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3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36화(236/353)
☆ 제236화 ☆
예상치 못한 선언에 드넓은 딜루쿨룸 홀 안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아, 안수르의 상단주가 이곳에 와 있다고?!”
“대체 어디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생각과 전혀 다른 전개에 당황한 건 리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맺혔다.
‘오히려 잘 됐어.’
이것보다 확실한 퍼포먼스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안수르 상단과의 투자 관계만 되어도 난리가 날 텐데.
무려 베일에 싸인 안수르 상단주가 처음으로 직접 모습을 보이는 대사건이라니!
이 일은 올해 사교 시즌이 끝나는 내내一 아니, 치수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회자 될 것이다.
치수 사업이 끝나도 댐과 수로를 보며 언급되겠지.
당장 내일부터 주요 일간지에 안수르 상단주와 함께 자신의 모습이 전면에 박혀 있을 것이다.
영향력을 늘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사건이 또 어딨을까.
리리엘은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루아티샤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하긴, 어떤 반응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미안할 정도네.’
리리엘은 생긋 웃으며 모두 들으라는 듯 커다란 목소리로 아즐에게 물었다.
“상단주께서 이곳에 직접 와 계신다는 건 치수 사업에 관심이 정말 많으시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안수르 상단은 그간 다방면에서 사회적 공헌을 해왔습니다. 이번 치수 사업은 민생에 직결된 만큼, 대표님께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네요.”
다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리리엘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해서 상단주는 어디에 있지?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만 하네. 투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경합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없으니.”
그만 뜸 들이고 어서 상단주를 보여달라는 황제의 말에 아즐이 몸을 돌렸다.
그가 한쪽 무릎을 굽히며 다른 발을 뒤로 뺐다.
쭉 뻗은 팔이 유려하면서도 절도 있게 움직인다.
우아하고 정중한 몸짓.
단순한 동작임에도 마치 춤사위처럼 사람의 시선을 붙들었다.
“대표님.”
아즐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주군을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아즐에게 향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앞으로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건一.
‘루아티샤……?’
리리엘의 눈동자가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누구도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경악과 의문, 부정이 만들어낸 침묵.
그 속에서 루아티샤가 봄비를 맞아 피어나는 꽃처럼 활짝 미소 지었다.
“수고했어, 아즐.”
“제 기쁨입니다.”
아즐이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그제야 막혔던 숨이 터지듯, 사람들에게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지, 지금 이게 무슨…….”
“파에라톤 공녀가 안수르 상단의 주인이라고요?!”
“말도 안 돼……!”
“파에라톤 공녀와 안수르 상단주가 같은 사람이라니. 몸이 대체 몇 개인 거예요?”
“잠깐만요. 그럼 치수 사업에 리리엘 영애가 안수르의 투자를 받는다는 건一.”
술렁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리리엘을 향했다.
리리엘은 창백하게 질린 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콱 틀어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어머, 그럼 자신만만했던 거예요?”
“아까 파에라톤 공녀님께 뭐라고 했더라?”
“자기가 이겨도 치수 사업을 맡게 해준다고 했죠.”
“웃겨.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더니.”
리리엘을 탐탁지 않아 했던 영애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루아티샤는 그런 리리엘을 스쳐 지나 황제와 황후의 앞으로 나섰다.
“루루? 정말 네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황비의 시선에 루아티샤가 웃으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파에라톤 공녀가 아니라 안수르의 상단주로서 황제 폐하와 황비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허어……. 하!”
황제의 입에서 기가 막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깜찍하게도 짐을 속였구나.”
“속였다니요, 폐하. 폐하의 충실한 백성인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루아티샤의 능청에 황제가 피식 웃었다.
“짐이 네게 안수르의 상단주냐고 하문한 적이 없으니 그렇겠지. 짐이 물어봤으면 그때도 진실을 말했을 게냐?”
“그럼요.”
‘물론 개뻥이야.’
루아티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답했다.
황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저 절대 지지 않으려는 성미는 꼬꼬마 시절부터 알아봤다.
“그래도 꽤 즐거운 깜짝 소식 아닌가요?”
루아티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쁜 소식은 아니지. 아직도 뒷골이 당기지만.”
“어머, 뒷골이 당긴다니 제가 보약 한 채 지어서 보내드려야겠어요.”
“말은 잘하지.”
결국 황제도 픽 웃고 말았다.
루아티샤는 고개를 돌려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리리.”
여유로운 루아티샤와 달리, 리리엘은 얼굴은 아직까지도 바짝 굳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안수르 상단은 이번 투자 건을 거절할게. 좋은 제안 고마워.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어서 연이 닿았으면 좋겠다.”
“…….”
“안수르 상단 외에 다른 투자처로 발표해주면 될 것 같아. 다른 투자처, 있지?”
“있을 겁니다. 안수르에서는 단 한 번도 투자를 하겠다는 확답을 드린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 여러 주머니를 준비했겠죠.”
“설령 확답을 줬다고 해도 B 안을 생각하는 것은 기본이지.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니까.”
루아티샤가 아즐에게서 시선을 돌려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
리리엘은 생긋 웃었다.
“와아, 정말 깜짝 놀랐어! 설마 루루가 안수르의 상단주일 줄이야!”
루아티샤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역시 슈엘라 프루시안과는 다르게 바로 죽지는 않네.’
“정말 대단하다, 루루! 멋져! 그치만…….”
리리엘이 기운이 조금 빠진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미리 내게 언질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다못해 거절이라도 빨리해줬으면…….”
고개 숙인 채 중얼거린 리리엘이 루아티샤를 보며 애써 미소 지었다.
“일부러 나를 난처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닐 거라고 믿어. 그렇지?”
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지금 이 상황은 어찌 보면 루아티샤가 일부러 리리엘을 엿 먹이기 위해 자신이 상단주임을 숨기고 극적인 순간 밝힌 것 같으니까.
‘사실 엿 먹이기 위해 그런 게 맞아.’
하지만 그걸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었다.
‘제도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올해 처음으로 사교계에 나왔는데, 대단하네.’
예상치 못하게 허를 찔렸음에도 리리엘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해 역공해오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경합에서 승리해도 인성질한 게 탄로 나서 이미지가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지? 그건 내가 딱 원하던 말이었는데.’
문제는 루아티샤가 사교계의 설전만 수천 번 본 로판 독자라는 것이었다.
“리리.”
루아티샤가 사람들의 주목을 환기시키곤 이어 말했다.
“투자처에 대한 조사는 필수야. 아주 기본적인 거지. 이건 얼굴 없는 천사가 몰래 도와주는 자선 사업이 아니야.”
“…….”
“막대한 책임이 따르는 국가 사업에 대표가 누군지도,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투자를 받는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
“안수르 상단이 이상한 곳도 아니고, 그간의 명성을 생각하면 충분히一.”
“아니. 절대 안 돼. 안수르 상단이 자선 사업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제국의 국가사업에 투자하기엔 너무나 비밀이 많았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수르의 상단주인 루아티샤가 제 상단의 문제점을 말하니 훨씬 더 객관적으로 들렸다.
“만약 안수르 상단이 외국의 상단이었다면? 그중에서도 적대적인 나라의 국책 상단이라면?”
“그럼 큰일이었겠군.”
황제의 말에 루아티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투자 명목으로 댐이나 수로 설계에 대한 정보가 빠져나갔다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그렇지. 아주 중차대한 문제야.”
사실 루아티샤가 제기한 문제 상황에는 여러 가지 전제가 있어야 했지만, 황제의 동의에 그 모든 것이 묵인되었다.
애초에 안수르 상단이 외국 상단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 사업이 제국 내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었으니까.
루아티샤는 황제를 향해 슬쩍 눈을 깜빡이고는 리리엘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그간 리리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만 집중해 왔으니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 같아.”
리리엘이 뭐라 말하기 전에 루아티샤가 선수 쳤다.
“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리리가 해온 일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남부에서는 리리를 신처럼 따른다고 하니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도와줬는지 나도 알 것 같아. 하지만.”
루아티샤가 손을 뻗어 리리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마치 격려하듯이.
“앞으로는 시야를 좀 넓히자?”
파들.
리리엘의 어깨가 떨렸다.
루아티샤를 노려보는 금빛 눈동자에 새빨간 분노가 불길처럼 넘실거리는 듯했다.
“무엇보다 안수르 상단은 처음부터 치수 사업에 투자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경합 상대인 리리에게 협력해서 투자하겠다고 하는 것도 우습고, 내가 안수르를 투자처로 삼기엔 유착 문제가 있잖아.”
루아티샤가 곧 안수르의 상단주이니 투자처에게 전권이 주어지는 이상한 사태가 생긴다.
“그럼 왜 단번에 거절하지 않았던 거야?”
날카로운 질문에 루아티샤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음, 사실 나는 리리가 안수르와 투자 협약을 맺으려고 하는지 몰랐어.”
“그게 말이 돼?”
“말했다시피 나는 아즐에게 상단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고 있어. 그래도 보통 이런 사안이라면 아즐이 내게 보고를 했을 텐데. 이번에는 내가 좀 정신없었거든.”
루아티샤가 잠시 말을 멈추곤 한결 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가 제온에게 사술을 걸어서.”
“……!”
그 말에 담긴 뜻에 딜루쿨룸 홀 안에는 다시금 파장이 일었다.
“사술? 사술이라면 설마 그건가?”
“맞아요. 사기를 이용한 술법.”
“하, 하지만 그건 이미 오래전에…….”
사람들의 얼굴에 충격과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기.
과거 수십만의 사람을 학살하고, 영수들을 잠들게 하고 신의 심장마저 찔렀다는 힘.
요사스럽고 사특하고 간악한 힘 기운.
존재만으로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마계의 근원.
그 힘은 이제 잔재조차 남지 않았다고 여겼건만.
황제가 거칠게 루아티샤의 어깨를 붙잡았다.
“루아티샤, 똑바로 말하거라. 제온 공자가 사기에 당했다니, 착각은 아니고?”
“이런 일에 제가 경거망동하겠습니까, 폐하.”
차라리 경거망동하길 바랐다는 듯 황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자리에 증거가 있어요.”
“증거?”
모두가 숨을 죽이고 루아티샤의 발언에 집중했다.
루아티샤는 입을 여는 대신 한 사람을 가리켰다.
실로 조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왜, 왜, 왜 나를…….”
제게 꽂히는 수많은 날카로운 시선에 슈엘라 프루시안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었다.
* * *
“슈엘라 프루시안.”
딱딱한 황제의 부름에 근위 기사들이 슈엘라를 거의 강제로 끌고 나왔다.
단상 위에 올라온 슈엘라는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언제나 관심을 원했고 남들 위에 서고 싶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단상 위에 올라오는 건 절대 바라지 않았다.
저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역시.
허둥지둥 몸을 움츠리던 슈엘라가 황제에게 매달렸다.
“폐, 폐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이에요. 사기라니 제가 어떻게 그런 극악무도한 힘을 가지고 있겠어요. 저는 마법사도 아니고, 검사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인데…….”
“그건 곧 알게 될 겁니다.”
루아티샤의 말에 슈엘라가 고개를 휙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슈엘라보다 더 빠르게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파에라톤 공녀!”
그때까지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던 황태후였다.
“내 공녀를 얼마나 아끼고 귀애하는지 공녀도 잘 알 것이야.”
“물론입니다, 황태후 폐하.”
“슈엘라는 이러나저러나 내 조카손녀일세. 저 아이는 그런 사특한 힘을 다룰 줄 몰라.”
슈엘라에게 문제가 생기면 황태후 본인까지 엮이게 되니 그간의 정과 자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이만 자중하라는 뜻이었다.
“황태후 폐하, 이번 건에 대해 혹 무언가 아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 그건…….”
황태후는 바로 대답을 못 하고 망설였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슈엘라와 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린다.
같이 책임지겠냐는 질문이니까.
결국 황태후는 고개를 돌렸다.
“모르네.”
사실, 그녀는 속으로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아닐 거야.’
황태후는 불안한 눈으로 슈엘라를 바라보았다.
제온에게 혼사를 거절당해 울며불며 매달리다가 다음날 갑자기 제온이 자신을 좋아한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어.’
하지만 슈엘라가 파에라톤 가의 일원이 되면 좋은 일이니까 남녀 사이의 일이란 모르는 거지, 하고 넘어갔는데.
“만약 프루시안 영애에게서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제가 사과드리고 책임지고 보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