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4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41화(241/353)
☆ 제241화 ☆
“오랜만이에요, 아가씨.”
놀란 나보다 먼저 상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오랜만이야.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고 들었는데. 잘 지냈어?”
“아가씨 덕분에요.”
천천히 내게 걸어온 상대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아가씨, 성공했어요.”
“……!”
“그러니 말씀하세요. 기꺼이 아가씨의 체스 말이 되도록 할게요.”
나는 내 손을 꽉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죄 상해서 거칠거칠했다.
“고생했어.”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상대의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마치 모든 것을 보상받은 것처럼.
“하지만 넌 나의 체스 말이 아니야.”
“아가씨, 저는 아가씨를 위해……!”
“내 기사님이지.”
상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나는 생긋 웃었다.
“마침 딱 좋은 시기야. 일단 앉아.”
* * *
“안수르 상단이 파에라톤 공녀의 것이었다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안 그래도 파에라톤 공작가는 제국의 부가 집중되어 있는 가문이잖아요.”
“제국, 아니, 대륙을 통틀어서 재력으로 파에라톤 공작가를 넘어설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요.”
“파에라톤 공녀가 뛰어난 수완가라는 건 그간 많이 봐와서 알고 있었지만, 신생 상단을 경영해서 단기간에 거대 상단으로 키워내다니.”
“마기가 없다고 해도 파에라톤은 파에라톤인가 봐요.”
명문 세도가의 명성 높은 레이디가 대상단까지 키워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그만큼 이슈가 될 만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녀님만 할까요?”
“돈 버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신전에서 공인하는 성녀는 몇백 년 만에 등장했죠.”
“무려 사기를 직접 정화하셨다면서요! 그 모습을 직접 제 눈으로 봤어야 하는데……!”
“그건 역대 성녀들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면서요?”
더 커다란 이슈가 있는 상황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주요 일간지들의 1면은 전부 다 리리엘의 얼굴이 차지했다.
루아티샤의 얼굴은 그 아래 작게, 혹은 훨씬 뒷장에 실린 수준이었다.
“사교계가 난리입니다.”
보좌의 말에 셰루인 부인이 감상하고 있던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난리가 날 만하지. 그만한 사건이 있었는데.”
오랜 시간, 정치? 사교계는 조용했다.
하지만 시드리한 황자가 돌아오고, 남부의 성녀라며 소문이 무성하던 리리엘이 나타났다.
황자들 쪽과 달리, 리리엘은 예상과 다르게 큰 영향을 못 미치고 그대로 사라질 것 같았다.
오히려 파에라톤 공녀가 얼마나 굳건한지만 알려주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니까.
그러나 반전이 생겼다.
“파에라톤 공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평범한 아이야. 그에 반해 리리엘은 무려 파사의 힘을 가진, 신이 내린 성녀지.”
셰루인 부인은 그림에서 시선을 떼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파에라톤 공녀의 아성을 리리엘이 무너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파에라톤 공녀가 안수르의 상단 주라는 것에 놀란 반응이지만, 딱히 그게 이 판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흠, 아무래도 약하지. 하지만 잘 밝혔어. 예전에 밝혔다면 안수르가 커지기도 전에 경계했겠지.”
“귀족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특별법을 발의해서라도 안수르의 독주를 막으려고 했겠지요.”
“하지만 상단의 정체도, 어디서 검은 황금을 구해오는지조차도 몰랐으니 오히려 서로 경쟁하며 안수르 상단의 환심을 사서 포섭하려 했지.”
“당시에는 검은 황금의 물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으니 더 그랬겠죠.”
“그래. 이제 보니 루루가 일부러 물량을 적게 푼 것이구나. 그 어린 나이에. 정말 수완 하나는 기가 막힌 아이야.”
셰루인 부인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안수르 상단이 막 등장했던 시기와 달리, 현재 파에라톤 공작가는 활발하게 외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가문 단위로 맺는 친교였다.
지난 수년간 파에라톤 공녀의 도움을 받거나 협업을 한 가문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 사교계에서도 함께 발을 맞추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에라톤이 안수르라는 대체 불가한 대상단을 경영한다는 건 그들에게 희소식이었다.
특히 황자들의 황위 다툼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지금은 더더욱.
정치 자금이나 군사 자금에는 막대한 재화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원래도 든든했던 아군이 더 든든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루아티샤와 손을 잡은 귀족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이는 지금과 같이 루아티샤의 입지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단단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루루가 딱 적기에 잘 밝혔구나. 그 좋은 패를 끝까지 비밀로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을 테고.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단다.”
그 말에 보좌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님, 안수르에서 검은 황금의 가격을 일괄 인상하겠다고 합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집사의 말에 셰루인 부인의 안색이 변했다.
“뭐?”
“그것도 두 배 인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인상폭은 처음입니다!”
“대체 파에라톤 공녀는 무슨 생각이죠? 자신이 상단주라는 걸 밝히자마자 가격을 두 배나 올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셰루인 부인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그녀의 입가에 이내 미소가 어렸다.
“그래. 절대 가만히 있을 아이가 아니지.”
셰루인 부인이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 책상 앞에 앉았다.
“메티스의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야겠구나. 워낙 뛰어난 인재들이니 대부분은 루루의 의도를 알아챘겠지만.”
그녀의 손 안에서 만년필의 캡이 매끄럽게 돌아갔다.
“메티스에는 전문분야에만 우수한 외골수들도 많으니까.”
한마디로 사회성이 결여된 괴짜 천재들도 많다는 뜻이다.
“그 말씀은…….”
“그래, 검은 황금의 갑작스런 가격 인상에 불만을 품는 메티스 회원들도 많을 거야. 하지만 루루의 의도가 있으니 우리가 방해하면 안 되지 않겠니?”
“의도요?”
그 말에 셰루인 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만년필을 쥔 그녀의 손이 막힘없이 유려하게 움직일 뿐.
같은 시각, 델바트렌 공작저.
“허어? 두 배 인상? 이렇게 전조도 없이?”
시가를 태우던 델바트렌 공작이 놀라서 되물었다.
“오늘 갑자기 발표했다고 합니다.”
“허어…….”
시가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공작이 자신의 손주를 돌아보았다.
“라파엘, 네 친구 아니냐. 넌 뭐 들은 거 없느냐?”
“그 녀석이 뭐 저한테 미리 말해주며 움직이나요.”
“에잉, 쯧! 넌 실속이 없어.”
델바트렌 공작이 장난스레 콧잔등을 찡그렸다.
“대응하지 마시고 일단 지켜보시죠.”
손자의 말에 델바트렌 공작의 눈이 빛났다.
저 녀석이 그래도 루루와 곧 잘 어울리더니 그 아이의 수완을 닮아가는 건가?
“호오, 그 아이의 의도를 눈치챈 게냐?”
“아뇨.”
단칼에 나온 대답에 델바트렌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녀석이 아니니까요.”
라파엘이 검병을 툭 두들기며 여상하게 말했다.
“저는 그 녀석의 뜻은 잘 모르지만, 손해 보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아요.”
가만히 손자를 지켜보던 델바트렌 공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놈은 검이나 휘두를 줄 알지 영 못 써먹겠어.”
그 말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쉐로델 후작과 이스카밀 공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최연소 소드 마스터에게 검이나 휘두를 줄 안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저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큰 축복이네.”
“흥.”
델바트렌 공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나저나 역시 루아티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자칫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데. 보통 담력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았지만.”
“예전부터 도박 하나는 끝내 주게 잘했죠.”
“재밌게 돌아가는군.”
라파엘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세 거물들을 보며 눈매를 씰룩였다.
다 좋은데 손녀의 재롱을 지켜보는 듯한 저 미소는 대체 뭐란 말인가.
뭔진 모르지만 루아티샤가 이번에도 저 세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행을 보인 모양이었다.
좋은 의미로.
“두 분께 인사는 드렸으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수련해야 해서요.”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한 데 한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다니.”
“이리 대단한 손주를 둬서 공작께선 참 좋겠습니다.”
라파엘은 덕담을 한 귀로 흘리며 체스 룸을 나와 연무장으로 향했다.
‘네가 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스르릉一.
서늘한 공명음을 내며 검이 검집에서 미끄럽게 빠져나왔다.
라파엘은 잠시 그 검신을 바라보았다.
루아티샤가 선물해준 검.
“그게 어떤 일이든 이번에도 내가 함께 가는 수밖에 없겠지. 진짜 내키지 않지만.”
그간 루아티샤가 벌였던 일에 항상 어쩔 수 없이 말려들었으니까.
그것이 소꿉친구의 숙명 아니겠는가.
라파엘의 시야에 지난번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위협적으로 솟구치던 사기.
그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던 기운.
그 앞에 서 있던 루아티샤.
라파엘은 그 환상을 베어내듯 검을 휘둘렀다.
검이 완벽한 궤도를 그리며 깔끔하게 움직인다.
라파엘은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여간 손 많이 가는 녀석.”
* * *
“다 거절이야. 다 돌려보내.”
나는 아레스가 쏙쏙 집어주는 초콜릿을 듬뿍 바른 딸기를 먹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오르카가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검은 황금 가격 인상을 발표한 날부터 사람들은 나와 만나고 싶어서 난리였다.
처음에는 편지를 보냈지만 내가 답장도 하지 않자 아예 저택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저택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고.
“자, 다 됐다.”
익시온이 드디어 내 머리카락에서 손을 뗐다.
거울에 비춰보니 꽃과 함께 얽혀 여러 갈래로 땋아져 있는 게 무척 예뻤다.
“와, 너무 예쁘다! 이대로 방에서 뒹굴거리기엔 아까운데. 이따 정원에서 피크닉 할까?”
“좋은 생각이네요. 피크닉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생긋 웃는 안나 뒤로 로라가 무언가를 챙기고 있었다.
‘……영상석 같은데.’
이제 와서 뭐라고 하기엔 너무 익숙한 상황이라 나는 모르는 척 거울을 살폈다.
“항상 생각하지만 익시온이 이런 거 잘하는 거 진짜 의외야.”
가장 못 할 거 같은데.
그때, 거울 뒤로 제온의 모습이 비쳤다.
나는 잠시 제온을 바라보다가 결국 몸을 돌려 말을 걸었다.
“제온.”
‘기다려’라는 명령을 들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하게 있던 제온이 고개를 번쩍 들고 쪼르르 다가왔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반가움과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아까부터 아레스와 익시온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걸 모르는 척하고 있었더니.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샘솟았지만, 나는 새침하게 말했다.
“제온은 밖에 있는 사람들 좀 쫓아내. 오르카가 정중하게 쫓아내니까 아주 난리잖아.”
물론 난리라고 할 게 없긴 했다.
감히 누가 파에라톤 공작저에서 난장을 피우겠는가.
‘하지만 계속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엄청 귀찮다구.’
제온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짠하기도 하고.
나는 문이 닫히자마자 안나에게 말했다.
“피크닉 준비 빨리 해. 제온이 좋아하는 푸딩도 잔뜩 만들어서.”
“제온 도련님이 푸딩 좋아하는 건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아가씨랑 추억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좋아하잖아. 제온은 별로 맛있어하는 게 없으니까 제온이 좋아하는 거 만들라구.”
그 말에 안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 제온 도련님, 용서해 주시는 거예요?”
“용서는 무슨. 애초에 별로 화 안 났어.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냐.”
퉁퉁거리며 답하자 언니들이 웃었다.
평소라면 나도 챙겨달라며 난리 쳤을 아레스와 익시온도 조용했다.
‘흐음? 그래도 형제애라는 게 좀 생긴 모양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레이스 양산을 펼친 채 가족들과 함께 로판 여주처럼 피크닉을 즐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딱이지 않은가.
폭풍우가 몰아치고 태풍이 모든 것을 휩쓸기 전의 평화로움으로는.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야?”
“아주 못된 생각을 하는 얼굴 인데.”
아레스와 익시온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못된 얼굴이라니!”
내가 버럭 성질을 내자 익시온이 내 뺨을 꼬집었다.
“생선 노리는 고양이 같아서 귀엽다고.”
“화려한 장미꽃처럼 예쁘다는 뜻이야.”
“역시 우리 아레스뿐이야!”
내가 아레스의 손을 덥석 잡자 익시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치사한 자식!”
그러건 말건 아레스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와 우애를 다졌다.
“그래서? 무슨 생각 중이었는데?”
“아니, 그냥. 별 건 아니고.”
나는 후후, 웃었다.
“곧 리리엘의 성녀 즉위식이잖아?”
그 말에 오빠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그딴 게 성녀면 내 솜뭉치는 신이다, 신!”
“간만에 바른 소리를 하는구나. 내 동생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세상의 축복인데. 신이 아닐 리가 없지.”
“…….”
나는 짜식은 얼굴로 익시온과 아레스를 바라보았다.
‘저게 주접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가장 무서워…….’
둘 다 세상을 뒤집을 만한 무력의 소유자인데 정신 상태가 이대로 괜찮은 건가.
‘나라도 정신 차리자.’
나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래서 그 즉위식이 왜?”
“가서 망쳐줄까?”
익시온의 말에 나는 기겁했다.
“미쳤어? 마기를 쓰는 순간 파에라톤은 제국민의 적이 될 거야.”
“마기를 사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
위험한 발언을 하는 주제에 아레스는 얼어붙은 강을 녹이는 봄 햇살처럼 따스하게 웃고 있었다.
“성녀 즉위식을 망치다니, 나는 그런 생각 따위 하지 않았어.”
나는 고개를 젓고 오빠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어떻게 축하해줄지 너무 설레서.”
내 얼굴에는 제법 아레스와 비슷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봄볕처럼 아주아주 다정하고 환한 미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