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1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13화(213/353)
☆ 제213화 ☆
“솜뭉치.”
나지막한 음성에 루아티샤와 슈엘라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익시온이 창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민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익시온.”
“뭐해?”
“아니, 그냥.”
루아티샤의 대답에 흐음, 하고 비음을 흘린 익시온이 갑자기 창문을 뛰어넘었다.
“꺅?!”
갑자기 3층에서 사람이 뛰어 내리자 슈엘라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익시온은 가뿐하게 착지한 후 루아티샤의 머리를 꾹 눌렀다.
루아티샤는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그러다가 무릎 삭는다.”
“넌 가끔씩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한다니까. 칸도르 영감탱이한테 옮은 건가.”
익시온이 픽 웃으며 루아티샤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 순간,
“내 동생한테서 떨어져.”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 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정확히 익시온의 위로.
“이 미친놈이!”
익시온이 뭐라 하든 말든 아레스는 달콤한 미소를 지은 채 루아티샤의 머리를 쓸었다.
“더러운 게 묻었어.”
一하며.
“너 이새끼, 그거 무슨 뜻이야!”
“더러운 걸 더럽다고 한 건데?”
“죽는다, 진짜.”
“네가 날 죽일 수 있을까?”
버럭 하는 익시온과 햇살 같이 웃는 아레스 사이에 낀 채 루아티샤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이 무슨 난장판이야.’
그때, 슈엘라가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자님들 안녕하세요. 제가 듣기론 ‘급한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一.”
슈엘라의 시선이 힐끗 루아티샤를 향했다가 다시 파에라톤 공자들에게로 돌아왔다.
“잘 마무리되었나 보네요. 다행이에요.”
생긋 미소 지었지만 익시온과 아레스는 슈엘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얜 누구야? 솜뭉치랑 항상 몰려다니는 애들은 아닌데.”
“말했잖아. 오늘 제온의 혼담 상대가 온다고. 그리고 얘라니. 예의를 갖추시죠, 파에라톤 공자님. 이쪽은 프루시안 영애예요.”
루아티샤가 혼을 내자 익시온이 픽 웃었다.
“쥐방울만한 게, 눈 부릅뜨면 내가 귀여워할 줄 알아?”
“‘귀여워할 줄 알아?’가 아니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고 해야지.”
루아티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온의 혼담 상대라고?”
아레스의 물음에 루아티샤가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슈엘라를 무시했냐는 듯 아레스가 곧바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반갑습니다, 프루시안 영애.”
“아……. 네, 반가워요, 아레스 공자님.”
녹아내릴 듯 황홀한 아레스의 미소에 슈엘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디 꼭 이 혼담이 성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그놈 좀 데려가. 이왕이면 데릴사위로.”
“데릴사위. 참 좋은 말이야. 다시는 파에라톤 저에 발 못 붙이게 해도 좋고.”
‘꼭 이럴 때만 쿵짝이 맞지.’
루아티샤가 한숨을 삼켰다.
“네, 네! 저 꼭 제온 님과 혼인하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도련님들.”
슈엘라가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루아티샤는 슈엘라를 마차까지 바래다주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후, 루아티샤는 당부했다.
“프루시안 영애,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 잊지 않으셨을 거라고 믿어요.”
“에이, 물론이죠. 제가 너무 마음이 앞섰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덧붙여서 파에라톤은 황태후 폐하의 체스 말이 될 생각도 없어요.”
“당연하죠! 체스 말이라니. 그런 무서운 말씀을! 황태후 폐하께서 추진하신 혼담이긴 하지만, 제 마음은 폐하와는 달라요. 저는 정말 제온 님이 좋은걸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루아티샤가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물러나자 슈엘라는 고개를 숙인 후 마차에 올라탔다.
* * *
탁.
“아, 진짜. 지가 우리 제온 님 엄마야, 뭐야. 나보다 한참 어린 게 따박따박 따지기는.”
마차 문이 닫히자마자 표정을 바꾼 슈엘라가 투덜거렸다.
“파에라톤 공녀의 성격이 황제 폐하께도 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 면전에 대고 말할 줄은 몰랐어요.”
“나와 우리 가문을 무시하는 거야.”
루아티샤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면 뭐겠는가.
방금 전 ‘황제에게도 지지 않는 성격’이라는 말과 정반대되는 결론이었지만, 슈엘라도 하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공자님들이 나를 형수로 맞고 싶어 하시는 거 봤지?”
“그럼요! 우리 아가씨가 누구신데 당연한 일이죠. 역시 파에라톤 공자님들은 안목이 뛰어나세요.”
“파에라톤 공녀가 그걸 알고 일부러 나와 만나지 못하게 했던 거야.”
슈엘라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아레스 님과 익시온 님은 급한 일이 생겨서 오지 못했다더니. 그렇게 한가해 보일 수가 없던데.”
“그러고 보니 아가씨가 혼담 때문에 왔다는 것조차 처음 듣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그 계집이 일부러 말 안 한 게 틀림없어!”
“제온 공자님께서도 손님을 맞이하는 복장이 아니셨잖아요?”
“그것도 파에라톤 공녀가 일부러 첫 만남을 망치려고 말하지 않은 거야. 내저 관리는 파에라톤 공녀가 하고 있을 테니까.”
“어머! 그렇게 안 봤는데, 파에라톤 공녀도 너무하네요! 오빠들을 자기가 독점하고 싶은 건가?”
“파에라톤 공자들이 막냇동생한테 껌뻑 죽는 거야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야. 당연히 그 관심을 뺏기기 싫겠지.”
“세상에, 그래서 아가씨께 괜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기죽이려고 한 거고요?”
“제온 공자님은 결혼하고 싶다고 했잖아. 어차피 나와 결혼할 텐데 파에라톤 공작가에 미리 관여하는 게 뭐가 나빠? 오히려 먼저 맞춰가는 게 낫잖아?”
“맞아요. 지금부터 조율해야 결혼하고 나서 더 수월할 텐데.”
“흥, 어차피 파에라톤 공녀가 싫어해 봤자 제온 님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니까 상관없어.”
자신의 손길을 거부했던 제온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멈칫했지만, 슈엘라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달라. 제온 님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라고.’
* * *
나는 떠나는 마차를 확인하고 휙 뒤를 돌았다.
“익시온, 아레스. 혼담이 성사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어떡해. 프루시안 영애는 진심인 줄 알잖아.”
“나는 진심인데.”
“맞아. 어서 빨리 제온 녀석을 치워야지.”
“하아. 그렇게 관심 많았으면 대체 왜 티룸에는 안 왔어? 내가 분명 오늘 프루시안 영애가 오니까 제때 나오라고 했잖아. 제온까지 티룸에 안 내려와서 내가 부랴부랴 끌고 나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기억 안 나. 애초에 왜 저 여자랑 만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동생도 함께하는 줄 알았으면 난 나갔을 거야.”
“아, 그건 나도.”
“그것보다 나랑 봄옷 맞추러 갈래? 조금 있으면 날이 따뜻해질 거야.”
“쇼핑보다는 나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레스와 익시온의 뇌 구조가 궁금해졌다.
나는 쿵쾅거리며 로비로 들어갔다. 아레스와 익시온이 뒤따라오며 말을 붙였다.
“화났어? 에이, 뭐 어때. 진짜 제온 녀석이 저 여자랑 결혼할 리도 없고.”
“그래도 황태후의 체면은 지켜줘야 할 거 아니야.”
“저택에 들여줬으면 됐지. 다른 데서 온 혼담은 답장도 안 하고 씹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티룸으로 갔다.
제온은 여전히 티룸 소파에 나른히 기대 있었다.
나를 본 제온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식은 언제 올리지?”
그 말에 익시온과 아레스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너 진짜 결혼해?”
“흐음, 나야 좋지만.”
아레스의 말에 제온이 드물게 미소까지 지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들었어? 아레스도 우리 결혼을 축복한대.”
“뭐? 그게 무슨一.”
“이 미친놈아! 솜뭉치랑 한다는 소리였어? 넌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소름이라고!”
“내 동생은 나랑 결혼할 건데.”
“아니거든? 나랑 할 거거든?”
아까는 제온 보고 진심으로 말하는 거 같아서 소름이라며.
근데 왜 익시온까지 나랑 결혼한대?
그때, 갑자기 티룸의 문이 벌컥 열렸다.
“내 딸은 나랑 결혼할 거다.”
“내 손녀는 이 할애비와 평생 함께 살 거다.”
갑자기 들이닥친 아빠와 할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하하.
나도 모르겠다.
‘제발 아무나 좋으니 이 남자들 좀 데려가 주세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 했다.
나는 진지하게 싸우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다가 스윽 물러났다.
‘방에 가서 혼담에 대한 거절 편지나 써야겠다.’
그래도 한 번 얼굴을 봤으니 답신까지 보내면 황태후 체면은 살려준 거겠지.
‘이 꼴을 다시 볼 상황을 절대 만들고 싶지 않아.’
* * *
“그래서, 그렇게 끝났다고?”
“응.”
고개를 끄덕이자 시드가 피식 웃었다.
“고생했네.”
“어휴, 진짜 어떻게 장가보낼지 머리가 아파.”
“그러게. 어서 장가를 가야…….”
“응? 잘 안 들렸어.”
“아니야.”
시드가 고개를 젓더니 내게 물었다.
“황태후는 뭐래?”
“알았다고 하지, 뭐.”
“의외로 깔끔히 물러났네?”
“어쩌겠어? 제온이 프루시안 영애와 결혼하기 싫다는데. 매달리다간 오히려 망신당할 수도 있는걸?”
“하긴 그것도 그렇지. 예전에 황후가 레이디 아펠리아와 공작을 짝지어주려다 톡톡히 망신당했다며?”
“응, 그때 진짜 웃겼는데. 아펠리아는 일 때문에 만난다는 핑계라도 있지, 프루시안 영애는 혼담 외에 다른 핑계도 없었으니까 빠르게 발을 뺄 수밖에 없겠지.”
“어떻게 장가보낼지 머리 아프다는 것치고는 기분이 좋아 보이네.”
“그거야 프루시안 영애가 영 별로였거든.”
“그래?”
“제온이 프루시안 영애를 마음에 들어 하면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한 번 보는 건데 벌써부터 파에라톤 내무에 참견하고 싶어 하더라고.”
“흐음.”
“거기다 황태후가 왜 파에라톤에 혼담을 넣은 건지 의도도 투명하고.”
불퉁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자 시드가 웃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슬쩍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남의 혼사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긴 속눈썹으로 음영진 보랏 빛 눈동자가 가늘게 휘었다.
“나는 슬슬 내 혼사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어…….
“어떻게 생각해?”
‘가, 가까워.’
얼굴에 열이 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행진 곡의 북처럼 빠르게 울렸다.
나는 차마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화, 황비 전하?!’
황비님이 풀숲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잇몸이 보일 정도로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언제부터 보고 계셨던 거지?!’
“나, 나, 나는 급한 일이 생겨서!”
나는 벌떡 일어나 후다닥 자리를 떴다.
“데려다줄게.”
“아, 아니야! 괜찮아! 혼자 갈래!”
나는 쌩하니 도망쳤다.
* * *
‘으아아, 창피해. 부끄러워.’
열 오른뺨을 식히며 황궁을 가로지르는데 저 멀리서 보기 싫은 사람이 보였다.
‘윽, 에스테반 황자!’
다른 길로 가자.
재빨리 몸을 돌리려는데, 그 순간 에스테반과 딱 눈이 마주쳤다.
‘음, 난 못 본 거야.’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몸을 돌리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루아티샤.”
하씨.
진짜 낄끼빠빠 좀 해라.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뒤돌아 인사하자 에스테반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왔다.
‘저 재수 없는 웃음이 왜 잘생겼다는 거지.’
요즘 애들과 내 안목은 다른 건가.
또래 영애들 사이에서 에스테반이 인기 많은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들이랑 시드 보고 잘생겼다고 하는 걸 보면 딱히 보는 눈이 차이 나는 거 같진 않은데.’
에스테반이 내 손을 잡고 직접 나를 일으켰다.
“내게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대도.”
“이게 편해서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런데 그의 옆에는 못 보던 영애 한 명이 서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에스테반이 내게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쪽은 모후의 손님이야. 리리엘이라고 하더군. 리리엘, 이 쪽은 파에라톤 공녀다.”
그 말에 리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명성이 높으신 파에라톤 공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리리엘이라고 합니다.”
리리엘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잠깐, 리리엘이면?’
“리리엘? 혹시 그 유명한 남부의 성녀님?”
“부끄럽지만 그런 허명을 듣고 있습니다.”
리리엘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겸양은 하지만 비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감으로 빛났다.
‘오, 과연 성녀.’
느낌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실 제도에 올라오면서 어쩌면 파에라톤 공녀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그랬나요?”
“네, 흑사병을 해결한 것부터 시작해서 서부의 토호 세력을 밀어내고 안정시킨 것. 또, 공진단과 물리치료기까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메티스〉를 통해 발표하신 논문도 인상 깊었고요.”
“부끄럽네요. 기적과 선행을 실천하는 성녀님께 그런 칭찬을 듣다니.”
“공녀님께서도 만만치 않은 선행을 하셨는걸요.”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에스테반이 그런 우리 둘을 보더니 픽 웃었다.
“이거, 어째 오래 알고 지낸 나와 공녀보다 두 사람이 더 잘 맞는 거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