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43)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43화(243/353)
☆ 제243화 ☆
* * *
비록 관중들이 사라지는 부침이 있긴 했지만, 파티가 시작되면서 굳었던 분위기는 다시 풀어졌다.
이 파티는 성녀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고, 어쨌거나 리리엘은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리리엘은 파티의 중심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소 지었다.
‘……인간들이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완벽했을 텐데.’
즉위식의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군중들에게 자신이 확실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오를 그 절호의 기회가 날아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렸다.
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귀족들에게도 꼴이 우스워졌다.
‘영향력이 오르긴 했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덜 올랐어.’
수천 명의 군중들이 빠져나갔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개개인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성녀 예하께 축복을.”
“예하, 즉위를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건 꽤 수월해 보였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성녀님이신 자신에게 호의적이었으니까.
리리엘이 미소로 화답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리리엘은 파티장이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뭐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조차도, 리리엘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모두 말을 멈춘 채.
리리엘의 시선이 사람들을 따라 돌아갔다.
천장까지 닿아 있는 높은 문이 귀인을 환영하듯 양쪽으로 열려 있었다.
바깥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홀의 바닥에 금빛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빛을 등에 인 채 한 소녀가 파르마나스 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소리 없이 내디디는 발걸음에 따라 구름 같은 머리카락이 매끄럽게 흔들렸다.
파라이바빛 눈동자가 하늘보다도 더 푸르게 빛났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리리엘의 눈동자가 풍랑을 만난 배처럼 흔들렸다.
‘왜 여기에……?’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처음에는 오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군중들이 다 떠나가고 나서는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아니, 이제 와서 와 봤자야.’
어쨌거나 파티장의 분위기는 이미 리리엘에게 기울었다.
무려 사기를 정화시키고 신전에서 성녀로 인정받아 치르는 즉위식이다.
그에 반해 루아티샤는 어떤가.
안수르의 상단주라는 게 밝혀지자마자 검은 황금의 가격 인상으로 귀족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환영할 리 없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뻔했다.
루아티샤가 밖으로 안 나오고 두문불출하는 동안 사람들의 불만은 옅어지긴커녕 점점 쌓여만 갔으니까.
‘조금 불쌍한걸.’
높이 나는 새일수록 추락의 고통이 큰 법이다.
처음 맛보는 냉대에 루아티샤가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당황하던 조금 전과 달리 리리엘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리리엘은 자신만만한 눈으로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이 파티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불청객인 루아티샤를 맞이하듯이.
리리엘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파에라톤 공녀님!”
“오셨군요, 공녀님! 정말 언제 오시나 했어요.”
사람들이 우르르 루아티샤에게 다가갔다.
‘……뭐야?’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에 리리엘이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었다.
사람들이 루아티샤에게 몰려가더라도 따지고 불만을 표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간 얼마나 공녀님을 뵙고 싶었는지 몰라요.”
“어머나, 오늘 의상도 너무 아름다워요. 역시 파에라톤 공녀님의 감각은 따라갈 수 없다니까요?”
“이건 이듐의 새로운 콜렉션 아닌가요? 세상에, 팔지 않는다고 하더니 역시 공녀님이 주인이셨군요!”
루아티샤의 곁에 모여 종달새처럼 지저귀었다.
‘지금 이게 무슨…….’
그때, 사람들의 환대를 받아주고 있던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생긋, 루아티샤의 입꼬리가 완벽한 호선을 그리며 매끄럽게 올라갔다.
리리엘이 루아티샤를 향해 지으려고 했던 미소 그대로.
“……!”
리리엘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 * *
‘왜, 이 파티의 주인공이 정말 너라고 생각했어?’
나는 픽 웃으며 리리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대체 내가 왜 이제야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가짜 성녀도 아니고 사기를 쓰는 악한 주제에 같잖게 폼 잡는 모습 보기 싫어서?
그것도 정답.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성녀 즉위식은 어쨌거나 권위 있는 의식이었다.
거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해봤자 깎이는 건 내 평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지.’
그러나 파티는 어떤가?
이동이 자유롭고, 대화의 주제도 유연해진다.
즉, 사람의 흐름이 생긴다.
그리고 분명한 건一.
‘지금 그 흐름은 내게로 흐르고 있다는 거지.’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해서 ‘당연한 결과’와는 또 다르게 흘러간다.
예를 들어 갑자기 누군가가 통제 규칙을 정했다고 하자.
처음 사람들은 통제자를 욕한다.
하지만 아무리 욕해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면?
이상하게도 그 통제자에게 편승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혹은 무작정 통제자를 배척하기보단 실리적으로 생각해서 전략을 꾀하려는 사람이 생긴다.
‘심리 실험에도 나와 있다구.’
이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엔 가격 문제에 대해 불만이 터지지만, 계속 지속되면 결국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불만의 대상이 나인 동시에, 이 불만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지.’
그런데 어떻게 해도 나를 만날 수 없다가 겨우겨우 만나게 된다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과연 불만만 다다다 쏟아낼까?
‘절대 아니지.’
내 예상대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내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저택 밖으로 나오시지도 않고, 찾아가도 만날 수 없어서 걱정했어요. 어디 아픈 건 아니시죠?”
“혹시 언제 시간 괜찮으실까요? 한 번 따로 얼굴 뵈었으면 하는데.”
“요양이 필요하신 거라면 칼레이브 호수에서 잠시 휴양을 보내시는 건 어떨까요? 배를 띄워서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어떤 시름도 잊힌답니다. 제가 다 준비할 테니 공녀님께선 몸만 오세요.”
나는 재잘재잘 떠드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아픈 건 아니었어요.”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사람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의혹이 가득했다.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안 만나줬던 거지?’
‘가격 인상에 대한 불만을 듣기 싫었던 거야? 그래도 아팠다거나 다른 핑계를 댈 텐데.’
一하고 생각하면서도 그 누구도 내게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왜긴 왜겠어요. 댁들이 이러니까 아무도 안 만났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글생글 웃었다.
그때였다.
“그야 아프진 않았겠죠. 지금 공녀는 어딜 봐도 앓았던 사람의 모습이 아니니까.”
“수척해지긴커녕 피부에 윤이 도는데요.”
영애 몇이 대놓고 삐딱한 태도를 보이며 다가왔다.
나는 뺨을 매만지며 영애들을 향해 눈웃음을 쳤다.
“어머? 고마워요. 피부는 우리 아빠 닮아서 타고나긴 했는데, 그래도 비결을 알려드릴까요?”
“뭐, 뭐라고요?”
“비결 알고 싶어서 칭찬한 거 아녜요?”
핀잔을 주던 말이 한순간에 아부하는 말로 탈바꿈됐다.
아첨꾼이 된 영애들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성을 내며 뭐라 따지려고 했지만, 그보다 다른 영애들이 빨랐다.
“저, 저도 궁금해요! 공녀님께 선 여태까지 여드름 한 번 난 적이 없잖아요.”
“비결이 뭐예요? 알려주시면 안 돼요? 저 요즘 큰 고민이란 말이에요오…….”
아직 나보다 어린 영애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귀여워.’
그리고 귀여운 만큼 내게 확실히 도움이 됐다.
‘아첨꾼 영애들이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됐거든.’
그들이 씩씩거리며 이쪽을 노려봤지만, 이 어린 소녀들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원래 고딩보다는 중딩이, 중딩 보다는 초딩이 더 무서운 법이기 마련.
소녀들의 두 눈에는 어떻게든 비결을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스킨 케어 제품을 선전하는 언니들처럼 내 뺨을 매만졌다.
‘으, 볼살.’
한동안 밖으로 안 나가며 오빠들과 아빠, 할아버지가 먹여주는 맛난 음식만 먹으며 뒹굴었더니 볼살이 잔뜩 올라 있었다.
‘군것질을 좀 자제하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피부 자랑을 한 후 입을 열었다.
“경옥고 덕택이랍니다!”
“경옥고……?”
“그게 뭐예요?”
뭐긴 뭐야 한의원에서 팔 신제품이지.
슬슬 한의원도 분점을 낼 때가 됐다.
어르신들의 사랑방인 본점은 그대로 분위기를 유지하고, 분점은 좀 더 젊은 층을 겨냥할 생각이었다.
“자, 이제 알겠죠?”
나는 일부러 내게 시비를 건 영애들을 향해 말했다.
“무, 무슨…….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래?
근데 한의원에서 경옥고 팔면 첫날부터 사갈 거 같은데.
“그럼 왜 물었어요? 아, 설마 제가 건강해 보이는 게 불만인 건 아니죠?”
“그, 그럴 리가요. 우리는 다만…….”
할 말을 찾아서 내 모습을 훑던 영애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미고 온 거 아닌가요?”
“아무리 파에라톤 공녀라고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자중해야죠.”
“오늘은 성녀 예하의 즉위식이에요. 그런데 성녀 예하보다 더 눈에 띄게 꾸미고 오는 건 예의가 아니죠.”
“예하께서 성격이 좋으셔서 망정이지.”
“어머.”
나는 손끝을 살짝 입술에 댄 후, 리리엘을 돌아봤다.
“리리,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 응?”
갑작스러운 내 위로에 리리엘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나는 절대 네가 나한테 묻힌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도 충분히 눈에 띄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사람 겉모습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 말에는 신경 쓸 필요 없어. 이 영애들이 네가 나보다 못한다고 말한 건 본인들의 마음이 못났기 때문이지, 네가 못났기 때문이 아니야.”
내 말에 아첨꾼 1, 2, 3이 난리가 났다.
“우, 우리가 언제……!”
“내가 리리보다 더 눈에 띈다면서요? 그게 그 뜻 아닌가?”
피식 웃자 아첨꾼 1, 2, 3이 어버버거렸다.
“그리고 예법에 대해 훈계하고 싶으면 제대로 알고 하는 게 어떨까요?”
“뭐라고요?”
“영애는 에스테반 황태자 전하의 즉위식 때 어떤 옷을 입었죠?”
“그건…….”
당연히 가장 호화롭고 정성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
장신구 역시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의미 있는 것들로 착용했다.
“대관식에서 성장(盛裝)을 갖추는 건 곧 경의를 표하는 일이죠. 황태자 전하의 즉위식에 누더기를 걸치고 참석할 수 없는 것처럼요.”
구구절절 맞는 말에 아첨꾼 1, 2, 3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웃겨, 진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파에라톤 공녀에게 예법으로 훈계를 하다니. 괜히 사교계에 군림하시는 게 아닌데.”
“정말 예를 따지면 본인 말본 새부터 바로 해야지. 참나. 감히 공녀님께…….”
“거기다 공녀님은 지금 신전의 상징인 흰색을 피하셨잖아?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오히려 성녀님을 더 배려해준 거 같은데…….”
“근데 묘하게 곁에 서 있으니 성녀님이 좀 흐릿해 보인다. 흰색이라 그런가?”
“아무래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공녀님 쪽이 훨씬一.”
속닥거리는 영애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꺄르륵 웃었다.
‘이 반응 보려고 일부러 빡세게 힘줬지!’
오늘은 정말 신경 많이 썼다.
그도 그럴 것이一.
‘무려 디에르 자작에게 머리를 맡겼으니까!’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지만, 즐기는 자인들 변태를 이길 수는 없다!
그리고 디에르 자작은 변태였다.
머리를 손질하는 내내 울 아가씨의 첫 번째 종 어쩌고 하는 걸 들어주느라 고역이었지만.
‘우리 리리가 저렇게 빡쳐 하는 걸 보니 뿌듯한걸!’
리리엘의 뺨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생긋 웃었다.
“나는 성녀 예하께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성장한 것뿐이에요. 의도치 않게 늦게도 착해 대관식을 못 보긴 했지만.”
구라야.
원래도 그냥 늦게 나타나서 깽판 칠 예정이었어.
내 말에 드디어 리리엘이 앞으로 나섰다.
“아, 그랬구나. 나는 오늘 안 오는 건가 하고 내심 섭섭했어.”
“그럴 리가. 내가 안 오고 싶어 할 이유라도 있어?”
내가 생긋 웃으며 응수하자 리리엘이 더 깊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늦었어?”
“사고였어.”
“사고?”
“응.”
“혹시나 해서 묻는데, 물론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나는 루루를 믿으니까.”
웃고 있는 입매와 달리 리리엘의 눈동자는 날을 세운 창처럼 날카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믿어도 너만은 절대 안 믿을 거 같은데.
“하지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 파티 중에도 몇 번이나 말이 나왔고……. 나는 유언비어라고 생각하지만, 루루를 위해서라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좋을 거 같아.”
“무슨 말인데 그렇게 뜸을 들여?”
리리엘은 짧게 침묵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이윽고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대관식을 기다리던 군중들이 일제히 돌아간 것과 관계있어?”
나를 바라보는 리리엘의 눈동자가 의의양양했다.
내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는 덫을 놓았다는 듯이.
* * *
리리엘은 짙게 미소 지었다.
‘어때?’
절대 맞다고 대답하지 못할 걸?
그러는 순간 루아티샤가 계략을 짜서 일부러 성녀의 대관식을 망친 게 되니까.
‘하지만 부정하는 순간 더 나락으로 떨어질 거야.’
리리엘은 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네가 아까 검은 황금을 뿌렸다는 소문이 벌써 여기까지 다 퍼졌든.’
루아티샤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순간, 그럼 검은 황금을 뿌린 건 뭐냐고 되물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네 잘난 명성도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떨어지겠지.’
그때, 루아티샤가 리리엘을 보며 픽 웃었다.
그건 절대 수세에 몰린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一.
“응, 맞아.”
루아티샤가 당당히 답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