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25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256화(256/353)
☆ 제256화 ☆
황후와 눈이 마주친 루아티샤가 생긋 미소 지었다.
술잔을 쥔 황후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 사심 하나 없어 보이는 해맑은 미소가 그렇게나 불안할 수 없었다.
* * *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요?”
“고, 공녀의 차례라니. 그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피브스 백작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람을 찌를 땐 자기도 찔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찔러야지.
선빵 쳐 놓고 ‘아, 아니었네요. 죄송죄송’하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냐?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백작에겐 안타깝게도 나는 받은 건 확실히 갚아주는 로판 독자였다.
‘그것도 고구마라면 더더욱.’
“치수 사업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르델라에서 아퀼렘을 공급받아 이전보다 훨씬 안정성을 확보했지요. 그런데 제게 이리 따지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그, 그거야 당연히 민생이 걱정되어서지요.”
“그래요? 국사를 논하는 자리도 아니고, 연회에서 대뜸 제게 책임감 없다며 화부터 내신 게, 아무런 저의도 없이 민생을 걱정했기 때문이라?”
내 말에 사람들 사이에 서 있던 클라우디아가 부채를 살랑이며 입을 열었다.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중차대한 국가사업에 잡음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가? 민심이 동요하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어지는데.”
“루루가 딴소리 안 나오게 곧바로 응수해서 다행이지.”
“심지어 남자랑 놀아나느라 일을 못 한다는 말까지 하지 않았어? 이게 정말 아무 의도 없이 한 말이라고?”
“그렇게 소문 나는 순간 루루는 물론이고 황자 전하까지 민심을 잃을 텐데.”
“정말 민생을 생각한다면 설령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조용히 말하는 게 정상 아닌가. 다른 연회도 아니고 비아트랑제야. 여기와 있는 기자가 몇인데.”
“그런데 아무런 저의도 없이 오직 제국민을 걱정했다는 말을 믿으라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냥 멍청한 거지.”
“자기 입으로 멍청하다는 말을 한 건지도 모르고 얼굴 들고 있는 것 좀 봐.”
키득키득.
다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하나도 죽이지 않은 말과 비웃음 소리.
피브스 백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 친구들이지만 사람 신경 긁는 건 정말 잘해.’
[누구한테 배웠겠어요.] [친구 따라 제도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님.]‘시끄러.’
하지만 악마 녀석의 말에 반박할 순 없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클라우디아는 이런 식으로 말을 얹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시스템에서 ‘조용한 천재’라고 불렀을까.
자스민 역시 브란테 영애와
셀란도 영애의 말에 기가 팍 죽어 아무런 대꾸도 못 하지 않았던가.
‘뭐, 다들 잘 큰 거지.’
내 친구들의 혈관에도 탄산이 흐르게 되었구나!
나는 뿌듯하게 친구들을 한 번 바라보곤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지난 경합 건으로 인해 치수 사업의 예산안은 공개된 상태지요. 실무에 들어가며 세부적으로 조정이 있었지만 큰 기틀을 바꾸진 않았습니다. 경합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서.”
피브스 백작은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내 말이 꼭一.
“해서 서부에서 아퀼렘의 가격을 무려 세 배나 올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백작께서는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一자신을 변호해주는 것처럼 들릴 테니까.
“아퀼렘은 대체할 수 없는 자원. 자칫하면 치수 사업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아퀼렘 구매에서 예산이 크게 빠져버리면 필연적으로 다른 비용의 집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싸고 내 구도가 약한 자재로 대체한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죠. 해서 급한 마음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씀하신 거죠? 말을 고르지 못하신 것도 이 일의 중대함 때문에 강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요.”
“그, 그렇습니다!”
물 샐 틈 없이 쏟아지는 말에 피브스 백작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내 말이 구구절절 자신의 편을 들고 있으니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다 피브스 백작은 원래가 남이 청산유수로 말하면 자기 생각은 없이 입을 벌리고 듣는 스타일이었다.
‘등신.’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여기서 왜 내가 네 편을 들겠냐?
‘더 잘 패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지.’
“그런데 신기하네요?”
나는 고개를 느릿하게 모로 기울였다.
“그렇게 급해서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나한테 하는 말을 고를 여유조차도 없었다는 분이一.”
나와 눈이 마주친 피브스 백작이 흠칫, 몸을 움츠렸다.
“一내가 서부와 아퀼렘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확인하셨다는 게요.”
“……!”
그제야 내 의도를 깨달은 피브스 백작이 헉, 하고 숨을 삼켰다.
딱히 반전도 아닌데 저렇게 당황하니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더 잘 패줘야지.
“정말 앞뒤 가리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면 아퀼렘의 계약 여부를 확인할 여유도 없었을 거 같은데.”
나는 생긋 웃었다.
“참 신기하네요? 선택적으로 딱 그 부분에서만 신중했던 게.”
“나도 참으로 궁금하군. 계약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냥 되는 일이 아닌데.”
시드의 말에 피브스 백작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사안에 관해 황자가 대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게가 다른 법이다.
“화, 황자 전하, 저는 그저……!”
“그냥 연락해서 계약했냐고 물어본다고 바로 답해줄 리도 없고, 만약 그랬다면 더 문제지. 서부 토호 세력과 백작 사이에 감히 국법을 무시할 정도로 강한 끈이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 시드, 빠져나갈 구멍 없이 잘 패네.’
아니라고 부정하는 순간, 백작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계약 여부를 알아낸 게 된다.
그렇다고 맞다고 하면 토호 세력과의 유착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입혀주고 재워주며 키운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잘 컸지?’
칭찬해.
나는 뿌듯한 얼굴로 시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입이 근질거려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랑 아빠가 보였다.
들썩들썩.
남들 눈에는 언제나처럼 위압적이고 무게 있는 타렌카 후작님과 파에라톤 공작님이겠지만, 내 눈엔 아주 잘 보였다.
나도 막둥이한테 칭찬받고 싶어!
一라고 생각하는 게.
‘안 돼요!’
물론 아빠와 할아버지는 제국의 공작과 후작으로서 이 일에 얼마든지 발언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국가 사업이야. 가족들을 등에 업었다는 꼬투리를 잡힐 만한 일은 만들 필요 없지.’
내 눈짓에 할아버지와 아빠가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오빠들은?’
익시온과 아레스, 제온은 당장 피브스 백작을 이 세상에서 하차시켜주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 돼!’
나와 눈이 마주친 오빠들이 움찔하더니 얌전히 살기를 죽였다.
하지만 시드를 째려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쉽게 풀리진 않을 거 같았다.
‘후, 어쩔 수 없지.’
집에 돌아가면 ‘그걸’ 하는 수밖에.
‘휴, 로판 세계 막내도 쉬운 직업은 아니야.’
* * *
“오, 오해입니다! 저, 저는 결단코 그러지 않았습니다.”
피브스 백작은 연신 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일은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황후가 준비해준 판에 맞춰 말만 하면 끝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아르델라와 아퀼렘 거래를 체결했다는 말이 나오더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애초에 서부와 아퀼렘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것도 전부 황후에게서 들은 거라고!’
서부와 연락한 적 따위 없었다.
하지만 피브스 백작에게도 여기서 황후의 이름을 말하면 안 된다는 머리는 있었다.
충심 때문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건 황후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신 황후를 힐끔거렸다.
‘저 미친놈이!’
황후는 속이 터졌다.
말로만 안 했지, 저렇게 쳐다보는 게 자신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시인하는 꼴 아닌가.
“피브스 백작? 왜 자꾸 황후 폐하를 바라보시는 거죠?”
아니나 다를까.
단 한 번도 허투루 지나가는 법이 없는 저 영악한 계집이 바로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딴생각을 할 정도로 이 사안을 우습게 여기시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루아티샤가 황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일과 황후 폐하가 연관이 있는 건가요?”
“파에라톤 공녀!”
결국 참지 못한 황후가 벌떡 일어났다.
“물론 저는 절대 아닐 거라고 믿어요.”
루아티샤가 생글생글 웃었다.
‘저 쳐 죽일!’
황후는 약이 바짝 올랐다.
하지만 그냥 약 오르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역시?”
“그런 거 같지?”
대놓고 주어, 서술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까 이상하게 성녀 예하 운운하길래 성녀가 뒤에 있나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성녀님이셔. 치수 사업을 망치면 고통받는 건 제국민들인데 그러진 않았겠지.”
“허이구, 아직도 성녀를 믿어? 그런 사람이 남의 남자를 채가려 했겠어?”
“내 생각엔 황후와 성녀 둘이서 짠 판이야. 왜, 성녀를 제도로 데려온 사람도 황후잖아.”
“쉿! 그러다 큰일 나. 입조심 해!”
황후는 이를 갈았다.
방금 말한 것들을 당장 붙잡아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짓을 해 봤자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정황상 그렇다는 추측일 뿐이야.’
정황상의 추측으로는 아무도 옭아맬 수 없었다.
특히 자신은 이 나라의 황후였다.
‘피브스 백작의 입에서 내 이름만 나오지 않으면 충분해.’
“화, 황후 폐하와 이 일은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폐하를 바라본 것도 아니고 그저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시선을 피하다 보니…….”
피브스 백작의 말에 황후가 안도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요? 그럼 다른 사람에게 물어야겠네요.”
루아티샤가 여상하게 말했다.
애초에 피브스 백작의 이실직고는 기대하지 않았고, 그럴 때를 대비해 증인을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다른 사람?’
황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설마…….’
“이것 참, 오랜만에 이렇게 나서게 되는군요.”
페르마인 백작이 허허, 하고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 * *
페르마인 백작.
서부 토호 세력과 결탁한 자로 7년 전, 루아티샤의 계책으로 서부 토호 세력이 몰락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권세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설마 페르마인 백작이 여기서 나설 줄이야……!’
새벽 축제 때 루아티샤와 대립각을 세웠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리고 황후가 시험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황권을 약화시키려고 공개 재판을 요구한 인사이기도 했다.
‘루아티샤의 편을 든다고? 그럴 리가!’
루아티샤는 페르마인 백작이 쇠퇴하는 계기를 마련한 사람이었다.
‘……그래, 절대 도울 리 없어. 오히려 나보다 더 루아티샤에게 이를 갈고 있을걸!’
무엇보다 루아티샤와 페르마인 백작은 그간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
‘흥!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지. 너 역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려서 순진한 것인가.’
황후는 입꼬리를 올렸다.
저 영악한 루아티샤가 무슨 술수를 쓸지 몰라 긴장했는데 이런 하책을 쓰다니.
하긴, 어떻게 이런 상황에 대비를 할 수 있었겠는가?
갑자기 아퀼렘 가격에 대한 질책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텐데.
배후가 황후라는 것을 눈치채고 어떻게든 엮으려 연관되어 있는 사람 전부에게 발언권을 주려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누구든 좋으니 얻어걸려라’라는 생각.
‘어리석긴. 설령 페르마인 백작이 미쳐서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서부 세력과 연줄이 닿은 자는 자신이 아니었다.
‘황태후지.’
황후는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황태후를 바라보았다.
황태후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곧장 시선이 마주쳤다.
황태후가 황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틀어지더라도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황태자인 에스테반을 움직여 자신을 잘 구제하라는 뜻이었다.
‘좋아.’
황후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오늘 세상사가 모두 네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겠구나.’
비록 계획대로 루아티샤를 꺾어 내리진 못했지만, 이걸로 하나씩 주고받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막중한 사안에는 어떤 말도 필요 없겠죠. 오직 사실만이 중요할 뿐. 하니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페르마인 백작의 시선이 황후를 향했다.
“황후 폐하께서 제게 여쭈셨었습니다. 치수 사업에 쓸 아퀼렘을 서부에서 계약했느냐고.”
“……!”
황후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러나 페르마인 백작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아퀼렘의 가격을 올릴 생각이 없느냐고도.”
“뭐, 뭐라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침묵조차 없었다.
예상치도 못한 사안에 장내가 소란으로 가득 찼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쨍한 소음.
그 속에서 오직 루아티샤만이 차분히 서 있었다.
옅은 미소를 지은 채.