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3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38화(238/353)
☆ 제238화 ☆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딜루쿨룸 홀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루아티샤가 깜짝 놀라 몸을 굳힌 순간,
투두두둑.
붉은 피가 흩날리는 꽃잎처럼
얼굴에 튀었다.
아니, 튀진 않았다.
곁에 있던 시드리한이 루아시탸의 몸을 끌어당겨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수정 같은 얼음벽과 새까만 마기의 벽이 앞을 가로막았으니까.
그리고 그 너머로 커다랗고 널찍한 등이 보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성벽처럼 버티고 있는 등.
“아빠…….”
딸아이의 부름에 파에라톤 공작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로 얼핏 붉게 물든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루아티샤가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파에라톤 공작이 시야를 차단했다.
하지만 안 봐도 슈엘라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대, 대체 무슨 일이……!”
단상 아래에서 질겁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일어난 끔찍한 일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 황궁에서 살인이라니!”
“사, 살인이 아니라 갑자기 주, 죽었다고요!”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복부가 터져나간 자리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핏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저, 저, 저건…….”
그 존재를 자각한 순간, 누구도 그게 선혈이라고 착각할 수 없었다.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한없이 섬뜩하고 불길한 기운에 정수리까지 소름이 돋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턱 막히고 팔다리가 얼어붙었다.
마기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기는 강대한 힘에 압도되어 두려움을 느낀다면, 사기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심약하고 예민한 사람은 역류하는 토기를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다음 순간, 시뻘건 강기가 슈엘라의 몸에서 비죽 솟구쳐 올랐다.
“사기……!”
신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식은땀이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말로 사기가……!”
신관들이 아연실색하며 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피디우스를 발동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탈력 될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과연 이 상태로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멀쩡한 상태였어도 막는 건 불가능할 가능성이 컸다.
“모두 일어나라!”
늙은 노신관이 벼락처럼 외쳤다.
“이곳은 황궁이다! 여기서 사기가 퍼진다면 걷잡을 수 없다!”
그에 다른 최고위 신관들도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다른 신관들을 독려했다.
“사기를 막아라!”
“봉인해야 한다!”
“사기를 봉인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신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책무다!”
피디우스를 발동시켰던 최고 위 신관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수행했던 다른 신관들까지 합세해 봉인의 진을 쳤다.
신관들의 입술에서 나온 성언(聖言)과 기도문이 허공에 수놓아지며 빛났다.
천기의 운행을 따라 유려한 곡선이 기도문 사이에 아로새겨졌다.
이윽고 완성된 거대한 방어막이 날뛰는 사기를 가뒀다.
“돼, 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누군가의 입에서 안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한결 안심된 얼굴로 봉인진을 바라보았다.
조금 지나자 곧 여유가 생겨서 시뻘건 사기를 가두고 있는 빛나는 봉인진이 아름답다는 생각조차 들기 시작했다.
또 언제 이런 광경을 눈앞에서 보겠는가.
그러나.
봉인진 안에서 사기는 잦아들긴커녕 점점 더 몸피를 불려가며 팽창했다.
신관들은 사기가 더 이상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둘 수 있었지만, 사기를 정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팽창하는 사기를 전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봉인진을 넓게 펼칠 수도 없었다.
결국 봉인진 안을 가득 메운 사기가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진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수행 신관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핏물이 흘러나왔다.
“정신 바짝 차려라!”
노회한 신관이 독려했지만 사실 그조차도 한계였다.
루아티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숙주를 잃은 새빨간 강기가 폭주하며 날뛰는 게 루아티샤의 눈에는 다른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에르메스 짹.’
속으로 부르자 에르메스 짹이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황궁 건물의 결계를 뚫지 못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 에르메스 짹은 결계를 통과해 부름에 응했다.
하지만 정작 루아티샤는 아무런 명령도 못 내리고 있었다.
[무엇을 망설이는 거냐, 짹! 나를 이용해라, 짹!]보다 못한 에르메스 짹이 재촉했다.
신관들만으로는 역부족이나 에르메스 짹이 봉인진을 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여전히 침묵했다.
몇 년 전, 에르메스 짹은 오필리아를 구하기 위해 봉인의 진을 치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한동안 회복하지 못해서 이대로 큰일이 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주인!]‘……내가 할 수 있어.’
루아티샤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에르메스 짹이 아니라, 자신이 하면 된다.
‘파사의 힘.’
[안돼!]에르메스 짹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날아올랐다.
[너는 아직 그 힘을 완전히 다룰 수 없어! 잘못하다간 네가 잡아먹힐 수도一.]쩌적!
무언가가 깨지는 섬뜩한 소리에 에르메스 짹이 말을 멈췄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확실하게 봉인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쩍!
제 아무리 견고한 제방이라도 무너질 땐 한순간에 허물어지듯, 결국 사기의 힘을 견디지 못한 봉인진이 찰나에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리리엘이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이, 이런……!”
신관이 당황해서 리리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리리엘에게 닿지 못했다.
신관은 차마 그 끔찍한 광경을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어린 영애가 어찌 될지는 자명했다.
하지만.
“……?”
다른 어떤 것보다 몸이 먼저 느꼈다.
벌레가 스멀스멀 피부 위를 기어가는 것처럼 섬뜩하고 불길한 느낌이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신관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
“……!”
“맙소사……!”
리리엘의 몸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살포시 내리감은 눈.
꼬옥 포개진 쥔 채 기도하는 손.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붉은 사기가 리리엘의 주변을 물들인 빛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모두 눈을 떼지 못하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정화?”
신관의 입술에서 신음과도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기가…… 사라지고 있어? 저, 정말 사기를 정화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설마 이미 사라진 파사의 힘……?”
수행 신관들이 설렘과 기대를 가득 담고 자신이 모시는 노신 관을 바라보았다.
노신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신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노신관이 천천히 리리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성녀께서 강림하셨다!”
그 말이 마치 선언과도 같았다.
신관들이 일제히 리리엘의 앞에 무릎 꿇었다.
해가 갈수록 자꾸만 약해져만 가는 신성력 때문에 신관들이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던가.
그 속에서 믿음을 유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그 믿음이 보답받았다.
그저 사람들에게 성녀라 추앙 받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성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역대 그 어느 성녀보다 강대한 힘을 지닌 성녀가!
약 400년 전, 마지막으로 신전에서 공인한 성녀에게조차 파사의 힘은 없었다.
아니, 전설인지 역사인지 의견이 분분한 고대를 제외하면 역대 성녀들 모두 파사의 힘을 갖진 못했다.
파사의 힘을 담은 성물만 다룰 수 있었을 뿐이다.
사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이내 리리엘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찬란한 빛이 잦아들었다.
신관들은 물론 귀족들까지 전부 숨을 죽인 채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리리엘이 천천히 눈을 떴다.
황금빛 눈동자가 정확히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성녀 예하!”
“성녀 예하를 뵙습니다!”
리리엘의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리리엘이 현기증을 이기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가련하게 쓰러졌다.
황제를 보호하고 있던 황궁 기사가 다급히 달려 나가 리리엘을 받아들었다.
그림에나 나올 정도로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루아티샤가 속으로 혀를 찼다.
‘우와, 완전 쇼를 하네, 그것도 쌩쇼를.’
하지만 효과적이었다.
“리, 리리엘 영애!”
“어서 성녀 예하를 옮겨라!”
“반드시 성녀님을 살려야 한다!”
신관들이 기겁해서 외치고 귀족들 역시 발을 동동 굴리며 걱정 어린 눈으로 혼절한 리리엘을 바라보았다.
* * *
딜루쿨룸 홀 안에는 미묘하고 어색한 침묵이 가득했다.
루아티샤는 비어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프루시안 영애가 죽은 자리는 흔적도 안 남고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사람들도 치워지는 시신을 보고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감히 사기를 사용한 극악무도 한 죄인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프루시안 영애는 너무나도 젊었다.
그 시신을 보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그것도 아무 피해도 없으니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만.’
“폐하.”
루아티샤의 부름에 황제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복잡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나름대로 능력 있는 황제로서 해야 할 일을 잊진 않았다.
“이번 경합의 승리자가 파에라톤 공녀라는 것은 모두 이견이 없겠지. 파에라톤 공녀에게 치수 사업의 전권 일체를 일임한다.”
“하, 하오나 폐하! 리리엘. 아니, 성녀 예하께서는 방금 제국을 구하시고一.”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 해도 작곡을 맡길 순 없고, 아무리 훌륭한 작곡가라고 해도 그림을 그리라 할 순 없는 법이지.”
“성녀 예하 역시 뛰어난 인재이십니다!”
해리스 백작이 재차 항변했다.
그는 황후와 결탁한 세력 중 하나였다.
‘내가 치수 사업을 맡게 되는 건 막고 싶어질 테니 이 기회에 어떻게든 붙들고 늘어지려는 거겠지.’
그러나 황제는 단호했다.
“경합에서는 공녀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리리엘 영애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했어. 또, 투자처를 확보하긴커녕 정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
“……예하께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폐하.”
노신관이 불편한 듯 한마디 했다.
“리리엘 영애가 대단한 것과 별개로 이건 행정에 관한 문제네. 파에라톤 공녀가 훨씬 더 적합하지.”
“…….”
“짐은 경합의 승리자에게 전권을 일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설마 경합 결과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짐의 말을 번복하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폐하.”
모든 말을 일축한 황제가 루아티샤에게 말했다.
“공녀, 이 사업의 중요성은 공녀도 잘 알고 있겠지. 짐은 공녀를 믿는다.”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반드시 성공해 민생을 안정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표하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프루시안 영애 말입니다.”
해리스 백작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죽기 직전에 자신의 배후가 누군지 지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그게 리리엘 영애 같은데…….”
그 말에 노신관이 버럭 역정을 냈다.
“백작은 보지 못했소! 성녀 예하께서는 사기를 정화하시느라 몸까지 상하셨네! 예하께서 배후일 리 없지 않소!”
“물론입니다. 다만 예하께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 자가 꾸민 짓 아닐까요? 그자야말로 사술을 쓴 진범이 아닐지…….”
해리스 백작이 슬그머니 눈을 돌려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파에라톤 공녀, 그때 유독 프루시안 영애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캐물었던 거 같은데一.”
“오해 살만한 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말을 끊고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리리엘이 신관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었다.
“루루는 그런 적 없어요. 오히려 친한 친구가 연애를 돕는 건 당연하다며 프루시안 영애의 말에 반박했죠.”
무엇보다 대체 그게 누구냐며 추궁한 사람은 황제였다.
‘멍청하긴.’
리리엘은 속으로 해리스 백작을 비웃었다.
그런 걸로 루아티샤를 추궁해 봐야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난리가 나는 와중에도 루아티샤는 자신이 가져야 할 것을 잊지 않고 꼭꼭 챙겨가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동요는 할 줄 알았는데. 저리 멀쩡하다니.’
리리엘은 짜증 나는 것을 꾹 누르며 루아티샤를 향해 다가갔다.
“루루, 많이 놀랐지. 정말 사람들이 너무하네.”
“아니야. 괜찮아, 리리. 몸은 좀 괜찮아?”
“응…….”
리리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비틀거렸다.
루아티샤가 리리엘의 팔을 꼬옥 잡으며 부축해주었다.
“다행이네. 쓰러지는 걸 보고 나는 큰일 나는 줄 알았어.”
아무런 유감도 담겨있지 않은 부축과 표정에 리리엘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쉽지 않네.’
슈엘라처럼 멍청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부터야.’
리리엘이 환히 웃었다.
* * *
며칠 후, 황비궁.
황비는 소서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리리엘이 정말 성녀였을 줄이야. 본비도 깜짝 놀랐어.”
근 400년가량 사람들이 성녀라고 부르는 존재는 여럿 있었지만, 신전에서 공인한 성녀는 없었다.
“과연 그럴까요?”
나는 차를 홀짝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황비가 조금 논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니?”
“말 그대로의 뜻이에요.”
“루루.”
“리리엘은 이대로 놔두세요.”
황비는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지긋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다 생각이 있나 보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