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54)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54화(254/353)
☆ 제254화 ☆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통신석이 반짝였다.
“다들 이제 가봐. 나 좀 쉴게.”
“공작 각하께 가보시려는 거 아니었어요?”
“으응?”
안나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조, 좀 나중에. 이따가.”
로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아가씨 통신석은 이런 모양이 아니지 않았나요? 새로 사셨어요? 아닌데……. 분명 아침에도 봤는데.”
나는 흠칫했다.
‘과연 스토커……! 눈썰미가 엄청 좋잖아?!’
나는 괜히 통신석을 매만지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냥, 일 때문에 하나 더 장만했어.”
“흐응? 일 때문이 아닌 거 같은데요?”
“뭔가 다른 이유 같은데一.”
언니들의 광대가 하늘로 치솟으며 눈이 가늘어졌다.
“몰라! 놀리지 마!”
“어휴, 우리가 어떻게 아가씨를 놀리겠어요.”
“자아, 머리에 이거 하세요.”
안나가 내 머리에 장신구를 달아주며 말했다.
“이거 못 보던 건데?”
“시드리한 전하께서 선물하신 거예요. 각하께 들키지 않도록 몰래.”
꽃송이가 가득 달린 리본에는 자그마한 보석 참이 달려 있었다.
내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퍼플 사파이어가 반짝이며 빛이 났다.
“아가씨랑 너무 잘 어울려요. 시드리한 전하께서도 센스가 좋으시네요.”
“우리 아가씨야 뭐든 잘 어울렸을 테지만.”
“……그런데 이거, 전하의 눈빛과 똑같은 색이네요?”
“어머!”
“허어, 시드리한 전하께서도 참. 요망도 하시지.”
“너무 의도가 빤히 보이는 거 아니에요?”
언니들이 히죽히죽 웃었다.
‘왜 나보다 본인들이 더 좋아한담.’
나는 괜히 머리의 리본을 매만졌다.
거울 속 내 얼굴에는 나조차도 한 번 본 적 없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으으, 우리 아가씨를 이렇게 만들다니 도둑놈! 싶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틸다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상대가 시드리한 전하시라니까 그냥 납득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약혼자라고 하신 건 취소해요. 아직 약혼은 안 돼요. 절대.”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셔야 해요. 알았죠?”
“그러다 나 호호 할머니 되겠다!”
“좋네요. 그때까지 아가씨랑 공작가에서 이렇게 언제나처럼 함께 지내는 거.”
언니들이 웃으면서 방을 나갔다.
나는 괜히 리본을 한 번 더 쓸고는 통신석을 켰다.
그러자 시드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시드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듯 멈칫했다.
‘왜 그러지?’
어디 이상한가? 괜히 슬쩍 거울을 살피는데 나직한 중얼거림이 그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잘 어울리네.”
뭐?
“큰일이야. 생각보다 더 잘 어울려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시드의 뺨이 살짝 붉었다.
나는 푸스스 웃었다.
“그게 뭐야.”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드의 입가에도 이내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시간 있어?”
“갑자기 시간은 왜?”
“황궁이 무너진 바람에 비아트랑제가 연기됐잖아. 마침 나한테 오페라 티켓이 딱 두 장 생겼는데.”
시드의 길쭉한 손가락 사이에서 금박이 화려하게 물린 오페라 티켓이 흔들렸다.
“아, 어쩌지? 그거 라파엘이랑 보러 가기로 했어. 라파엘이 어울리지 않게 은근 로맨스극에 관심이 많거든.”
나는 로판 세계의 영애답게 오페라를 보며 오페라글라스를 우아하게 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 가족들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함께하는 사람은 단연 라파엘이었다.
“웃기지. 활극이나 영웅서사시 같은 걸 좋아할 거 같은데. 얼마 전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울었다니까?”
주먹으로 눈물을 털면서 “머, 먼지가 들어간 것뿐이야. 젠장!” 하고 외치던 라파엘이 떠오르자 웃음이 나왔다.
“박스석이라 우리 둘만 있어서 다행이지. 트인 곳에서 봤으면 라파엘 인기가 수직 하강했을걸?”
새들새들 웃는데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아까부터 시드리한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델바트렌 공자와 많이 보러 다녔나 봐?”
“으, 으응…….”
“그것도 박스석에서 단둘이?”
“자, 자스민이랑 티리엘이 낄 때도 있었어. 클라우디아도 오기도 하고.”
시드리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라, 라파엘은 그냥 친구야. 자스민이랑 티리엘이랑 똑같아!”
“어쨌든 그딴 놈팡이와 단둘이 좁은 박스석 안에서 오페라를 봤다는 거네?”
“놈팡이라니…….”
할아버지는 아빠를 놈팡이라고 하고, 아빠랑 오빠들은 시드를 놈팡이라고 하고, 시드는 라파엘을…….
‘먹이 사슬도 아니고 이건 놈팡이 사슬인가.’
“안 되겠어. 안심할 수가 없어.”
“내가 뭘 어쨌다구.”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 주황 머리 녀석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응?”
“그 검은 머리는 대체 누군데. 누군데 우리 애가 아빠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거야.”
그거 너야.
‘바보.’
알려줄까 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흥이다!’
“넌 오페라에 딱히 관심 없잖아. 갑자기 생긴 표라면 황비님이랑 보러 가. 황비님도 아들이랑 함께 가보고 싶을 거야.”
“허이구!”
응?
갑자기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시드의 옆에서 바렌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되것소! 연애 고자도 아니고 무슨 연애를 처음 해보는 티가 이리도 팍팍 난단 말이오!”
아니, 갑자기 뼈 때리네?
“이게 정말 우연히 갑자기 생긴 거겠소? 황금 티켓이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티켓인데!”
“그거 그냥 황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박스석이잖아……?”
“그게 그냥 갑자기 단장한테 뚝 떨어지겠소?”
나는 입을 헤벌렸다.
그럼 나랑 보고 싶어서 일부러……?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전적이고 흔한 데이트 신청이었다.
자스민이나 티리엘이 어떤 영식이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하면 잇몸을 내보이며 썸 타냐고 놀렸을 거다.
‘근데 막상 나한테 일어나니까一.’
화르륵,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제야 알것소? 그런데 딴 놈팡이랑 보러 가기로 했다니 내 열불이 터지는一.”
“꺼져.”
시드가 바렌을 밀어냈다.
바렌이 투덜투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드는 못마땅한 듯 닫힌 문을 노려봤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가 은근히 부끄러워하고 있는 게 다 보였다.
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나랑 오페라 보러 가고 싶었어?”
“……응.”
“시드는 오페라 보는 취미 같은 거 없잖아.”
그 말에 시드는 잠시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좋아하게 될 거 같아서.”
그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스르륵, 결 좋은 금발이 미끄러져 내리고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비추었다.
“너랑 보면 좋아하게 될 거야.”
자그마한, 남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미소.
아.
만나고 싶다.
지금도 보고 있지만, 보고 싶어.
이렇게 마법이 만들어낸 환영
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수 있도록一.
“보고 싶어.”
시드가 말했다.
거짓말처럼 내 생각하고 똑같이.
“응.”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보고 싶어.”
별거 아닌 말인데 입 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부끄럽고 설렜다.
얼굴이 발개졌을 것 같아서 나는 시드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시드가 그런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솜뭉치!”
방문이 벌컥 열리며 익시온이 들어왔다.
익시온은 나와 시드의 영상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쩐지 기분이 더럽더라니. 웬 놈팡이가 순진한 내 솜뭉치를 꾀어내고 있었네. 그 손 안 치우냐?”
깡패처럼 얼굴을 구긴 익시온이 당장 손모가지를 부러트릴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 어차피 영상 통신석일뿐이라구! 아무리 손 뻗아봤자 나한테 안 닿아!”
“감히 내 솜뭉치한테 닿으려고 했다는 거 자체가 잘못한 거야! 불순하다고!”
아니, 불순한 것으로 따지자면 내가 제일…….
“하늘같이 높은 내 솜뭉치한테 감히 닿을까, 바라봐도 괜찮을까 시선조차 조심해야지! 루루, 저렇게 발랑 까진 남자는 절대 안 돼! 물론 안 만나면 더 좋고!”
“시, 시드 나중에 봐!”
“나중에 보긴 뭘 나중에 봐! 너 이 새끼, 뒈졌어! 어디 남의 귀한 동생한테一.”
나는 재빨리 통신석을 종료했다.
익시온은 이제는 사라진 시드를 향해 씨끈덕거렸다.
“내 방에는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익시온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렸다.
“이럴 줄 알았어. 역시 할부지 말씀이 맞아.”
무슨 소리지?
“내가 무슨 일 있어야지만 올 수 있어? 원래 아무 일도 없어도 왔잖아.”
“그건…….”
솔직히 조금 찔렸다.
방금도 아빠한테 가려다가 시드의 통신을 받고 안 갔으니까.
“에이, 익시온도. 당연히 아무 일 없어도 올 수 있지. 나 보고 싶어서 왔구나?”
나는 활짝 웃으며 익시온의 팔짱을 꼈다.
익시온은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시 황궁을 부수면 절대 안 돼.’
황제가 껄껄껄 웃으면서 그냥 넘어가서 다행이지, 아무리 외궁이라고 해도 황궁을 부수는 것은 중죄였다.
황제는 어차피 몇백 년 된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라며 새로 지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혹시라도 황제의 생각이 바뀔까, 얼른 파에라톤에서 새로 지어주겠다고 말했다.
‘근데 우리가 안 지어주겠다고 해도 됐을 거 같아.’
그도 그럴 것이 황제는 그후로도 계속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연신 내게一.
“내 아들이 좋으냐? 네 마음에 들어? 그래, 약혼식은 언제 올려줄, 아니지, 아니야. 이미 약혼자라고 선언했으니 이제 남은 건 결혼뿐이구나. 어서 결혼하자꾸나.”
一하며 결혼을 재촉했다.
‘심지어 결혼날에 대한 편지까지 아침저녁으로 보내서 아빠가 다 태워버렸지.’
황비님은 또 어떤가.
“아가.”
며늘아기를 부르듯 날 부르고 있었다.
“우리 아가의 궁은 어디가 좋겠니? 호수달궁, 푸른장미궁, 흑사자궁. 원하는 곳을 고르렴. 아, 따로 궁을 마련할 필요 없겠구나? 시드의 궁에서 함께 지내면 되니.”
“아가, 언제 궁에 들어올 거니? 준비는 이미 다 마쳐놨단다. 시드가 이렇게 내게 효도를 하는구나. 아가가 내 아가가 되다니.”
‘……이걸 황궁을 부수고도 좋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잡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파에라톤 공작가의 방자함이 지나칩니다! 어찌 황궁을 부수고도一.”
“조용히 하시오, 황후! 이러다 루루와의 혼사가 깨지면 황후가 책임질 것인가?”
황후는 물론 혼사가 깨지길 바라고 있었겠지만.
“어째 금족령을 풀고 바깥에 나오자마자 논란을 만들려 하는가!”
그 말에는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자숙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까.
‘……그래도 두 번은 부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다신 안 그러기로 나랑 약속했으니까 더는 마기를 내뿜으며 화내지 않겠지?
* * *
파에라톤 공녀, 깜짝 약혼 발표?!
사상 최강의 결합, 황실과 파에라톤 공작가!
아우로라와 에오스의 연.
메이퀸의 선택을 받은 남자는 누구?
여름날, 그 뜨겁고 아찔한 키스
모두가 궁금해하는 키스, 8페이지에 걸친 컬러 기재! 〈노블레스〉 7월 호를 놓치지 마세요!
파사삭!
거친 소리를 내며 신문이 구겨졌다.
이내 새까만 마기가 신문을 뒤덮더니 그대로 타올랐다.
신문은 잿더미도 남기지 않은 채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이 세상에 말소되었다.
“이딴 기사를 기사라고 써? 이 와중에 선전하는 잡지는 또 뭐지? 절대 발간해선 안 돼. 전량 폐기하라고 해.”
“전량 폐기로 되겠나? 아예 사장을 갈아치우도록. 이딴 잡지 다시는 내지 못하도록.”
“기자들도 다 족쳐. 결합은 무슨 결합! 약혼도 하지 않았는데 이딴 쓰레기 기사를 내?”
파에라톤 공작과 타렌카 후작이라는 두 거목의 말에 에르켈 자작은 애꿎은 기자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아가씨 앞에서는 그나마 온순한 척하시더니 결국 뒤에선……. 시드리한 황자님은 괜찮으실까?’
혹시 몰래 살수라도 보낸 건 아닐지.
이쯤 되니 시드리한이 안타까울 지경一.
‘아니, 안타깝진 않지! 감히 우리 순진한 막내 아가씨를!’
정상인인 척하고 있으나 에르켈 자작 역시 루아티샤를 꼬꼬마 때부터 봐온 팔불출이었다.
* * *
눈 돌아간 네 명의 팔불출이 황궁 뿌셔뿌셔를 저지른 바람에 비아트랑제는 제도 근교에 있는 황실의 별궁인 슈아스펠 궁에서 다시 열렸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금족령이 풀리고 처음으로 주최한 대연회가 완전히 망한지라, 황후는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위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일부러 엄청난 공을 들였건만 그게 수포로 돌아갔다.
거기에 오늘 다시 열린 비아트랑제는 준비하는 시일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황비와 함께 주최하게 되었다.
‘하여간 사사건건 내 앞길을 가로막지.’
황후는 파고라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주변을 살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루아티샤와 시드리한에 관한 이야기 중이었다.
그 와중에 간혹 들리는 이름이 있다면 리리엘이었다.
다만 전혀 좋지 않은 방향이었다.
“그럼 성녀가 계속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이간질한 거 아니야?”
“전에도 시드리한 황자님과 공녀님이 아무 사이가 아닐 거라면서 끼어들었잖아요.”
“그때도 웃겼는데. 공녀님과 친밀한 자스민 영애랑 티리엘 영애가 더 잘 알지, 왜 두 사람 질문에 자기가 나선담?”
황후가 쯧, 하고 혀를 찼다.
‘하여간 리리엘 그 애는 왜 시드리한에게 다가가선.’
영 마뜩잖았다.
하지만 그래도 쓸만한 구석은 아직 남아있었다.
어쨌거나 리리엘은 성녀였다.
‘오늘, 루아티샤의 위세가 끝난다면一.’
이렇게 주목받는 자리에서 치수 사업의 문제점이 대두되면 제아무리 루아티샤도 타격을 입는다.
‘一그 자리를 리리엘이 메꿔 줄 테니까.’
황후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