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1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12화(212/353)
☆ 제212화 ☆
제온의 눈빛은 한없이 진지했다.
나른하게 누워 있는 몸을 일으킨 제온이 내게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간질였다.
“쓰다듬어줘.”
아이고.
아직 애구나, 애.
나는 제온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차르르 윤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매끄럽게 내 손가락에 감겼다.
제온이 눈을 반쯤 감은 채 갸르릉대며 미소 지었다.
‘평화롭다.’
시드가 돌아왔기에 더 이상 시간이 흐르는 게 초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됐다.
‘내일도 시드랑 만나기로 했고.’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드니 제온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무슨 생각하길래 그렇게 웃어?”
“어?”
당황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제온이 시드의 궁으로 쳐들어갈 것 같았다.
“다, 당연히 제온 생각이지!”
히히 웃자 새초롬하던 제온의 눈초리가 강아지처럼 풀렸다.
“안아줘.”
어휴.
나는 제온을 끌어안고 토닥토닥해줬다.
‘대체 언제 클까, 우리 오빠는.’
올해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Chapter 33. 성녀의 축복
“나 어디 이상한데 없지?”
“이상하긴요. 충분히 아름다우세요. 그렇게나 준비를 하셨는데 아가씨도 참.”
“제온 공자님이 오늘 나한테 반해야 한단 말이야!”
“우리 아가씨께서 이리 아름다우신데, 당연히 반하실 거예요.”
창에 비친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핀 슈엘라가 미소 지었다.
‘몇 번이나 연습했어. 그대로만 하면 돼.’
오늘 자신의 인생이 변할 것이다.
이윽고 마차가 파에라톤 공작 저의 대문을 통과했다.
그 후로도 한참, 마차는 멈춰설 줄을 몰랐다.
‘제도의 타운하우스가 이렇게까지 규모가 크다니.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체감하니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
1월인데도 마법으로 만든 꽃들이 보석처럼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소문에는 파에라톤 공녀에게 친구가 없다면 안 된다면서 한겨울에도 마법으로 만든 꽃을 잔뜩 장식한대요. 무슨 뜻일까요?”
“글쎄?”
“파에라톤 공녀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딱히 마법 정원으로 사람을 꼬셔야 할 일도 없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녀를 보며 슈엘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좀 조용히 해. 안 그래도 떨려 죽겠는데.”
“죄송해요. 저는 아가씨께서 너무 긴장하신 거 같아서 풀어 드리려고…….”
슈엘라는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공작저가 이 정도면 공작령에 있는 공작성은 어느 정도일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제온 님과 결혼하면 이 모든 게 내 손에 들어오는 거야.’
그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프루시안 가문은 예전의 영광을 잃었다.
그간 은연중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황제가 황태후의 친자식도 아닌데, 황태후의 조카손녀면 뭐 하냐고.
결국엔 명패만 있는 쭉정이나 다름없지 않냐고.
제온 파에라톤과 결혼하면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기대됐다.
‘공작저가 화려하다고 기죽을 거 없어.’
황태후 폐하께서도 그러시지 않았는가.
따지고 보면 원래 자신은 황제의 오촌 조카가 되었을 몸이라고.
‘현 황후와 황후의 친정인 마르벨 후작가가 황태후를 배신하지 않았어도……!’
황태비의 자식이 아니라 황태후의 자식이 황제가 되었을 테니까.
‘그래, 이건 급이 맞는 혼사야.’
그렇게 다짐을 하는 사이 마차가 멈춰 섰다.
“어서 오십시오, 프루시안 영애.”
고개를 숙이는 젊은 여자를 보며 슈엘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집사?’
황태후의 교지까지 내려왔으니 제온이 직접 마중 나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집사가 객을 맞는 게 보통이라고 해도, 너무 젊잖아.’
파에라톤 공작저 정도 되는 규모라면 집사도 여러 명일 텐데.
이렇게 젊은 사람이 총관일 리도 없었다.
불만스러웠던 마음도 안내된 방에 들어가자마자 사라졌다.
‘아……. 집에서 제온 님은 이런 느낌이시구나.’
실크 셔츠를 느슨하게 입은 채 의자에 반쯤 기대다시피 앉아있는 제온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참 멍하니 제온의 모습을 바라보던 슈엘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방에 들어갔음에도 제온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제온 님이 원래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다르잖아. 나는 혼담 상대인데.’
그때, 파에라톤 공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프루시안 영애. 와, 오늘은 평소보다 더 아름다우시네요.”
‘아, 공녀도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은 슈엘라가 활짝 웃으며 루아티샤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파에라톤 공녀. 공녀께서도 언제나처럼 아름다우시네요. 이제 열일곱이시던가요?”
“네, 해가 바뀌었으니 열일곱이에요.”
“사교계의 모든 영식들이 설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올해부터 공녀께도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할 거 같은데. 아직며칠 안 됐지만 엄청 왔죠?”
제온이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루아티샤도 슈엘라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하, 말씀은 감사한데 아무도 제게 혼담을 넣지 않네요. 제가 결혼 상대로 별로인가.”
소탈하게 말하며 웃는 루아티샤를 보며 슈엘라는 미소 지었다.
제온이 얼마나 막냇동생을 아끼는지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루아티샤를 질투하고 밀어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오히려 파에라톤 공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지.’
“제가 공녀의 혼담을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은근하게 말하자 루아티샤가
놀란 듯 눈을 깜빡이더니 화제를 돌렸다.
“아, 익시온이랑 아레스는 급한 일이 생겨서요. 양해 부탁드려요.”
“공자님들께서 바쁘시니 어쩔 수 없죠. 아무래도 공녀께서 홀로 내부 살림을 꾸려가시기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네?”
“제가 앞으로 돕게 해주세요.”
“……파에라톤 공작가의 내무에 관해서요?”
“네! 그러면서 공녀와 친해지고 싶어요.”
활짝 웃는 슈엘라를 보고 루아티샤는 애매하게 웃었다.
‘참자, 참아. 일단 제온의 손님이잖아.’
“차가 식겠어요. 유델프 고원에서 나는 찻잎이랍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루아티샤는 슈엘라가 뭐라 말하기 전에 제온을 쿡쿡 찔렀다.
“제온도. 기대 있지만 말고 어서 일어나. 프루시안 영애는 제온의 손님이잖아.”
“…….”
제온은 다소 뚱한 얼굴로 루아티샤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쓰다듬어주면.”
루아티샤가 힐끗 슈엘라의 눈치를 보더니 제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다.
“자, 됐지? 어서 일어나.”
제온이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루아티샤가 슈엘라를 향해 말했다.
“죄송한데 저도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원래 혼담은 당사자들 의견이 제일 중요하니까. 두 분이서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슈엘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온과 단둘이 있게 되다니!
이 얼마나 꿈과 같은 일이란 말인가!
‘역시 아까 내 말이 통했던 건가?’
슈엘라는 생글생글 웃으며 루아티샤에게 눈을 찡긋했다.
* * *
“와, 차가 정말 맛있네요. 그렇죠?”
“…….”
“아, 차를 별로 안 좋아하시나? 그럼 커피를 좋아하세요? 저돈데!”
“버, 벌써 새해네요. 제온 공자님께는 새해 다짐 같은 거 없으신가요?”
“……혼.”
“네?”
“결혼.”
“……네?!”
슈엘라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결혼이라니.
‘그럼 역시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
한마디도 안 하길래 어쩌지 싶었는데.
‘제온 님이 말이 없는 거야 원래 그런 거잖아. 속으로는 나와의 결혼을 바라고 있는 거야.’
하기야, 자신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데다가 황태후의 조카손녀다.
‘제온 님이라고 별수 있나? 내게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힐끔 제온을 바라보니 먼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과 눈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앗, 설마 부끄러워하시는 건가?’
서늘하다 못해 한 치의 틈조차 없는 이 완벽한 남자가 부끄러워하다니.
‘귀여워.’
슈엘라는 미소 지었다.
‘이런 모습은 나밖에 모르겠지?’
좋아, 그렇다면 부끄럼타는 그를 위해 자신이 먼저 다가가 줄 차례였다.
아까 루아티샤에게 하는 것을 보니 쓰다듬 받는 걸 좋아하는 듯했다.
“공자님, 앞으로 여동생에게 쓰다듬어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 말에 제온의 시선이 드디어 자신을 향했다.
슈엘라는 교태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제온에게로 희고 고운 손을 뻗었다.
“이제부터는 공녀가 아닌 제가 공자님을一.”
흠칫.
그녀의 손이 제온의 머리카락에 막 닿기 직전.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한기에 슈엘라는 움직임을 멈췄다.
새빨간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온은 인상을 쓰지도, 하다못해 자신을 노려보지도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런데.
“아…….”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다.
슈엘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본능적인 공포.
“죄, 죄, 죄송합니다. 저, 저는…….”
말도 마치지 못한 채 벌떡 일어난 슈엘라가 도망치듯 티룸을 벗어났다.
* * *
티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이성이 돌아왔다.
‘이런…….’
파에라톤 공작가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십 년도 더 전에 제온 파에라톤이 홀로 제도에 올라왔을 때.
그때 그가 어땠는지 저 역시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알고는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며 제온이 유해진 게 아니었다.
그저 아닌 척, 순진한 척 양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이다.
“아, 아가씨, 저는 옆에서 지켜보는데도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냥 이 혼담은 이대로 파기하는 게…….”
“시끄러워.”
하녀의 말을 일축하며 슈엘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격조 높게 꾸며져 있어 사치품이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저 기둥만 해도 웬만한 보석보다 비쌀 것이다.
“내가 제온 님과 결혼하면 파에라톤 공작부인이 돼. 다 내 것이 된다고.”
“……아가씨.”
“그리고 제온 님은 상처가 많아서 그래.”
“상처요?”
“그래, 어려서부터 전장을 헤매셨잖아.”
“…….”
“그분의 상처를 알아주고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다른 영애들은 그런 시선을 받고 무서워서 다시는 발걸음하지 못할걸.”
“솔직히 저도 다시 뵙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나는 달라.”
슈엘라가 고개를 돌려 닫힌 티룸을 바라보았다.
“오직 나만이 제온 님을 이해해 줄 수 있어.”
“아가씨…….”
슈엘라가 결의를 단단히 하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창밖으로 루아티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슈엘라는 곧장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 프루시안 영애.”
루아티샤는 당황해서 슈엘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야기가 끝났나?’
“파에라톤 공녀.”
“네?”
“저는 제온 님이 좋아요.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아…….”
“공녀가 좀 도와줘요. 제온 님이 좋아하는 게 뭐예요?”
“음, 제온은…….”
머리 쓰다듬어주는 거랑 안아 주는 거랑 벽쿵을 좋아하는데.
‘대체 이걸 쪽팔려서 어떻게 말하지?’
루아티샤가 눈치를 보는데 슈엘라가 표정을 굳혔다.
“공녀로서도 황태후 폐하와 사돈지간이 되면 좋잖아요? 이 혼담은 황태후 폐하께서 친히 추진하시는 건데.”
그 말에 루아티샤의 표정 역시 딱딱해졌다.
“프루시안 영애, 확실히 해둘게요. 파에라톤은 혼인 동맹이 필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지금 공녀마저 내 가문을 무시하는 건가요?”
“프루시안 가뿐만 아니라 그 어떤 가문이어도 마찬가지예요.”
슈엘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황태후께서 일방적으로 파에라톤에 혼담을 넣었을 뿐, 이쪽에서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파에라톤의 내정에 간섭하려고 하시는 것 불쾌해요.”
“……!”
“제 혼담도 그렇고 파에라톤 내무는 외부인인 영애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물론 영애가 제온과 혼인한다면 기꺼이 영애와 의논할 거예요.”
슈엘라가 잠시 루아티샤를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제온 님이 너무 좋아서 제가 마음이 너무 앞섰나 봐요. 미안해요, 공녀.”
“괜찮아요. 앞으로 조심해주실 거라 믿을게요.”
“물론이지요. 미안해요. 설마 마음 상한 건 아니죠?”
슈엘라가 빙긋 웃으며 루아티샤의 팔짱을 꼈다.
“혹시 나와 제온 님의 결혼을 반대하는 건一.”
“나는 제온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찬성이에요.”
그 말에 슈엘라가 씨익 웃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