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3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35화(235/353)
☆ 제235화 ☆
“뭐, 좀 재수 없지만.”
“그래도 이 모습이 낫네.”
익시온과 아레스가 제온의 옆에 나란히 섰다.
조금은 어색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잘 돌아왔어.”
툭, 아레스와 익시온이 제온을 주먹으로 건드렸다.
제온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피하지도, 반격하지도 않았다.
이내 삼 형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회랑 안으로 환한 달빛이 들어찼다.
검은 머리카락이 월광에 온유하게 젖었다.
형제들은 그 달빛을 맞으며 한참 말없이 서 있었다.
나란히.
Chapter 34.
치수 사업 공개 경합일.
황궁 외궁의 딜루쿨룸 홀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흔들리는 부채 사이로 쉴 새 없이 입술이 움직였다.
“들으셨죠? 황제 폐하께서 전권을 승자에게 위임하겠다고 하셨대요.”
“그야말로 승자독식.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겠네요. 그래서 그런지 눈치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우승하고 나서 치수 사업에 끼워달라고 줄을 대봤자 이빨이 들어가겠는가.
지금이 줄을 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발 빠른 자들은 진작부터 손을 얹으려고 공을 들였고.
“흐음, 과연 오늘 누가 치수 사업을 따낼까요?”
“당연히 파에라톤 공녀 아니겠어요? 공녀가 여태까지 해온 것이 얼마인데.”
“그날 자리에 있었던 영애들 말을 들어보니 애초에 폐하께서는 파에라톤 공녀를 중용하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리리엘 영애가 계속 의견을 피력하며 돕고 싶다고 해서 경합까지 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리리엘 영애도 참 대단하죠?”
“그럼 승자는 이미 파에라톤 공녀로 정해진 거나 다름없네요.”
“왜요? 리리엘 영애도 주로 활동하던 남부에서 성녀라고 불릴 정도로 칭송받던 레이디인데.”
“아무리 그래도 파에라톤 공녀에게는 안 되죠. 폐하의 의중도 의중이지만, 공녀가 보통 수완가인가요.”
“무엇보다 그 성녀 칭호도 신전에서 정식으로 부여한 게 아니잖아요?”
“흠, 제 생각은 좀 다른데.”
“네?”
“예상되는 결과가 있는 것보다 이변이 생기는 게 더 재밌지 않겠어요?”
“뭐, 그거야 그렇지만…….”
그럴 일이 있겠느냐는 눈빛에 말을 꺼낸 귀부인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오늘 그 이변이 생길 수도 있어요. 듣기로는 리리엘 영애가 투자받기로 한 곳이 황제 폐하마저 솔깃할 정도로 대단 하다더라고요.”
“흥,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파에라톤 공녀의 인맥만 하겠어요?”
“그거야 결과를 보면 알겠죠.”
* * *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수다를 들으며 리리엘은 미소 지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루아티샤가 승리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었다.
‘황후가 아무리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고 해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땐 다물 줄 아네.’
황후에게 자신이 투자받기로 한 곳을 언질해준 만큼, 소문이 날 것을 각오했는데.
‘덕분에 아주 극적인 연출이 가능하겠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자신이 루아티샤를 이기면 그 효과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루루,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네 영향력을 내게 바칠 차례란다.’
리리엘은 사르르 미소 지으며 딜루쿨룸 홀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루아티샤가 가족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파에라톤 공녀가 딜루쿨룸 홀에 오기 전까지 여러 사업체와 접촉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측근이 귓가에 속삭이며 작게 접은 종이를 건넸다.
리리엘은 그 종이를 펴며 물었다.
“그곳과는 접촉했어?”
“아니요.”
훗.
리리엘은 느긋한 마음으로 종이에 적힌 사업체 목록을 확인했다.
제국 전역에 영향력을 미치는 엄청난 사업체들이 많았다.
“역시 루루의 인맥은 대단하네. 그렇게 급하게 약속을 잡는 데도 여기 대표들이 스케쥴을 다 비우고 만나줬다는 거 아니야.”
만약 제온 파에라톤이 사술에 걸리지 않았다면 더 많은 곳과 이야기를 나눴겠지.
어쩌면 자신과 이야기 중이었던 ‘그곳’과도 접촉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나와 이야기가 잘 되고 있었다지만 루아티샤가 끼어들었으면 판도가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가장 좋은 것은 처음부터 판에 끼어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역시 예하의 혜안은 대단하십니다. 제온 파에라톤에게 속임수를 써서 이용해 파에라톤 공녀의 신경을 완전히 묶어놓다니.”
“뒤늦게 파에라톤 공녀가 급히 만남을 청해도 그쪽에서 만나줄 리 없죠. 황제와의 만남도 거절하는 괴짜인데.”
측근들의 말에 리리엘이 불쌍 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공개 경합으로까지 바꾸면서까지 시간을 벌었는데, 안타깝게 됐네.”
“그 시간을 죄 낭비했으니 결국 파에라톤 공녀에게 남은 것은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것뿐입니다.”
“어머, 딱해라.”
리리엘이 미소 지으며 부채를 살랑였다.
그녀의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했다.
루아티샤의 곁에는 가족들이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제온 파에라톤도.
‘……제온 파에라톤은 정말 제정신을 차린 것 같군.’
직접 눈으로 확인해도 믿기지 않았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정신력이나 의지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사술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온은 시험받고 있으리라.
리리엘이 시선을 돌렸다.
제온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슈엘라 프루시안이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리리엘의 눈에는 슈엘라의 몸 안에서 일렁이는 사기가 보였다.
‘계약은 파기되지 않았어.’
슈엘라는 계속 제온에게 다가가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윽고 제온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슈엘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제온의 눈가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언제 화색이 돌았냐는 듯 슈엘라는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루아티샤가 제온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는 걸 보니 죽이지 말라고 말리는 듯했다.
우스운 건 슈엘라가 루아티샤를 원망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쩜 저리 멍청하고 저차원적일까.’
리리엘이 슈엘라를 보며 혀를 찼다.
그래서 이용하기 편했지만, 환멸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이란.’
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리는데 때마침 홀 안으로 들어오는 시드리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다는 듯 루아티샤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흐음.’
리리엘이 부채를 살랑였다.
어차피 오늘 승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래도 한 번 흔들어볼까.’
지금까지 봐온 결과 루아티샤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말재주가 좋았다.
경합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감정을 흔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지.’
리리엘은 빠른 걸음으로 루아티샤에게 다가갔다.
“루루!”
친근하게 부르며 팔짱을 끼자 루아티샤가 깜짝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잘 지냈어?”
“응, 누구 덕에.”
루아티샤가 씨익 웃으며 리리엘을 응시하고 답했다.
어쩐지 뼈가 있는 말이었다.
리리엘은 아무렇지 않게 생긋 웃었다.
“에이, 우리가 지금 치수 사업을 놓고 경쟁한다고 나를 멀리하는 거야?”
리리엘이 루아티샤의 손을 꼬옥 잡고 살살 흔들었다.
“경쟁은 경쟁이고, 우정은 우정이야. 서로 실력을 다툴 상대가 있는 건 좋잖아. 난 루루랑 겨룰 수 있어서 즐거운데.”
“그래?”
“응! 무엇보다 이 치수 사업은 민생을 위한 일이지. 경쟁을 통해서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 아닐까? 실상 승리도, 패배도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는 리리엘의 얼굴은 단단했고, 두 눈은 의기로 빛났다.
누군들 그 모습에 매료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루아티샤는 짜식은 얼굴로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리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경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루루도 나랑 같은 생각이잖아.”
루아티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며 쉴 새 없이 속닥거렸다.
리리엘은 조금 고민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루아티샤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루루가 그렇게 치수 사업에 관심 많다면, 내가 이겨도 치수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줄게.”
“…….”
“폐하께서 승자에게 전권을 맡긴다고 했으니까. 그럼 루루도 치수 사업을 맡을 수 있어.”
“네 밑에서?”
“에이, 밑이라니. 말이 좀 그렇다.”
리리엘이 멋쩍게 웃었다.
“루루는 좀 위계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네. 아무래도 파에라톤 공녀님이라서 그런가? 그래도 조금은 마음을 넓혀 보는 게 어때?”
“…….”
“내가 남부에서 사람들과 얽혀서 지내보며 느낀 건데, 사람은 결국 다 똑같더라고.”
다 똑같이 어리석고 멍청하고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가련한 생물들.
리리엘이 생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치, 시드?”
그때까지만 해도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응수하던 루아티샤의 얼굴이 일변했다.
‘빙고.’
리리엘이 양 손바닥을 맞대며 실수한 표정을 지었다.
“앗, 이제는 시드리한 황자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예전 버릇이 입에 붙어서 큰일이야.”
“꺼져.”
시드리한이 차갑게 말했다.
“너무하네. 시드, 황궁에 오더니 사람이 변했어. 잊은 거야? 우리가 전에 얼마나一.”
“리리엘.”
시드리한이 낮게 짓씹듯 부르자 리리엘이 말을 멈췄다.
“나도 참. 별소리를 다 할 뻔했네. 루루, 우리 오늘 잘해보자!”
리리엘이 루아티샤에게 다정히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
“…….”
루아티샤는 굳은 얼굴로 침묵했다.
그녀의 눈치를 보던 시드리한이 입을 열었다.
“루一.”
“다들 잘 참았어요. 오늘은 절대 사고 치면 안 돼요, 알았죠?”
루아티샤가 생긋 웃으며 가족들에게 말했다.
“저 새끼 내가 족칠 거니까.”
* * *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 드십니다!”
호명관의 외침과 함께 황제와 황비가 홀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까지 금족령이 풀리지 않은지라 황후는 불참했다.
단상에 오른 황제는 루아티샤와 리리엘을 치하하며 오늘 경합의 의의에 대해 연설했다.
“……두 영애가 이리 재능이 뛰어나…… 참으로 훌륭하고 신기한 일이오. 제국의 미래가 밝도다.”
길게 말하면서도 황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게냐.’
황제의 시선이 루아티샤를 향했다.
루아티샤는 언제나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미소 짓고 있었다.
따로 불러 리리엘의 투자처에 대해 언질까지 줬건만, 오늘이 오기까지 루아티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듣자 하니 그간 오히려 외부 활동도 줄었다고 하고.’
불안했지만 이미 발표한 공개 경합일을 미룰 수 없어서 그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짐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다.’
황후와 결탁한 귀족들이 난장을 피운 걸 생각하면 루아티샤가 맡게 되었으면 했지만.
‘리리엘이 ‘그곳’의 투자를 받기로 한 이상 짐도 리리엘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루아티샤 공녀와 리리엘 영애의 계획안 모두 흠잡을 곳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당초 치수 사업 계획안을 새로 작성하게 된 이유는 예산 문제였다. 분명 이전의 계획안보다 예산이 줄긴 했지만, 미미한 수준. 사실상 이번 경합의 당락은 누가 더 능력을 잘 발휘해 협력할 사업체를 구해오느냐였다.”
황제가 자신 앞에 선 루아티샤와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먼저 리리엘에게 물었다.
“리리엘 영애, 영애가 작성한 예산을 충당할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치수 사업은 민생을 위한 사업. 뜻깊게도 저와 함께 제국민을 돕고 싶어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리리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사람들의 궁금증이 가득 차올라 터지기 직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안수르 상단입니다!”
“……!”
“아, 안수르 상단?!”
예상치도 못한 말에 홀 안이 한순간에 시끄러워졌다.
안수르 상단이 어떤 곳인가.
검은 황금의 주인.
제국을 너머 대륙 전역에 막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대상단!
황족들조차 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달하는 곳 아닌가.
그러나 상단주의 정체부터 시작해 어디서 검은 황금을 구해오는지조차 베일에 싸인 곳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당혹한 황비의 질문에 리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이곳에 상단 주도 와있습니다.”
리리엘의 소개에 한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물빛 머리칼에 물빛 눈동자.
완벽하게 깎인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꼭 사람이 아니라 요정이나 정령같이 신비로웠다.
“세상에……. 안수르 상단주가 저렇게 젊은 남자였다고요? 능구렁이 같은 사업 수완을 보고 여든 넘은 노인네일 줄 알았는데.”
“심지어 저런 미남이라니, 다 가졌네요. 능력과 돈 그리고 외모까지.”
“이제 나만 가지면 되겠다.”
꺄르르르 웃는 영애들의 목소리에 단상 위에 오른 남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대단한 수완가답지 않은 그 수줍고 풋풋한 모습에 소녀들이 또 꺄르르 웃었다.
“그대가 안수르의 상단주인가?”
황비의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를 뵙습니다. 아즐이라 합니다.”
“허어, 그 비싼 안수르 상단주를 드디어 보는군.”
“정확히는 안수르 상단주의 대리입니다만.”
아즐이 멋쩍게 덧붙인 말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리? 그럼 결정 권한은 없는 게 아닌가?”
“아, 하지만 아즐 님이 상단주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라고 들었어요.”
리리엘이 자신 있게 말했다.
확인을 구하는 황제의 시선에 아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의 명이 없는 이상, 평소에는 제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럼一.”
“다만 오늘은 제가 결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리리엘의 안색이 확 굳었다.
“그게 무슨…….”
“이 자리에 상단주께서 와계시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