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4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45화(245/353)
☆ 제245화 ☆
성녀 즉위식에는 중앙 귀족들과 지방 대영주들은 물론, 한미한 가문의 가주들이나 단승 작위만 지닌 귀족까지, 참석할 수 있는 자들은 다 참석했다.
‘그리고 사람이 이만큼 모이면 반드시 생각이 짧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내뱉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아니나 다를까.
“자, 잠깐만요! 어쨌거나 그 비싼 검은 황금을 그냥 다 퍼 줬다고요? 공짜로?”
번들거리는 기름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한 사내가 따져 물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사람인 걸 보니 이전에도 엮인 적 없고, 앞으로도 엮일 일 없는 자일 게 분명했다.
‘특히 저런 말을 대놓고 한다는 점에서 말이지.’
다른 귀족들도 경멸을 숨기지 못하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냥 퍼줬다니요. 공녀님께선 사비를 들여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덕행을 펼치신 거지요.”
“어쨌든 그게 그거 아닙니까! 그렇게 다 퍼줄 수 있는 걸 왜 가격을 올린 겁니까?!”
귀족들은 흰 눈을 떴지만 딱히 사내를 만류하진 않았다.
하긴, 왜 가격을 올렸는지 궁금하긴 할 거다.
하지만 괜히 내게 밉보일까 봐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겠지.
‘사실 난 물어주길 바랐는데.’
그래서 이 생각 없는 아저씨한테 몹시 땡큐다.
“놀란 마음도 이해해요. 가격 인상은 사실 나도 예정에 없었거든요.”
“예에?! 그, 그럼 대체 왜 올리신 겁니까!”
“제게 깨달음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그분 덕분에 단순히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요.”
“대체 어떤 쌍…… 분이 그딴 깨달음을 줬단 말입니까!”
“누구긴 누구겠어요.”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렸다.
내 시선을 받은 리리엘이 훔친 몸을 굳혔다.
“바로 우리 성녀 예하시지요.”
루아티샤가 눈매를 살짝 접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 * *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리리엘이 매서운 눈으로 루아티샤를 노려봤다.
“서, 성녀님께서 가격을 올리라고 하셨다고요?!”
“아니, 대체 왜…….”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중에서는 리리엘을 따르는 귀족들 역시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편승한 귀족들 중에 서도 검은 황금의 가격을 부담스러워하는 자들이 많았다.
얼마 전에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느니, 그 정도도 못 낼 정도로 가세가 기운 거냐느니 하며 서로 싸우지 않았던가.
‘이런.’
설마하니 이딴 말도 안 되는 개수작에 그대로 동요할 줄이야.
리리엘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루一.”
“다들 아시겠지만, 리리는 정말 생각이 깊고 인품이 훌륭하죠.”
루아티샤는 아주 자연스럽게 리리엘의 말을 끊고는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리리, 네가 이전에 남부에서 행했던 선행에 대해 말해주며 그랬지?”
루아티샤가 리리엘의 손을 꼬옥 잡았다.
“강자가 약자를 생각하고 조금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양보하면 세상은 이로운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게 된다고.”
리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긴 하다.
신전에 성녀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간 남부에서 쌓은 명성으로 귀족들의 환심을 사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이렇게 이용해 먹는다고?’
“이런 말을 스스로 하긴 부끄럽지만, 나는 이익이나 셈에는 좀 능한 편이거든. 하지만 숫자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아직 부족하다는 걸 네 말을 듣고 깨달았어.”
루아티샤는 겸손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뜻은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나는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할 생각만 했지, 구매 계층을 보고 더 뜯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一라는 말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를까?
“검은 황금의 구매자들은 전부 부자에 귀족들이지. 평범한 사람들은 아직도 마나석을 쓰고 있어.”
그 말에 두뇌 회전이 빠른 클라우디아가 씨익 웃으며 냉큼 끼어들었다.
“아하, 성녀님의 말씀에 따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양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 거구나. 합리적인 가격보다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응, 맞아. 이번에 상승된 금액은 전액 기부할 거야.”
루아티샤가 생긋 웃으며 잡고 있는 리리엘의 손을 흔들었다.
“리리, 정말 고마워. 나는 여태까지 내 돈으로만 기부해왔는데, 이런 방법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기부에 참여할 수 있잖아. 리리가 말한 대로 세상이 이로운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지?”
귀족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스스로 기부했으면 기부했지,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기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기부하는 건 좋은데, 왜 네가 내 돈으로 기부해?’라는 생각부터 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 화살은 묘하게도 가격 상승과 기부를 직접 결정한 루아티샤가 아니라 내게로 향하겠지.’
가격 상승을 발표한 날부터 오늘 대화에 이르기까지, 쌓이고 쌓인 일련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전부 루아티샤의 계산이지.
‘영악한 것.’
리리엘은 화살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루루, 네 뜻은 알겠지만 방법이 잘못됐어. 남을 돕는 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강제로 하면 서로에게 안 좋아.”
“으응?”
루아티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기울였다.
“리리가 예전에 남부에서 했던 방법 중 하나잖아.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한테 말해놓고 잊은 거야?”
“그건 이것과 다르一.”
“그만 하세요, 성녀님.”
리리엘의 말이 뚝 끊겼다.
말을 자른 사람은 루아티샤가 아니었다.
지켜보던 귀부인이 입을 연 것이다.
“성녀님의 뜻은 잘 알겠어요. 물론 베풀고 살면 좋죠. 그게 좋은 방향이라고 성녀님께서 말씀하셨고.”
“저도 성녀님이 예전에 하셨던 말을 기억해요.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 말씀하셨던 거고, 파에라톤 공녀가 그 영향을 받은 거잖아요? 근데 왜 뭐라고 하시는지. 아니면 그냥 자랑이었어요?”
“고마워요. 성녀님 덕분에 이제 검은 황금을 쓸 때마다 기부하게 됐군요. 분기마다 자선 파티를 열고 기부하는데 이제는 그냥 검은 황금만 구매할까 봐요.”
귀부인들이 리리엘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녀들에게서 쌩하니 찬 바람이 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성녀 때문에 검은 황금 가격이 두 배나 뛰었다는 거지?’
‘너였냐. 이 일의 원흉.’
‘착한 척하는 건 좋은데 적당히 해야지.’
리리엘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생각들이 선명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빈축을 살 분위기였다.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은 자신의 성녀 즉위식이었다.
가장 높게 오를 수 있는 날, 어째서 제대로 날개를 펴보지도 못한 채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되는 거지?
아니, 이유는 알고 있다.
리리엘은 고개를 들었다.
‘루아티샤 파에라톤! 네가 또 기어이!’
가증스럽게도 루아티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루아티샤 곁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그래서 공녀님, 언제 한 번 시간 되실까요?”
“피서를 저희 영지에서 보내시는 건 어때요? 제가 모든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어머나, 피서하면 카리브아린이죠. 제가 카리브아린에 가지고 있는 해안 별장이 있는데, 어떠신가요? 제게 공녀님을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루아티샤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안달을 냈다.
다만 안달 내는 자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막내는 나랑 있을 건데.”
“부인께는 내 동생 또래의 아드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동생을 어디에 초대하시겠다고?”
“야, 넌 좀 떨어져. 나보다 못생긴 게 감히 누구 가까이 다가오는 거야. 솜뭉치 눈 베려.”
“루아티샤 원하는 피서지가 있으면 그냥 이 할아비가 땅이든 성이든 다 사주마. 그러니 이 할아비랑 오순도순 보내자꾸나.”
“루루.”
파에라톤 공작이 막내딸 옆에 떡하고 버티고 섰다.
그 위엄과 박력이 넘치는 모습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윽…….’
드디어 안수르 상단주님을 만났는데 그 곁에는 파에라톤 공작저의 담벼락보다 더 큰 벽이 다섯이나 버티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입술을 짓씹으며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노렸다.
그들의 안중에는 이미 오늘의 주인공인 리리엘은 없었다.
* * *
나는 자꾸만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잠시 휴게실로 피신했다.
손을 씻는데 거울에 누군가의 모습이 비쳤다.
나는 놀라지도 않고 생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리리,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어?”
파티의 중심에서 안 보여서 없는 줄.
내 속뜻을 알아챈 리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즉위식의 애프터 파티라는 걸 잊은 거야?”
“에이, 즉위식 치르느라 피곤했나 걱정한 거지.”
피곤하다는 핑계 대고 꼬리 말고 갈 만하지 않아?
리리엘의 입가에 삐딱한 미소가 그려졌다.
“루루, 네가 내 말에 깊이 감명받아서 검은 황금의 가격을 올릴 줄 몰랐어. 다른 누구도 아닌, 파에라톤 공녀님께서 날 그렇게나 따를 줄이야.”
“그래?”
저런 비꼬는 말 따위 간지럽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오히려 리리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은 그게 아니지 않아? 고삐를 쥔 사람이 누군지 깨달으라고 가격을 올린 거 같던데.”
흐음?
“검은 황금은 귀족들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지. 가격을 확 올리면 처음엔 반발심이 생기지만 네가 아무도 안 만나면一, 너와의 관계가 끊어지면 손해 보는 건 본인들이라는 걸 알려준 거 아니야? 이게 더 네 성격에 맞을 거 같은데.”
그걸 이제야 알았냐?
처음부터 내 생각을 눈치챈 권력자들이 수두룩해서 알아서 그냥 말없이 지켜보던데.
덕분에 수월했지.
“어머! 무슨 소리야, 리리. 너무해. 나를 그렇게 본 거야?”
“사람들에게 검은 황금을 나눠준 거. 나는 분명 내 즉위식 도중에 했다고 들었거든.”
“아, 전해준 사람이 폭발 사고의 피해자들에게 지원해주는 걸 보고 착각했나 보네. 네 성녀 즉위식 기념으로 사람들에게 뿌리는 건 확실히 즉위식이 끝난 후라고 공지했어.”
“일부러 내 귀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게 한 게 아니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정말 리리, 너를 위해서 애쓴 건데. 이러면 참 섭섭하다.”
나는 웃으며 리리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전에 네가 그랬지?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리리엘의 귓가 가까이 입술을 가져가자 황금빛 눈동자가 잡아먹을 듯 나를 노려보았다.
“어때?”
“…….”
“우리, 정말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난 오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우리 서로 도와줬잖아. 넌 나에게 새로운 기부 방법을 알려주고, 난 너의 즉위식 날 불미스러운 사건을 덮어주고.”
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뒤로 물렸다.
리리엘의 뺨이 푸들푸들 떨렸다.
나는 다시금 리리엘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유유히 그녀를 지나쳤다.
내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네가 날 엿 먹이기 위해 일부러 마나석 폭발 사고를 냈다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뒤를 돌아보자 나를 쏘아보는 리리엘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어렸다.
“생각하는 수준하고는. 리리, 난 네가 아니야. 그 폭발 사고는 진짜였어.”
“거짓말 마! 그 타이밍에 사고라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하나는 우연일 수 있지. 그런데 그 모든 일이 우연이었다고?! 사고를 빌미로 검은 황금을 이용해 군중들을 빼돌린 것까지 그렇게 물 흐르듯一.”
“리리, 검은 황금을 뿌릴 다른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실제로 만들었고 말이야.
더 좋은 기회가 왔을 뿐.
“시드가 왜 성녀 즉위식에 불참했다고 생각해?”
“……!”
그래, 맞아.
시드는 다른 걸 준비하고 있었지.
‘마나석 폭발 사고 때문에 안 쓰게 됐지만.’
“아, 그러고 보니 너 시드한테 그만 좀 집적대.”
“뭐?”
“시드가 네가 자길 스토킹한다네? 그런 말 듣는 성녀라니, 되게…… 없어 보여.”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는 그대로 휴게실을 나왔다.
탁, 문을 닫고 나서 1, 2, 3초.
“아아아아악!”
와장창!
방음이 안 좋은 방도 아닌데 바깥까지 들리는 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것참 찰지게 부수네.’
그간 여유로운 척하더니 오늘은 진짜 못 참겠나 봐?
어쩌지? 그럴수록 나는 더 재밌는데.
‘아직 내 가족을 건드린 대가는 한참 남았어.’
안 그런 척하지만 제온이 의기소침해졌단 말이야.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랑을 걸었다.
* * *
“역시 파에라톤 공녀님이셔!”
제국민들은 대체로 루아티샤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는 흑사병 치료제를 개발하여 많은 이를 구했고, 아우 로라를 거치며 제국민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평민들이 마도구를 쓸 수 있게 해준 사람 역시 루아티샤가 아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一.
‘이 땅에 치느님을 전파하셨도다.’
‘성녀는 역시 우리 공녀님 아니신가. 치멘.’
‘치킨은 못 참지.’
……그러하다.
“이번 폭발 사고도 자칫하면 인명 피해가 생길 뻔했는데 파에라톤 공작가 분들 덕분에 경미한 부상으로 끝났다잖아.”
“아, 마기를 사용해서 폭발을 억제했다고 들었어. 마기는 두려운 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니……. 참, 너 직접 봤지? 어땠어?”
“물론 경외심이 들긴 했지만, 지켜주셔서 그런가? 무섭긴커녕 오히려 안심됐어.”
“그전엔 파에라톤 공작가를 왜 두려워했는지 모르겠어. 파에라톤령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다던데.”
“하긴, 공녀님의 인품을 보면 살기 좋을 만해. 본인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고 피해자들에게 무려 검은 황금을 지급해서 위로해주신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대, 아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셨잖아.”
“덕분에 몇 년 동안 마나석을 살 필요가 없겠어.”
“그런데 나눠주신 이유가 성녀님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서라면서? 이거 성녀님께도 감사를 드려야一.”
“무슨 소리! 공녀님께서 대인 배시니 배포 크게 축하해주신 거지. 거기에 성녀가 뭘 했다고!”
“자네 왜 그렇게 화를 내나?”
“내가 이듐에서 일하지 않나? 그래서 귀족 나리들 소식을 좀 잘 아는데, 성녀가 일전에 우리 공녀님께 갈 보석을 가로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신의를 저버린 파시스가 망한 거지.”
“그런 일이……! 근데 보석을 뺏어가다니 설마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성녀라고 우리 공녀님이 핍박받으시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지켜드려야 해!”
“치멘!”
성녀 즉위식이라는 초유의 이벤트 후에는 신전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하늘로 치솟고, 막 탄생한 성녀에 대한 동경이 제국을 뒤덮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루아티샤는 SSS가 취합해준 정보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로를 배경으로 시드리한이 긴 다리를 꼰 채 가제보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짜식. 진짜 잘 컸네.’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기럭지였다.
단순히 신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다니.
루아티샤는 천천히 시드리한에게 다가갔다.
‘뭘 저렇게 열심히 보지? 국제 정치에 이슈라도 생겼나? 아니면 제국 내부의 경제 문제?’
좀 멋있는 거 같은데.
괜히 두근두근하며 신문을 읽고 있는 시드리한 옆으로 쑥 고개를 내밀었다.
‘……응?’
루아티샤의 눈이 동그래졌다.
시드리한이 보고 있는 건 국제 정치도, 제국 내부의 경제 문제도 아니었다.
‘나잖아?’
루아티샤가 폭발 사고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수습하는 모습과 성녀 대관식 파티에 참석하는 모습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아마도 로라가 찍었겠지.’
그것도 무슨 화보처럼 찍어놨다.
조금 창피했지만, 하단 구석에 실려 있는 리리엘의 모습을 보니 쌤통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사 속에서 리리엘은 텅 빈 광장을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쌤통은 쌤통이고,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은 채 신문을 바라보던 시드리한을 떠올리니 부끄러워졌다.
‘날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
“뭘 그렇게 열심히 보나 했더니, 이거 보고 있었어? 이제 그만一.”
시드리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루아티샤의 입술이 멎었다.
대체 언제부터였는지, 신문을 보고 있을 줄 알았던 시드리한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