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3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33화(233/353)
☆ 제233화 ☆
나는 멍하니 제온을 바라보았다.
제온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쉴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루비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제온?”
정말 우리 오빠야?
제온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푹 끌어안았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제온에게 안겨있었다.
익숙한 품.
‘우리 오빠 품이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이 당연하고 익숙한 품이 한없이 그리워서.
‘고작 며칠이었을 뿐인데.’
그 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멀고 길었다.
제온이 흘리는 눈물에 소리 없이 내 어깨가 젖어 들어갔다.
나를 끌어안은 제온의 손에는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미안해.”
나지막한 속삭임.
“미안, 미안해.”
제온은 쉴새 없이 내 귓가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제온을 아주 잘 알았다.
그가 평생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빠가 만들어 준 푸딩을 망가트렸을 때도 미안하다고는 안 했는데.’
“미안해, 내 막내. 내가 잘못했어.”
응, 제온이 잘못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 마.”
우는 건 내가 아니라 제온이면서.
목소리까지 잠길 정도로 우는 주제에 누굴 달래고 있는 거야.
“바보…….”
멍청이, 똥개.
우리 남매는 그렇게 한참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커다란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쓸더니 내 뺨을 감싸 쥐었다.
혹여 부서질까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제온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음은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건데 내게는 제온의 절박한 마음이 선명하게 보였다.
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짙은 감정.
다시 마주한 제온의 얼굴은 울음기가 잔뜩 남아있었다.
내 코와 눈가도 제온처럼 빨개져 있겠지.
제온이 가만히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날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다시 또 조금 떨어져 내 얼굴을 가만히 본다.
그리고는 또 한 번 꽉 끌어안았다.
다시 얼굴을 확인하고 또 끌어안으려고 해서 나는 슬쩍 몸을 물렸다.
‘나 아직 화났다구!’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다시 분노가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제온이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제온을 피한 충격이 컸는지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그 눈을 외면 했다.
“막내야…….”
“…….”
고집스레 눈을 마주치지 않자 제온이 내게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또 한 발짝 몸을 뒤로 물렸다.
보지 않고 있음에도 제온의 충격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막내一.”
다시 내게 다가오던 제온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내 목걸이와 귀걸이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거 하고 있어?”
나는 제온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지금 나는 제온과 가족들이 선물한 파뤼르 세트가 아니라, 시드가 선물해준 걸 착용하고 있으니까.
그래, 시드가 준 게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 바람에 제온이 울어버린 바로 그 파뤼르 말이다.
“제온이 미우니까.”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제온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나는 몸을 휙 돌렸다.
“나, 갈 거야.”
제온이 얼른 내 곁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마차에 오르려 하자 제온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무시하고 스스로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제온이 발판을 딛기 전에 앞을 탁 막았다.
“이건 내 마차야. 제온은 제온이 타고 온 마차 타.”
“내 막내랑 같이 타고一.”
“어차피 제온은 프루시안 영애 데리러 왔다며?”
새침하게 말하자 제온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따로 타.”
내 손짓에 눈치를 보던 풋맨이 얼른 마차 문을 닫았다.
탁!
마차 창문 너머로 제온이 애타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촥촥 쳤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자 마부석과 통하는 창을 톡톡 두드렸다.
알아들은 마부가 재빨리 마차를 출발시켰다.
다그닥, 다그닥.
경쾌한 리듬과 함께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커튼을 젖히고 밖을 살폈다.
제온이 충격받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내가 탄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마차가 계속 멀어지고 있는데도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짠하기도 하고…….
‘아니지, 아니야.’
나는 다시 커튼을 촥 여몄다.
‘아직 멀었어, 흥!’
* * *
리리엘은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죽일까?’
인간들 사이에서 살인 사건이 얼마나 난리 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죽이더라도 자신의 거처에서 죽이면 안 된다.
‘그래도 그냥 확 죽이고 싶은데.’
리리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슈엘라는 계속 눈물을 찍어냈다.
“흐흡, 그래서 제온 님이, 제온 님이 그 못된 파에라톤 공녀를, 따라가서어……. 다른 영애들이 다 보고 있는데, 흐윽, 제가 얼마나…….”
리리엘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찻잔을 쥔 그녀의 손에는 힘줄이 돋아나고 있었다.
“흑, 성녀님, 제 말 듣고 있는 거죠?”
“그럼요.”
리리엘이 생긋 웃었다.
“정말 제가, 너무 충격받아서……. 손발이 덜덜 떨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흡. 부, 분명 제온 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
“그 후로는 제온 님이 저를 만나주지 않는데, 이건 분명 제온 님의 뜻이 아니에요! 제온 님이 제게 직접 보기 싫다고 한 것도 아닌걸요? 나와 제온 님의 사이를 질투해서 훼방 놓으려는 파에라톤 공녀 짓이 틀림없어요!”
제온 파에라톤이 남들이 막는다고 막아질 사람이던가?
리리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맞아, 원래부터 징그럽게 가족에게 집착하는 게 장난 아닌 애였다구요! 파에라톤 공녀가 나의 제온 님께 무슨 더러운 술수를 쓴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왜 갑자기 제온 님이 저를 피하겠어요?!”
참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그 누구보다 슈엘라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축복’을 받은 후 갑작스럽게 그녀를 대하는 제온 파에라톤의 행동이 변했으니까.
‘제온 파에라톤이 자신을 아껴주는 상황이 좋아서 진실을 외면하더라도, 내심으로는 술수를 쓴 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
인간들이란 어쩜 이다지도 멍청하고 아둔하고 가련할까.
슈엘라가 의자에서 내려와 리리엘의 앞에 무릎 꿇었다.
“도, 도와주세요, 성녀님. 저는 제온 님 없이는 못 살아요. 그러니 저번처럼 제게 축복을…….”
리리엘은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붙잡은 슈엘라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불쾌하네.’
생각 같아서는 이대로 저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지만一.
“제가 프루시안 영애에게 내린 축복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리리엘은 프루시안 영애의 손을 꼬옥 붙잡아주었다.
“그러니 굴하지 마세요. 영애라면 분명 더러운 수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된 사랑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 제게 더 강한 축복을一.”
따지려던 슈엘라는 말을 멈추고 멍하니 리리엘을 올려다보았다.
자애로운 미소 뒤로 후광이 비추는 듯했다.
이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 같은 느낌.
“자아, 울지 말아요. 다시 한 번 제온 님과 만나봐요.”
리리엘이 슈엘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네, 성녀님.”
슈엘라가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리리엘이 나가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제가 분명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요.”
여태까지의 다정했던 목소리와는 다른 음성이었다.
낮게 깔린 위압감에 슈엘라가 몸을 떨었다.
“서, 서, 성녀님…….”
리리엘이 생긋 웃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
“예, 예! 절대 성녀님의 말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희게 질린 얼굴로 대답한 슈엘라가 빠르게 방을 나갔다.
탁.
슈엘라가 방을 나가자마자 파티션이 쳐진 안쪽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보았느냐?”
리리엘은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인간이란 어찌 저렇게 어리석고 가련할까.”
“어서 예하께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구원해주시길.”
추종자가 리리엘의 앞에 부복했다.
리리엘은 잠시 차를 마시며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절대 풀 수 없는 계약인데 대체 어떻게 푼 것일까?”
시드리한에게 걸린 금제와 달리, 이것은 리리엘이 직접 건 저주의 계약이었다.
거기에 무려 자신이 흡수했던 고대 마물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 장난꾸러기 공녀가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파사의 힘으로는 택도 없어. 제온 파에라톤의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소용없지.”
리리엘은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 저주는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의 전부를 잃게 만드는 계약이었으니까.”
추억도, 기억도, 생각도 모두 없앤다.
단 하나, 오로지 감정만이 남을 뿐.
그리고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과 바꿔치기한다.
없던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지만, 있는 감정을 비트는 것은 쉬우니까.
그러니 추억을 되새겨서 기억해내는 일도, 기억과 맞지 않는다고 의문을 가질 일도, 하물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일조차 없다.
제온이 느끼는 감정은 만들어진 감정이 아니라 진실된 감정이기에 더더욱.
“……그런데도 제정신을 차렸다니.”
완전히 바꿔놓아도 다시 또 핏줄에게 끌린다는 건가, 하고 납득할 만한 게 아니었다.
만약 다른 어떤 존재의 개입 없이 제온이 스스로 정신을 차린 거라면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막냇동생을 향한 마음이 만들어낸 기적.
리리엘의 입매가 비틀렸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습구나. 제온 파에라톤이 루루에게 했던 행동은 원래라면 전부 슈엘라 프루시안에게 했을 행동이다.”
저주에 걸린 제온이 루아티샤를 보며 느낀 감정은 본디 슈엘라에 대한 감정이었으니까.
반대로 제온이 슈엘라에게 했던 행동은 전부 루아티샤에게 해주었을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꼴 좋다며 행복해하다니.”
리리엘은 화병에 꽂힌 꽃잎을 쓰다듬었다.
“어찌할까요, 예하.”
“내버려 둬. 어차피 계약은 성립되었고 유지되고 있다.”
제온 파에라톤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냐는 리리엘의 말에 슈엘라가 그렇다고 대답한 순간, 계약은 체결되었다.
슈엘라는 자신이 대답했던 대로 무엇이든 감수해야 할 터였다.
‘그래, 그게 무엇이든.’
리리엘이 자애롭게 미소 지었다.
“제온 파에라톤이 다시 저주에 걸려들지, 아닐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어차피 내 목적은 이뤄졌으니.”
물론 루아티샤가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오래 즐기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아쉬웠다.
하지만 어차피 이건 기한이 있는 계약이었다.
계약 종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고 해서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공개 경합은 내일이다. 문제는 없겠지?”
“네, 예하.”
“파에라톤 공녀의 상황은?”
리리엘 역시 루아티샤에게 눈을 붙여놨었다.
“그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에 접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갑자기 돌변한 제 오빠에게 신경 쓰느라 경합은 안중에도 없었을 테니까.”
리리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내일 경합은 완전히 자신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이다.
계획대로 파에라톤 공녀는 리리엘이 가질 영향력의 자양분이 되어줄 터.
‘나를 위해서 영향력을 키워줘서 참으로 고마워.’
꽃향기를 맡으며 미소 짓는 리리엘의 얼굴은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손에서 꽃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며 시들었다.
* * *
같은 시각, 파에라톤 공작저 루아티샤의 집무실.
“그래, 리리엘과 만났다고.”
내 말에 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녀님.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 숨어들잖아?”
“제 모습을 숨기는 것은 쉽습니다만……. 거처에 묘한 기운이 감돌더군요. 무언가가 계속 지켜보는 느낌에 아예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프리스는 할아버지가 신임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자였다.
그런 사람의 감각은 신뢰하는 편이 옳았다.
“잘했어. 들키는 것보다는 낫지. 그리고 어떤 말을 했을지도 짐작 가고.”
“감사합니다.”
“고생했으니 코촌 치킨에서 부대원들이랑 회식해. 원하는 대로 먹어.”
“감사합니다!”
음, 아까 감사하다고 할 때랑 톤이 너무 다른데?
진심이 듬뿍 담겼어.
‘역시 치느님은 위대하시군.’
나는 서랍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이거.”
혹시 내가 또 다른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닐까, 프리스가 긴장하며 봉투를 받아들었다.
봉투를 열어본 프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오페라 티켓이야. 그것도 파에라톤이 가지고 있는 박스석 티켓.”
“이런 귀한 걸 왜 제게…….”
“보러 가라구.”
“……왜요? 이 오페라에서 뭐 조사할 거라고 있습니까?”
프리스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호의를 베풀어도 의심하네.”
“저는 오페라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산드라는 좋아할걸.”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프리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와, 프리스. 정보요원 맞아? 그렇게 다 티가 나서야 정보를 얻어오는 게 아니라 역으로 뺏길 것 같은데.”
“어, 어, 언제부터!”
“음, 처음부터?”
나는 씨익 웃었다.
“잘해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짝 굳은 프리스의 옆을 지나쳤다.
“처음이라면 공녀님이 완전 꼬꼬마 때인데……. 꼬꼬마에게…….”
등 뒤로 충격에 빠져 중얼중얼거리는 프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꼬꼬마를 너무 무시하시네.
어려도 알 건 다 아는 2회차였거든?!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제온이 보였다.
“막내야.”
집무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더니 내가 일하고 있는 내내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나는 찬바람이 쌩하게 불도록 돌아서며 성큼성큼 회랑을 걸었다.
풀죽은 제온이 졸졸졸 내 뒤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