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52)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52화(252/353)
☆ 제252화 ☆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뜨겁고, 뜨거워서.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은가 하면, 발끝이 저릿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모든 것이 몽롱한 가운데, 맞닿은 시드리한의 존재만이 선명했다.
허리를 바짝 끌어안은 커다란 손.
머리카락을 헤집는 긴 손가락.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은 입술, 맞추어진 호흡, 오가는 열 거.
마치 영원 같았고, 세계가 멈춘 듯했다.
천천히,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루아티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파라이바빛 눈동자가 드러나며 시드리한을 담았다.
시드리한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짙고 어둑했다.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떠한 충동을 비추는 것처럼.
시드리한이 다시금 루아티샤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순간,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시드가 혼자라고 했지? 그래, 맞아. 시드는 혼자야.”
루아티샤가 리리엘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내 약혼자.”
그 순간.
쩌적, 쩍.
어디선가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콰아아아앙!
“약……혼자?”
나직한 목소리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했다.
섬뜩한 기척에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지옥귀.
그곳에 서 있는 건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지옥귀였다!
‘미, 미친……?’
루아티샤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흉흉한 마기가 파에라톤 공작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선뜩한 눈동자는 피를 잔뜩 머금은 것처럼 붉었다.
‘저러다 큰일 나겠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루아티샤가 주변을 살폈다.
‘어디 갔어, 오빠들은! 아빠 좀 말려一.’
쿠웅!
어디선가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났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저 소리의 원흉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더 망한다. 만약은 없다. 완벽하고 확실하게 망한다.
루아티샤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돌렸다.
콰드득, 콰드드드득!
제온이 짚고 있는 대리석 기둥이 패이다 못해 조각나고 있었다.
“감히 내 막내를…….”
표정 하나 없는 가운데 제온의 눈동자만이 살기로 타올랐다.
‘누, 눈이 이미 맛 갔어!’
루아티샤는 현기증이 이는 것을 참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제 말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라!’
하지만 언제나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
“순진한 내 동생을 꼬셔?”
눈매를 가늘게 휘며 사르르 미소 짓는 아레스의 뒤로 마기에 휩싸인 실내 장식一이었던 것一이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 솜뭉치는 아까 태어났다고!”
버럭 외치는 익시온의 발 아래로 지하로 가는 통로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오들오들 떨며 눈물 대신 땀을 뻘뻘 흘렸다.
‘아니, 누가 봐도 파에라톤 공녀가 아까 태어나진 않았는데…….’
‘그리고 그 순진하다는 동생이 먼저 황자님 멱살 잡고 키스하지 않았나?’
그러나 그 누구도 네 명의 악마 앞에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와중에 타렌카 후작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느긋한 태도로 턱을 쓸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불운한 사고가 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상자가 생기기 마련이지. 사고에서 희생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는 법이고. 참으로 애석한 일이야.”
타렌카 후작의 눈동자가 매섭게 시드리한을 노려봤다.
아무리 봐도 애석한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시드리한이 지금 멀쩡한 상태로 루아티샤의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게 애석하다면 애석해 보였다.
‘저기요.’
루아티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금 여기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궁을 부셔?
이런 것까지 K-로판다워도 되는 거야?
그러나 가족들의 기세는 잦아들 줄을 몰랐다.
오히려 점점 더 흉포해지고 있었다.
‘이러다 진짜로 시드 인생 하차하는 거 아니야?’
기겁한 루아티샤가 시드리한의 앞을 막아섰다.
“안돼!”
막둥이의 얼굴을 본 가족들이 주춤했다.
“시드 괴롭히면 나 진짜 화낼 거야!”
그 엄청난 선언에 가족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 내 딸이…….’
어떻게 저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팡이의 편을 들며 자신에게 화를 낸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가족들을 바라보는 루아티샤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가족들이 움찔하더니 넘실거리던 마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흉흉했던 붉은 눈동자에 살기가 점점 걷히더니 이내 시무룩 해졌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막둥이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오들오들 떨고 있던 귀족들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파에라톤 공작 일가가 막둥이에게 껌뻑 죽는다는 건 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건 꼭 마치一.
‘맹수 조련사……!’
‘절대 인간을 따르지 않을 것 같은 야생의 맹수를 손짓 한 번으로 길들이는 장면을 본 느낌이야…….’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건 인간과 맹수의 교감(?)이라는 감동적인 장면을 봐서일까, 아니면.
‘살았어!’
‘죽지 않아도 돼!’
사람들은 환호성도 지르지 못한 채 서로를 얼싸안았다.
원래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건 새우인 법이다.
* * *
“자네 그거 들었나? 비아트랑 제가 연기된 이유가 황궁이 무너져서라며?”
“세상에 깜짝 놀랐지 뭐야? 다른 건물도 아니고 황궁의 궁이 무너지다니.”
“아무리 외궁의 궁은 내궁보다 방어막이 약하다지만 어찌 그럴 수 있는지.”
“과연 일인 군단이라는 파에라톤다워. 군단 네 개가 와서 짓밟은 거니 건물이라고 버틸 수 있겠는가.”
“파에라톤 공작가가 몬스터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니 참 다행이야. 든든해!”
“그런데 그 댁 막내 따님 결혼은 할 수 있겠어?”
“그러게나 말이야. 연애 좀 한다고 궁전이 무너졌는데.”
“한데 보면 볼수록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얼굴 합이 끝내주지.”
“에스테반 황태자님께서도 매우 잘생기셨지만, 역시 시드리한 황자님 쪽이…….”
“그냥 다음 대 황제도 시드리한 황자님이 되시고 공녀님과 혼인하셨으면 좋겠는데.”
“그거는 들었어? 두 분이 왜 공개적으로 키스를 했는지?”
“거기에도 이유가 있어?”
“글쎄, 그 성녀님께서 말이야 두 사람 사이를一.”
“헐, 성녀님께서? 뭐야, 완전 깬다.”
공개 키스의 위력은 엄청났다.
사람이 셋 이상 모이면 모두 그 얘기만 했으니까.
일반 평민들만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었다.
* * *
[망상하는 귀부인 무리가 물개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나는 뚱한 얼굴로 알림창을 노려봤다.
그러나 글자가 사라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망상하는 귀부인 무리의 한마디: 아줌마 다른 망상도 한다?]‘대체 무슨 망상을 하는 건데요!’
[주식 상장 위원회 영애 무리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주식 상장 위원회의 한마디: 역시 안정과 승리와 확신의 시드리한주! 추가 매수합니다!] [주식 상장 위원회의 두마디: 아악! 내 주식 휴짓조각이 됐잖아! 그래도 팔지 않을 거야. 내 작고 소중한 주식. 언젠가 반등할 날을 노립니다.]“…….”
이 사람들 남의 연애사에 너무 관심 많은 거 아니야?
나는 혀를 차며 손을 홰홰 저었다.
알림창이 흐트러지는 것과 동시에 디에르 자작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우리 아가씨, ‘아찌, 아찌’하며 저를 따를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다 크셨을까…….”
“첫째, 난 어렸을 때도 그랬던 적 없어.”
“너무해!”
“둘째, 지금 이 말 37번째인 거 알지? 그만 좀 울어.”
“아앗……! 제가 한 말을 전부 다 기억해주시는 건가요? 이 디에르, 감동, 또 감동입니다!”
“…….”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눈물을 그친 디에르 자작이 내 책상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았다.
나는 서류를 집어 들며 물었다.
“소문은?”
“제국에 파다합니다. 그 난리가 났는데 조용할 리가 있겠습니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키스하는 사진도 실렸는데요.”
하씨!
쪽팔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키스하는 걸 전면에 싣냐!
“그러게 왜 그러셨습니까.”
문이 열리며 들어온 칸도르 백작이 혀를 쯧쯧 찼다.
“나한테 백작이 뭐라 할 건 아니지. 본인도 불같은 사랑을 했으면서.”
퉁퉁거리며 말하자 칸도르 백작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흥!’
“파에라톤에 대한 반응은 어때?”
“괜찮습니다. 아가씨께서 명하신 대로 SSS에서 소문의 방향도 잘 조절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좋긴 하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을 부순 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까 봐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몬스터들로부터 제국민을 지켜주는’ 파에라톤의 무력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만. 민심은 전부 아가씨께 호의적이라서.”
“그간 공녀님께서 살린 목숨이 몇이고 해오신 일이 얼마입니까. 좀 더 사람들의 지지를 믿으셔도 됩니다.”
“나도 안 믿는 게 아니야. 하지만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 점이 지금의 공녀님을 만든 것이기도 하지요.”
칸도르 백작의 칭찬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리엘이 여론에 뒷공작을 쓸 수도 있고.”
“그런 시도가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一.”
칸도르 백작이 소리를 낮췄다.
“의외로 여론전이나 사교전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쪽이야 편해서 좋습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대응이 살짝 부족하달까?”
걔도 로판을 좀 읽었으면 달랐을 텐데.
‘머리가 아예 나쁜 건 아니야. 사기를 쓴다는 게 들킬 위기의 순간에 재치를 발휘해서 자신이 사기를 흡수한 걸 보면.’
그리고 그걸 이용해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성녀라는 타이틀까지 거미 쥐었다.
“묘하게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미진한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좁은 남부 사회에서 떠받들어져서 사회성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나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인간이 아닐 수 있지.”
“……!”
악트셰라켄이 그랬다.
사기를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리리엘이 사기를 쓴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의심했지만.’
이제는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아리엘 역시 인간이 아니었지.’
사기를 정화하자 연기로 이루어진 뱀의 형상으로 변해 도망치던 게 아직도 생생했다.
“……아무래도 심각한 사안 같습니다.”
“응, 아빠랑 의논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문제는一.”
아빠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르카를 호출했다.
“내 일정 중에서 자잘한 티파티나 살롱은 다 취소해줘.”
“알겠습니다, 아가씨.”
오르카는 고개를 숙였지만, 디에르 자작은 놀란 눈으로 내게 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외출을 줄이시게요?”
“응, 나가봐야 다들 내 연애 이야기만 할 게 뻔하잖아.”
“그거야 그렇죠.”
“파에라톤과 황가의 결합이 될 수 있는 일이니 모두 촉각을 세우는 건 당연하겠지. 다들 정치적으로 아주 생각이 많을 거야.”
“……그냥 연애 이야기라서 좋아하는 거 같던데.”
“그런 공개 키스를 봤는데 누가 안 떠들고 다니겠어요.”
아씨!
“그만 좀 해!”
나는 쿵쾅대며 집무실을 나가 서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그대로 문에 몸을 기댔다.
‘자꾸 언급하면 떨린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술을 매만졌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맞닿았던 시드의 입술의 잔열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시드는 뭐하고 있을까.’
찾아가 볼까?
두근두근하며 고개를 드는데, 회랑 저편에서 길을 꽉 막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아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쪽에서는 오빠들이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가족들의 기세가 흉흉했다.
‘어라?’
당황한 순간.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