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1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14화(214/353)
☆ 제214화 ☆
뭐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에스테반을 바라보았다.
그야 나와 에스테반이 알고 지낸 지 이제 7년 정도 됐지만, 시간과 비례해서 잘 맞는 건 절대 아니지 않나.
‘오히려 해가 갈수록 더 짜증 나는데.’
어렸을 땐 애니까 그나마 정상참작 가능했지.
‘지금은 징그러.’
“후후, 원래 잘 맞는 사람은 처음부터 잘 맞는다고 하잖아요. 황태자 전하께는 죄송하지만, 제가 공녀님과 더 잘 맞나 봐요.”
리리엘이 장난스레 웃으며 내게로 바짝 붙었다.
“그쵸, 공녀님?”
“맞아요.”
무엇보다 에스테반과 나는 전혀 맞지 않아!
에스테반이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레이디들께서 서로 꼭 붙은 채 나를 견제하니 가슴이 아픈데.”
리리엘이 생긋 웃더니 내게서 한걸음 멀어졌다.
“황태자 전하를 가슴 아프게 할 수는 없죠. 공녀님,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저는 황후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셔서 이만 실례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황후의 손님이라고 했지.
‘에스테반이 직접 맞이해서 에스코트해주는 걸 보면 꽤 귀빈 취급을 받나 보네.’
하긴, 성녀니까.
‘그래도 아직 성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굳이 에스테반에게 에스코트를 맡길 걸 보면 리리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가?’
무려 황태자의 에스코트를 받고 입성한다면 화제성은 있을 테니까.
‘흐음…….’
나는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대로 헤어지려고 하는데 리리엘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혹시 또 뵐 수 있을까요? 저 공녀님께 궁금한 게 무척 많아요.”
따로 만나자고?
흠.
“성녀님께서 제도에 올라오셨으니 곧 또 뵐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내 거절에 리리엘이 다소 시무룩해졌다.
나는 미소 짓곤 에스테반을 향해 고개를 까딱한 뒤 그들을 지나쳐갔다.
* * *
리리엘은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선 채 루아티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쉬운 상대가 아니지?”
에스테반의 말에 리리엘이 움찔해서는 고개를 돌렸다.
에스테반은 리리엘이 아니라 루아티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아티샤가 네게 자그마한 호의를 보였다고 해서 쉽게 친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 뜻이었군.’
해치우기 쉬운 상대라는 게 아니라.
설마하니 자신이 루아티샤를 적대하는 걸 알아챈 건가 하고 놀랐다.
“루아티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많아. 너처럼 따로 만나고 싶다고 청한 사람을 줄 세우면 황궁 성벽을 다 감싸고도 남을 걸.”
“확실히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렇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에스테반의 눈에는 묘한 열기가 어려 있었다.
리리엘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 * *
성녀의 등장은 제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럼 그 소문들이 다 정말이래요?”
“성녀님이 치성으로 기도해서 비가 내렸다잖아요.”
“근데 성녀가 기도해서 내린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우연일 수도 있지.”
“아니에요! 성녀님의 기도가 닿아서 그런 거라니까요? 가뭄으로 다 죽어가던 작물들이 성녀님의 기도로 다시 살아났대요.”
“그야 비가 왔으니…….”
“에이, 그냥 비 와서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그러고 보니 빈민굴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는 것을 성녀님이 막아냈다는 말도 들었어요.”
“거봐요. 그건 우연히 할 수 없는 일이죠?”
“하기야, 설마 그게 다 헛소문이면 황후 폐하께서 성녀를 그리 가까이 두시겠어요?”
“아, 그건 그렇죠.”
제도로 성녀를 불러들인 황후가 그녀를 무척이나 귀애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무려 제국의 황후이자 황태자의 모후의 총애를 독차지한 성녀.
그녀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왠지 활력이 도네요. 사실, 요즘 사교계에는 새로울 게 없었잖아요?”
“새로울 게 왜 없어요? 나는 이번 시즌 드레스 디자인만 봐도 새롭던데. 파에라톤 공녀님이 입으신 거 봤어요?”
“오늘 신문 안 봤어요? 파에라톤 공녀와 미첼로인 가문이 합작해서 발굴한 고대 문명의 초벌 연구 결과가 나왔대요. 역사를 새로 다시 써야 할 정도라고 하던데.”
“아니, 물론 새로운 일이야 항상 생기죠. 그치만 제 말은 결국 모든 게 파에라톤 공녀와 관련된 거잖아요.”
시드리한 황자가 돌아오고 황후가 금족령을 받으며 에스테반을 중심으로 안정되었던 정치권에는 파란이 일 조짐이 보였다.
그런데 언제나 정치권과 함께 발을 맞추던 사교계는 오히려 조용했다.
파에라톤 공녀가 사교계를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으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새로운 일은 항상 생기지만, 그게 전부 파에라톤 공녀와 관련되었다 보니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죠.”
아무리 선망의 대상이라고 해도 몇 년째 보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은근히 사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뉴 페이스가 나타나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파에라톤 공녀와 가까워지지 못한 자들이라면 더더욱.
“하긴, 성녀라면 좀 다를 수도 있겠네요.”
“궁금해 죽겠다니까요? 제도에 올라온 지도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못 보고.”
“금족령만 아니었다면 황후 폐하께서 진작 살롱이며 티파티를 열어 소개시켜주고 다녔을 텐데.”
“그래도 오늘 볼 수 있겠죠.”
그 말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오늘 열리는 파티는 평소보다 훨씬 사람이 많았다.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궁내부 장관 체시아 백작의 부인이 주최하는 파티인데다가 파에라톤 공녀가 참석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은 성녀가 처음으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었다.
* * *
“어서 와요, 파에라톤 공녀. 세상에, 이제 열일곱이던가?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완전히 숙녀가 다 되었네. 시집가도 되겠어.”
체시아 저에 들어서자마자 체시아 백작 부인이 내게 다가왔다.
“환대에 감사드려요, 체시아 부인. 하지만 그 말은 우리 가족이 있는 곳에선 삼가 부탁드릴게요.”
“후후, 파에라톤 공작께서 딸을 시집보낼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건 나도 잘 알지. 근데 십 년이 지나도 준비 안 되실 거 같던데.”
“하하…….”
그러게요.
나도 그게 걱정이야.
체시아 부인이 눈을 찡긋했다.
“어때? 그때는 내 막내아들도 성인이 되었을 거 같은데.”
“부인께서도 참. 농담 잘하세요.”
체시아 백작 부부는 금슬이 아주 좋아서 늦둥이가 있었다.
체시아 부인이 내게 친밀하게 팔짱을 끼곤 홀로 안내해주었다.
그녀와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지만, 남편인 체시아 백작과 내 관계가 정략적으로 무척 좋은 편이기에 부인 역시 내게 꽤 협력적이었다.
홀 안의 분위기는 평상시와 조금 달랐다.
한 소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공녀에게는 꽤 낯선 풍경이지? 다들 목을 빼며 공녀가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것만 봤을 텐데.”
“성녀님이 참석한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그래, 꽤 인기가 좋아. 처음엔 사기꾼 아니냐면서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보다시피一.”
체시아 부인이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성녀를 눈짓했다.
“황궁에서 우연히 만난 적 있어요. 괜찮은 사람 같더라구요.”
“그래? 흐음, 그럼 더 곤란하겠네.”
“그렇게 말씀하는 것치곤 재밌어 보이시는데요.”
“그야 조금? 그간 공녀를 상대할 만한 영애가 없어서 지켜보기 심심했다고. 영애들의 사교계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아니, 저기요.
“왜, 우리가 그러면 주책인데 아직 미혼인 영애들끼리 그러는 건 야망과 패기가 넘치는 거거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딱히 경쟁할 생각 없어요.”
“그래, 하지만 문제는 성녀가 황후의 패가 되었다는 거야.”
“……그건 성녀의 말도 들어 봐야죠.”
그때, 리리엘과 눈이 마주쳤다.
“공녀님!”
리리엘이 환히 웃으며 내게 손짓했다.
* * *
파티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단 한 가지, 내 곁에 있는 리리엘만 빼면.
“와, 정말 대단하세요, 공녀님. 저도 비슷했던 적이 있어요. 2년 전, 남부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一.”
그녀가 기도로 비를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꽤 흥미진진해서 주변에 있던 영애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게 정말이었군요? 저는 부풀려진 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도로 비를 내리는 건 먼 옛날에나 그랬다고 하잖아요. 기우제를 지냈다고.”
“그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니.”
“옛날 사람들의 미신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를 통해 비를 내렸던 거예요. 요즘에 그게 안되는 건 신성력이 줄어들어서 그래요.”
리리엘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신관들의 신성력이 더 강했다고 들었어요. 병도 뚝딱 고치고.”
“성녀님도 그럴 수 있으세요?”
“매번 통하는 건 아니지만, 제 기도에 응답해주실 때가 있으시답니다.”
“와아…….”
소녀들이 별처럼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그게 귀여워서 미소 짓는데 티리엘이 입술을 삐죽이는 게 보였다.
“왜? 어디 불편해?”
소곤거리자 티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부터 짜증 나잖아.”
“왜?”
“처음 시작은 루루가 했던 일을 감탄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결국 순 자기 자랑뿐이야.”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대답해 준 거뿐이잖아.”
“자기가 먼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물어보는 거지. 따지고 보면 비슷한 일도 아닌데!”
사탕을 뺏긴 어린애처럼 툴툴거리는 티리엘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짜식, 귀엽긴.’
“사람들은 우리 루루에 대해 말했던 건데 그걸 홀랑 뺏어가서 자기 자랑에 쓰기나 하고.”
“사교계에 처음 나왔으니 들 뜰 만도 하지.”
“쟤만 그러면 다행이지. 이럴 땐 꼭 물타기 하는 사람이一.”
“어머나?”
뾰족한 목소리가 티리엘의 말을 잘랐다.
“공녀님께서는 성녀님의 이야기에 영 관심이 없으신가 봐요? 뒤로 빠져서 티리엘 영애와 속닥거리기만 하고.”
고개를 돌리니 한 영애가 비딱한 미소를 지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一나온다고.”
티리엘이 그것 보라며 내게 속삭였다.
“성녀님은 공녀님 칭찬에 맞장구치면서 함께 이야기하셨는데, 이거 공녀님은 본인 칭찬이 아니라면 듣기 싫다는 건지.”
“그러게요? 항상 본인 칭찬만 받아서 남 칭찬받는 걸 못 보는 성격인가?”
“대체 뭐라고 속닥거렸는지도 궁금하네요.”
와, 이런 식으로 물타기 한다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로판 독자의 현란한 말재주를 보여주려던 때였다.
“그만 하세요.”
리리엘이 나를 보호하듯 내 앞에 서며 말했다.
“공녀님께서 친구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것 가지고 그런 식으로 모함하는 게 보기 좋지 않네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와중에 저렇게 속닥거리는 건 무례한一.”
“누구와 이야기하든 그건 공녀님의 자유예요. 아니면 사교계에는 환담을 나눌 때 자유롭게 이야기도 못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나요?”
“그, 그건一.”
“그렇다면 제가 사과드릴게요. 저는 사교계의 암묵적인 법칙에 대해서 잘 모르니.”
“……아니에요. 그런 건 없어요.”
“그렇다면 공녀님께 사과하세요. 친구분과 이야기했다고 모함까지 당하셨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어요?”
“그, 그게 아니라, 저희는, 좋은 뜻으로……. 아까 성녀님이 파에라톤 공녀님과 만났을 때 무시를 당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一.”
뭐라고?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죠? 아, 설마…….”
리리엘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공녀님과 우연히 황궁에서 마주쳤을 때 따로 뵙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무척 아쉽다고 말했던 걸 말씀하시나요?”
“그래요, 그때一.”
“하아……. 왜 그걸 무시당한 거라고 해석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공녀님을 존경해서 꼭 다시 뵙고 싶은데 오늘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는 말을 하려고 그랬던 건데. 제가 그때 이 말도 하지 않았나요?”
“하셨죠. 하셨는데…….”
“제 말도 공녀님이 나쁜 것처럼 곡해하고 공녀님이 친구분과 이야기한 것도 삐딱하게 보고. 공녀님께 너무하시네요.”
사람들의 시선이 영애에게 쏠렸다.
“윽……. 죄송합니다, 공녀님.”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그녀가 결국 내게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쟤, 몇 번이나 공녀에게 연 붙이려고 하다가 실패했었잖아. 거기에 앙심을 품고 이때다 싶어서 복수하려고 하다가 역으로 당했네.”
“웃겨, 정말. 왜 거기에 앙심을 품어? 공녀님이 다 받아줘야 해?”
“그나저나 놀랐어. 성녀님 친절하게만 보였는데 강단이 있으신 분이구나?”
“굳이 나설 필요 없는데도 나서서 공녀님을 변호해주고.”
“따지고 보면 공녀님이 자기 말 안 듣고 있어서 기분 나쁠 수도 있었는데. 대범하셔.”
“어떤 의미로는 공녀님과 참 비슷해.”
티리엘이 복잡한 얼굴로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괜히 자기가 투덜거려서 일을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한가 보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주고 사과하는 영애에게 말했다.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니 괜찮아요. 이 일로 우리 사이가 어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가, 감사합니다, 공녀님!”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영애는 내 생각보다 훨씬 격하게 내게 감사를 표했다.
너무 그렇게 감격할 필요 없는데.
‘나랑 깊은 이야기도 나눠 봐야 할 것 같고 말이지.’
리리엘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을 마주하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