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2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23화(223/353)
☆ 제223화 ☆
* * *
황후궁에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그러나 정작 그 노래를 감상 하고 있는 황후의 얼굴은 무참히 구겨져 있었다.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팔걸이를 쾅, 내리쳤다.
그 서슬에 악사들과 성악가가 노래를 멈췄다.
“답답해 죽겠어! 이 궁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다니!”
“폐하, 고정하시지요. 몸 상하 시겠습니다.”
“성녀는?”
“한 번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어.”
저 남부 끝자락에서 올라온 아이니 조금만 구슬리면 입안의 혀처럼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눈 동그랗게 뜨고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는 게 파에라톤 공녀만큼이나 까다로웠다.
“그래도 꽤 잘하지 않았습니까.”
“여태까지 파에라톤 공녀가 군림하고 있는 사교계에서 그만한 화제가 되는 또래 영애는 없었으니까요.”
“그래, 그래서 본후가 관대하게도 그 건방진 태도를 참아준 게 아니냐. 하지만.”
황후가 날카롭게 눈을 치떴다.
“그것도 저번 황궁 연회 전까지였지.”
저번 황궁 연회 이후로 사교계의 분위기는 다시 파에라톤 공녀 쪽으로 흘렀다.
역시 파에라톤 공녀다.
아무도 파에라톤 공녀의 아성을 무너트릴 순 없다.
성녀를 후원한 파시스가 무너지고 있고 공녀가 선택한 이듐과 불레아는 나날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미래를 뜻하는 것 아니겠느냐.
호사가들의 말은 황궁의 드높은 담장을 넘어 황후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오히려 파에라톤 공녀의 입지만 더욱 탄탄히 해주고 있어!”
“폐하, 파에라톤 공녀가 사교계에서 아우로라로, 메이퀸으로 군림해온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사교계의 중심인 사람들과의 인맥도 탄탄하고요.”
“성녀라곤 해도 제도에서 엄청난 기적을 보여준 것도 아닙니다. 그저 갑자기 나타난 또래 영애일 뿐인데 단번에 파에라톤 공녀를 밀어낼 수는 없지요.”
“밀어내진 못하더라도 파에라톤 공녀의 밑거름이 되진 말았어야지!”
황후를 진정시키려던 시녀들의 노력은 오히려 그녀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저번 황궁 연회는 사교 시즌을 시작하는 파티야! 시즌의 시작점에서 어떤 것이 화제가 되느냐는 아주 중요해. 향후 분위기를 주도하니까.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거기서부터 이런 식이라니!”
황후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면 이만 성녀를 내치 시지요. 필요 없는 체스 말은 버리면 그만입니다.”
시녀장의 말에 황후가 입술을 모았다.
“……그건 좀 더 생각해보도록 하지.”
아무리 성녀가 이번에 파에라톤 공녀에게 밀렸다고 해도, 여태까지 이만큼 화제를 모았던 영애는 성녀가 유일했다.
무엇보다 성녀에게 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아직 남부에서 행했다던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때였다.
“폐하, 성녀가 왔습니다!”
“성녀가?”
황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리리엘은 다 마신 찻잔에 차를 새로 따랐다.
한 모금 머금자 베르가못의 향이 비강을 자극했다.
그때까지도 황후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래서 의문이네. 본후가 그대를 계속 후원하려면 그만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로의 신뢰 형성을 위해서.”
탁.
리리엘이 찻잔을 소서에 놓았다.
“황후 폐하.”
여태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리리엘이 갑자기 입을 열자 황후는 입술이 살짝 말랐다.
아까부터 리리엘에게서 묘한 압박감과 불편함을 느꼈다.
‘이 아이가 이랬던가?’
왠지 모를 기세에 눌려 리리엘이 침묵으로 일관해도 평소처럼 화를 못 내고 있었다.
“무언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나는 황후 폐하의 정쟁 도구가 되기 위해 초대에 응한 게 아니에요.”
“감히!”
“보다 많은 생명을, 인류를 구원하고자 제도에 올라온 것입니다.”
대체 그게 뭔 소리야.
황당해서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리엘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 났고 목소리는 확신에 차 풍성하게 울렸다.
정의로운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자는 빛이 난다고 했던가?
갑자기 뭔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황후는 따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리리엘의 손을 잡으면 평안과 행복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잠시 매료된 듯 리리엘을 바라보던 황후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뭐였지?’
황후는 차를 들이켜며 생각을 정리했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그대의 뜻은 알겠네. 하지만 잊지 않았겠지? 치수 사업을 놓고 폐하가 파에라톤 공녀와 그대를 경합시킨 것.”
따지고는 있지만 황후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황후는 그런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했다.
“폐하께서 주신 기간은 한 달이야. 하지만 이미 기한은 훌쩍 넘었네. 하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아. 이게 무얼 뜻하는 지 알겠나?”
“무얼 뜻하지요?”
“그대가 특출난 계획서와 투자자를 물어오지 못했다는 뜻이지.”
황제는 치수 사업 건에서는 명백하게 루아티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애초에 황비가 잘 진행하고 있던 일인데 황후와 손을 잡은 귀족들이 훼방을 놓아 보류된 사업이다.
치수 사업처럼 민생을 위한 중요한 사업마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좌우하려는 행태에 황제가 진노한 것은 당연한 이치.
원래 진행자인 황비와 가까운 루아티샤에게 키를 쥐여주고 싶을 터.
“아무래도 계획서도, 투자자도 비슷하겠지. 폐하께서 무려 전권을 내리겠다고 해서 온 관심이 쏠린 상황이야. 그런데 이렇다 할 근거 없이 파에라톤 공녀를 채택하면 뒷말이 나올 게 분명해.”
“논란이 안 될 시기를 고르기 위해 발표를 늦게 하고 계시다?”
“그래.”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른 데요.”
리리엘이 생긋 웃으며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곧 이에 관한 소식이 올 것 같군요.”
황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황후 폐하!”
시녀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 와 외쳤다.
“무슨 일이지?”
“황제 폐하께서 치수 사업 경합을 공개 경합으로 바꾸겠다고 하십니다!”
“뭐라고?”
황후가 기함했다.
대체 왜?
공개 경합을 하면 황제가 밀어주고 싶다고 해서 루아티샤를 밀어줄 수 없다.
모두에게 정보가 오픈되면 당연히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파에라톤 공녀에게 더 불리해.’
에스테반이 황태자 위에 오르고 나서 상당수의 중신들이 그에게 줄을 댔다.
그들로서는 에스테반의 황태자 자리를 위협하는 사건을 만들고 싶지 않을 터.
‘그러니 덮어놓고 성녀의 편을 들려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황제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공개 경합으로 바꾼다고?’
황후의 시선이 리리엘을 향했다.
느긋하게 찻잔에서 입을 떼는 리리엘의 입술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황후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리리엘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체 무슨 수를……. 분명 황제 폐하께서는 파에라톤 공녀를 밀어주고 싶어 하셨는데, 왜 이런 결정을……?”
“폐하께서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제 진심을 읽으신 것 아니시겠습니까?”
리리엘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 얼토당토않은 말에 황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황제가 그딴 거에 움직일 위인이란 말인가.
“후후, 많이 궁금하신가 보네요. 사실 간단하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사리와 이치에 밝으시지요.”
한마디로 계산이 빠른 자다.
치수 사업은 황제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치적.
“황비 전하나 루루의 편을 들어 주고 귀족들에게 짜증 난 감정을 푸는 것보다 사업을 더 잘할 사람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요.”
“……더 잘할 사람?”
웬만큼 더 잘할 거라는 확신을 주지 않고서는 황제의 마음을 돌리기 힘들었을 텐데.
“제가 투자받을 곳이 황제 폐하의 마음에 드신 모양이에요.”
“대체 어떤 곳이길래?”
황후가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흐음, 대외비인데 황후 폐하께만 특별히 말씀드리지요.”
리리엘은 그렇게 말하며 입가에 손을 얹었다.
황후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신 쪽에서 리리엘에게 다가가 귀를 댔다.
리리엘의 입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
황후가 놀란 눈으로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거, 거길 어떻게……? 황제 폐하께서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아직 확약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결정권자와 만남을 가졌지요. 긍정적인 반응이었고요.”
“……그래서 기한을 늘린 거군. 기한을 늘려서라도 그곳의 투자를 받으면 막대한 이득이 보장되니.”
이 인연이 치수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공개 경합은 저도 조금 의외지만……. 아무래도 폐하께도 기간을 늘린다는 핑계가 필요하셨겠죠.”
“하! 그날 참으로 볼만 하겠구나!”
황후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여태까지 파에라톤 공녀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지. 처음으로 지면 그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까?”
루아티샤가 건방지게도 자신이 내민 손을 거절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얼굴을 직접 못 보는 게 한이구나. 이 망할 금족령!”
금방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파에라톤 공녀가 황제를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황후 폐하, 그리 말하지 마세요. 저는 루루를 짓밟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에요.”
리리엘이 고개를 저었다.
“치수 사업이 성공해야 가뭄이나 홍수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편안해질 테니까. 그 일이 루루에게는 다소 벅찰 수 있으니 제가 맡겠다는 것뿐이랍니다.”
“그, 그래, 그렇겠지.”
리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애롭게 웃었다.
“모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랍니다.”
* * *
[퀘스트 〈꼭 짱이 되어야지!(2)〉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3000캐시 뽑기권이 지급됩니다.] [사교계 트렌드에 커다란 지각 변동을 몰고 왔습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영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눈앞에 와다다 뜨는 알림을 확인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파시스가 본점을 정리하기로 했나 보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도 방금 듣고 보고드리려고 했는데.”
디에르 자작이 깜짝 놀라 내게 물었다.
“다? 아는 방법이 있지!”
“역시 우리 아가씨! 이렇게 대단하시고, 위대하시고, 똑똑 하시고一.”
“그렇게 아부해도 머리 땋는 건 안 돼.”
“힝입니다.”
디에르 자작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망할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 년은 버틸 줄 알았는데. 엄청 빨리 망했네요?”
그륀드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애초에 재무제표가 엉망이었을 테니까.”
사교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과 그 후는 쥬얼리계에 있어서 대목이나 다름없다.
나머지 분기의 매출을 합친 것과 비등한 매출이 이때 나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때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니 올해도 만반의 준비를 했겠지.”
모리스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저, 정확하십니다. 무리하게 가지고 있는 현금을 다 끌어서 금과 보석을 구매하고 임시 인력도 대폭 늘렸지요.”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쥐어짜서 최대한으로 생산하고 그게 다 팔리면 막대한 이득으로 돌아올 테니 욕심이 낫겠지.”
“저는 반대했습니다만, 파에라톤 공작가의 주문서를 보여주며 은행에서 거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현금이 없는 상황에서 빚만 늘어나고 물건은 팔리지 않고. 빨리 망할 수밖에 없겠네.”
물건이 대박 나서 좋은 흐름을 탄 회사도 생산을 늘리다가 현금이 없어서 어음을 막지 못해 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파시스는 물건도 안 팔렸으니…….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손님은 떠나는데 안 팔린다고 가격을 확 낮출 수도, 점포를 정리할 수도 없죠. 그러면 이미지가 더 실추될 테니.”
“명품 쥬얼리계만큼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곳은 없으니까.”
비교적 저가 라인의 제품들을 사가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래 봤자 월세도 내기 힘들 것이다.
“말이 많더라고요. 성녀에게 선물하고 곧바로 이미지가 실추되었으니.”
“공녀님과 함께하는 이듐과 불레아는 전에 없는 호황을 맞고, 성녀에게 후원한 파시스는 망하고. 두 사람의 격차를 말해주는 거 아니겠냐면서도 난리예요.”
“아주 고소하다니까요? 그러게 감히 누구와 누구를 비교해!”
보좌 전대들이 어찌나 신나 하는지 무뚝뚝한 피안크마저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모리스에게 물었다.
“일은 어때? 할만해? 고객층이 완전히 달라서 적응이 필요하지?”
“고객층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났습니다. 사실……. 제가 코촌 치킨 단골이라서요.”
“어머, 그랬어?”
“하하, 네. 꿈만 같습니다. 저어, 이제야 말씀드리는 거지만 실은 제가 공녀님께 선물하는 것으로 마케팅하자고 의견을 냈던 장본인입니다.”
7년 전, 당시에는 아주 파격적인 의견이었다.
귀부인들이나 결혼적령기인 영애들을 상대로 홍보를 했기 때문이었다.
고작해야 열 살 꼬맹이한테 하이쥬얼리를 선물하다니, 타겟팅 미스라고 말이 많았다.
무수한 반대에도 모리스는 밀어붙였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때 자신이 가능성을 걸었던 작은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스카웃했다.
벅찰 수밖에 없었다.
“알아.”
“예?”
“그걸 아니까 데려온 거야. 앞으로도 고정관념을 깨는 마케팅 잘 부탁해.”
모리스는 나를 바라보다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말을 끝으로 모리스와 옐로체, 그륀드, 피안크는 일을 처리하러 나갔다.
집무실에는 나와 디에르 자작만이 남았다.
잠시 기다리자 칸도르 후작과 아즐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전 황제가 공표했습니다. 공개 경합으로 바꾸겠다고.”
나는 생긋 웃었다.
“와, 공개 경합이라니. 몇 년 만이야?”
“새벽 축제 때 이후로 처음이 시죠.”
“난 새벽 축제 재밌었어.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그러셨겠죠. 다른 사람들은 다 쫄려 하는데 아가씨는 참…….”
디에르 자작이 간이 크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생긋 웃었다.
“이번에도 아주 재밌어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