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3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32화(232/353)
☆ 제232화 ☆
소중하고 애틋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제온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슈엘라는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제온에게 그런 시선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하고 있었다.
꼭 예전처럼.
‘안 돼.’
슈엘라는 희게 질린 얼굴로 제온에게 다가갔다.
“제온 님.”
제온의 팔짱을 끼며 웃자 제온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온은 여전히 소중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주 웃는 슈엘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방금 나를 쳐내려고 했어.’
성녀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신 후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불안감이 선득하게 목덜미를 타고 기어올랐다.
* * *
“어? 제온 공자님!”
정원에서 티파티를 즐기고 있던 영애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대로라면 막냇동생을 데리러 왔다고 생각했겠지만.
영애들의 시선이 제온의 팔로 향했다.
슈엘라가 자랑스럽게 팔짱을 꼬옥 낀 채 웃고 있었다.
‘……두 사람 중 누굴 데리러 온 거지?’
그 생각이 빤히 읽히는 시선에 슈엘라는 제온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제온 님이 저를 데리러 와주셨어요.”
“어머, 그러셨구나.”
“제온 공자님도 참 다정하시네요.”
영애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정말로 제온 공자님이 프루시안 영애를 챙기긴 하네?’
신기하긴 했다.
하지만 딱히 영애들의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다.
아무리 슈엘라가 제온과 결혼할 사이라 해도 파에라톤에서 루아티샤의 입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루아티샤가 맡고 있는 가문의 사업이 몇 개며, 총괄하고 있는 내무가 몇 개인데.
‘프루시안 영애의 능력으로는 혼인해봤자 파에라톤 공녀보다 훨씬 권한이 적을걸.’
거기에 사교계에서 루아티샤의 명성마저 슈엘라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으니.
슈엘라만 있을 때는 그녀를 치켜세워 줄 수 있겠지만, 루아티샤 앞에서는 아니었다.
무엇보다一.
‘제온 공자님은 아까부터 계속 파에라톤 공녀님만 바라보고 있는데.’
‘사실상 동생을 데리러 온 거 아니야?’
다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루아티샤를 보았다.
“그럼 이제 공녀님도 함께 가시나요?”
“너무 아쉬워요.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뵐 수 있겠죠?”
영애들이 섭섭한 얼굴로 루아티샤에게 물었다.
그 모습에 슈엘라가 이를 악물었다.
‘제온 님은 나를 데리러 왔다고! 다들 왜 이래?’
제온이 오면 자신과 루아티샤의 격차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제온이 얼마나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이야기할 때도 영애들이 은근슬쩍 믿지 않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이제 저 박쥐 같은 것들이 제 말을 전부 믿고 자신에게 아양을 떨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방금 겪었던 수모를 파에라톤 공녀도 똑같이 겪게 될 거라고…….’
하지만 루아티샤는 부채를 살랑살랑거리며 생긋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제온이 프루시안 영애를 챙기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
루아티샤의 시선이 제온에게 닿았다.
슈엘라는 루아티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온이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꽉 붙 들고 있는 팔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 제온 님…….”
그 부름에 제온은 고개를 돌려 슈엘라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가 온전히 슈엘라를 담았다.
“…….”
그래,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여기 있다.
연약하고 작아서 자신이 지켜주어야 하는 존재.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존재.
그의 가족.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
‘그런데 왜.’
채워지지 않았다.
분명 예전에는 이 아이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웃는 걸 바라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一.
“…….”
공허하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지독한 상실감이 제온을 뒤흔들었다.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제온의 시선이 슈엘라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윽고 그의 눈에 담긴 것은 루아티샤였다.
‘어째서.’
자신의 가족을 괴롭힌 못된 것에게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걸까.
보고 있지 않을 때도 저 여자애가 생각났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상처받았던 표정.
그럼에도 활짝 웃으며 “제온, 제온!”하고 다가오던 모습.
“심장마비!” 하며 멋쩍게 웃던 얼굴.
그 사이 스치듯 보이는 슬픔.
“…….”
가슴이 이상했다.
무언가 꽉 막힌 듯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거슬려.’
짜증이 난다.
그런데 저 여자애를 바라보고 있을 땐 어쩐지 이 지독한 상실감이 조금은 흩어지는 것만 같아서一.
루아티샤는 영애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정말이죠? 꼭 그때 초대해주시는 거예요?”
“너무 이렇게 기대하면 제가 민망한데. 별거 없는 파티예요.”
“별거 없다니요! 공녀님께서 주최하시는 파티인데. 시장 바닥에서 물 한 그릇 주는 파티라고 해도 저는 족해요.”
“음, 근데 시장 바닥에서 열리는 파티라면 꽤 재밌지 않을까요? 난 솔깃한데.”
웃는 루아티샤의 얼굴은 언제 나처럼 자신감이 넘치고 아무런 그늘도 없었다.
그러나 제온의 눈에는 그 안에 숨긴 상처가 다 보였다.
제온은 빈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왜 저 아이의 아픔을 알아차리는 거지?’
“……온 님.”
옆에서 슈엘라가 그를 불렀지만, 제온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저 아이의 아픔이 거슬려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신경 쓰였다.
그 순간,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며 제온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루아티샤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즐거웠어요. 새로운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에요. 하지만 이후 일정이 있어서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영애들은 다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루아티샤가 몸을 돌리자 긴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마치 봄이 온 것처럼 꽃잎 같은 머리카락이 제온의 시야를 뒤덮었다.
나부끼던 머리카락이 가라앉았을 때, 루아티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루아티샤는 뒤돌아보지 않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정원을 나갔다.
하지만.
‘울지도 몰라.’
대체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니, 화를 내고 있을 거야.’
그러나 그 생각만이 제온의 머리를 강하게 지배했다.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저절로 다리가 움직였다.
“제, 제온 님?”
당황한 슈엘라가 제온의 팔을 더 꽉 붙드는 순간이었다.
탁!
거친 손길이 슈엘라를 쳐냈다.
슈엘라가 깜짝 놀라 제온을 올려다봤지만,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이미 그의 안중에 슈엘라는 없다는 듯.
긴 다리로 성큼성큼 멀어지는 뒷모습에 슈엘라가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제, 제온 님!”
하지만 제온은 단 한 번도 멈칫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제온 님!”
“제온 공자님은 프루시안 영애를 데리러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제온을 따라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슈엘라가 멈칫했다.
독기 어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자 말을 한 영애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내가 데리러 와달라고 해서 와주신 거예요.”
“그래요?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슈엘라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만 가보도록 하죠.”
슈엘라는 그 말만 남기고 쌩하니 타피티 장소를 빠져나왔다.
키가 큰 정원수에 모습이 가리자마자 안쪽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봤어요? 프루시안 영애가 제온 공자님 팔에 꼭 붙어서 계속 부르는 거.”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제온 공자님은 쳐다보지도 않던걸요.”
“솔직히 좀…… 애잔할 지경이었죠.”
우뚝, 슈엘라의 발걸음이 멈췄다.
“공녀님이 가족에게 집착해서 오빠들한테 영애들이 접근하는 걸 다 훼방 놓는다더니.”
“아까 보니 방해하거나 하다못해 눈치 주는 것도 없었잖아요?”
“제온 공자님이 와도 한 번 아는 체만 하고 계속 우리랑 이야기했잖아요.”
“제온 공자님한테 프루시안 영애를 데리러 온 행동이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기도 하고요.”
“셋이 같이 나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먼저 가보겠다면서 자리까지 피해준 거 보면 오히려 공녀님이 프루시안 영애를 배려해서 빠져준 것 같은데.”
짧은 침묵.
그 자리에 없음에도 알 수 있는 동조의 침묵이었다.
“이거, 설마?”
“제온 공자님은 싫어하는데 공녀님이 황태후 폐하의 체면을 봐서 잘 대해주라고 말한 바람에 억지로 상대해주고 있는 거 아녜요?”
“아무리 봐도 루아티샤 공녀님이 도와주고 있잖아요.”
“우와, 그런데 프루시안 영애는 파에라톤 공녀님이 그렇게 훼방을 놓는다면서 뒷말한 거예요?”
“심지어 말이 너무 심했잖아요. 엄마가 없어서 그런다느니, 유년기에 문제가 있었다느니. 다시 입에 담으려고 하니 내 입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지?”
“원래 프루시안 영애 성격이 그렇잖아요.”
“은근히 자기가 준황족인 것처럼 굴며 사람 무시하죠? 실상은 선대의 정쟁에서 진 바람에 다 망했으면서.”
“루아티샤 공녀님만 안 됐죠.”
슈엘라가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까드득, 절로 이가 갈렸다.
‘난 원래대로라면 준황족이 맞았다고!’
현 황제가 아니라 황태후의 자식이 황제가 되었다면 자신은 황제의 오촌 조카로서 모든 것을 누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루아티샤 파에라톤보다 내가 훨씬 사교계에서 명성이 높았을 거야.’
오늘 수모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슈엘라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영애들을 노려보았다.
‘내가 파에라톤 공작부인만 되면 너희들 따위 전부 매장시켜주겠어.’
그러기 위해선 제온부터 다시 제정신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 * *
‘아, 진짜 빡치네.’
나는 쿵쾅거리려는 발걸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슈엘라가 제온에게 딱 달라붙어서 알랑거리고 있는 꼴을 보니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사기를 이용했다잖아!’
사기를 이용한 금제에 걸려 고통받던 시드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슈엘라를 계속 옆에 두다가 제온까지 그렇게 아플까 봐 속이 타들어 갔다.
감히 우리 오빠한테 사특한 사술을 쓰다니!
‘제온은 또 왜 그런 술수에 당한 거야?’
따지고 보면 제온은 피해자지만 이쯤 되니 제온에게도 화가 났다.
‘어? 지 동생도 못 알아보고 말이야!’
가족도 못 알아보다니 진짜 눈에 뵈는 것도 없냐!
눈은 장식이지, 아주?
왜 달고 다니냐!
한창 씩씩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제온?”
왜 여기 있지?
뇌 힘 안 줘서 정신 못 차리고 슈엘라인지 슈발라인지랑 꽁냥거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녔어?
제온은 말이 없었다.
그저 한참을 내 얼굴만 바라볼 뿐.
나는 반항심을 담아 제온을 잔뜩 노려봐주었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그의 입술이 열렸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우와, 이 대사.’
‘나에게 이런 아이는 처음이야.’
다음에는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라니.
‘제온은 참 한결같구나.’
사술에 걸려서 자기 동생도 못 알아보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제온은 제온이었다.
그게 참 안심되면서도 가슴 아프고, 또 반가워서.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불퉁하게 말하자 제온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면 왜, 내가.”
더 말할 것 같았던 제온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뭔데?
이제 내가 좀 자기 동생처럼 보이고 그러나?
뇌에 살짝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거야?
가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렇잖아. 이런 대사는 보통 혐오하는 사람한테 쓰는 게 아니잖아.’
무엇보다 오늘 제온의 눈빛에는 살기 대신 혼란이 가득해서.
“내가?”
재촉해도 제온은 말이 없었다.
오히려 아까와 달리 흉흉한 기세로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혼란만 가득했던 눈동자가 매서워졌다.
“말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내가 이렇게까지 널 거슬려 하는지.”
뭐……?
거슬려?
“도무지 신경 쓰여서 참을 수가一.”
“지금 승질 낼 사람이 누군데!”
쿵!
나는 제온을 나무 기둥을 향해 홱 밀쳤다.
버티고 선 채 미동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리만치 잘 밀렸다.
턱.
나는 제온의 얼굴 옆에 거칠 게 손을 짚었다.
“알아? 빡치는 사람은 나라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미워하면서 진짜로 공격하려고 하질 않나. 그래도 우리 오빠라고 계속 다가가는데 무시하면서 밀쳐내지 않나. 얻어맞은 손목이 하필이면 오른쪽이었어. 서류에 싸인할 때마다 손목이 시큰거려서 얼마나 짜증 났는지 알아? 그나마 아즐이 치유해줘서 그 정도였지! 무식하게 힘만 쎄서 말이야! 지 동생도 못 알아보고 다치게나 하고! 그래놓고 뭐? 거슬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이 말씀이야! 지금 거슬려 할 사람은 나거든?! 지가 무슨 상태인지도 모르고 슈발라한테 헤벌쭉해서는!”
다다다다 쏘아붙이니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숨을 몰아쉬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까지 쏘아붙이는데 제온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날 바라보는 제온의 눈빛이 꼭一.
“……내 막내.”
一예전 같아서.
‘어?’
“그래서 이제 내가 미워?”
뚝, 뚝.
제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