 번이나 시드가 돌아오는 꿈을 꿨다. 그 꿈속에서 내 반응은 언제나 달랐다.
어느 날은 울었고 어느 날은 웃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를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루아티샤.”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고 싶은데, 뒤돌아보고 싶은데,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데.
이상하게 내 발걸음은 앞만 향할 뿐이었다.
시드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다.
당연했다.
기껏 날 대신해서 마계에 가 죽다 살아 돌아왔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그가 질릴 만도 했다.
‘……이게 좋은 거야.’
나로 인해 희생하는 바람에 시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내가 그를 금제에서 구한 은인이라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많이.
‘그러니 이제는 완전히 끊어내는 게 맞아.’
아무리 가슴 아파도 도려내야 한다.
그때.
등 뒤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얼어있는 내 몸을 감쌌다.
마른 풀 냄새가 났다.
시드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것이다.
“……이거 놔.”
몸을 틀었지만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그렇게
나를 안고 있었다.
어느새 나마저 움직임을 멈춘 채 잠자코 서 있었다.
위태로운 침묵.
나는 새삼 그의 손가락이 내 쇄골에 닿아 있다는 걸 의식했다.
“나를 가졌을 땐 언제고 이리 매몰차게 버리시다니.”
낮아서 살짝 낯선 목소리에 소름이 쭈뼛 섰다.
“내 주인님께선 매정하셔라.”
그가 속삭일 때마다 짙은 숨결이 내 귓불에, 목덜미에 흩어졌다.
사실은, 이대로 있고 싶었다.
뜨거운 온기만큼이나 그가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나서.
그냥 영원히 이대로 안겨있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몸을 틀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나를 끌어안은 시드의 팔에
더 힘이 꽉 들어갈 뿐이었다.
“이거 놔.”
“싫어.”
“…….”
“나 버리지 마.”
“너 바보야?!”
나는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내게 밀려난 시드가 쿵, 하고 벽에 부딪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그를 벽으로 몰아붙이며 화를 냈다.
“기껏 돌아왔는데 화만 내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면서 돌아가야지!”
“…….”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고맙단 소리 한마디 안 하냐면서 침을 뱉어야지!”
“…….”
“왜 버리지 말라면서, 그런 목소리로 나를 붙잡아. 왜…….”
눈물 탓에 시드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게 너무 짜증 나고 서럽고 슬펐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 데, 얼마나 바라고 바라서 애간장이 다 녹아내렸던 얼굴인데 왜 잘 안 보여.
“……너무 유혹하지 마.”
“뭐?”
눈물이 흘러내린 시야에 일순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안 그래도 참고 있으니까.”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나는 그의 멱살을 꽉 잡아챘다.
시드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 어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대로 그를 내게로 확 끌어당겼다.
“…….”
입술이 맞닿았다.
* * *
파에라톤 공작은 긴 다리를 비스듬히 꼬고 앉은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마계에서 큰 고생을 했을 게 분명한데도 시드리한의 얼굴은 흠집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파티 중간에 잠시 산책을 나갔던 딸아이가 혼이 쏙 빠진 채 돌아왔을 땐 무슨 일인가 했다.
그 직후 그대로 자리를 뜰 때는 큰일이라도 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오랜만입니다.”
시드리한이 돌아왔다니.
‘……그럴 만도 하군.’
파에라톤 공작의 시선이 딸아 이에게 닿았다.
루아티샤는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힐끔힐끔 시드리한을 훔쳐보고 있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그게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무사히, 잘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긴 침묵 끝에 파에라톤 공작이 입을 열었다.
“내 딸을 위해 황자가 한 고생은 잊지 않겠습니다. 파에라톤이 황자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었습니다.”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파에라톤 공작이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도, 빚을 지었다고 하는 것도.
하지만 진심이었다.
무려 딸아이를 구한 은인이 아니던가.
고개를 몇 번을 숙여도 부족했다.
만약 시드리한이 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제 목숨을 요구한다면 아무 고민 없이 당장 내놓을 수도 있었다.
“제가 원해서 한 일일 뿐입니다.”
시드리한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어째 저 말끔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좀.
대답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고.
아니, 고마운 건 정말 고마운데.
목숨을 원한다면 바로 줄 수 있다는 마음도 거짓 한 점 없는 진심인데.
‘……마음에 안 들어.’
왠지 저 놈이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빼앗아 갈 것 같은 더럽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파에라톤 공작은 영 불쾌한 시선으로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그게 타렌카 후작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과 똑 닮았다는 건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뭐, 어쨌든 나도 고마워.”
“나 역시 황자님께 감사드리오. 타렌카 후작가는 언제든지 황자님의 힘이 되어드릴 것을 약속드리는 바요.”
“내 동생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자님.”
익시온과 타렌카 후작, 아레스가 차례로 시드리한에게 감사를 표했다.
참 미묘한 감사였다.
분명 진심이 느껴지는데 그들의 눈빛은 은인을 보는 것과는 퍽 달랐다.
은인이라기보단…… 언제 날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 놈팡이를 보는 것처럼…….
그나마 그들은 나은 편이었다.
대체 무엇에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제온은 멍하니 앉은 채 같은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벽쿵…… 내 꺼인데, 막내가 나에게만…….”
그의 눈에는 초점이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제온 녀석은 왜 저래?”
“아, 아무것도 아냐!”
루아티샤가 황급히 익시온에게 답했다.
그렇게 답하는 그녀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었다.
평소라면 귀엽다면서 깨무는 시늉까지 했을 가족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와……. 기분 진짜 더러운데. 왜지?”
익시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레스는 생글생글 웃으며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살벌한 웃음도 웃음이라고 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타렌카 후작은 팔짱을 낀 채 사위와 똑같은 얼굴로 시드리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흠, 흠.”
루아티샤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시드, 황궁에는 다녀온 거야?”
“아니. 곧장 여기로 왔어.”
“어? 집에도 안 가고?”
“네가 여기 있잖아.”
시드리한이 루아티샤를 향해 눈매를 휘며 미소 지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였다.
“크흐흐흐흠!”
“흠흠, 흠!”
사방에서 불편한 헛기침을 터져 나왔다.
물론 시드리한은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았다.
그가 루아티샤를 향해 속삭였다.
“주인님이 있는 곳으로 와야지.”
“치, 내 말 하나도 안 들어놓고선. 자기 좋을 때만 주인님이래.”
루아티샤가 뾰로통하게 투덜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막둥이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
거기다 무슨 상황이어도 가족을 우선하던 아이가 불편한 헛기침이나 눈빛 따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하다니.
“……내 손녀가, 내 손녀가. 으윽…….”
한번 겪어서 트라우마가 있는 타렌카 후작이 비틀거렸다.
그러나 평소라면 하던 것도 멈추고 당장 달려왔을 손녀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제 엄마랑 어쩜 저리 똑같지?’
타렌카 후작은 루아티샤에게서 파에라톤 공작과 결혼하겠다며 자기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이나이스의 모습을 보았다.
가족들이 충격을 받든 말든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은 둘만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난 칭찬받아야 하는데.”
“말 안 들어놓고?”
“네가 그랬잖아. 내 마음대로 살라고.”
“…….”
“그래서 내 마음대로 했어.”
시드리한이 미소 지었다.
그날, 자신의 금제를 해주하느라 피까지 토하며 쓰러진 루아티샤를 보고 결심했다.
멋대로 주인이 되어서, 멋대로 자신을 구원하고, 그러다가 네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라면서 멋대로 버릴 때.
단 한 번도 네 명령 따위들은 적 없지만 그 명령만은 듣겠다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고.
주인님 네 말마저도.
“끝까지 잘했다고 하지.”
루아티샤가 입술을 내밀며 화를 냈다.
“다시는 그러지 마.”
“…….”
“진짜로, 다시는…… 제발 그러지 마. 나 너무, 힘들었어.”
시드리한은 다시 또 눈물에 젖는 루아티샤의 눈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떨리는 루아티샤의 손을 꽉 붙잡자 그녀가 마주 잡아 온다.
간절한 눈빛.
항상 마주하고 싶었던 눈동자가 정확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눈동자를 다시 보기 위해 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속할 수 없어. 같은 상황이 오면 나는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미안.”
나직한 사과에 루아티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우는 대신 부러 과장스럽게 화를 내며 팔짱을 꼈다.
“이것 봐. 이러면서 주인님이래. 노예가 될 자격도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녀가 시드리한을 향해 말했다.
“어서 황궁에 가자. 가서 가족부터 만들게.”
“……응?”
시드리한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가족이 생기면 앞으로 그렇게 쉽게 안 떠나겠지. 무모한 선택도 안 하고.”
“……내게 가족을 만들어준다고?”
루아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드리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러고 보니 전에 애 많이 낳자고 했지.”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