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1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10화(210/353)
☆ 제210화 ☆
“얘도, 참……. 혼나는 데도 좋다고 웃다니.”
황비가 나를 흘겨보더니 꽉 끌어안았다.
“……고맙구나. 시드를 위해서 그렇게 화내주어서. 다른 사람들은 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까지 말하지 못했을 텐데.”
“제가 화딱지 나서 그런 건데요, 뭘.”
“그래, 네 불같은 성격은 내가 제일 잘 알지.”
황비가 웃으면서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 루루가 좋아하는 초코가 듬뿍 발린 마들렌을 준비해 뒀단다. 어떠니?”
“어…….”
“크림을 듬뿍 넣은 홍차도 있어. 페르알렌에서 진상한 거란다. 새순만 딴 거래. 좋아하지?”
“……황비님, 왜 저 꼬셔요?”
“에이, 꼬시긴.”
황비가 눈을 장난스레 찡긋했다.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우리 시드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하고.”
아, 아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구나.
그러실 만하지.
“그러다가 앞으로 가족 계획도 좀 말하고.”
……응?
“결혼식은 어디가 좋을까? 웨딩드레스랑 이거저거 준비할 게 많은데. 날은 봄이 좋겠지? 본비가 길일을 알아보마.”
네?
“시아빠가 저래서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걱정하지 말렴. 그냥 우리끼리 오순도순 살면 되지. 저 이까지 가족으로 품을 필요 없어.”
예?
그거 황제도 동의한 말이에요?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니까. 지 때문에 이 혼사 막히면 책임질 거야, 뭐야.”
작게 투덜거린 황비가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지금 부르나 나중에 부르나 어차피 같은데. 엄마라고 불러 보렴?”
* * *
어쩐지 적극적인 황비님이 무서워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빠져나왔다.
‘따라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루아티샤.”
지쳐서 터덜터덜 걷는데 나를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별로 반갑지는 않은 음성이었다.
‘못 들은 척할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안 들리는 척하는 거 다 알아. 방금 멈칫했잖아.”
어휴.
그럼 눈치껏 가던 길 가지.
“어머나, 황자 전하. 이런 곳에서 다 뵙네요.”
“이런 곳이라니, 황궁인데?”
“그러니까요.”
나는 더 환하게 웃었다.
꼽 주는 걸 다 알았을 텐데도 에스테반은 화를 내긴커녕 오히려 피식 웃었다.
나는 무릎을 굽혔다.
“황자 전하를 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一.”
“그런 예는 차리지 않아도 괜찮대도. 슬슬 날 편하게 부를 때도 되지 않았어?”
에스테반이 내 손을 잡고는 날 일으켜 세웠다.
나는 손을 뒤로 물리며 답했다.
“저는 이게 편해서요.”
“그래?”
잠시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에스테반이 입을 열었다.
“시드리한이 돌아왔다던데.”
“네, 축하드려요.”
“축하?”
“동생 분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축하드려야지요.”
에스테반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맞아, 축하받을 일이지. 하지만 내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래요?”
“그래. 다들 어떻게 하면 시드리한을 황궁에서 완전히 배제 시킬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만 떠들어.”
“…….”
“이제야 내 말에 좀 관심을 갖네?”
“……전하께서 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시드리한을 어떻게 할 생각 따윈 없어. 네 말처럼 내 동생이기도 하고, 그놈이 내 입지를 위협할 수도 없고.”
“위협할 수 없다?”
“그래. 어렸을 때야 그랬던 적도 있지. 하지만 다 지난 일이야.”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에스테반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니 너도 포기해.”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시드리한을 데리고 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녀석과 가까이 지내고 있지.”
얘는 황태자씩이나 되는 놈이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나?
“루아티샤, 그거 동정이야. 미련이고.”
“…….”
“넌 모든 것을 가졌지. 시드리한은 네 손에 들어왔다가 처음으로 잃어버린 것이라 그래.”
뭐래.
“이제 돌아왔으니 됐지 않아? 굳이 네 손에 다시 쥐어보고, 그게 사실 얼마나 볼품없고 하찮은지 확인해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언제부터 제 교우 관계가 황자 전하께서 참견할 일이 된 건지 모르겠네요.”
“루아티샤.”
“황자님과 저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에스테반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의 등 뒤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시종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위협할 수 없다고 하셨나요? 확인해봐야 볼품없고 하찮다고?”
“그래. 그러니 너도 네게 어울리는 상대를 선택해.”
에스테반의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화, 황자 전하.”
바로 앞까지 달려온 시종이 에스테반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감히. 지금 내가 파에라톤 공녀와 이야기 중이지 않느냐!”
“화, 황공합니다. 하지만 큰일이 나서…….”
“큰일?”
“황제 폐하께서 황후 폐하께 무기한 금족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
여유로웠던 에스테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황제궁에서 나왔다는 사실 때문이겠지.
나는 씨익 웃었다.
‘그래, 내 작품이야.’
내게 화를 내고 돌아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에스테반은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
“……?”
뭐지?
그림자가 일렁이듯 어둑한 눈동자.
“역시 넌一.”
그가 내게 바짝 다가서며 내게로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탁!
갑자기 나타난 손이 에스테반의 손을 거칠게 튕겨냈다.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누굴 만지려는 거지.”
“시드?!”
시드가 내 어깨를 감싸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탄탄한 가슴팍이 느껴졌다.
에스테반은 잠시 말없이 나와 시드를 번갈아 보다가 미소 지으며 물러났다.
“……주인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다 물려고 하는 게 못 배운 도사견 같군.”
에스테반이 재차 내게로 손을 뻗었다.
나는 움찔하는 시드의 손을 꽉 붙잡았다.
에스테반이 미소 지으며 내 손등 위에 키스했다.
“그럼 다음에 또.”
인사한 그가 유유히 뒤를 돌아 걸어갔다.
시드리한이 곧바로 튀어 나가려고 해서 나는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시드. 안 돼.”
나를 돌아보는 보랏빛 눈동자에는 아직 채 갈무리하지 못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여기서 저 새끼 패버리는 건 쉽지만, 뒷수습이 골치 아파. 그리고 패봤자 오히려 좋아할 걸?”
“뭐?”
움찔, 시드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놀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저 새끼도 그런 취향이야? 아니, 그보다 그런 취향인 걸 내 주인님이 어떻게 아는데?”
응?
“무슨 소리야? 패버리면 그걸로 건수 잡아서 정치적으로 압박할 거리 생기니까 좋아하는 거지.”
내 말에 시드가 “아…….”하며 고개를 돌렸다.
“난 또.”
귓불이 붉다.
“근데…… ‘저 새끼도’라니?”
“아무것도 아니야.”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봤지만, 시드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뭐야. 진짜 안 말할 거야? 진짜로? 정말로?”
바짝 다가가서 추궁하는데도 시드의 입술을 열릴 줄도 몰랐다.
몇 번 더 추궁하다가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야.”
시드가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너 지금 즐기고 있지?”
“…….”
짜식.
건강하네.
이 할미가 아주 건강하고 늠름하게 잘 키웠어.
* * *
“모후.”
“황태자!”
황후가 벌떡 일어나 에스테반에게 다가왔다.
“이 어미의 억울함을 들어주세요. 폐하께서는 무심도 하시지 어떻게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떨어트릴 수 있단 말입니까!”
에스테반은 하소연하는 황후를 붙잡은 채 주변을 둘러봤다.
깨진 집기부터 시작해서 이마에 멍이 든 궁인까지 보였다.
“폐하께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그건一. 나도 잘 모릅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일을 트집 잡아서 그러시는데.”
시선을 피하는 황후를 보며 에스테반은 그녀가 거짓말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차피 과거에 저질렀던 많은 잘못 중 하나겠지.’
“옛날 일을 이제 와서 끄집어내는 걸 보니 우리 모자를 핍박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드리한, 그 천것이 돌아와서 그런 겁니다!”
“…….”
“듣자 하니 파에라톤 공녀가 폐하께 다녀갔다면서요. 그 요망한 계집이 또!”
“모후.”
“나는 몇 번이나 그 계집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그 계집 때문에 망신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어도 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게 몇 번입니까. 그런데도 그년이……!”
“상관없습니다.”
“황태자!”
“어차피 그 여자는 내 것이 될 테니까.”
황후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도 그런 소리입니까!”
에스테반은 황후를 소파에 앉혔다.
“우선 심기를 가라앉히고 쉬십시오. 폐하께서 무게추를 조금 더 놓는다고 해서 저울이 움직이는 일 따윈 없으니.”
“……에스테반.”
“쉬십시오. 저는 중신들과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에스테반은 그 길로 뒤를 돌았다.
황후는 그를 다시 부르려다가 손을 내렸다.
탁.
황후는 무정하게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떨리는 숨결이 그녀의 잇새에서 새어 나왔다.
다과를 들고 오던 시녀가 놀란 눈으로 황후에게 물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벌써 가셨나요?”
“……황태자로서 바쁘니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폐하께서 이 방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데.”
“황태자 전하께서도 너무하십니다. 황후 폐하께서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전하를 챙기셨는데.”
“어떻게 황제 폐하께 말씀드려 금족령을 풀겠다는 말도 없을 수가 있죠?”
“그냥 갇혀 있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잖아요!”
황태자와의 대화를 지켜보았던 시녀들이 분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되었다.”
황후가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시녀장이 황후에게 차를 건네며 말했다.
“폐하, 황태자 전하의 행동이 일견 냉정하게 비칠 수 있지만, 사실 가장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황후의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 황제 폐하께 찾아가서 모후의 금족령을 풀어달라고 청하면 황제께서 뭐라 생각하시겠습니까. 제왕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시겠지요.”
“…….”
“만약 일이 잘 풀려 금족령을 풀어주신다고 해도 황태자 전하께서 양보해야 하는 일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양보한 일은一.”
“그 천것에게 돌아가겠지.”
“황공합니다.”
황후는 고개 숙인 시녀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인의 말대로야. 에스테반은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어.”
“그럼요. 가히 명군이 되실 분 아니십니까.”
“하지만 마음에 걸려.”
황후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어차피 그 여자는 내 것이 될 테니까.”
에스테반이 그런 눈을 하다니.
아니, 사실 이전에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전부 한 사람과 관련되어 있었다.
“……파에라톤 공녀.”
“…….”
“해가 가면 갈수록 더더욱 거슬리는구나. 그래도 그 천것이 죽었으니 좀 거슬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천것과 손을 잡고 감히 이 나를 몰아내려 해?”
“폐하의 염려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파에라톤 공녀는 쉽게 건들 수 없는 상대입니다. 아우로라 출신에 사교계의 메이퀸이자 3대 사교 클럽인 메티스의 핵심 인물이잖습니까.”
“여태까지 수많은 레이디가 사교계에서 이름을 떨쳤지만 이 정도로 로열로드를 걸은 영애는 없었어요.”
“이번 대의 아우로라조차 파에라톤 공녀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니 향후 10년간은 파에라톤 공녀의 사교계일 겁니다.”
“거기다가 파에라톤 공작가와 타렌카 후작가라는 배경까지 있으니一.”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것 같은가!”
황후가 역정을 냈다.
“그래서 나도 쉽게 못 건드리고 있는 것 아니냐!”
“황공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작은 싹이었을 때 진작 밟았어야 했어. 황후씩이나 되어서 딸뻘밖에 안 되는 아이를 핍박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몇 번 참아줬더니……!”
이제는 밟고 싶어도 밟지 못한다.
파에라톤 공녀의 입지가 너무 커져 버린 데다가 자신은 이 궁 안에 갇힌 신세가 아니던가.
“폐하.”
시녀장이 황후의 어깨를 살짝 짚었다.
“어른이 나서 봤자 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一.”
“하니 또래를 키워주면 될 것 아닙니까.”
황후가 솔깃한 눈으로 시녀장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파에라톤 공녀를 상대할 만한 아이가 있기나 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파에라톤 공녀 정도의 수완을 따라올 영애는 아무도 없었다.
더 똑똑한 영애는 있다.
더 아름다운 영애도 있고.
하지만 사교계에서의 입지란 그런 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사로잡는 일이니까.
무엇보다 꽤 총명하다고 이름 난 영애들은 어째서인지 다 파에라톤 공녀를 좋아했다.
“그 여우 같은 계집이 사람을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
“원래 빛이 있으면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그 빛이 자신을 비추고 있을 땐 어둠을 드러내지 않지요.”
“그 말은一.”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파에라톤 공녀를 싫어하는 영애들도 있을 거란 말입니다. 워낙 파에라톤 공녀의 빛이 강해 아닌 척하고 있을 뿐.”
“……일리 있는 말이야. 그런 자들이 새로운 세력에 힘을 실어 주겠지.”
황후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건 전제부터 난관이 따랐다.
“하지만 말했듯 파에라톤 공녀를 밀어낼만한 영애가 없지 않은가.”
“중앙 사교계에는 없지요.”
시녀장이 미소 지었다.
“폐하께서도 한 번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남부에 나타난 성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