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1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17화(217/353)
☆ 제217화 ☆
돌아보니 리리엘이 생긋 웃었다.
자스민과 티리엘의 얼굴이 뾰족해졌다.
“우리도 모르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우리보다 루루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리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죄송해요. 혹시 기분 상하셨어요?”
바로 나오는 사과에 자스민과 티리엘이 주춤했다.
리리엘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도 할 말은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데 공녀님께 다가오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밀어내는 건 안 좋지 않을까요?”
“우, 우리가 언제一.”
“에이, 너무 저 밀어내지 마세요. 저도 공녀님이랑 많이 친해 지고 싶어요!”
리리엘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콧잔등을 찡그리며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친밀감의 표시로 내 팔을 살짝 건드리기는 했지만, 거리감을 지켜주듯 그 이상의 터치는 없었다.
“그래요?”
내 되물음에 리리엘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제가 얼마나 공녀님을 만나고 싶었는지 몰라요. 정말…….”
리리엘의 미소가 짙어졌다.
“一아주 오래전부터.”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나도 예전부터 간간이 들려 오던 성녀님이 어떤 분일까 무척 궁금했어요. 제가 그런 데에 좀 관심 많거든요.”
로판 독자로서 성녀에 관련된 이야기는 참을 수 없지.
“와아, 정말요? 기뻐라. 공녀님께서 제게 관심을 가지셨다니 저 성공했네요?”
리리엘이 눈을 찡긋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조마조마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던 티리엘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시드리한 황자님과 루루가 사귀지 않을 거라니.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아, 그게…….”
난감한 듯 말을 흐리던 리리엘이 이내 쑥스럽다는 듯 히히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저도 시드와는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라서…….”
뭐?
시드와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라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 시드가 탑 속에 갇힌 공주님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드는 어느 황자보다도 밖으로 떠돌아다녔으니까.
그런데 ‘잘 알던 사이’라고 말하는 리리엘의 표정이, 눈빛이, 발그레 물든 뺨이一.
‘그냥 알던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새삼스레 리리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은발에 신비로운 금안.
활달하고 사근사근한 미소.
리리엘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단번에 사람의 호감을 사는 소녀였다.
거기다 ‘시드’라니.
‘시드는一.’
내가 그에게 붙여준 이름인데.
황제가 돌아온 시드를 공식적으로 황자로 인지할 때, 새로운 이름을 내려주려고 했지만 시드는 여전히 시드이기를 고집했다.
그래서 시드리한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지만, 아무도 시드를 시드라고 부르지 않았다.
시드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로지 나와 시드의 친모인 황비 전하뿐이었다.
‘그런데 시드라고?’
“앗, 여기서는 황자님이라고 불러야 하죠. 습관이 되어서 저도 모르게……. 실수예요.”
리리엘이 입술을 가리더니 멋쩍게 웃었다.
“제가 알기로 시드는…… 아니, 시드리한 황자 전하께서는 공녀님과 특별한 사이가 아니에요.”
“하, 하지만一.”
자스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돌아봤다.
“에이, 두 분이 오해하신 거예요. 그쵸, 공녀님? 시드리한 황자님께서 공녀님께 좋아한다는 고백 같은 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
“다른 사람들이 오해해서 공녀님도 난감하셨겠다.”
리리엘이 내 어깨를 위로하듯 살짝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친구분들은 공녀님을 루루라고 부르나 보네요? 귀여워라.”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운 사람들이 저를 리리라고 부르거든요.”
리리엘이 환히 웃으며 잘 맞는다는 듯이 양 손바닥을 맞댔다.
“우리, 동갑인 것뿐만 아니라 애칭마저 비슷하네요?”
“뭐어? 대체 당신이랑 우리 루루랑 어디가 비슷하다고! 갖다 붙일 걸一.”
나는 잽싸게 티리엘의 팔을 붙잡았다.
아차, 한 티리엘이 말을 멈췄지만 이미 늦었다.
“티리엘 영애……였나요? 공녀님께서 워낙 인기 많으시니 공녀님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요. 멋진 친구를 가지면 그런 마음이 들기 마련이죠.”
“아니, 나는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견제하고 쳐내는 건, 오히려 친구에게 안 좋은 일 아닐까요? 아까부터 무례하시네요.”
리리엘이 웃음을 지우고 강단있게 말했다.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리리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게 보였다.
티리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하지만 티리엘이 내 교우 관계를 좌우하려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은 그냥 리리엘을 싫어하니까 그런 거뿐이지.’
하지만 또래 중에는 ‘별것도 없는 주제에 파에라톤 공녀와 친하게 지낸다’면서 티리엘을 깎아내리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지금 리리엘의 말이 사이다로 들렸겠지.
“성녀님이 하신 말씀이 묘하게 저와 스스로를 비교하는 것처럼 들려서 티리엘이 그렇게 반응했나 봐요.”
“어머, 저는 비교한 게 아니라 그냥 동경하던 공녀님과 자그마한 공통점이나마 발견한 게 기뻐서一.”
“알아요. 하지만 말의 의도가 항상 발화자의 뜻대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죠. 특히, 사교계에서는요.”
내 말에 리리엘의 입매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리리엘은 곧 미소를 만들어냈다.
“……공녀님께서는 굉장히 친구를 아끼시나 보네요.”
“친구니까요.”
“참 부러워요. 저도 공녀님의 친구가 되고 싶은데. 시드랑도, 아니, 시드리한 황자님까지 셋이서 같이 놀고 싶어요.”
시드.
리리엘이 그렇게 시드를 부를 때마다 가슴에 끈적이고 질척거리는 무언가가 끼는 것만 같다.
“저도 공녀님을 루루라고 불러도 돼요?”
리리엘은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이고 싶게 만드는 예쁜 얼굴.
‘콧구멍을 확 찌르고 싶네.’
“물론이지, 리리.”
나는 환히 미소 지었다.
* * *
‘……확실히 쉽지는 않네.’
리리엘은 픽 웃으며 음료를 한 모금 머금었다.
루아티샤가 티리엘처럼 못 참고 화를 냈으면 참 쉬웠을 텐데.
하기야, 쉬운 상대였으면 애초에 이렇게 애를 먹을 일도 없었을 거다.
‘그래도 약점은 알았어.’
그간 자신이 뭐라 하든, 무슨 짓을 하든 표정 변화 한번 없었던 루아티샤가 시드一라고 언급하는 순간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시드리한이 소중하긴 소중한가 봐?’
어리석긴.
‘소중한 존재 따위 만들어 봤자 약점만 잡힐 뿐인데.’
인간도, 신도 항상 그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
모든 것을 체스 말이라고 생각하고 이용해야 비로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저렇게 물렁해서야.’
쯧, 속으로 혀를 차는데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성녀님, 깜짝 놀랐어요. 파에라톤 공녀님과 그렇게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니.”
“파에라톤 공녀님이 그렇게 친근하게 불러주는 사람은 정말 몇 없거든요.”
“역시 성녀님이시구나, 했다니까요? 어떻게 몇 번 만나지도 않고 그러세요?”
‘……아직도 파에라톤 공녀 소리군.’
몇 년간 루아티샤가 사교계에
군림하다시피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도 놀랐어요. 용기 내어서 말씀드려본 건데, 그렇게 반응해 주실 줄이야.”
그래, 정말 놀랐다.
일부러 ‘시드’라고 언급하면서 속을 확 긁었는데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더 친근하게 대하다니.
베스트 시나리오는 거기에서 루아티샤가 자신을 무시하며 불쾌해하는 거였는데.
“역시 용기가 있어야 하나 봐요.”
“용기가 있다고 다 되나요? 성녀님이시니까 공녀님도 그렇게 반갑게 받아주신 거지.”
“하기야,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함께 모인다고 하죠. 급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
“근데 신기해요. 동갑인 데다가 애칭조차 비슷하니까.”
루아티샤와 자신을 동일선상에 놓는 말에 리리엘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어.’
루아티샤의 명성과 영향력을 당장 뺏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루아티샤의 명성에 편승해서 내 이름값을 높이는 게 현명하지.’
루아티샤와 함께 있을수록, 친하게 지낼수록, 비슷한 면을 많이 보일수록 사람들은 루아티샤를 말할 때 자신을 함께 떠올릴 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말을 하겠지.
생각해보니 파에라톤 공녀가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아니었어一하고.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건 고작해야 아류가 될 뿐이다.
그러니 그러면서도 루아티샤와 다른 모습도 보여줘야지.
지금도 이 전략으로 매 순간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원래 역전을 좋아하거든.’
리리엘이 멀리 있는 루아티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때까지는 내가 영향력을 높이는데 양분으로 이용당해 주렴?’
그간 루아티샤의 영향력이 끝도 모르고 높아지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영향력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성녀로서 뭔가 하려고 하면 영향력이 부족해 실패하고, 겨우 남부에서 다시 영향력을 끌어모아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면…….
‘전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는 루아티샤의 영향력 때문에 실패했지.’
그 반복.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진작 제도에 올라와서 자신이 루아티샤의 자리를 꿰차고 있었어야 했다.
‘멍청한 아리엘과 뮤리엘은 실패만 하고.’
하지만 과거는 아무래도 좋다.
오히려 더 쉽지 않은가.
다른 것보다 루아티샤를 이용하면 영향력이 쭉쭉 오르니까.
‘네가 키웠던 영향력은 결국 나를 위해서였던 거야.’
“저, 그런데 성녀님께서 하신 목걸이는 어디서 구매하신 건가요? 아까부터 보는데 디자인이 너무 새롭고 독특해요.”
“아, 이거요?”
리리엘이 목걸이를 느릿하게 쓸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팔목에 매달린 팔찌가 반짝였다.
“구매한 게 아니라 감사하게도 선물을 받았어요.”
“선물이요?”
“네, 〈파시스〉라는 쥬얼리 가게에서 주셨는데. 이런 큰 선물이라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파, 파시스요?!”
“파시스는 원래 매년 파에라톤 공녀님께 올해의 대표작을 선물을 했는데…….”
“어머, 그래요?”
리리엘이 몰랐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사람들이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파시스에서 공녀님이 아닌 성녀님을 선택하다니.’
‘왜 그랬지? 솔직히 명성은 공녀님이 훨씬 높잖아.’
‘하지만 파시스는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잖아? 그럼 파시스는 앞으로 공녀님보다 성녀님이 더一.’
“공녀님도 받으셨겠죠. 여러 곳에 선물을 하나 보네요.”
리리엘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원래는 단 한 사람에게만 선물했는데…….”
“대표작이라는 게 원래 하나고.”
“근데 그럼…….”
사람들의 시선이 멀리 있는 루아티샤에게로 향했다. 걸친 장신구 중에 파시스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파에라톤 공녀님은 올해 아무것도 받지 못한 거야?’
리리엘은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시 리리엘을 바라본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저어, 근데 성녀님께서도 시드리한 황자님과 인연이 있으신가 봐요? 파에라톤 공녀님처럼.”
“네, 살짝.”
리리엘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에스코트는 에스테반 황태자 전하께 받으셨잖아요?”
“네, 감사하게도 황태자 전하께서 항상 챙겨주세요.”
사람들이 또다시 시선을 교환했다.
그때였다.
“어머, 시드리한 황자님이세요. 이렇게 늦게……. 안 오실 줄 알았는데.”
파티는 가장 무르익은 고점을 넘기고 중후반부로 흐르고 있었다.
“시드!”
리리엘이 시드리한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높다란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리리엘에게 집중되었다.
“……황자님.”
리리엘이 뒤늦게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시드리한이 멈칫하는 사이 리리엘은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뭐지?”
“에이, 뭐긴요.”
리리엘이 시드리한의 앞에 바짝 붙어 섰다.
인사를 한다기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리리엘이 고개를 들며 생글생글 웃었다.
“나, 안 보고 싶었어요?”
* * *
“어머, 시드리한 황자님과 성녀님이 예사 사이가 아닌가 봐요?”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렇게 친밀하게 구는 걸 보면…….”
“그런데 시드리한 황자님은 파에라톤 공녀님과 아주 가깝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뭐지?”
“확실히 리리엘 님이 색다른 매력이 있긴 한가 봐요? 황태자 전하께서도 항상 리리엘 님을 에스코트하시잖아요.”
“와, 황자 두 명이 한 여자에게 반한 건가? 대박!”
“어, 근데 그럼 시드리한 황자 님과 루아티샤 공녀님은…….”
“헉, 그럼 파에라톤 공녀가 차인 거?”
“이번에〈파시스〉에서도 파에라톤 공녀 말고 성녀에게 파뤼르를 선물했다더니…….”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그런 시선 따위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시드에게 바짝 붙은 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리리엘을 보니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감정이 피어 올렸다.
‘아직이야?’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공을 노려봤다.
그 순간.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기다렸던 알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인짜 늦네!’
너무 늦어서 화가 나는 한편 또 속이 시원했다.
이제 고삐 풀고 날뛰어도 된다는 거지?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