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2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26화(226/353)
☆ 제226화 ☆
“어서 와요, 파에라톤 공녀님.”
슈엘라는 마치 이 집의 주인처럼 나를 맞았다.
그러나 내 눈엔 그런 게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슈엘라를 바라보는 제온의 시선이 마치一.
‘나를 보는 것 같아.’
제온이 나 외에 다른 누군가를 저렇게 다정하게 바라보는 건 축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까 봤던 그 살기 어린 시선이 내 가슴 한켠을 불안하고 술렁이게 만들었다.
“제온.”
내 부름에도 제온은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한결같은 눈빛으로 슈엘라만 바라볼 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제온에게로 다가갔다.
두렵다.
다시 불렀는데 제온이 나를 아까 같은 눈으로 바라보면 어쩌지?
완벽한 타인처럼, 모르는 사람처럼, 가족이 아닌 것처럼一.
‘아니야.’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온을 두려워하다니 말도 안 돼.
‘우리 오빠인걸.’
나는 제온의 미소를 떠올렸다.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하게 번지는, 그 작지만 따스한 미소.
그러자 용기가 솟았다.
나는 한 발짝 더 내디디며 제온에게로 손을 뻗었다.
“제온?”
탁!
내 손끝이 아주 살짝 제온의 팔에 닿는 순간, 제온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나를 쳐냈다.
나는 멍하니 제온을 바라보았다.
제온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한 자를 바라보듯 불쾌한 시선.
붉은 눈동자는 더 이상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면 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
“어머, 제온 님. 안 돼요. 그렇게 세게 쳐내면 공녀님이 아프잖아요.”
슈엘라가 제온의 어깨를 감싸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온이 고개를 돌려 슈엘라를 바라보았다.
싸늘하게 날 서 있던 시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져 있었다.
“…….”
얼음을 삼킨 것처럼 배 속이 선뜩했다.
슈엘라가 활짝 웃으며 제온에게 물었다.
“내 부탁 들어주실 거죠?”
끄덕끄덕.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제온이 슈엘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 제온 님도 차암.”
슈엘라가 제온의 등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한, 나를 깔보는 시선.
하지만 그 시선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슈엘라가 짙은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공녀님?”
하나도 안 괜찮다.
얻어맞은 손등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살갗이 쓰리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나는 제온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내 쪽으로는 일체의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슈엘라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욱신.
‘……가슴이 더 아파.’
“여기.”
“응?”
“끝이 갈라졌어.”
“머리카락? 좀 상했나 봐.”
“아니, 여기.”
“……?”
“속눈썹.”
“……속눈썹 끝이 갈라졌다고? 그게 보여?”
“아프면 안 돼.”
속눈썹 한 가닥이 좀 상한 것뿐인데, 제온은 내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시무룩해졌었다.
아프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속삭이며 나를 꽉 끌어안던 단단한 손길.
“왜 자꾸 안고 다녀? 나 혼자 걸을 수 있어.”
“넘어지면 아야 해.”
“안 넘어져.”
“걷다가 피곤하면 안 돼.”
“조금 걷는다고 해서 피곤해 지진 않아.”
“아프면 안 돼.”
“에휴, 알았어. 마음대로 해.”
“응.”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미소 짓던 얼굴.
“편해?”
“응.”
“안 피곤하지?”
“제온은 안 피곤해?”
“좋아.”
“…….”
솔직히 이제 됐으니 내려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제온이 웃는 걸 보자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오래된 기억부터 새로운 기억까지 생생하고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굽이굽이 펼쳐졌다.
제온은 내 속눈썹 한을 상하는 것조차 못 견뎌 했다.
그런데 지금은一.
욱신욱신.
시간이 지나며 팔목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깊게 베인 가슴의 통증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온이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자기가 더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살펴본 것 같은데.
“제온…….”
다 꺼져가는 희미한 목소리가 내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이런 목소리는 안 되는데.
너무 힘없으면 제온이 걱정하는데.
하지만 제온은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슈엘라의 손이 제온의 등을 거미줄처럼 옭아맸다.
“공녀님, 미안해요. 제온 님이 지금 다른 사람을 보고 싶지 않은가 봐요.”
왜 그걸 네가 사과해?
슈엘라가 피식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공녀님은 제온 님이 원한다면 결혼을 반대 하지 않는다고 했죠?”
“…….”
“뭐, 굳이 우리 결혼에 공녀님의 허락 따윈 필요 없지만.”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 슈엘라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도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나가주시겠어요?”
싫다고 말하려고 입술을 열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제온이 나를 그렇게 바라볼까 봐.
정말로 나를 미워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제온의 방에서 나왔다.
그래도 미련은 남아서 문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제온을 바라보았다.
‘제발…….’
나를 봐줘.
아무런 말도 안 해도 되니까, 그냥 평소처럼 바라보기만 해줘.
정말 섬뜩한 장난이었다고 내가 투덜거릴 수 있도록.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제온이 고개를 들었다.
두근, 긴장감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었다.
제온이 슈엘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내게만 보여주던 미소였다.
쿵.
그 모습을 끝으로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닫혔다.
나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나를 미워할까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제온의 세상에 나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으니까.
* * *
하룻밤이 지났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니케가 옹알옹알 걱정 어린 투정을 내뱉었지만 달래줄 정신도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 트자마자 제온에게로 달려 갔다.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제온은 침대가 아닌,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가가 뺨을 쭈물럭대도 깨지 않았던 전과 달리, 제온은 내가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번쩍 눈을 뜨더니 나를 노려봤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몰래 기어 들어온 버러지를 보는 것처럼.
뭐라고 말이라도 해봤어야 하는데, 그 시선이 가시처럼 심장에 박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아빠를 처음 봤을 때가 나았어.’
아빠의 박력에 쫄아서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착각했을 때가 훨씬 편했다.
적어도 그때는 이렇게까지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속이 상하진 않았다.
‘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가씨!”
갑자기 누군가가 내 팔을 훽 잡아챘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니 안나가 답지 않게 다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가 소리친 건가?
“왜?”
내 질문에 안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 미소 지었다.
안나가 다정하게 내 손을 움켜쥐었다.
나는 그제야 내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이게 포크예요, 아가씨.”
“아.”
안나가 내 손에서 만년필을 빼곤 포크를 쥐여주었다.
하마터면 날카로운 만년필 펜촉에 입안에 죄 긁힐 뻔했다.
“아가씨, 다른 걸 내올까요? 아가씨가 좋아하는 우유푸딩을 드시는 건 어때요?”
안나의 뒤에서 로라, 틸다 그리고 낸시가 발을 동동 굴리며 물었다.
“아냐, 괜찮아. 그만 먹을래.”
접시 위의 음식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들이 걱정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걸 살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침실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원작 여주가 나타나면 그녀를 사랑하게 될 거라면서 남주를 밀어내던 책빙의 여주 언니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기도…….’
그때는 원작 다 바꿔놓고 이제 와서 그러냐고, 뭐 이런 고구마가 다 있냐면서 화를 냈는데.
그 언니들은 사랑해서 온 마음을 다 내줬는데, 원작 여주가 나타났다고 남주가 한순간에 돌아선다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나중에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고 해도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사랑했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멋지게 말하기에는 너무 아픈걸.’
제온과 나는 가족이니까 제온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여전히 사이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온이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볼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내게 제온은 언제나 우리 오빠고, 나는 언제나 제온의 막냇 동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마아…….”
니케가 낑낑대며 내 얼굴을 핥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울지 마아…….”
“엄마 안 울어.”
“거짓말이야.”
나는 니케를 푹 끌어안았다.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털, 푹신푹신한 몸.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던 것이었지만, 이상하게 서늘해진 배 속은 도무지 따뜻해지지 않았다.
니케가 끼잉 거리며 내 얼굴을 핥더니 소곤거렸다.
“니케가 족쳐一.”
“응?”
“아니이, 니케 쓰다듬으라구. 니케 쓰다듬으면 마마 마음이 편해져.”
니케가 발라당 누우며 애교를 부렸다.
개는 위대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환수야말로 위대하다.
나는 이 순수하고 멋진 환수의 배를 긁어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다.
‘상처받아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 뚝뚝 흘리고 있는 건 로판 독자의 성미에 맞지 않아!’
로판 독자란 무릇 비련의 여주인공의 멱살까지 잡아끌어서 사이다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존재 아니던가!
‘너무 충격적이고 상상도 못 한 일이라서 잠시 로판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네.’
하마터면 정말 여주인공이 될 뻔했지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백번 양보해서, 제온이 관심도 없던 슈엘라에게 갑자기 반할 수도 있다고 쳐.
‘하지만 나를 쌩판 남처럼 본다고?’
이건 정말 불가능했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나에 대한 관심이 좀 사그라들고, 이전보다 신경을 안 쓸 수는 있다.
원래 그게 정상이니까.
‘그래도 제온은 절대 나를 미워하지 않아.’
그건 누구보다 제온의 동생인 내가 잘 알고 있다.
‘슈엘라가 무슨 수를 썼던 게 분명해.’
나를 바라보며 지었던 그 의기양양한 웃음.
그때 슈엘라는 제온이 나를 밀어낼 걸 확신하며 비웃고 있었다.
“감히 가족을 건드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마?”
그 서슬에 깜짝 놀란 니케를 달랑 안아 들었다.
“족쳐야지.”
“히히.”
꺄르르 웃는 니케를 보고 흠칫했다.
“우리 니케, 방금 엄마 말은 못들은 걸로 하세요.”
“웅! 니케 마마 말 잘 들오!”
“……방금 웃은 거 엄마 말 때문에 웃은 거 아니지?”
왠지 격렬히 동의하는 듯한 웃음이었는데.
“니케눈 마마가 기운 차려서 웃은 곤데. 마마 신났오.”
“오구, 그래쬬!”
나는 니케의 얼굴에 뺨을 부볐다.
‘나도 참. 이렇게 순수하고 순진한 아이를 보고 무슨 의심을 한 거람!’
나는 니케를 품에 끼고 위풍당당하게 침실 문을 뻥 차고 나갔다.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하녀 언니들이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얼음 수건 가져와. 눈 부기 뺄 거야.”
“네.”
“그리고 치장할 거야. 오늘 내 컨셉은 환불하러 가는 컨셉이야.”
“네?”
“환불하러 가는 컨셉의 치장이라…….”
“왜 처음 듣는데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죠?”
“프루시안 가에 연락을 넣어. 내가 방문하겠一 아니지. 왜 내가 직접 가? 지가 와야지.”
“그럼요. 고작 프루시안 영애 따위를 만나러 아가씨께서 귀한 발걸음을 하시다니요.”
“그쪽에서 아가씨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내가 그간 너무 예의를 차렸지. 친절한 파에라톤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낸시가 내 머리카락을 빗기 시작했다.
“파에라톤이 왜 그리 악명 높은지 보여줘야겠어.”
“그럼요. 아가씨처럼 파에라톤다운 분도 없으실걸요.”
……욕 아니지?
조금 찜찜했지만 나는 팔짱을 척 꼈다.
“프루시안 영애가 오면 로비에서 대기 시켜.”
“네, 아가씨.”
오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권력은 쓰라고 있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 아빠가 그랬거든.
나 편하라고 권력 가지고 있는 거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