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2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25화(225/353)
☆ 제225화 ☆
시드의 손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목에 내 손을 가져다 댄다.
뜨거운 체온과 두근두근 약동하는 맥박.
“一이렇게.”
낮은 속삭임과 함께 그의 입술이 눈앞에서 움직였다.
나는 홀린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움직이던 입술이 짙은 호선을 그렸다.
그의 목에 닿았던 내 손이 살금살금 위로 올라왔다.
손가락 끝에 부드럽고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내 손끝이 닿은 시드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새하얗고 고른 치열.
오묘한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내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었다.
“……읏.”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입안의 열기가, 보드랍고 촉촉하고 뜨거운一.
“까, 까불고 있어!”
나는 휙 손을 빼며 몸을 물렸다.
두근두근두근一.
심장이 미칠 것처럼 뛰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서 귀에서 김이 나올 것 같았다.
다행히 시드는 더 내게 다가오지 않고 내 옆에 앉았다.
다행이긴 다행인데一.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시드가 웃었다.
“아쉬워?”
“아, 아쉽긴!”
“그런데 왜 그렇게 봐?”
“경계하는 거야.”
“그런 눈빛이 아니었는데.”
시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대체 언제 마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가 이렇게 대담했지?
나는 괜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바람이 상쾌한 정원의 내음을 한가득 싣고 불어왔다.
시드가 바람에 흩날리는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는 딴 생각 안 하는 거 같네.”
“응?”
“요즘 자꾸만 생각에 잠겨 있잖아.”
그러고 보니 시드가 부쩍 거기에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저번에도 뭘 생각하면서 그렇게 웃냐고 하고.
‘그냥 알림창 보고 있던 건데.’
“딱히 고민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럼 더 문제인데.”
“응?”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날 앞에 두고 한눈팔고.”
하, 한눈판다니!
시드가 나를 바짝 끌어당겼다.
“바람둥이를 잡아두기 위해선 쉴 새 없이 내 생각만 하게 만들어야지.”
“허…….”
어이가 없었다.
“누가 바람둥이래?”
“우리 애가 그랬잖아? 다른 파파가 있다고.”
“그, 그건……!”
사실은 동일 인물인데!
이제 와서 그걸 말하자니 창피했다.
거기다 여태 모르는 척하며 시드를 늘렸던 게 있어서 더더욱.
‘……그래도 역시 지금이라도 말할까?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는데.’
안긴 채 힐끔 시드를 올려다보자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나한테 직접 말했던 적도 있잖아. 바람둥이인 거 같은데 어떡하냐고.”
“…….”
어.
‘그, 그랬던 적이 있었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에첸과 시드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이미 몇 년이나 지나서 가슴 깊이 봉인해두었던 사실.
‘시드에 관한 상담을 에첸한테 전부 다 했잖아!’
본인한테 하는 연애 상담이라니!
억울한 거는 나는 절대 연애 상담을 한 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연애 상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쪽팔려!’
그때 시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응? 그때 시드?’
“그러고 보니 시드, 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수르아가 나인지 다 알고 있었지!”
마계에서 돌아온 시드에게 사실은 내가 수르아라고 말했을 때, 시드는 다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내가 어떻게 내 주인님을 몰라보겠어.”
시드가 미소 지으며 내 뺨을 감싸 쥐었다.
“진짜로 그때부터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 거야?”
내가 시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그냥 다 들으면서?
“주인님이 자신의 정체를 못 알아보길 바라는 것 같길래.”
그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휘었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내 마음을 누그러트리진 못했다.
“하여간 말은 잘하지!”
쪽팔려!
그때 시드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나는 이게 왜 연애 이야기냐면서 에첸을 연애 망상 종자 취급했는데.
‘그때 에첸 말이 다 맞았다는 거잖아!’
얼마나 웃겼을까.
“귀여웠어.”
“죽을래? 그 재밌어 죽겠다는 웃음부터 지우고 말하든가.”
퍽퍽!
감정을 실어서 시드를 때리는데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커다란 그의 손이 내 손등을 감싸자 탄탄한 가슴팍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절대 대흉근의 감촉을 느끼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진짜로.
‘감정을 실었다는 건 분노를 담았다는 거지, 사심을 담았다는 소리가 아냐.’
그냥 가장 때리기 좋은 곳이 가슴팍이었을 뿐이라구.
“미안.”
그가 속삭였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서.”
“…….”
“조금이라도 더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어.”
뭐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잖아.
그때 나는 황궁으로 돌아온 시드가 왜 내게 접근하는지 그 의도를 의심했으니까.
“……치사해.”
입술을 비죽이자 시드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一.”
스르륵, 그가 고개를 숙이자 반짝이는 금발이 내 이마를 간질였다.
“나에 대한 주인님의 속마음을 아주 잘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뭐?
“주인님 눈치 없더라.”
“…….”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해도 절대 아니라고 박박 우기고.”
“야.”
나는 시드의 가슴팍을 확 떠밀었다.
풀썩, 긴 소파 위에 시드가 쓰러졌다.
그 상황에서도 시드는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얄미워 죽겠어!’
지금이라도 동일 인물이라고 알려주긴 무슨.
‘저얼대!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주지 말아야지!’
시드가 직접 알아낸 후엔 평생 동안 놀림감으로 삼아버릴 거야!
다짐하는데 시드가 “흐음.” 하고 묘한 비음을 흘리더니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렇게 연애 눈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바람둥이지?”
“적당히 해라, 응?”
나는 시드의 옷깃을 콱 움켜쥐었다.
“한 번만 더 놀리면一.”
종알거리던 내 입술이 멈췄다.
시드의 얼굴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그의 눈가에서 반짝거렸다.
내게서 폭포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그를 흠뻑 적셨다.
그의 금발과 내 머리카락이 한데 섞였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멱살잡이하겠다는 일념에 불타서 누워있는 시드를 덮친 것이다.
눈앞에서 보랏빛 눈동자가 깜빡였다.
화르륵一!
‘미, 미, 미친!’
내가 몸을 물리려는 순간이었다.
턱.
커다란 손이 내 등허리를 눌렀다.
“……!”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 실패한 반동으로 나는 아예 시드의 위로 풀썩 엎어졌다.
두근, 두근.
시드의 가슴팍과 맞닿은 뺨에 그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아니, 시드의 심장박동이 아니라 내 것인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익숙하고도 낯선 향기.
더운 체열.
모든 것이 아찔했다.
“……아무것도 안 할게.”
시드가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허리를 감싼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조금만, 이대로 있자.”
차양을 피해 비스듬하게 기어들어 온 늦봄의 햇살이 우리를 덮었다.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나비와 새가 정답게 날아다녔다.
그러나 인기척은 없었다.
우리 둘뿐.
나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 * *
파다다다一.
수십, 수백의 나비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투명한 나비의 날개 위로 사람의 모습이 비췄다.
늦봄 햇살 아래 누워있는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의 모습이었다.
“꼴값을 떠는군.”
“눈꼴 셔.”
“지들만 연애하냐.”
원래 루아티샤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자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어쩐지 평소보다 더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리리엘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몰려있던 나비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아주 신이 났군요. 감히 예하의 것을 빼앗아 온 주제에 저렇게 행복하다니.”
“중요한 경합을 앞두고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애질이나 하고.”
“대체 그간 어떻게 그 많은 영향력을 모은 거랍니까.”
“너희가 내 명성을 빼앗아간 저 장난꾸러기를 미워하는 건 잘 안단다.”
“예하……!”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라고 하렴.”
리리엘이 자애롭게 미소 지었다.
“곧 지옥으로 떨어질 테니 불쌍하고 가련하지 않니?”
그 말에 추종자들이 탄복했다.
“저딴 계집마저 긍휼히 여기 시다니……!”
“더러운 아프타네스의 힘을 이은 저 천박한 인간인데.”
“예하께서는 어쩜 이리 관대하시고 친절하신지!”
리리엘이 미소 짓곤 수하에게 물었다.
“신전에서는?”
“만남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예하를 성녀라 부르는 호칭 자체에 저항감을 느끼는 듯했습니다.”
“감히!”
“아무래도 자신들이 성녀의 칭호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민간에서부터 내가 그리 불려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리리엘이 피식 웃었다.
“인간은 항상 그래. 자신이 내린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얻은 명성은 극렬히 경계하지. 자신의 권위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거야.”
“건방지기 짝이 없군요.”
“자신의 권위를 해칠까 그렇게 경계하면서도 성녀가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꼴이 참으로 안쓰럽지 않니?”
리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어 말했다.
“나를 부정한 뒤, 만약 내가 기적을 일으킨다면 그때 자신들이 지어야 하는 책임이 두려운 거야.”
“하! 더럽고 치졸한 인간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군요.”
“그래, 불쌍하게도 인간들은 언제나 그런 식이지.”
리리엘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밝은 햇살이 그녀에게로 쏟아져 내리고 부드러운 바람이 그녀를 감쌌다.
“나는 그 모자라고 가련한 인간들을 구원해줄 거란다.”
리리엘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추종자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죽음으로.”
* * *
“다녀왔습니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서며 커다랗게 외쳤다.
‘……응?’
내 마차가 정문을 통과했다는 소리를 듣고 항상 마중 나오던 가족들이 아무도 없었다.
“다녀오셨어요, 아가씨.”
하녀 언니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째 저택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설마 시드 만나고 온 거 들켰나?’
시드를 만날 때마다 아빠랑 오빠들이랑 할아버지가 울 것처럼 난리 나서 최대한 티 안 내려고 하고 있었다.
“아빠는?”
“각하께서는 후작님과 함께 외출 중이십니다.”
“그래?”
그럼 내가 시드랑 만난 것 때문에 난리 난 건 아니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왜 이렇게 어수선하지?
“분위기가 왜 이래?”
“그게…… 손님이 와 계셔서요.”
“손님?”
나는 오늘 날짜와 최근 스케쥴을 떠올렸다.
“손님 올 일정이 없는데?”
“그게, 제온 도련님께 오신 손님이에요.”
“제온한테?”
의외였다.
제온은 물론이고 오빠들은 전부 타인을 자신의 영역에 들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래서 저번에 왔던 슈엘라처럼 내가 나선 게 아닌 이상 오빠들의 손님이 집에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괜찮은 걸까, 오빠들의 교우 관계.’
갑자기 걱정이 좀 됐지만.
“아무튼 잘 됐다. 제온한테도 친구가 생겼나 봐!”
활짝 웃는데 언니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게, 아가씨.”
틸다가 우물쭈물 말하는 걸 안나가 말렸다.
말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닐지 망설이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왜 그러지?
그때, 낸시가 버럭 외쳤다.
“아가씨! 한 번 제온 도련님께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낸시!”
안니가 말렸지만 나는 낸시에게 물었다.
“왜?”
“그, 그게……. 아무래도 좀 이상해서.”
“일단 가보시면 아실 거예요.”
나는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나는 포기한 듯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헉!
‘설마 제온이 거슬린다고 자기 손님을 공격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제온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서둘러 제온의 방으로 갔다.
“제온.”
문을 열며 부르자 제온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
지독하게 살기 어린 핏빛 눈동자.
믿기지 않았다.
저 살기 어린 눈동자의 주인이 제온이라는 게.
그리고 제온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一.
‘나를 왜……?’
저런 시선은 처음 받아본다.
어렸을 때, 제온을 처음 만났을 때조차 받아본 적 없는 시선.
배 속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제온 님.”
그때, 누군가가 제온을 불렀다.
가느다란 팔이 제온의 가슴팍을 휘감았다.
제온이 그 팔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아.’
저 시선은.
슈엘라가 나를 향해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