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5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51화(251/353)
☆ 제251화 ☆
뭐야, 재수 없게.
[재수 없군요.]악마 녀석과는 절대 절대 안 맞지만, 이럴 때만은 쿵짝이 잘 맞았다.
그때, 내 옆에서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에스코트는 무슨. 시드리한 황자 전하께서는 오늘 혼자 연회에 오셨어.”
돌아보자 카멜리아가 심통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잠시 홀을 나갔다가 우연히 성녀랑 만나서 같이 들어온 것뿐이겠지.”
“딱히 같이 돌아온 거 같지도 않은데? 일행으로도 안 보이는 구만.”
“내 말이. 성녀가 황자 전하께 달라붙고 있는 거 아냐?”
자스민과 카멜리아가 시선을 교환했다.
뭔가 서로를 인정하는 듯 묘한 눈길이었다.
‘둘 다 이름이 꽃이라서 잘 맞나?’
“하여간 성녀라면서 하는 짓은 마음에 안 든다니까?”
카멜리아는 왠지 더 당당하게 리리엘을 흘겨보았다.
오늘 리리엘은 성녀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드레스가 신비롭고 청초한 그녀의 미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성스러운 소녀 그 자체.
“성녀의 상징이라는 흠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흰 드레스를 입고 남의 남자한테 집적대니 더 웃기네.”
“…….”
나는 카멜리아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아니, 어쩌면.
집적거리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둘만의 추억이라니.’
시드의 등을 휘감으며 기어오르던 리리엘의 손.
지끈.
가슴이 아렸다.
그 순간, 시드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차마 그 얼굴을 더 바라보지 못하고 휙 고개를 돌렸다.
카멜리아가 그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왜 네가 피해?”
“뭐?”
“잘못하고 있는 건 리리엘이잖아. 그런데 왜 네가 피하냐고.”
“…….”
“놀랄 것 없어. 내가 원래 좀 눈치가 좋은 편이야. 너랑 시드리한 전하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어.”
음.
눈치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씨익 웃었다.
“그렇지? 내가 여기서 피하는 건 좀 아니지?”
“그래. 넌 언제나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잖아. 황제 폐하 앞이든, 황후 폐하 앞이든.”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나, 나는…… 그런 네가 조금, 아주 아주 조금이지만 조, 좋一.”
“뭘 의기소침해 있냐.”
라파엘이 나를 툭 쳤다.
“하고 싶은 대로 날뛰어. 언제나처럼. 너희 가족들이 있잖아?”
라파엘이 내 머리를 마구마구 헝클어트렸다.
“야!”
“오? 아직 성질 살아있네.”
라파엘이 피식 웃었다.
“아까 회랑에서 저 둘 보고 자리 피한 거 맞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파엘은 내 정수리를 꾹 눌렀다.
“하지 마. 키 작아져.”
“이런다고 작아질 거면 진작 작아졌어. 그리고一.”
라파엘이 내 머리에서 손을 뗐다.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있으니까.”
툭.
라파엘의 검지가 내 이마를 쳤다.
“아씨.”
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인상을 쓴 채 라파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말이 맞아.’
그게 뭐든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내 성미에 맞다.
오해든 뭐든 여기에서 시드를 피하면서 질질 끌면 그것만큼 목 막히는 고구마가 따로 없어!
수많은 고구마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고구마였다.
‘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로판 독자라고!’
삽질은 안 하고 오로지 사이다 길만 걸을 테다!
* * *
시드리한은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루아티샤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그는 도톰한 뺨만 봐도 루아티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엄청 기분 나빠하고 있는데.’
그게 무엇 때문이든 루아티샤에게 가야 했다.
시드리한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황자 전하.”
“한 폭의 그림 같다고나 할까요.”
웃으면서 말을 거는 귀족들을 보며 시드리한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시드리한은 스스로가 잘생겼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루아티샤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얼굴이니까.
루아티샤의 심미안이 곧 미의 기준이고, 그녀의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바로 완벽한 미모였다.
‘……내게 자식을 열둘을 낳자고도 했고.’
루아티샤는 ‘낳자’고 하지 않았고 ‘낳으라’고 했지만, 시드리한의 기억은 이미 완벽하게 보정된 후였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시드리한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상대가 이내 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녀와 황가의 결합은 언제나 제국에 큰 축복을 가져왔지요. 이거 기대가 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시드리한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챘다.
옆을 돌아보자 일행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가까이 리리엘이 서 있었다.
시드리한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뭐야, 아직도 있었냐.’
벌레는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 주의라서 몰랐다.
시드리한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감히 스치기도 아까운 루아티샤의 머리카락을 웬 놈팡이가 제 것인 양 건드리고 있었다.
그리고一.
루아티샤는 그 놈팡이를 향해 웃고 있었다.
시드리한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황一.”
두 손을 비비며 재차 시드리한에게 말을 걸려던 귀족이 주춤하며 물러났다.
시퍼런 서슬에 절로 입술이 딱 붙었다.
‘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원래 눈치 없는 것은 죄였다.
* * *
“시드?”
라파엘의 옆구리를 치던 루아티샤는 조금 놀라서 시드리한을 바라보았다.
시드리한이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리리엘까지.’
시드리한의 옆에 서 있는 리리엘을 보니 기분이 더러웠다.
리리엘이 생긋 웃었다.
“루루는 정말 인기가 많나 봐. 부러워. 오늘은 델바트렌 공자님의 에스코트를 받은 거야? 참 잘 어울린다. 그렇지, 시드?”
루아티샤를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잘 들어보면 자신과 시드리한을 함께 묶고 있었다.
또, 루아티샤의 곁에는 워낙 남자들이 많으니 시드리한과 루아티샤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뉘앙스 역시 담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을 주목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다.
“어머? 역시 오늘 시드리한 황자님께서는 성녀님을 에스코트하셨나 봐요.”
“두 사람이 파트너라니. 의외의 조합이네요.”
“의외라니요. 일전에도 성녀님이 친근하게 전하를 불렀는걸요. 예전부터 인연이 깊은 사이였나 봐요.”
“으음, 하지만 분명 시드리한 황자님께서는 파에라톤 공녀와…….”
사람들은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시드리한과 루아티샤의 관계가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정작 당사자들一특히 루아티샤는 티를 안 낸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렇게 얼굴에서 다 표가 났는데.’
‘……그럼 성녀님이 시드리한 전하를 뺏은 거야?’
‘시드리한 전하는 거기에 또 넘어갔고?’
‘황자님이 넘어갔다기엔 분위기가 이상한걸. 물구나무서고 봐도 황자님이 델바트렌 공자를 견제하고 있는데.’
‘뭐야, 그럼 임자 있는 남자한테 성녀님 혼자 작업 중?’
‘파에라톤 공녀님이랑 친하지 않았어?’
속닥속닥했지만, 차마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쨌거나 리리엘은 성녀였고, 여기서 소리 높여 “성녀님, 지금 친구 남자 뺏고 있는 거예요?”라고 묻기엔 체면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체면 따위 신경도 안 쓰고 내던지는 사람이 있었으니.
“하?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성녀씩이나 되면서 하는 짓은 못 배우고 교양 없는 티가 나네.”
그렇다.
카멜리아 포셰트.
좋게 말해 사교계의 말괄량이.
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사교계의一.
‘망나니.’
그녀 정도 되는 권세를 타고 난 사람이 은근하게 배척받는 이유가 뭐겠는가.
바로 앞뒤 가리지 않는 저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카멜리아가 삐딱하게 팔짱을 낀 채 몸을 쑥 내밀었다.
“성녀라고 하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거 아냐.”
“……!”
주변 사람들은 눈을 댕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무리 그래도 신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성녀에게 저런 말이라니……!’
하지만.
‘재밌는데?’
솔직히 흥미진진했다.
이미 성녀 즉위식부터 엉망진창이었던지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딱히 성녀를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기진 않았다.
“지, 지금 뭐라고요?”
“포셰트 영애! 성녀 예하께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리리엘을 추종하는 몇몇 영애와 신관만 화를 낼뿐.
황후 쪽 사람들도 리리엘의 역성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로서는 성녀인 리리엘이 에스테반의 날개가 되어주길 바랐는데, 저런 식으로 시드리한의 옆에 찰싹 붙어있으니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이 건방진……!’
리리엘은 카멜리아를 노려봤다.
설마하니 여기서 카멜리아 포셰트가 루아티샤의 역성을 들고 나설 줄은 몰랐다.
‘루아티샤를 망신시키라고 자극했더니 벌써 루아티샤에게 넘어갔어? 이 벌레만도 못한 것!’
오히려 지금 카멜리아는 자신에게 망신을 주고 있지 않은가.
“포셰트 영애,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법입니다. 내게 못 배우고 교양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떤 연유로 그리 말씀하신 건지요?”
“하! 그걸 몰라서 물어?”
“네, 몰라서 여쭙습니다. 그리고 만약 영애가 합당한 연유를 대지 못한다면一.”
리리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영애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크게 지셔야 할 것입니다.”
황금빛 눈동자에 소녀가 감당하지 못할 살기가 어렸다.
카멜리아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 순간,
“그 반대는?”
루아티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카멜리아의 말이 옳으면 어떻게 할 건데?”
“루루.”
“리리, 시드는 오늘 비아트랑제의 네 파트너가 아니지?”
“……그래.”
“그런데 왜 자꾸만 파트너인 척해?”
“나는 그런 적 없어. 조금 전에도 너와 델바트렌 공자님이 잘 어울린다고 했을 뿐이야.”
루아티샤는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
“아, 아직 리리는 사교계 예법이 부족한가 보구나? 사교계에서는 드러난 말 자체보다 그 속에 진실을 숨기곤 하지. 이번엔 내가 이해해줄게.”
리리엘의 안색이 하얗게 굳었다.
루아티샤는 한 걸음 더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길게 트인 슬릿 사이로 매끈하게 뻗은 다리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리리엘과 검은 드레스를 입은 루아티샤.
흑과 백의 대조가 마치 선과 악의 대립처럼 보였다.
리리엘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눈꼬리를 내렸다.
“루루……. 내가 시드의 파트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할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아.”
황금빛 눈동자가 처연하게 젖어 들어갔다.
“왜 나를 이렇게까지 추궁하는 거야? 내가 시드와 친하게 지내는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남자 때문에 이렇게 친구를 박대하는 거야?”
루아티샤가 기가 막혀 하는 사이, 시드리한이 입을 열려고 했다.
‘안 되지.’
여기서 시드리한이 입을 열면 망한다.
리리엘은 아까 정원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아, 시드.”
리리엘은 시드리한의 뺨을 매만졌다. 다정하게, 부드럽게.
“이제 나와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어?”
탁!
그러나 시드리한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리리엘을 쳐냈다.
“꺼져.”
그의 눈동자가 시리게 번뜩였다.
“내게 이런 식으로 굴면 좋을 게 없을 텐데? 나는 네가 루루에게 숨기고 있는 걸一.”
“그래, 내가 루루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지. 평생 몰랐으면 좋겠어.”
시드리한의 입매에 비뚜름한 미소가 걸쳐졌다.
“하지만 루아티샤를 상처 입히면서, 불안하게 하면서까지 비밀로 할 것 따윈 내게 없어.”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나.’
설마하니 저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리리엘에겐 시드리한을 입 다물게 할 말이 있었다.
“시드는 혼자야. 네가 시드의 연인도 아니잖아.”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에 시드리한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어때? 루아티샤 너도一.’
리리엘의 예상과 달리 루아티샤는 피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시드리한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두 입술이 닿았다.
시드리한의 동공이 훅 커진 것을 보고 루아티샤는 슬쩍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이런 공개 키스 같은 거, 영화 속에서나 로맨틱하지 실제로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一.
‘나쁘지는 않아.’
루아티샤가 입술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커다란 손이 루아티샤의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시 입술이 닿았다.
더 깊이, 더 깊이.
부드러운 시드리한의 입술과 숨결이 예민한 점막에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