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2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28화(228/353)
☆ 제228화 ☆
이걸 대체 회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회의는 내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빠와 오빠들은 내 약혼자 후보가 아니라 범죄자를 찾듯 인명부를 쫙쫙 지워나가고 있다.
“저어, 각하. 여기서 여기까지는 통째로 넘겨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가문의 격이 맞지 않아서一.”
“단 한 놈이라도 남겨둘 수 없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애야지.”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싹? 뿌리까지 뽑아 태워버려야 한다.”
“예에…….”
가신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 못생겼다고 안 된다고 할 거잖습니까.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른 얼굴이었다.
제국은 넓고 단승 작위까지 포함한 귀족은 정말 많았다.
‘내일이 되어도 안 끝날 것 같은데…….’
“아빠 결정에 따를 테니까 후보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냉큼 대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가신들의 눈물어린 눈빛이 따라왔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회랑을 걷는데 내 곁으로 아레스와 익시온이 따라붙었다.
“저런 놈팡이들 사이에서는 네 눈에 맞는 남자를 찾기 힘들어.”
“그래, 차라리 나랑 평생 오순도순 사는 게 어때?”
“꺼져. 솜뭉치는 내가 좋댔거든?”
“너는 여전히 연민과 호감을 구별하지 못하는구나. 내 동생은 나를 제일 좋아해.”
一막내는 나랑 결혼할 거야.
一쓰다듬어줘.
언제나처럼 오빠들이 투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다들 지치지도 않아?”
나는 손을 들었다가 움찔했다.
‘아…….’
제온은 없지.
귓가에 들린 것은 습관이 만들어낸 환청이었다.
나는 다시 손을 내렸다.
제온이 없는 걸 확인했는데도 손가락에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스치는 듯했다.
“…….”
“루루?”
“왜 그래?”
아레스와 익시온이 투닥거리던 것을 멈추고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아레스와 익시온의 표정은 더 가라앉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누가 괴롭혀? 패줄까?”
익시온이 깡패야?
물론 나도 거슬리는 게 있으면 패버리자는 주의지만.
아, 이래서 우리가 남매라는 건가.
“……그냥. 제온이 없으니까 허전해서.”
익시온이 뭐야, 하는 얼굴로 손깍지를 껴서 뒷머리에 댔다.
“그 녀석이 없으니 좋기만 한 데. 자꾸 솜뭉치한테 엉겨 붙어서 거슬렸어.”
“……허전하다니. 나를 곁에 두고?”
“응?”
아레스가 작게 읊조리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되묻는데 아레스가 나를 향해 생긋 웃었다.
“내가 허전하지 않게 해줄게.”
아레스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발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내 머리카락이 그에게로 휘날렸다.
“아, 아레스! 내려줘!”
“이러니까 어렸을 때 생각나네.”
“지금 나는 다 컸다고!”
아레스가 웃으며 팔을 굽혔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이마가 맞닿았다.
“내 눈에는 아직도 콩알만한 내 막냇동생이야.”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매가 정말 근사했다.
붉은 눈동자가 달콤한 잼처럼 흐무러졌다.
순식간에 사람 마음을 다 앗아갈 만한 미소.
“…….”
아레스, 다 좋은데.
나는 단 한 번도 콩알만 했던 적이 없어.
“이 새끼, 안 떨어져?!”
익시온이 아레스의 옆구리를 향해 마기를 날렸다.
아레스는 여유롭게 피한 후 반격에 들어갔다.
바닥에 내려온 나는 하하하 웃었다.
‘개판이네, 개판.’
말 그대로 멍멍이들 판이야.
* * *
다리와 발이 퉁퉁 부었다. 구두가 발을 꽉 조이며 발가락이 짓눌렸다.
슈엘라는 다리를 살짝 굽혔다가 폈다.
마음 같아선 구두라도 벗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대체 지금 몇 시간째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거야, 그 망할 계집!’
응접실에서 이만큼 기다리게 했어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문 앞에 세워둔 채 기다리게 하다니!
발과 발목, 다리와 허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두고 봐. 내가 제온 님께 말해서 이 일은 절대 넘어가지 않을一.’
“어서 와요, 프루시안 영애.”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슈엘라는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당장 따지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루아티샤는 평소와 달리 완벽하게 성장(盛裝)을 하고 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보드라운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강렬한 색감의 유색 보석.
루아티샤가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몇 단이나 되는 드레스 자락이 물결쳤다.
분홍빛 머리카락 위에서 다이아몬드로 만든 머리 장식이 마치 티아라처럼 반짝였다.
역사적으로 제왕이 사람들 앞에 나설 때 치장하는 이유가 뭘까.
왜 몇몇 나라에서는 오직 제왕만 입을 수 있는 색을 지정하고 다른 사람은 못 입게 했을까.
단순히 사치를 즐겨서?
그보다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시각에 의존적이니까.
지금 루아티샤의 모습은 왜 그녀가 파에라톤 공녀이며 사교계의 퀸인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공녀님.”
오르카를 비롯한 고용인들이 루아티샤를 향해 정중히 몸을 숙였다.
슈엘라는 하려던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그러면서도 강하고 권위적인 루아티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루아티샤는 계단을 다 내려오지 않고 슈엘라의 머리 위에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뿐이었다.
루아티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빤히 슈엘라를 바라보았다.
가시방석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오직 슈엘라뿐인 듯했다.
루아티샤는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결국 그 불편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슈엘라가 먼저 인사를 했다.
“……파에라톤 공녀님.”
루아티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아하게 뒤를 돌아 다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냥 간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을 무시해?
슈엘라는 너무 기가 막히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가시면 됩니다.”
오르카가 옆에서 알려주었다.
슈엘라가 오르카를 홱 노려보았다.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따라가면 된다는 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바보 취급도 적당히 해야지!
루아티샤는 이미 로비의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가 있었다.
슈엘라는 이를 으득 갈며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에 오르자 다리가 후들거리며 덜덜 떨렸다.
‘젠장!’
이 수모는 반드시 갚아주겠다.
슈엘라가 독기 오른 눈으로 루아티샤를 노려보았다.
* * *
루아티샤가 향한 곳은 응접실이나 티룸도 아닌 집무실이었다.
“파에라톤 공녀!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입니까!”
아까처럼 기세에 눌리기 전에 슈엘라는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따졌다.
“사람을 세 시간 넘게 서서 기다리게 만들다니!”
“어머.”
루아티샤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군요. 힘들었겠어요.”
“뭐라고요……?”
“힘들었겠다고요.”
“……그게 끝이에요?”
“그럼 뭐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 사람을 불러놓고 세 시간 동안 문 앞에서 벌서듯 기다리게 해놓고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으음, 내가 기다리라고 했던가?”
소파 팔걸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느긋하게 하는 말에 슈엘라는 눈앞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적어도 응접실로는 안내했어야죠!”
“그럼 그냥 돌아가지 그랬어요. 자기가 원해서 기다려놓고 왜 나한테 그런담?”
“지금 잘했다는 거예요?”
“어머, 그럼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영애에게 사과를 해야 하나?”
“허…….”
뒷목을 부여잡는 슈엘라를 보고 루아티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까지 떼를 쓰시니 알겠어요.”
“뭐, 뭐라고요? 떼?”
“오르카, 앞으로는 내가 회의 중이어도 프루시안 영애가 오면 바로 알려줘.”
“하지만 각하와 가신들께서…….”
“그렇지 않으면 영애가 이렇게 화를 내니 어쩔 수 없지.”
“알겠습니다, 아가씨.”
순식간에 진상 취급받은 슈엘라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왜?
지금 잘못했다고 자신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파에라톤 공녀 아닌가?
따지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보니 되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쪼렙인데.’
루아티샤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느긋하게 생각했다.
저번에 제온과의 혼담 때문에 만났던 날에도 생각했지만 슈엘라는 한 입 거리조차 안 되는 상대였다.
‘역시 뒤에 배후가 있는 게 확실해.’
누군가가 손을 쓴 게 아니라면 황태후에게 혼담을 거절한 것으로 다시는 슈엘라와 얽힐 일이 없었을 것이다.
루아티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집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륀드가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뭐지?’
슈엘라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오늘 루아티샤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빤하다고 생각했다.
‘오빠한테 무슨 짓을 했냐며 따질 줄 알았는데.’
그럼 자신은 당당히 대답해줄 생각이었다.
‘오빠에게서 독립 좀 하세요! 언제까지 오빠를 독점하고 싶어서 뒤에서 이렇게 더러운 수작을 부릴 건가요?’
一하고.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연습했는데.
루아티샤는 슈엘라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 지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예전에 제온과 결혼하기 전부터 파에라톤 내무 관리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래서 오늘 준비했어요. 이 서류부터 보면 돼요.”
“서, 서류를 보라고요?”
“하고 싶다면서요?”
루아티샤는 어깨를 으쓱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는 내 책상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 다 하면 말하세요.”
그대로 일을 시작하는 루아티샤의 모습에 슈엘라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생각한 내무란, 예산을 어디에 더 주고 인테리어를 어떻게 바꿀 것이며 파티를 어떤 식으로 열라고 고용인들에게 명령하는 거였지 이런 식으로 서류를 보는 건 아니었다.
‘이깟 거, 내가 못 할 줄 알고?’
슈엘라는 콧김을 내뿜으며 서류를 집어 들었다.
* * *
“틀렸어요.”
“틀렸어요.”
“다시.”
“다시.”
“다시 하세요.”
파사삭.
슈엘라의 손에서 서류가 구겨졌다.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대충 힐끗 보고 다시 해오라고 하는 루아티샤도 짜증 났지만, 그보다 더 짜증 나는 건一.
“공녀님, 모든 사람이 공녀님처럼 완벽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프루시안 영애께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으니 그래도…….”
슈엘라가 들고 있는 서류를 힐끗 곁눈질한 그륀드가 헉,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네요. 공녀님이 다섯 살 때 작성한 서류가 훨씬 나은 듯. 아예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요.”
그륀드가 주먹을 불끈 쥐며 슈엘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화이팅 입니다?”
“이익……!”
참다못한 슈엘라가 서류를 내동댕이쳤다.
“나에게는 나만의 일 처리 방식이 있어요! 원래 내 방식대로 처리하면 이것보다 훨씬 잘한다고요! 왜 공녀의 방식을 강요 하는 거죠?”
“흐음, 프루시안 가가 운영하는 사업체가 있었죠? 그게 파에라톤과 비교하면 어떻더라…….”
루아티샤의 중얼거림에 슈엘라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어림잡아도 27배 이상 차이 납니다.”
그륀느가 냉큼 대답했다.
“아하. 프루시안 영애만의 방식이 있다고요.”
힐끔 자신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슈엘라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루아티샤가 일부러 자신에게 어려운 것만 준 게 틀림없다.
“내가 영애에게 할당해준 것은 특히 쉬운 것들이에요. 의사 결정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정보를 취합해서 기계적으로 서류를 꾸리라는 건데 그게 어렵다고 하면…….”
“어, 어렵다고 하진 않았어요!”
“음, 근데 왜 여기 나온 도표가 완전히 달라졌을까요? 주입식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가. 정말 창의적이야.”
루아티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온은 이런 거 진짜 싫어해요. 만사를 귀찮아해서 한 번 봤을 때 오류가 없는 걸 좋아하거든요.”
“…….”
“제온은 실수 같은 거 하지 않아서 서류를 다시 보게 되게 되는 경우는 전부 다른 사람 실수 때문인데. 영애가 이러면…….”
능력도 없는 네가 제온의 짝으로 가당키나 하겠니?
루아티샤의 의도는 어떨지 몰라도 슈엘라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리고 그건 그녀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열등감과 불안함을 정확하게 헤집었다.
슈엘라의 이성이 끊어졌다.
“너무 내 남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아닌가요?!”
쾅, 슈엘라가 책상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불쾌해요! 기껏해야 동생 주제에!”
루아티샤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걸 보고 슈엘라는 우월감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형제들은 결혼하고 나면 남남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서로 각자 가정 꾸리고 자기 아이들 돌보고 그러면 일 년에 한두 번이나 볼까 말까 한 사이.”
“…….”
“그에 반해 나는 제온 님의 아내가 될 사람이에요! 제온 님과 가정을 꾸리고, 제온 님의 진정한 가족이 될 사람!”
슈엘라가 가슴을 내밀며 당당하게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공녀의 서열도 나보다 낮죠. 나는 공녀의 오빠인 제온 님의 아내니까!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예요, 아시겠어요?”
“…….”
“내가 공녀의 윗사람으로서 똑똑히 알려줄게요. 그렇게 제온, 제온하고 오빠 이름 함부로 부르는 거 아녜요. 앞으로는 큰 오라버니, 하고 거리를 좀 두세요!”
루아티샤는 잠자코 슈엘라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으음, 다 좋은데…….”
루아티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고작 동생인 나와 달리 영애는 제온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지 않아요?”
“……!”
“약혼도, 결혼도 뭐 하나 안 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